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English
                 

 

 

몽고제국(蒙古帝國) 제2회

 

I. 성길사한이후 확장(成吉思汗之後的擴張)

 

성길사한의 남은 무리는 와활태[窩闊台; Wo Kuodai]에 의하여 대한위(大汗位)를 계승하고, 우선 어린아들 타뢰[拖雷;Toray]로 국가를 감독게 하고, 그후 1229년에 마지막으로 곡리이대대회[庫利爾臺大會; Kuril Terrace General Assembly]을 열어 와활태를 그의 후계자로 선출하였다. 타뢰한시대[拖雷汗時代; Toray Khan era; 1227-1229年]에 금조정벌[金朝征伐] 을 강화하고, 이후에 병사를 양로(兩路)로 나누어, 파란왕국, 입도완, 마랍유아공국, 흉아리왕국, 보가리아제이제국, 오지리대공국, 원남사랍부대부분지구[波蘭王國、立陶宛、摩拉維亞公國、匈牙利王國、保加利亞第二帝國、奧地利大公國、原南斯拉夫大部分地區; The Kingdom of Poland, Lithuania, the Principality of Moravia, the Kingdom of Hungary, the Second Bulgarian Empire, the Grand Duchy of Austria, most of the former Yugoslavia]를 침입하였고, 조기돈기사단-파란연군[條頓騎士團國-波蘭聯軍; Teutonic Knights-Polish Allied Forces]을 대패시켰고, 전봉( 前鋒)은 진군하여 파자남, 유아납근교화아득리아해적동해안 즉 위니사공화국적달이마제아[波茲南、維也納近郊和亞得裡亞海的東海岸(即威尼斯共和國的達爾馬提亞); Poznan, the outskirts of Vienna and the east coast of the Adriatic Seaie, i.e. Dalmatia in the Republic of Venice]에 이르렀으니, 구주(歐洲)는 진경(震驚)하였으나, 바로 이때 (1241年 2月)와활태가 세상을 떠나서 원정군이 이에 동(東)으로 돌아왔다.

후에 발도[拔都; Batu]가 1242년 복가리하류의 살류성[伏爾加河下游的薩萊城; the city of Salai on the lower Volga River]에서 정식으로 몽고흠찰한국[蒙古欽察汗國; (又稱金帳汗國或術赤汗國); Mongolian Qincha Khanate (also known as the Golden Horde or Shuchi Khanate)]을 건립(建立)하였다.

그동안 탁마아한, 배주, 야리지길대, 활리길사, 아이혼팔자통수[綽馬兒罕、拜住、野裡知吉帶、闊裡吉思、阿爾渾八剌統帥; Chaomaerhan, Baizhu, Yelizhijidai, Quorigis, Arhun Balay Commander]의 몽고군은 점차 아미니아왕국, 격로길아왕국, 과니아득소단국과 대부분 소아시아[亞美尼亞王國、格魯吉亞王國、科尼亞克蘇丹國和大部分小亞細亞; the Kingdom of Armenia, the Kingdom of Georgia, the Sultanate of Konyak and most of Asia Minor]을 도살과 유린(屠殺蹂躪)하였다. 1246년 8월 24일 귀유[貴由; Guiyou]는 와활태 왕후[The Queen of Wokuotai]의 지지로 제위에 올랐다.

발도(拔都; Batu)와 귀유는 장자로서 서정(西征; The Western Expedition}이후에 불화(不和)하였고, 귀유가 원정때 발도는 도중 병사하였고, 발도가 한위(汗位)를 계승할 자격이 있었지만, 즉위할 의사가 없어서, 따로이 타뢰(拖雷)의 장자몽가(長子蒙哥; Mongo)를 대한으로 추천하였고, [拖雷; 孛兒只斤·拖雷(1193年—1232年),蒙古族。元朝皇帝祖先,元太祖鐵木真第四子。]. 1251년 몽가가 계위(繼位)하였다.

