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News 전두환 사망
2021.11.22 20:06
2021.11.23 16:30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26363
그러나 여느 제3세계 군 출신 통치자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 스스로 단임을 결심했고 이행했다는 점에서다. 87년 민주화운동 때도 진압보단 타협(직선제 수용)을 택했다. “전두환·노태우에 의한 민주화 과정이란 게 세계적으로 보면 유일하게 성공하다시피 한, 군사정권의 자진 후퇴”(이홍구 전 국무총리)였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1642622#home
릴리 대사가 털어놓은 진상은 이렇다. 1987년 6.10 민주화운동 당시 서울역 광장에 모였던 수십만명의 시위대가 명동 성당에 몰려 철야농성에 들어가자 전두환 군부정권은 유혈진압을 계획했다. 제2의 광주 참상을 자행하겠다는 결심이었다. 릴리 대사가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면담을 요청했지만 계엄령을 지시한 전 대통령은 대사를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미국 대사관 정무담당 직원이 외교부 관계자들에게 "누가 면담을 가로막는가. 이름을 말해달라"며 책임을 따지고 들어 겨우 면담이 성공했다. 전 대통령이 이미 군출동을 지시한 6월 19일 오후였다. 릴리 대사는 계엄령 반대 뜻을 완곡하게 밝힌 레이건의 친서를 건네주면서 분명하게 계엄 반대 의사를 밝혔다. 면담 직후 전 대통령은 계엄령을 철회했다. 곧바로 민주화 선언 준비를 지시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계엄령 반대를 주장한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회고록에 따르면 전 대통령이 이미 군동원령을 내린 상황에서 결심을 바꾼 것은 릴리 대사의 공이다.
2021.11.23 16:56
전두환이 7년만 해먹고 직접선거 개헌을 한것은 결코 그가 자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엄청난 미국의 압력에 굴복 한 것이다. 미국의
언론, 의회, 행정부 모두 데모대 편이었다. 미 8군과 대사는 전두환의
군동원을 못하게 할 수 있다.
물론 내정 간섭이라고 좀 불쾌하게 생각할 수 있으나 대한민국으로 서는
천만다행이었다. 미국이 아니었으면 한국은 요지음 미얀마 꼴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2021.11.23 19:41
한때 포악했던 박정희도 결국은 훌륭한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자기 휘하의 장성급 또는 다른 지휘관급의 사람들을 특히 잘 우대해주었고
제대한후에도 좋은 직장을 구해주었다.
전두환도 부하를 잘 챙겨주기로도 유명했었고 제대군인의 복지를 잘 살펴주어
제대장병들은 비교적 잘 살게 해주었다. 나의 형님, 매부님도 군 출신으로서
그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본인이 미국으로 줄행랑친것은 박정희가 독재자로서 점점 자리를 공고하게 잡아
나가던때로서, 먼 그후에 정식 유신-비상-정권이 시작될때에는 미국에서 Medical training을
마쳤을 때여서 (1972) 미국물에 홀짝빠진 한국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던
생쥐가 되었을 때였다.
만일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분명히 Demo대에 붙어서 고함을 질렀을거다.
이시대의 한국은 내인생에서는 영원히 기록되지 않고, 기억에도 없는 시대였다.
지금 돌아보면 대한민국의 군복무를 하지 않었음과 이 처절한 독재정권하에서 싸우지
않었음이 무척 후회된다. 그후의 "한강의 기적"이 이루어지던 시대도 내인생의 일부가
아닌 것이 한없이 부끄럽고 서럽다.
전두환, 노태우 둘이서 모두 사형선고를 받은 (안받었으면 다 큰일 날 번했겠지...) 소식을
멀리서 듣고 좀 위로가 되었었지... 하지만 본인도 똑같은 그놈들이 아니였던가?
하여간 본인이나 그들이나 잘했건, 못했건, 나쁘건, 좋았건, 다 각자의 최선을 다해서
살었던 것이 아닌가?
이제 노태우는 이미 떠났고 전두환의 서거 소식을 들으며, 휠대로 휜 내 머리칼을
보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그저 단하나의 "인생무상"이 아닌가?
내가 전두환에 대해서 무얼 안다고 이제와서 슬퍼질가?
아마 그것은 내자신을 보며 나도 남은 날이 멀지 안었음을 깨다름이겠지.
얼마 살아보지도 못했던 내인생이 주마등 처럼 지나간다.
그 주마등들이 이제 거의 다 지나가는 마당에 박정히, 전두환, 노태우의 명복을 빌어준다.
Those guys did what they had to do. So did I.
Doc, thanks for the memory!
