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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제국(蒙古帝國) 제1회

 

 

서론

 

대몽고국, 속칭 몽고제국은 하나의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세계적인 대제국이었고, 이리하여 역사상 인접한 판도가 가장 광대한 국가였다. 몽고인 무력이 흥성했던 시기에 일찍이 3차에 걸친 몽고의 서방정벌을 발동하였다.

1259년부터 1309년까지 기간에 최대의 영토는 약2,400,000 km² 평방km)이었다. 오로지 1259년 몽가한(蒙哥汗: Mongohan) 사망후 일어난 내전으로 제국의 내부로부터 몇 차례 분열로써 와해(瓦解)로 향하였고, 1368년에 주원장(朱元璋)이 중국장성(中國長城)밖으로 몰아낸 후 몽고인은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대한 영향력이 점차 감퇴하여졌다. 몽고제국은 몽고인 철목진(鐵木真: Temujin) 즉 성길사한(成吉思汗: Genghis Khan)이 1206년에 알란하(斡難河; Orion River)가에서 건립하였다.

《몽고비사: 蒙古秘史》에 의하면, 알란하수원(斡难河河源)에서 창건하였는데 그 시기는 철목진이 몽고고원(蒙古高原)의 각부락(各部落) 즉 탑탑여, 태적오, 잉만, 극열, 왕고부( 塔塔尔、泰赤乌、蔑儿乞、乃蛮、克烈、汪古部) 그리고 이륜과 질열근(尼伦和迭列斤)의 양대부락(两大部落)을 정복하여서, 비로소 성길사한의 칭호를 1206년에 얻었다.

몽고제국은 건립이후 누차 대외확장하여서, 성길사한 재위시(在位時)에 서하, 금조, 서요, 화랄자모[西夏、金朝、西遼、花剌子模等國(Khuazimo)]등 국가를 정벌하였고, 그의 계승자는 양차(兩次)에 걸쳐 대규모의 서정(西征)을 하였고, 1259년 몽가(蒙哥)가 사망할때까지 몽고고원, 중국서북, 서남, 동북, 중아시아, 서아시아와 동유럽[蒙古高原、中國西北、西南、東北、華北、中亞、西亞以及東歐]까지 확대지역이었다.

제1차서정[第一次西征; 1219-1221/1223년]은 성길사한이 주수(主帥) 즉 통솔자가 되어 일으켰으니, 서요, 화랄자모, 아미니아, 격노길아, 아새배강[西遼、花剌子模 (Khuazimo), 亚美尼亚; (Armenia)丶格鲁吉亚; (Georgia) 和阿塞拜疆; (Azerbaijan)]등을 정벌하였고, 그 계승자는 양차에 걸친 대규모 서정에서 1259년까지 고가색산(高加索山; Caucasus Mountains)을 넘어 흠찰인(钦察人; Quincha people) 각부락을 격파하였다.

제2차서정(1236-1242년)은 와활태한(窩闊台汗; Wokotai Khan)재위시에 일으켜서, 발도(拔都)가 주수가 되어, 전후로 복여가보가;리아(伏尔加保加利亚; The Kama Turkic State), 보가리아인의 잡마돌궐국(保加利亚人的卡马突厥国; Volga Bulgaria and the Bulgarians)을 정복하였고, 이후에 파란왕국(波蘭王国; Kingdom of Poland)과 신성라마제국(神聖羅馬帝國; Holy Roman Empire)연합군을 격파하고, 흉아리왕국(匈牙利王国; Hungarian Kingdom)과 보가리아제2제국(保加利亞第二帝国; Second Bulgarian Empire)를 대패시키고, 전군은 이태리의 위니사공화국(意大利的威尼斯共和国; Republic of Venice)의 달려마제아(达尔马提亚; Dalmatia)까지 멀리 갔고, 남사납부지역의 납십잡(南斯拉夫地区的拉什卡; Laska in the former Yugoslavia region)까지 멀리 이르렀다.