1253년, 홀필열[派遣忽; Kublai]을 파견하여 서강(西康)을 취하고 남하(南下)하여 대리국(大理國)을 멸하였다. 몽가는 욱열올[旭烈兀; Hulagu]에게 서정을 명하였다. [(旭烈兀西征1256年—1259年)];1258년 아랍백제국수도펴격달[阿拉伯帝國首都巴格達: Baghdad, the capital of the Arab Empire]을 점령하고, 아발사왕조[阿拔斯王朝; Abbasid]를 멸하였다. 1260년 마목류극왕조수도대마사혁[馬木留克王朝首都大馬士革; Damascus, capital of the Mamluk Dynasty]를 점령하였다. 이때 몽가는 남송사천(南宋四川)을 공격할 때 합주성(合州城)아래에서 전사하여 군대는 이에 북환(北還)하였다.

 

I-1.구주 [歐洲; Europe]

성길사한 사후(死後)에 그의 아들 와활태가 뒤이어 몽고대한을 맡았다. 1236년 몽고대군은 흠찰과 기보라사[欽察和基輔羅斯; Chincha and Kievan Rus] 공격을 개시하였고, 보가이인적잡마돌궐국[保加爾人的卡馬突厥國; Kama Turkic State]을 멸(滅)하였다.

그는 다음 여러지역을 공점[攻占; To capture; 공격하여 점령하기] 하였다: 멸겁사성, 리아찬, 과라모납, 막사과, 소자달이, 불납기미이성, 아라사납부성, 특유이성, 절이니과부, 걸와기보, 가리기국, 혁매이니극, 상다매일성, 극납과부성, 오랍적아, 경납덕, 패사성, 과탁이등이십기개성시[蔑怯思城、裡亞贊、科羅姆納、莫斯科(1238年2月)、蘇茲達爾、弗拉基米爾城、雅羅斯拉夫城、特維爾城、切爾尼戈夫、乞瓦基輔(1240年12月6日)、加利奇國、赫梅爾尼克、桑多梅日城、克拉科夫城、奧拉迪亞、瓊納德、佩斯城、科托爾等二十幾個城市。: Miriam City, Ryazan, Koromna, Moscow (February 1238), Suzdal, Vladimir City, Yaroslav City, Tver City, Chernigov, Chevakiev (December 6, 1240), Galic Country, Khmelnik, Sandomierz City, Krakow City, Oradea, Jonard, Pest City, Kotor, etc. City.]등이었다.

1240년 12월 6일 성길사한의 손자 발도(拔都)는 기보[基輔; Kiev]를 공점하였다. 1241년 발도는 파란왕국, 입도완, 마랍유아공국, 보가리아, 흉아리왕국의 달이마제아와 원남사라부지구의 납십잡[波蘭王國、立陶宛、摩拉維亞公國、保加利亞、匈牙利王國的達爾馬提亞和原南斯拉夫地區的拉什卡; The Kingdom of Poland, Lithuania, the Principality of Moravia, Bulgaria, Dalmatia of the Kingdom of Hungary, and Raška in the former Yugoslavia]을 침입하여, 오지리대공국의유야납근교[奧地利大公國的維也納近郊; Outskirts of Vienna in the Grand Duchy of Austria]에 이르러 오지리와 파서미아왕국의 연합군[奧地利、波西米亞王國聯軍; Austria, the Kingdom of Bohemia]을 막았다.

파란과 흉아리의 패배와 이로써 신성라마제국관할하의 제후국[神聖羅馬帝國轄下的諸侯國; The defeat of Poland and Hungary and the looting of the princes of the Holy Roman Empire by the Mongols - (摩拉維亞、奧地利和波希米亞; Moravia, Austria and Bohemia)]을 약탈하고, 발도의 초항서(招降書)를 받은 신성라마제국황제배특렬2세[神聖羅馬帝國皇帝腓特烈二世; the Holy Roman Emperor Frederick II]는 이를 무시하였고, 몽고의 다음 목표는 바로 자기본인이라고 믿게 되었기에, 군비를 준비하고 동시에 영격란왕과 법난서왕국[英格蘭王國及法蘭西王國; Kingdom of England and France]에 연락하여 구조를 요청하였다. 1242년 봄에 와활태의 죽음을 전달받고, 발도와 각 몽고군의 통수(統帥)는 귀환하였다. 여기가 몽고군이 이른 가장 서방지역(最西的地方)이었다.

 

I-2.중동[中東; Middle East]

 

와활태 사후 내마진탈열가나[乃馬真脫列哥那; Margin Tregona]제도를 경과하였고, 귀유한과 알올입해[貴由汗和斡兀立海; Guiyouhan and Uwulihai]의 공동통치기간인 십년을 잃었다: [After the death of Wo Kuotai, he was ruled by Naima Jin Terry Brothers, Gui Yu Khan, and Wu Wu Li Hai lost a total of ten years of rule.]

