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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화재와 민승호 일가 폭사

대원군의 반격

by온기철 James OhnMay 0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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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이 완공된것은 1873년11월경이 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고종이 친정을 시작 했다. 1873년12월10일 친정을 선포한지 며칠지나지도 않았는 데 경복궁에 불이 났다. 자경전의 부속건물인 순화당에서 시작한 불길은 복안당, 자미당, 교태전으로 번저 무려 364칸이 잿더미가 되었다. 

 

고종은 철저한 화재 발생 경위 조사를 명하고 청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겠다고 발표 했다. 침전인 강녕전과 건천궁이 피해를 입지 않았는 데 이어 한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결심이었다. 대신들과 협의 끝에 이어 날짜를 12월20일로 잡았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변고 인가? 나흘 후에 또 화재가 발생 했다. 홍복전 수인문 안쪽에서 불길이 시작 되어 홍복전 동쪽에 있는 다경합 8칸, 창고 38칸, 행각10여칸 등 합계 56칸과 샛담의 문 11개소가 소실 되었다. 

 

고종은 예정 대로 12월20일에 창덕궁으로 옮겠다. 국가 예산 문제로 소실된 건물 복원이 차일피일 미루어 지다가 1875년5월에 완공 되어 고종이 경복궁으로 돌아 오게 되었다. (경복궁의 역사 제4부 - 궁궐을 감싸는 화염; blog.naver.com, Charles Kim, 2017.8.4. 참조)

 

1873년12월10일 화재는 민비 침전 앞에 설치한 폭약이 폭팔하여 발생 했다. 고종과 민비는 대원군을 배후로 크게 의심 했다. 이듬 해에 고종은 암행어사를 전국에 파견하여 친 대원군 세력 숙청에 나섰다. 대원군 복귀를 청하는 유생들을 참형에 처 했다. 1874년 봄 대원군은 운현궁에서 떠나 양주 직곡 산장(의정부시 곧은골)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아들을 경복궁에서 쫒차 내니 아들은 아버지를 경운궁에서 못 살게 한 셈이다. (강준만의 한국 근대사 산책 제1권 참조)

 

남연군은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아버지이다. 흥선의 아들이 고종이다. 남연군, 대원군, 고종의 부인은 모두 여흥 민씨이다. 3대의 처가가 여흥 민씨이다. 이들이 어떻게 세도가가 되지 않을 수 있었을 까? 아무리 흥선이 일가 친척이 없는 집의 딸을 며느리로 삼아서 처가의 세도를 막으려고 했다지만 다시 여흥민씨의 딸을 간택한 것은 그리 영리한 선택이 아니었다. 

 

민자영(민비)는 경기도 여흥민씨 민치록의 딸이다. 여흥 민씨는 장희빈과의 알륵으로 유명한 인현왕후 집안이다. 민치록은 슬하에 1남3녀를 두었으나 모두 죽고 민자영 혼자 였다. 혼인 당시에 민치록은 이미 사망 했고 홀 어머니와 단둘이 *감고당에서 살고 있었다. (*숙종이 인현왕후의 친정을 위해서 지어준 건물, 덕성여대 안에 위치) 

 

이미 민자영이 왕비가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으 나 형식상의 간택에는 참여 해야 했다. 그런데 민자영에게는 남자 보호자가 없었다.  마침 흥선 대원군의 부인에게는 민승호라는 오빠가 있었다.  대원군의 처남이다. 그를 민치록의 양자로 입적 시켰다. 민승호는 고종의 외삼촌이었다가 처남이 되었다. 민비가 왕비가 되어 궁에 들어가 홀로 된 어머니 이씨는 민승호와 같이 살게 되었다. 

 

여흥민씨의 세력은 대원군 집권시기에도 점점 커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1873년 민비와 고종이 친정을 추진할 무렵 대궐안의 민씨세력 관리가 벌써 30여명이었다고 한다. 물론 민승호의 집앞에 뇌물을 바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섯을 것이다. 

 

고종은 민비와 혼인 할 무렵 이상궁을 좋아 했고 그 사이에서 1868년 완화군을 출산하여 대원군의 총애를 받았다. 한편 민비는 첫 아들을 낳았으나 항문이 없어서 사망 했다. 1874년3월25일 장차 순종이 될 왕자를 출산 하였다. 경복궁 화재등 대원군의 위협은 민비를 불안하게 했다.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완화군 또한 문제 였다. 민비와 민씨 척족들은 세자 책봉을 추진하기 시작 했다. 

 

민승호는 이조참의, 호조참판을 거처 호조판서가 되었다. 그는 민씨 척족의 수장이 었다. 대원군 실각 후에는 왕과 왕비를 제외하고는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1874년11월28일(음력), 한 승례가 민승호 집에 나타 났다. 그는 아주 특이하게 생긴 상자를 지방수령이 바치는 것이라면서 민승호에게 전달 했다.  "이 상자 안에는 복이 들어 있으니 바깥 사람이 함께 하지 못하도록 꼭 안에서 열어 보십시요." 하고 떠났다. 민승호에게는 이런 식으로 뇌물을 바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크게 의심하지 않고 방 안에서 열쇄로 상자를 여는 순간 굉음을 울리며 큰 폭팔이 일어 났다. 양 어머니 한산 이씨, 열살난 아들, 민승호 모두가 사망 했다. 민승호는 죽기전에 대원군의 거처인 운현궁을 두번이나 기르켰다고 한다. 

 

같은 해 봄에 민승호의 집에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 했다고 한다.  민승호가 폭사하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흥선 대원군의 형 흥인군 이최응의 집에 화재가 발생 했다.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대원군이 있다는 소문이 장안에 떠 돌았다. 그러나 고종은 대원군을 직접  수사하지 않았다. 흥인군 집 화재 사건의 범인으로 장씨를 체포 했다. 신철균이라는 사람의 문객이었다. 신철균은 대원군과 가까운 사람이었다. 1875년 흥인군 이최응의 집에 다시 화재가 발생 했다.  고종은 장씨를 범인으로  신철균을 그 배후로 체포 했다. 장씨는 민승호 폭사 사건과 흥선군 집 화재 사건 범인으로 처형 되었지만 신철균은 증거 부족으로 방면 되었다. 1876년 신철균은 화적때와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다시 체포 되었다. 조사 중에 신철균의 장모가 점을 빙자 해서 흥인군 집에 아무날 불이 날 것을 예언 했고 예언 한 그날에 화재가 발생 했다는 사실이 밝혀 졌다. 신철균은 민승호 폭사사건과 흥인군 집에 두번 방화 했다는 혐의로 능지처참을 당했고 삼족이 멸하게 되었다. (나무위키 민승호 암살 사건 참조)

 

대원군이 이 모든 사건에 직접 관련 되어 있다는 증거는 아무데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의심 했다. 특히 민비와 민씨척족들은 고종에게 대원군을 수사 할 것을 종용 했으 나 고종은 그들의 뜻 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폭탄 상자를 전달한 승례의 정체는 무엇일 까? 과연 대원군은 신철균에게 폭파 사건을 사주 했을 까? 아니면 장씨, 신철균 모두 조작된 범인 일까? 모두 미궁이다. 

온기철  James Ohn은퇴  의사

온기철의 브런치입니다. 역사를 주제로 한 수필을 쓰고 있습니다. 본직은 의사이고 취미는 골프와 역사 공부입니다. 지루한 역사를 재미있게 이해시키기위한 글을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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