제3차 서정(1256-1260년)은 몽가한재위시[蒙哥汗在位時; Mongohan] 에 일으켰고, 통솔자는 욱열올(旭烈兀; Hulagu)이며 목랄리(木剌夷; Mu Lai)와 양하유역(兩河流域; Mesopotamia)의 아발사왕조(阿拔斯王朝; Abbasid)와 서리아(叙利亚; Syria)의 아우포왕조(阿尤布王朝; Ayub Dynasty)를 멸망시겼다. 몽고군은 단시간 서리아를 점령하였고, 후에 신흥 마목로극왕조(新兴的马木路克王朝; Mamluk Dynasty)에게 축출당했다. 이리하여 몽고군은 3차서정때 40여개국가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몽고한국(蒙古汗國)은 1260년에 홀필열과 아리불가[忽必烈和阿里不哥; Kublai and Ali]의 쟁탈전후에 분열로 향하였다. 비록 홀필열이 1264년에 아리불가를 격패하였지만, 그가 주장한 몽고대한지위(蒙古大汗)의 위를 계승권(繼承權)은 일치된 승인획득에 실패하였으니’ 술적후왕(朮赤後王; King Shuchi)봉지(封地), 찰합대후왕(察合臺後王; Queen Chagatai)봉지, 와활대후왕(窩闊臺後王; Qeen Wokuotai) 봉지 그리고 욱열올(旭烈兀; Xuliewu, brother of Kublai) 봉지가 사실상 독립지위를 취득하여서, 이들을 4대한국(四大汗国)이라 칭하였고; 기타 몽고제국시기에 건립된 소형한국(小型汗國)은 이 4대한국에 종속되었다.

1271년 홀필열은 “대원(大元)”으로 국호를 정하고, 자칭 “몽고대한(蒙古大汗)”이라고 하였다. 1279년 대원은 남송(南宋)을 멸망시켰다. 이때부터 원의 지배영토는 몽고고원과 현 중국대부분지구(蒙古高原和現今中國大部分地區)였다. 실제로 독립지위의 몽고 4대한국[四大汗国] 흠찰한국(欽察汗國; Quincha Khanate), 찰합대한국(; 察合台汗国; Chagatai Khanate), 와활대한국(窝阔台汗国; Wokotai Khanate), 이아한국(伊儿汗国; Yier Khanate)]은 대원(大元)에게 복종치 않고, 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원성종시기(元成宗時期)에 이르러, 4대한국은 대원한국황제(大元汗國皇帝)를 명목상 “몽고대한(蒙古大汗)”이라고 합의하고 이후 4대한국의 강토는 각각 계속 전개되었다.

대원황제혜종(大元皇帝元惠宗)은 한인주원장(漢人朱元璋)에게 1368년에 중원으로부터 축출되어, 대원은 중원지구를 잃고, 후에 판도는 몽고고원지구로 축소되어서, 이를 북원(北元)이라 칭하며, 역사상 북원은 1388 혹은 1402년에 망하였으니, 달단부(韃靼部; Tartar tribes)와 와랄부(瓦剌部; Wala tribes)가 선후로 몽고대한칭호를 계승하였고, 오로지 그 통치범위는 몽고고원밖으로 나오지 못했으며, 그후 명조(明朝)는 장기간 찰합대한국(察合台汗国), 흠찰한국(欽察汗国) 그리고 기타소한국(其他的小汗國)과 병존하다가, 17세기에 몽고인이 건립한 주요한국(主要汗國)이 함께 멸망하였다.

마지막 몽고대한찰합이부임단한(蒙古大汗察哈爾部林丹汗)은 후금황태극(後金皇太極)에게 격패당했고, 그 아들 액철후(额哲后)는 황태극에게 항복하였고, 대사막남쪽 몽고여러 부족(漠南蒙古諸部)은 1636년 3월에 심양(瀋陽)에 모여 황태극을 대한(大汗)으로 승인하였고, 막남몽고(漠南蒙古; Monan mongolia)부족을 다스렸으나, “몽고한국”은 역사상 끝났다.

 

I-1. 蒙古(몽고)

 

源出室韋(원출실위)

몽고란 이름은 당대(唐代)에 최초로 보았고, 당시 친월하[狃越河(Fengyue River); 현재 조아하(洮兒河; Taoer River)]이북이고, 서쪽으로 구륜박[ (俱輪泊; Kulunpo) 현재 호륜호; 呼倫湖(Hulun Lake)]주위에 이르고, 동쪽으로 나하[(那河; Nahe)현재 눈강[嫩江(Nenjiang)]에 이르고, 북으로는 흑룡강(黑龍江)의 지역내에 이르니, 그안에 실위(室韋; Shiwei)라고 부르는 많은 대소부락이 분포되었다.