[내마진탈열가나; 乃馬真脫列哥那; 簡介:乃馬真·脫列哥那(西裡爾字母書寫:ДөpΓэHэ,拉丁字母轉寫:Töregene ?-1246),謚號昭慈皇後,史稱乃馬真後。窩闊台汗的皇妃,貴由汗的生母。]

1251년 7월 성길사한의 작은아들 타뢰의 아들 몽가가 계위하였다. 1256년 몽가가 동생 욱열올[旭烈兀; Hulagu]을 서정에 파견하였고, 1258년 서정군(西征軍)은 아발사왕조수도파격달[阿拔斯王朝首都巴格達; Baghdad, capital of the Abbasid dynasty]에 공점과세겁[攻占並洗劫; Capture and looting]을 자행하고, 이 전투에 지혜지가(智慧之家)를 파괴하고 대량의 보귀문헌(寶貴文獻)이 하류(河流)로 떠내려갔다.

1259년 욱열올은 서리아아우포왕조[敘利亞阿尤布王朝; Ayub Dynasty of Syria]를 정벌하고, 1260년 대사마혁과 아륵파[大馬士革和阿勒頗; Damascus and Aleppo]를 공점(攻占)하였다. 당년 몽가는 남송의사천(南宋的四川)에서 전사하였다. 욱열올은 군사를 돌이키고 위(位)를 다투었고, 그후 남은 2만명의 겁약(怯弱)한 몽고군대는 색열가리리의 아음찰노특전투[色列 的加利利的阿音札魯特戰役;Battle of Ain Zalut in Galilee]에서 마목류극왕조[馬木留克王朝; Mamluk Dynasty]에 패하였고, 이는 몽고제국이 비주[非洲; Africa]로 확전함에 실패였다.

 

I-3.동아[東亞] East Asia

와활태시기 1229-1234년간, 몽고는 금조(金朝)를 멸하였다. 1231년 몽고는 고려왕국(高麗王國)으로 진공[進攻; Attack]하여, 신속히 최남단 이외의 전부고려영토[除開最南端外的全部高麗王國領土]를 공점[攻占; Capture]하여서, 고려왕은 한성성외의 해역부근의 강화도[漢城城外的海域附近的江華島]에 물러나 지키다가 이후 고려국은 주전파와 주화파[主戰派和主和派]로 나뉘었다가 결국 몽고제국에 1275년에 항복(臣服)하였다.

와활태가 금을 멸한 후 병사를 3로로 나누어 남송을 대거침입하였고, 따로 한길은 고려국을 정벌하였다; 그러나 와활태는 1241년 12월에 죽고, 몽고군은 철군하였고, 그후 점령된 강토를 남송군[南宋軍]은 수복하였다.

그후 내마진탈열가나, 귀유한, 알올립해[乃馬真脫列哥那、貴由汗、斡兀立海; Naimachen Terry Gona, Guiyouhan, and Uwu Lihai]의 잃어버린 통치를 경과하였고, 그 기간 대남송의 공격은 변경침범(邊境侵犯) 정도였다; 1251년 몽가한(蒙哥汗) 즉위하여 재차 대폭확전을 개시하였다. 욱열올(旭烈兀)은 동시에 서정(西征)을 하였고, 몽가는 1258년 삼로대군(三路大軍)으로 남송을 정벌하였다. 1257년 7월 27일 몽가는 사천합주의조어성(四川合州的釣魚城)에서 오랫동안 공격을 해도 떨어지지 않았다가 1차전투중 쏟아지는 화살(流矢)에 상처를 입어 멀지않아서 사망하였다.

몽고는 일찌기 1257년 월남진조북부지구[越南陳朝北部地區; Northern Region of Chen Dynasty, Vietnam]정벌하였고, 송을 멸한 후 원조군대는 다시 두번으로 나누어 1284年-1285年과 1287年-1288年 두번에 걸쳐 월남북부진조와 남부점성[越南北部的陳朝和南部的占城 (又稱占婆); Attacked the Chen Dynasty in northern Vietnam and Champa in southern Vietnam twice in 1284-1285 and 1287-1288]을 공격하였다. 진조와 그 숙적(宿敵) 점성은 연합하여 그 침입군을 격퇴하였다.

