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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중국계 한국인인 가? 한국인인 가?

 

바이두는 중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터넷 포털 이다. 윤동주를 찾으면 중국계 한국인이라고 소개 하고 있다. Chinese Korean이라고 영어로 번역 할 수 있다. 나는 한국에서 나서 교육을 받고 미국으로 이주 하여 미국 시민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나같은 사람을 Korean American 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한국계 미국인이다. 

 

한국 국민이 너무나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을 중국계 한국인으로 분류하다니, 정말 분통이 터질 일이다. 중국인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19세기 동안에 계속된 조선의 세도정치는 양반 벼슬아치들의 학정으로 백성들이 살 수 없는 나라 였다. 특히 세기 말에는 죽도록 일해 봐야 부당한 세금으로 다 빼앗기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서 굶어 죽을 지경이었다. 많은 조선 사람들이 연해주와 압록강 건너 랴오닝, 지린, 헤이룽장 지역으로 이주 했다. 

 

윤동주의 증조부 윤재옥은 함경북도 종서면 동풍면에 살다가 전 가족이 1886년에 지린성 자동으로 이주 했다. 조선에서 청 나라로 이민을 간 것이었다. 당시 조선은 민 씨 세도정치가 한창이었던 시절이다. 거기다가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을 진압한 청나라 세력이 조선을 통치하고 있었다. 고종보다 더 높은 사람이 위안스카이(원세개)였다. *본인은 조선의 숨통은 1882년-1884년 이후 청나라가 군대가 용산에 들어 오면서 사실상 끊어 졌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 윤하연이 명동촌에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는 부유한 농부였고 독실 한 기독교 신자로 장로가 되었다. 아버지는 명동 학교 교사 였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30일 중화민국 지린성 룽징시 화룡면 명동촌에서 태어 났다. *청나라는 1911년에 망했다. 1910년 손문이 신해 혁명을 일으켜서 중화민국을 선포 했으나 청나라를 접수 한  장 본인은 조선을 1884년 부터 1895년 청일전쟁 때 까지 지배 했던 위안스카이 였다. 1917년은 위안스카이가 급사한지 일년이 지난 혼란스러운 군벌 시대가 시작되던 해이다.   

 

1925년 윤동주는 명동소학교에 입학 했다. 소학교 졸업 후 중국 관립 학교인 대립자학교를 다니다가 가족이 용정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용정은진 중학교로 전학 했다. 1935년 평양 숭실 중학교로 전학 했다. 숭실 중학교를 다니고 있던 문익환은 소학교 동창이었다. *이 때는 1930년 만주사변으로 만주는 일본 땅이 되었다. 신사 참배 거부로 숭실 중학교가 폐교 되자  용정 광명 중학교에 편입 했고 여기서 정일권을 만 났다. 1938년 연희 전문학교에 입학 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된지 일 년 후이다. 1942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쿄 릿쿄 대학에 입학 했다가 10월에 도시샤 대학 영문과로 옮겼다. * 진주만공격 다음 해이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면서 일본은 전쟁 총 동원 령으로 독립운동가 들에 대한 탄압이 극심 했다. 내선 일체, 창씨개명, 징용, 징병, 위안부 차출등이 행해 졌다. 1943년7월14일 사싱범으로 체포 되었다. 1944년3월31일 2년형을 선고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 되었다. 

 

1945년2월16일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 했다. 일본은 혈액 대체용 식염수를 만들기 위해서 수감자들에게 인체 실험을 하고 있었고 윤동주도 실험대상자 중  한 사람이었다. 향년27세 였다. 몇 개월만 기다렸으면 해방이었다. 유해는 지린성 룽징시에 안치 되었다. 그는 중국 땅에서 나아서 중국 땅에 묻혔다. 

 

A Korean Poet Is the Latest Example of China’s Cultural Imperialism; Feb 26, 2021, Diplomat

 

나는 억울 하지만 할말이 없다. 간도가 우리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도는 고구려와 발해가 지배 했던 지역이다. 중국 사람들이 우리 땅이라고 울타리를 친 것이 만리장성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그들 말 대로 오랑캐의 땅 이었다. 중국 사람들의 입을 막을 려면 고구려의 옛 영토를 다시 찾아야 한다. 고구려의 역사를 한족의 역사에 엮어 넣을 려는 중국의 수작도 한민족이 반도에 갓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람들의 염원은 남북통일을 넘어서 고구려 영토 회복에 있어야 한다. 청나라 말기가 좋은 기회 였다고 생각 한다. 만약 조선이 강한 나라였다면 얼마든지 고구려 영토를 회복 할 수 있었다. 현재의 중국이 망할 무렵 한국이 강국이 되면 가능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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