그 부락중에 몽올실위(蒙兀室韋)라고 하는 큰 부락이 있어, 현재 대흥안령(大興安嶺)이북과 액이고납하하류(額爾古納河下游)이남에 거주하였다. 13세기에 몽고인이 자기의 전설에서 자기의 조상이 액이고납곤(額爾古納昆)라는 지역에 거주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고대사전기(古代史專記)와 서로 부합된다. 남송초 홍호(洪皓)의 송막기문《松漠記聞》에서 처음으로 지적하기를, “망골자(盲骨子)는 글안사적《契丹事跡》에서 몽고국(朦古國)이라부르니, 이는 즉 당의 몽올부(蒙兀部)를 말함이다."

실위의 여러부락은 본래 고기잡이와 사냥을 직업으로 가졌다. 당조말에 이르러 대흥안령(大興安嶺)을 넘어서 서편 초원에 이르러 점차 유목(游牧)을 배웠다. 부락의 분할에 따라 점령지반이 점차 확대하여서, 한부락은 점차 삼하지원(三河之源)의 불아긍산(不兒肯山) 즉 긍특산(肯特山)에 이르렀고, 성길사한이 소속된 걸안(乞顏; Kiyat)이 바로 이 부분에 속했다.

 

蒼狼白鹿(창랑백록)

창랑백록(蒼狼白鹿)은 몽고인선조파탑적한(蒙古人先祖巴塔赤罕)을 낳았고, 11대까지 전하여 두아들이 11대에 와서 형제2인이 네 아들을 두었고, 나가서 변방근무를 하였다.

동생 타분멸아간(朵奔篾兒干)은 할리빈마척부락여자(豁裡禿馬惕部女子) 아란할아(阿闌豁阿)를 처로 받아드려 두 아들을 낳았고, 그 후에는 각각 한 부락을 만들었다. 타분이 죽은 후 아란할아는 하늘빛에 감응하여 잉태하고 또 세아들을 낳았고, 장자는 불홀합탑길(不忽合塔吉)이며 그후예는 합답근부(락; 合答斤部)를, 차자는 불합빈살륵지(不合禿撒勒只)이며 후예는 살륵지올척부(撒勒只兀惕部)를, 막내 패단찰아(幼子孛端察兒) 후예는 패아지근부(孛兒只斤部)를 각각 설립하였다. 이리하여 이 가지에서 20개의 씨족 혹은 부락이 생겼고, 패단찰아(孛端察兒)가 성길사한(成吉思汗)의 10세조였고, 《원사종실세계표》에 시조라고 나온다.

아란활곡이 천광에 감응하여 낳은 셋째아들의 후예는 “니륜몽고(尼倫蒙古)라고 칭하니, 몽고의 니륜부(락; 尼倫部落)이며, 기타는 질열근몽고(迭列斤蒙古)라고 부르는데, 전자는 고귀한자이고 후자는 일반몽고인이니, 양부(락)이 몽고인의 올바른 근원이다.

몽고제국이전 초원생활에 기타 몇개의 부락은 극열부, 왕고부, 내만부, 탑탑아부, 멸아흥부등(克烈部、汪古部、乃蠻部、塔塔兒部、蔑兒乞部等)이다.

극열부는 요, 금(遼、金)의 종족으로서 몽고고원에서 생활하던 돌궐부족(突厥部族; Turkic tribes)으로. 9세기중엽 힐알사(黠戛斯)를 따라 남하한 겸하지구부락(謙河地區部落)으로, 회골한국(回鶻汗國)이 멸망한 이후 거주한 본토인이다.

어떤 몽고인의 기원전설이 극열(克烈; Cree)과 무관하다. 그 거주지는 토납하흑림(土拉河黑林; Tura River Black Forest)과 극노륜하(克魯侖河; Cruelen River)사이였다. 또한 극열이, 겁역, 겁리역, 댁영역척, 개열등[克列夷、怯烈、怯裡亦, 客列亦惕、凱烈等.]으로 번역될수 있었다. 《요사; 遼史》에서 조복(阻蔔) 혹은 북조복(北阻蔔)으로 칭하고 또한 달단(達旦)을 지었다. 왕고부(汪古部)에서는 고대문헌기재로 일반적으로 왕고부는 사타돌궐(沙陀突厥; Shatuo Turk)의 후예로 기재되었다.