1277년 원군은 현재 면전북부의포감왕국[緬甸北部的蒲甘王國; Kingdom of Bagan in northern Myanmar]을 공격개시하였고, 1287년까지 원군은 겨우 포감왕국수도[蒲甘王國首都; Capital of the Kingdom of Bagan]에 공입(攻入)하였고, 그후 1303년 이 지구에서 철수하였다. 원군은 1292-1293년간 조와도[爪哇島; Java Island]대한 해상원정(海上遠征)은 실리(失利)였다.

1274-1281년 홀필열은 양차에 걸쳐 일본정벌(征伐日本)에 파견하였지만, 번번히 실패로 끝을 고하였다. 일반적으로 인식되기는 태풍이 실패를 조성한 최대원인이라고 여긴다.

 

II. 제국분열[帝國分裂]

 

II-1. 몽고사대한국과 홀필열(蒙古四大汗國和忽必烈)

 

몽가가 1259년 세상을 떠난 후 1260-1264년간 그 동생 홀필열과 아리불가[阿裡不哥; Brother Ali]의 한위쟁탈이 있었다. 홀필열은 몽가한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아직 악주일대(鄂州一帶)에서 남송과 작전을 있었던 바 후에 몽고본토를 지키고 있던 아리불가가 한(汗)을 칭할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즉각 남송과 화해를 의론한 후 북으로 반회(返回)하여 개평[開平; Kaiping - 현재 內蒙古多倫縣; Duolun County, Inner Mongolia]에 이르러서, 1260년 5월에 1260년 5월에 동도제왕탑찰아[東道諸王塔察兒; Host kings Tachar]가 머리가 되고 몽고종왕과한인유신[蒙古宗王及漢人儒臣]의 지지하에 한을 칭[稱汗]하는 집회에서 제일인자가 되었다.

아리불가가 들은 후 아속태, 옥룡답실, 해도등 종왕[阿速台、玉龍答失、海都等宗王]의 지지하에, 동년 6월에 당시 몽고제국수도합납화림[當時的蒙古帝國首都哈拉和林: Hara and Lin, the capital of the Mongol Empire at the time]에서 “홀리근태(忽裡勒; Kulilatai”대회를열었으니 이는 대한위(大汗位)였다.

왜냐하면 홀필열이 장기간 중원에 거주하였고, 한인을 임용하였고, 한법을 추행[推行漢法; Promote Chinese law]하고, 몽고인의 유목전통을 개변(改變)하여, 많은 몽고왕공귀족의 불만을 일으켰기에, 이리하여 다수의 서도제왕(西道諸王)은 당시에 두루 아리불가를 지지하였다.

왕하로홀, 팔랄, 육제욱열올[王阿魯忽及八剌、六弟旭烈兀; Wang Aluhu and Ba Lai, Sixth Brother Xu Liewu]은 각자 스스로 봉지(封地)의 실질통치권을 가졌다. [오로지 명목상 서북사대한국(西北四大汗國)]은 의연히 대몽고국대한의 번국(大蒙古國大汗的藩國)이었다. 홀필열과 아리불가는 역사적으로 4년의 한위쟁탈전쟁(歷時四年的汗位爭奪戰爭)을 전개하였다. 이와 동시에 별아가와 욱열옹등[別兒哥與旭烈兀等; Brother Bie'er and Xu Liewu, etc] 또한 고가색지구[高加索地區; Caucasus]에서 크게 싸워서, 이 일련의 전쟁은 제국이 분열로 향함을 표시하였다 .

홀필열은 곧장 1264년에 겨우 아리불가에게 최종전승을 거두었고, 그후 대도[大都(今北京)]로 천도하고, 상기의 도(都)는 배도[陪都; 국도(國都) 이외(以外)에 둔 수도(首都)]가 되었다. 하지만 아리불가의 와활태한국[阿裡不哥的窩闊台汗國]은 홀필열에 귀부[歸附; 귀속(歸屬)하여 붙좇음]를 거절하여서 실제상 독립되었다. 몽고찰합태한국(蒙古察合台汗國)은 홀필열에 패하였고, 아리불가, 와활태한국등 세력은 여러번 쟁탈을 하였고, 후에 와활태한국의 해도결맹[海都結盟; Haidu Alliance]은 홀필열에 대항했다.