2021.11.25 10:30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모두 저세상 사람들이
되었다. 우리세대가 겪었던 한국의 대통령 들이다.
이승만은 맥아터에게 잘 보여서 한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소련이
북쪽에 김일성을 내세웠다면 미국은 남쪽에 이승만을 앞 세웠다.
냉전의 현장이었던 한국은 미국의 보호를 세계 어느나라 보다 도
톡톡히 받았다.
이승만이 휴전을 반대하고 북진통일을 고집하자 미국은 그를 제거 하려 했다.
그러던 차에 4.19가 일어 났다. 이승만이 경찰을 동원하여 무력으로 데모를
진압하려 하자 미국은 친미 한국군 장군을 앞세워 계엄령을 선포하게
하고 데모대를 보호 했다. 그리고 미국이 더 이상 이승만을 지지하지 않는 다느 것을
알려 그를 하야하게 했다. 그는 미 중앙정보국의 보호 아래 하와이에서 여생을
마쳤다.
독재자 이승만이 사라진 한국은 무척 불안한 정국이 계속 되었다. 공명선거로 집권
한 장면 정권은 매일 계속되는 학생데모, 급격한 인프레이숀, 학생들의 좌경화
에 속수 무책이었다. 미국은 군 장성 출신의 독재자를 원했다. 김종필, 박정희의 쿠테타를
알게 모르게 부추겨서 성공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정권장악 후에 이를 인정하고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서 대일청구권을 행사하게 해주 었다. 박정희 정권은 월남파병과 차관도입으로
눈부신 경제발전을 하여 해방후 처음으로 북한보다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박정희 시대
에 남한국민은 기아선상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닉슨과 키신저가 중국과 친해지자 박정희는 불안해 지기 시작 했다. 대만의 장개석이 롤 모델
이었던 그는 미국이 적국 중공과 친밀해지고 중화민국(대만)을 멀리하는 것은 미국이
언제든지 한국을 버릴 수 있다는 의심이 갈만한 일이었다. 더구나 미국은 월남에서 철수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월남에서의 미군은 점점 줄고 있는 데 한국군은 점점늘어 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박정희는 유신과 자주 국방 그리고 원폭 제조에 나섰다.
유신 독재 반대데모가 극심해지고 한국정세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미국은 박정희정권을
흔들기 시작 했다. 한국의 중앙정보부장 김제규는 미국의 박정희에 대한 태도를 자신
에 대한 신임으로 착각 했던지 박정희를 암살 했다.
박정희 암살 후 한국에서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데모가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박정희라는
독재자의 제거는 한국민에게 "이제 민주국가가 된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러나 카터 행정부는
4.19의 경험과 이란사태와 같이 미국이 한국을 미국의 적으로(공산권에 넘겨주는)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었다.
미국은 한국의 안정을 위해서 군사독재를 원했다. 전두환에게 이일를 맏겼다. 한미연합사를
동원하여 군을 장악하고(12.12 사태) 공수부대와 전방 병력을 빼내서 광주시민을 학살 해도 그냥 두었다.
7년 후에 레간은 6월항쟁을 지지하고 민주헌법 개정을 하게 했다.
이렇게 미국은 대한민국을 젖먹이 키우덧 혼자 설 수 있게 해 주었다. 요지음 북한, 큐바,
베네주엘라와 미얀마을 보면 독재자의 횡포를 막기란 그리 쉬운일 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찌 생각하면 북한이라는 존재는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의 안정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김영삼과 김대중도 미국의 보호 없이는 독재자의 희생물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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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운좋은 독재자 였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제거 해 주고
미국이 12.12 사태와 광주 학살을 묵인 해 주었다. 이란 미대사관
인질사태로 바짝 얼어 붙은 새가슴 카터는 박정희 사망 후 한국의
불안한 정세를 안정 시켜줄 인물이 전두환이라고 믿었다. 우선 무력으로
누르고 향 후 장기적인 민주화를 해 주자는 것이 미국의 정책 방향이었다.
레간은 취임 첫 손님으로 전두환을 초청하고 댓가로 김대중을 살려 주기로
했다. 장기 계획 민주화의 첫 단초 였다. 7년후 6월 항쟁이 일어 났다.
미국은 전두환에게 직접 선거 개헌을 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그러나 전두환
은 계엄령을 내리려고 했다. 군을 동원해야 계엄령을 발동 할 수 있다.
작전권이 없는 한국은 미군의 허락없이 대통령이 군을 동원 할 수 없다.
7년전에 그렇게 쉽게 군을 동원하여 12.12 사태와 광주 학살을 감행 했던
그는 1987년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