 

I-2. 蒙兀王國[(몽올왕국); Mongol Kingdom]

 

요대(遼代)에 몽고의 각부락은 글안황조(契丹皇朝; Khitan Dynasty) 대요의 신민(大遼的臣民)이 되었고, 요조(遼朝)의 직접통치를 받았다. 1125년 금(金)이 요(遼)를 멸하고 아울러 대거로 남하하여 북송도성변경을 공격정복하여서, 휘와 흠 이제(徽、欽二帝)를 포로로 하고 정강의 치욕(靖康之恥)을 일으켰고, 연후 계속 군사를 몰아 남하하여, 직접 임안(臨安)에 이르렀다. 남방전사(南方戰事)가 긴급하여서 금군(金軍)은 비록 첩보를 빈번히 올렸지만, 북쪽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이때 몽고초원 패아지근부락추장 합불근진기(蒙古草原上的孛兒只斤部落酋長合不勒趁機)가 요조(遼朝)에서 이탈하여 자립하고, 강토를 넓혀 위세가 매일 강하여서 부근 각종족들이 1127년에 그를 몽고부장(蒙古部長)으로 추대하고 마침내 그를 합불륵한(合不勒汗)으로 칭하였다.

멀지않아서 금태종완안성(金太宗完顏晟)은 그를 불러 입조시켰더니, 주석(酒席)에서 술취한 합불륵한(合不勒汗)이 실수를 하여 감히 용안(龍顏)을범 하였기에, 이때부터 금과 더불어 간극이 생겼다. 합불근한이 회국후 금(金)의 사자가 와서 그에게 항복을 권유하니, 합불륵한은 노하여 사자를 죽이고 금에 항거하였다. 마침 금태종이 사망하여 희종(熙宗)이 즉위하였고, 합불근한은 군사를 일으켜 금의 변경을 침범하여서 계속하여 금의 서평, 하북등(西平、河北等) 27단채(團寨; 둥근 목책)을 취하였다.

합불근 사후에 왕위는 당제엄파해(堂弟俺巴孩)에게 전하였다. 금국(金國)은 내부허약으로 인하여 몽고인의 역량을 삭감할 것을 급히 고안하고, 그래서 몽고와 탑탑아(塔塔兒)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려고 결정하였다. 이때 탑탑아부락의 무당의사(巫醫)가 몽올부락친척(蒙兀部落一親眷)을 죽게 하여서 엄파해족인(俺巴孩族人)에 의하여 (무의가) 참수를 당했다. 탑탑아인들은 군사를 일으켜 복수를 하려고 하였지만 전쟁에 패하였고, 거짓 화해를 청하였고, 이 기회에 엄파해부자수인(俺巴孩父子數人)을 데리고 달아났다. 분노가 일어나서 탑탑아인은 마침내 엄파해를 나무나귀에 매어서 길거리에서 결국 엄패해는 참사를 당했다. 양족은 이때부터 깊은 은원을 맺었다.

엄파해한(俺巴孩汗)은 아들 힙달안(合達安)에게 명을 주기를: “이후 내가 주는 훈계이니, 너희들은 다섯손톱을 갈고, 열개의 손가락을 꺾어서, 그때마다 복수를 하라.” 그 임무를 계승한 홀도라한(忽圖剌汗), 합불륵한의 제4자(合不勒汗第四子)은 합달안(合達安)과 더불어 복수의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중에 홀도랄한의 조카가 곧 두각을 나타내어서, 탑탑아인을 격패하였다. 그의처 가액륜(訶額侖)은 아이를 낳았는데, 이때 바로 적장 첩목진올격(帖木真兀格)을 잡았다. 이번 승리를 기녑하기위하여, 속히 그 아이의 이름을 철목진(鐵木真) 즉 후에 성길사한(成吉思汗)이 되었다. 1170년 연회에서 죽고자하는 욕망으로 몽올왕국(蒙兀王國)은 깨어졌다. 그리고 야속해(也速該)의 아들 철목진은 도망하였다.

 

成吉思汗時期(성길사한시기)

 

1206년 [금장종태화6년(金章宗泰和六年), 송영종개희2년(宋寧宗開禧二年)]봄, 철목진(鐵木真; Temujin)은 성길사한(成吉思汗: Genghis Khan)의 존호를 획득했고, 막북(漠北)에 건국하고 국호는 대몽고국(大蒙古國)으로 정했다.