이 양개한국은 현재 탑리목분지, 준갈이분지, 중아하중지구일대[塔裡木盆地、准噶爾盆地, 中亞河中地區一帶; Tarim Basin, Junggar Basin, The Central Asian River Area]에 위치하였고, 흠찰한국(欽察汗國)은 술적의 장자 발도[術赤之長子拔都; Batu, the eldest son of Shuchi]를 위하여 1242년에 정식으로 건립되었고, 현재 동구평원, 남아적북고가색, 화석이하이북적 중아적일부분[東歐平原, 南俄的北高加索、和錫爾河以北的中亞的一部分; Eastern European Pllain, The North Caucasus in South Russia, and a part of Central Asia north of the Syr Darya]에 위치하였고, 기보라사제공국[基輔羅斯諸公國; Principalities of Kievan Rus]은 기부식적불랍기미이대공요공적번속국[其扶植的弗拉基米爾大公遙控的藩屬國; Vladimir’s remote controlled vassal state]을 지배하였다. [The vassal state of Vladimir's remote controlled by the Principality of Kievan Rus.]

이아한국[伊兒汗國; Iraqi Khanate]은 욱열올을 위하여 1256년에 정식 건립하였고, 대이랑등지[大伊朗等地; places like Greater Iran]를 포괄한다. 흠찰한국은 홀필열이 아리불가와 한위(汗位)를 쟁탈할 때 이미 실제상 독립되었고, 오로지 이아한국은 홀필열의 대한위를 승인하였고, 단지 홀필열이 거세(去世)후에 독립하였다. 이리하여 몽고제국의 실제상 분열이 조성되었다.

1271년 홀필열은 그 영토내에 개국호(改國號)를 대원(大元)이라 하여서 원조(元朝)를 건립하였고, 몽고문(蒙古文)은 “大元國”(Dai Ön Ulus)或“大元大蒙古國”(Dai Ön Yeqe Mongɣul Ulus)이었다. 고려왕실은 물러나서 한성성외의 해역부근의 강화도[漢城城外的海域附近的江華島]를 지키고 있었다가 후에 고려국은 주전파와 화전파[主戰派和主和派]로 나누어졌다가 결국 몽고제국에 항복하였고; 오로지 당시 반도상 고려삼별초의군[三別抄義軍]이 계속 저항하다가 1275년에 항복하였다.

와활태가 금(金)을 멸한 후 병사를 삼로(三路)로 나누어 남송(南宋)을 대거침입하였고, 다른 길로 고려국을 정벌하였는지만, 와활태가 1241년 12월에 사망하여서 몽고군은 철수하고, 그후 점령했던 강토(疆土)는 송군(宋軍)이 수복하였다. 후에 내마진탈열가나, 귀유한, 알올입해가 실패한 통치로 그 기간 남송에 대한 공격이 변경지역침범전쟁에 국한되었다가, 1251년에 이르러 몽가가 즉위하여 재차 대폭확장을 개시하여 욱열올의 서정과 동시 몽가가 1258년에 삼로대군(三路大軍)으로 남송정벌(征伐南宋)을 하였다

1259년 7월 27일 몽가는 사천합주적조어성(四川合州的釣魚城)에서 오랫동안 공격해도 떨어뜨리지못했고, 제1차전투중 유시에 맞아 상처를 입었고, 멀지 않아서 사망하였다. 이때 악주를 진공하던 몽가의 아우 홀필열과 안남으로부터 남송으로 침입한 올량합태군(兀良哈台軍)은 북으로 돌아가고, 홀필열은 개평에서 스스로 대한이 되었다. 동생아리불가를 이겨 자칭 대한이 된후, 1267년 홀필열은 대도건설(大都建設)을 시작했고, 1285년 건축이 끝났다. 1271년 국호를 대원으로 고치고 몽고문을 칭하여 대원대몽고국이 되어서 원조의 개시를 이루었다. 1254-1279년간에 남송에 다년 정벌을 경과한 후 원군은 송을 멸하였다. 1275년에 고려도 이미 원조에 항복하여서 속국이 되었다.