몽고인은 탑탑이, 태적오, 멸아흘, 내만, 극열, 왕고부(塔塔爾、泰赤烏、蔑兒乞、乃蠻、克烈、汪古部)이며, 니륜(尼倫)과 질열근(迭列斤) 양대부락으로써 몽고왕국인의 후대를 조성하였고, 12세기 초기이후에 몽고 각부처는 점차 몽고고원으로 옮겼고, 10세기에서 12세기에 몽고고원은 전후로 요조[遼朝(契丹)]에 통치되었고, 또 때로는 금조(金朝)에 신복(臣服)되었고, 1200년경에 금조(金朝)가 점차 쇠퇴되며, 몽고세력이 점차 강성해졌고, 몽고는 다시 금조에 공물을 바치지 않았고, 1206년 철목진은 몽고 각부를 통일하고, 알란하[(斡難河) 현재 악눈하(鄂嫩河)] 수원에서 고리이태대회(庫裡爾台大會; the Kuril Terrace Conference)를 개최하여 몽고대한위(蒙古大汗位), 호는 성길사한(成吉思汗), 국호는 대몽고국(大蒙古國; Yeqe Mongɣul Ulus)임을 선언하였다.

성길사한은 대찰살(大扎撒; Great Zhasa)을 반포하여, 몽고제국의 성문법전(成文法典; the statutory code of the Mongolian Empire)을 만들었으니, 이는 세계최초의 헌법적문건(憲法性文件; the earliest constitutional document)이었다. 몽고제국의 조직은 10호(十戶), 100호, 1,000호, 10,000호, 100,000호가 1기(一旗; one banner)를 조성하고, 10기(十旗; ten banner)가 1로(一路; one road)를 조성하고, 10로(十路; ten roads)가 1주(一州; one state)을 형성하고, 10주(十州; ten states)가 일국(一國; one country)를 형성한다.

철목진(Temujin)은 군사를 거느리고 3차에 걸쳐 서하(西夏; Xixia)를 정벌하여 서하국왕이안전(西夏國王李安全)을 항복하라고 핍박하였고, 후에 1211-1213년간, 또 1214-1219년간 재차 몽고군을 파견하여 서하를 정벌하였다.

1211년 8월 몽고제국은 경국지력(傾國之力)의 9만군대로 금조(金朝)를 공격하고 아울러 야호령전투(野狐嶺戰役)에서 금병(金兵)을 격멸한 후, 다음해 경국지병을 나누어 삼로로 금조내지(金朝內地)로 공격하고 들어가서 1213-1214년간 신속하게 공격점령하기를, 금조의 하북서로[河北西路(真定府、大名府)] 히북북로[河東北路(大同府、太原府)], 하북남로[河東南路(平陽府)], 하북동로[河北東路(宣德府、河間府、彰德府)], 산동서로[山東西路(濟南府), 산동동로[山東東路(益都府), 북경로[北京路(大定府)], 동경로[東京路(錦州府、遼陽府)]이었고, 투항귀순자외에 점령진행후 모두 도살(屠殺; Massacre)하였다.

그 나머지 주부현(州府縣) 또한 모두 공격점령하였고, 1213-1214년 양차에 걸쳐 금중도[金中都(현재 북경시; 今北京市)]를 포위하였다. 혼란중에 금조황제위소왕완안영(金朝皇帝衛紹王完顏永)은 피살당했고, 새로 등극한 황제 금선종(金宣宗)은 1214년 패주(霸州)로부터 하간부(河間府)에 있는 중도(中都)의 군대에 운송하는 구원식량(救援糧餉)이 몽고군에 공격으로 절격(截擊)되었기 때문에 선종은 중도(中都)를 지킬수 없어서, 이에 개봉(開封)으로 천도를 선포하였고, 목화려통수(木華黎統帥)의 몽고군은 최종으로 1215년 5월31일에 금조구도중도성(金朝舊都中都城)을 점령하였다. 성길사한은 이기회에 글안인모사야율초재(契丹人謀士耶律楚材)의 귀순을 얻었고, 후에 야율초재는 몽고제국의 세무관과 재상이 되었다.