몽고는 일찌기 1257년에 월남진조북부지구를 정벌하였다. 송을 멸한 후 원조군대는 다시 나누어 1284-1285년 그리고 1287-1288년 두번 월남북부의 진조(陳朝)와 남부의 점성(占城)을 공격하였다. 진조와 그 숙적 점성과 연합하여 침략군을 격퇴하였다. 1277년 원군은 금면전북부의 포감왕국[今緬甸北部的蒲甘王國]을 공격하고, 직접 1287년 원군은 바로 포감왕국수도에 이르렀고, 그후 1303년 다시 이 지구에서 철출(撤出)하였다. 원군은 1292-1293년간 조와도(爪哇島)에 대하여 해상원정을 하였으나 실리(失利)뿐이었다.

1274년과 1281년 홀필열은 양차에 걸쳐 일본정벌을 하였고, 그러나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태풍이 실패의 쵀대 원인이라고 본다.

 

III. 후몽고시대(後蒙古時代

 

III-1. 동아(東亞)

 

 

원성종(元成宗)이 시작함에 따라 정치는 아래로 달리고 있었다. 원혜종(元惠宗)중후기(中後期)에 이르니, 정사는 매일 점차 혼란에 삐졌다. 유복(劉福)은 백련교교중(白蓮教教眾)을 통솔하고, 황하하도의 하공기사[黃河河道的河工起事: Uprising of River Works in the Yellow River Course]를 파내어서, 원군(元軍)에 대항할 홍건군(紅巾軍)을 조직하고, 홍건군기의(紅巾軍起義)를 개시하였다. 1368년 한인주원장(漢人朱元璋)이 원조(元朝)를 멸망시키고, 명조(明朝)를 건립하였고, 8월에 대도(大都)를 점령하고, 몽고세력(蒙古勢力)을 장성이북(長城以北)으로 쫓아내고, 몽고고원으로 돌아간 몽고정권은 대원국호(大元國號)를 연장해서 썼으나, 역시에서는 북원(北元)이라 칭하고 1388년에 이르러 대원국호(大元國號)는 없어지고, 종말에는 달단과와랄[靼和瓦剌; Tartar and Vala]로 되었을 뿐이다.

원조가 패퇴하여 몽고고원으로 물러나 이르니, 원재 원조의 번국(藩國)이었던 고려국왕은 원조황실과 밀접한 관계였기에, 반명(反明)파병을 하였지만, 친명(親明)대장 이성계(李成桂)가 군사를 돌이켜 고려를 멸망시키고, 친명의 조선왕조를 세워서 명조의 중요한 번국이 되었다.

 

III-2.중아와 구주[中亞和歐洲; Central Asia and Europe]

 

 

와활태한국의 영지(窩闊台汗國的領地)는 1309년 찰합태한국과 원조[察合台汗國和元朝; Chagatai Khanate and Yuan Dynasty]로 나뉘었다. 찰합태한국은 1369년에 분열되었고, 이아한국[伊兒汗國; Iraqi Khanate]은 1357년에 멸망하였고, 최종 1388년 한개의 몽고인이 건립하였던 첩목아제국[帖木兒帝國; Timurid Empire]은 정복되었다.

첩목아[帖木兒; Timur]는 서찰합태한국의 중아하중지구의 갈석지구의 몽고귀족, 파로자사씨의 후예[西察合台汗國的中亞河中地區的渴石地區的蒙古貴族巴魯剌思氏的後裔; Descendants of the Mongolian noble Baruchis in the Keshi area of ​​the Central Asian Hezhong area of ​​the Western Chagatai Khanate]이었으니, 왜냐하면 동찰합태한국후왕 흑적아화자공주(철목진의 직계후예)[東察合台汗國後王黑的兒火者公主; the princess son Huozhe (a direct descendant of Temujin) of King Hei, queen of the Eastern Chagatai Khanate]는 처첩[妻妾; his wife and concubine]으로 받아드렸기 때문이며, 그는 자신이 몽고황금가족후예[蒙古黃金家族後裔; Descendants of the Mongolian Golden Family]라고 주장하며 또한 부마첩목아[駙馬帖木兒; Consort Timur]이라고 부른다.