1218년 몽고는 적인계출율[(敵人屈出律)서요 최후의 통치자: the last actual ruler of Xiliao)]을 제거하고자, 철별(哲別)을 파견하고, 2만의 병사를 보내어 계출율이 찬위(篡位)한 이려하유역(伊犁河流域) 하곡이새극호(河谷伊塞克湖)의 납륜하하반의 호사알이타(納倫河河畔的虎思斡耳朵)[the river on the banks of the Naryn River in the Isek Lake in the Yili River Valley. Husiwoer (now Tokmak) on the bank of the river was the capital of the Xiliao regime.) 즉 서요정권의 수도(首都的西遼政權)]를 정벌하여 멸망시켰다.

1217년 화랄자모사조 변경성시(邊境城市)의 성주해아한[(城主海兒汗) 또한 납륵술(納勒術); the lord of the border city of Khārāzimāsha, Haier Khan Yinalshu]이 스스로 철목진의 대몽고국이 파견한 십여인의 상대를 구류하고 처결하였으니, 당시 바로 동아(東亞)에서 진행중인 몽고대금조(蒙古金朝戰爭)의 전쟁 중 철목진의 원래 화랄자모사조(花剌子模沙朝)를 침멸(侵滅)할 계획이 없었기에, 철목진은 재차 일개정사와 양개부사(一個正使和兩個副使)로 조성한 사절단을 재차 화랄자모사조에 보내어 당시 사하하랍오정과 마가말[沙阿阿拉烏丁·摩訶末: Shah Ala Uddin Mahmo]이 이사건을조사하여 흉수헤이힌과 납륵술[凶手海兒汗亦納勒術; Murderer Haier Khan Yinal]을 징벌(懲罰)하였으며:

단지 첫째 당시 화랄자모사조의 사하하납오정· 마하말[沙阿阿拉烏丁·摩訶末; Shah Ala Uddin Mahmo]의 모친 도아간합돈(圖兒干合敦; Tuerganhedun)이 구도옥룡걸적(舊都玉龍傑赤; Old capital,Yulong Jiechi)에 조정을 수립하라고 명령하며, 국정관여를 기도(企圖干預國政)하였고 아울러 해아한납륵술(海兒汗亦納勒術; Haier Khanyinal)이 도아간합돈의 조카였기에, 사하하납오정마가말(沙阿阿拉烏丁·摩訶末; Shah Ala Uddin Mahmo)은 관제(管制)할수없었고, 이에 해이한역납륵술은 재차 주장을 하였는데, 철목진이 재차 파견한 일개정사와 양개부사(一個正使和兩個副使組成的使節團)가 사절단을 이루어 양개부사이외에 성원(成員; Member)을 이루어 처결하였으니 이에 철목진은 잠시 몽고금조전쟁을 늦추고, 1217년 준비한 후 친히 1219-1221년 십만대군(十萬大軍)을 이끌고 화랄자모[花剌子模(蒙古征服花剌子模)(今中亞河中地區、阿富汗一帶)]를 침범멸망시켰고, 40개 ; 주요성지를 점령하였다.

1220년 철목진은 수하의 양원대장 철별과속불태통수[兩員大將 哲別和速不台統帥; Commander-in-chief of Tetsubye and Subutai]가 25000인의 몽고군를 살마이한주(撒馬爾罕州; Samarkand)를 출발하여 계속 서편으로 진군하여 공략하고 점령함이 다음과같다:

극리미아소달극성[(克裡米亞蘇達克城) 현재 烏克蘭克裡米亞蘇達克; Sudak, Crimea, Ukraine], 오가사, 목록, 소살, 납서절만, 비특리사, [奧可斯; 、木鹿、蘇薩、納西切萬、比特利斯; Okos, Mulu, Susa, Nasichevan, Bitlis], 아이길사, 멸랄합, 적아파극이, 애이비륵지구, 강가 [阿爾吉斯、蔑剌合、迪亞巴克爾、埃爾比勒地區, 剛加; Argyz, Mijahe, Diyarbakir, Erbil regions, Gangga;], 니서비사지구, 아니, 잡이사성, 석와사, 액이철로목성, [尼西比斯地區、阿尼、卡爾斯城、錫瓦斯、額爾哲魯木城; Nisibis area, Ani, Kars City, Sivas, Erzherum City], 애이진첨, 탁잡특, 개새리성, 기랄특, 아미덕, [埃爾津詹、托卡特、開塞利城、起剌特、阿米德; Erzincan, Tokat, Kayseri, Kirat, Amid], 보가이인적잡마돌궐국, 멸겁사성천첨, 랄리(현재 덕묵흑란지남), 멸랄합, 도사: [保加爾人的卡馬突厥國、蔑怯思城贊瞻、剌夷〔今德黑蘭之南)、蔑剌合、圖斯; The Kama Turkic Kingdom of the Bolgars, Zanzhan of Miyajisi City, Riyai (now south of Tehran), Miyahe, Tus], 가질운, 서모랑(금이랑덕흑란설새모남), 사마합, 도살,투항귀순적제외, [可疾雲、西模娘〔今伊朗德黑蘭省塞姆南)、沙馬哈、屠殺,投降歸順的除外,Ke Jiyun, Simuniang (now Semnan, Tehran Province, Iran), Shamaha, massacre, except those who surrendered], 그리고 공격당시 고가색적아미니아왕국, 격노길아왕국, 아새배강왕국, 나모소단국[高加索的亞美尼亞王國、格魯吉亞王國、阿塞拜疆王國、羅姆蘇丹國; The Kingdom of Armenia, Georgia, Azerbaijan, and Roma Sultanate in the Caucasus (1221-1222년)],

그후 철별과 속불태통수의 25,000몽고군은 북향하여 태화령(太和嶺; 현재 고가색산; 高加索山; Caucasus Mountains)의 타이반관액(打耳班關隘;Taerban pass)을 넘어 흠찰인과보가이인의 잡마돌궐국으[欽察人和保加爾人的卡馬突厥國; Kama Turkic State of Chincha and Bolgar)으로 진공(進攻)하였고 , 아울러 가락사하전투(迦勒斯河戰役; Battle of the Galles River)에서 기보대공통숭[基輔大公統帥的軍隊; the Grand Duke of Kiev at the Battle of the Galles River]의 군대를 격파하고, 그후 계속 서진을 하여서 오극난(烏克蘭: Ukraine)을 따라 계속 약탈공격을 하여 극리미아반도(克裡米亞半島; Crimean Peninsula)에 이르렀다;

그후 살육약탈(殺掠)을 자행한후 서쪽으로 진군하여 현재 오극란서부의 덕열사특하[烏克蘭西部的德涅斯特河; the Dniester River in present-day Western Ukraine]에 이르렀지만, 강을 건널 방법이 없어서 다시 동편으로 꺾어서 돌아와서, 동북향으로 진군하여 기보나사의 정치중심기보[基輔羅斯的政治中心基輔; Kiev, the political center of Kievan Rus]를 포위공격하였으나 함락할 수없어서, 계속 동북으로 진군하여 덕열사특하와돈하[德涅斯特河和頓河; the Transnistria Don rivers]를 하나씩 건너 1223년 9월에 당시 복이가하중 상류하곡의 복이가보가리아왕국[伏爾加河中上游河谷的伏爾加保加利亞王國; Kingdom of Volga Bulgaria in the Upper Volga Valley]을 정벌하고, 여기서 살육약탈후 계속하여 복이가화와 오랍이하[伏爾加河和烏拉爾河; Volga and Ural rivers]를 건넜고;

그후 1223년에 동으로 돌아와서 당시 1222년에 몽고군주력을 이끌고 북으로 돌아와서, 아울러 북으로 향하여 당시의 방차보, 아랍과서아, 덕난길아나[旁遮普、阿拉霍西亞、德蘭吉亞那; Punjab, Alahosia, Drangiana]를 통과하여 흥도고십산맥(興都庫什山脈; Hindu Kush Mountains)과 파극특리아(巴克特裡亞; Bactria)를 넘어, 아모하(阿姆河; the Amu Darya)를 통과한 후, 석이하와아모하사이의중아하중지구[錫爾河和阿姆河之間的中亞河中地區(馬爾基安娜、索格狄亞那); the Central Asia between the Syr Darya and Amu Darya (Marchiana, Sogdiana) and came to the Syr Darya Valley]를 건너 석이하하곡(錫爾河河谷; the Syr Darya Valley]에 이르렀고;

1223년에 휘합(彙合)이 있었고, 아울러 재차 소개하여 일차 근현대전(覲見大典; Audience Ceremony)이 있었으며, 당시에 많은 서방국가가 몽고제국에 사자를 파견하여 교호(交好)를 원했으니, 신성라마제국의 교종사자도 포함되었고, 그후 1224년 여름에 액민하와유륵도사하하곡[額敏河和裕勒都斯河河谷; Emin River and Yuledus River Valley]에 이르렀고, 1225년 여름에 몽고제국본토 알란하하원일대와 합납화링일대[蒙古帝國本土斡難河河源一帶和哈拉和林; The area around the headwaters of the Median River in the Mongolian Empire and Harahelin]에 돌아왔다.

주(注): 彙合(휘합)이란? 人民的意志~成一支巨大的力量。 [join up;unite]:與…合在一起; 和他的朋友彙合; 引申為聚集,會合。

1225년 성길사한이 재차 군을 거느리고 서하정벌을 하였으나, 1227년 8월에 육반산(六盤山)에서 병사하였고, 그후 9월 몽고군은 도성중흥부(都城中興府)를 공격하여 함락시켰고, 서하말대국왕이현(西夏末代國王李睍)은 투항하였다. 이때 몽고제국은 현재 몽고고원, 현재 중국황토고원, 총령, 만주평원, 화북평원, 중아하중지구, 아새배강이동대이랑대부[今蒙古高原、今中國黃土高原、蔥嶺、滿洲平原、華北平原、中亞河中地區、阿塞拜疆以東的大伊朗大部]을 포괄하였다.

반면에 몽고인은 계속 금조목하려통수(金朝木華黎統帥)를 정벌하여 1218년 몽고군은 태평부와 평양부(太原府和平陽府)를 공격점령하였고, 1220년에는 제남부와 익도부9濟南府和益都府)를, 1221년 재차 복주, 섬북보안과 부주(濮州、陝北保安和鄜州)를, 1222년 장안(長安)을, 1223년 보계, 봉상과 포주(寶雞、鳳翔和蒲州)를, 1230년 포중, 동관(蒲中、潼關)을 공점(攻占)하였다.

1231년 몽고군은 관중지구(關中地區)를 따라 남송의 한중을 공격힌 연후 한수유역(漢水流域)에 순착한 후 내려오고, 재차 북향하여 금조의 하남지구(金朝的河南地區)를 공격하고, 반면에 몽고군일부는 황하를 건너 남하하여 1232년에 금군은 삼봉산전투(三峰山之戰)에 참패하고, 금애종(金哀宗)은 채주(蔡州)로 도주하고, 몽고와 남송연합군(蒙古和南宋聯合)은 금조(金朝)를 공격하여, 최종 몽송연군(蒙宋聯軍)은 1234년 3월 9일에 채주를 함락하여 금조는 철저히 멸망하였다.

 

 

Maps and other images

 

1. Mongolian tribes during the Khitan Liao dynasty (907–1125)

 

2. The Old World on the eve of the Mongol invasions, c. 1200

Map of Eurasia showing the different states

 

3. Genghis Khan, National Palace Museum in Taipei, Taiwan

Painting of Genghis Khan

 

4. Genghis Khan ascended the throne in the Ikh Khuraldai region in the Onan river, from the Jami' al-tawarikh.

 

5. Mongol Empire circa 1207

 

6. Coronation of Ögedei Khan in 1229 as the successor of Genghis Khan. By Rashid al-Din, early 14th century.

 

7. The sack of Suzdal by Batu Khan in 1238, miniature from a 16th-century chronicle

Painting of a battle scene

 

8. The battle of Liegnitz, 1241. From a medieval manuscript of the Hedwig legend.

Painting of a battle scene with mounted warriors on either side

 

9. Batu Khan consolidates the Golden Hor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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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A Stone Turtle at the site of the Mongol capital, Karakorum.

Photograph of a field with a large stone tortoise

 

11. Hulagu, Genghis Khan's grandson and founder of the Il-Khanate. From a medieval Persian manuscript.

Stylized line drawing of Hulagu, seated and drinking from a bowl

 

12. Mongol invasion of Baghdad

 

13. Fall of Baghdad, 1258

Bagdad1258.jpg

 

14. The extent of the Mongol Empire after the death of Möngke Khan (reigned 1251–1259).

Map of Asia

 

 

Kwan Ho Chung - December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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