그는 1367년 자립하여 소단[蘇丹; Sudan]을 만들어 7차 동찰합태한국[東察合台汗國; Eastern Chagatai Khanate]을 정벌하고 전쟁후 찰합태한국을 항복하도록 강요하였고, 몽고이아한국[蒙古伊兒汗國; Yier Khanate]으로 부터 파생한 여러소한국[(小汗國; several small khanates) 卡爾提德王朝、丘拜尼王朝、莫扎法爾王朝、黑羊王朝、白羊王朝、札剌亦兒王朝; Kartid Dynasty, Chubani Dynasty, Mozaffar Dynasty, Black Sheep Dynasty, Aries Dynasty, Zarayier Dynasty]을 1381-1387년에 정복하였고, 1394-1395년 흠찰한국[欽察汗國; Chincha Khanate]을 손실을 없애기 위하여 정벌, 인도덕리소강국[印度德裡蘇丹國; the Delhi Sultanate of India] 정벌, 덕리정복(conquering Delhi]; 다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In 1391 and 1394-1395, they conquered the Chincha Khanate and got rid of their loss, conquered the Delhi Sultanate of India, captured Delhi, and attacked Bayezet I of the Ottoman Empire (Battle of Ankara) and Mamluk of Egypt in the west. dynasty.] 서편에서 당시 하늘에 있는 태양같던 악도만제국소단파야새특일세 (안잡납전역)과 애급마목류극 왕조[鄂圖曼帝國蘇丹巴耶塞特一世(安卡拉戰役)和埃及馬木留克王朝; Ottoman Sultan Bayezid I (Battle of Ankara) and the Mamluk dynasty of Egypt in the west]를 공격하였다. 재정리하자면 [To the west, the Ottoman Sultan Bayezite I (Battle of Ankara) and the Mamluk dynasty of Egypt were in full swing at the time.

첩목아제국강토[帖木兒帝國的疆土; The territory of the Timurid Empire]는 정성시[鼎盛時; Heyday]에 동으로 인도덕리와비이간납분지[印度德裡和費爾干納盆地; Delhi and Fergana Basin, India]까지, 서로는 소아세아[小亞細亞; Asia Minor]까지, 북으로는 자함해와석이하하곡[自鹹海和錫爾河河谷; The Aral Sea and the Syr Darya Valley]까지, 남으로는 파사만[波斯灣; Persian Gulf]까지 이르렀다.

1404년 첩목아[帖木兒; Timur]는 20만군대를 이끌고 중국명조(中國明朝)를 진격하려고 하였는데, 결과적으로 1405년 그는 진군도중에 병사하였다. 첩목아사후 제국은 분열되어서, 1506년 돌궐의 오자별극부락석반리[突厥的烏茲別克部落昔班尼; Turkic Uzbek tribe Sibani]에게 멸망당하였다.

첩목아제국은 몽고제국의 일부분이 아니며, 오로지 후몽고인세력에 속하였고, 그 강토는 거의 원몽고제국적지방이었다. 첩목아제국멸망후,첩목아의 후예 파포이[巴布爾; Babur]는 1526년에 인도덕리소단국[印度德裡蘇丹國; Sultanate of Delhi, India]을 정벌하여 막아와왕조[莫臥兒王朝; Mughal Dynasty]를 건립하여 자칭 인도사탄왕[印度斯坦王; King of Hindustan]이라 하였고, 명의상 1857년까지 존재하다가 18세기에 강토가 대폭 감소되었고, 최종적으로 대영제국에 정복당하였다.

흠찰한국[欽察汗國; Chincha Khanate]은 1480년 혹은 1502년에 이르러 분열되고, 극리미아한국[克裡米亞汗國; Crimean Khanate]은 1783년까지 존재하였고, 아사특랍한한국, 객산한국, 서백리아한국[阿斯特拉罕汗國、喀山汗國、西伯利亞汗國; Khanate of Astrakhan, Khanate of Kazan, Khanate of Siberia]은 모두 최종 16세기중에 아라사제국[俄羅斯帝國; Russian Empire]에 전부 점령당하였다.

 

Maps and other images

 

1. Mongol warrior on horseback

 

2. Samurai Shiraishi clan

 

3. The funeral of Chagatai Khan.

 

4. A European depiction of the four khans, Temür (Yuan), Chapar (House of Ögedei), Toqta (Golden Horde), and Öljaitü (Ilkhanate), in the Fleur des histoires d'orient.

 

5. Mongol rider, Yuan Dynasty

 

6. Hungarian King Béla IV in flight from the Mongols under general Kadan of the Golden Horde.

 

7. The successor states of the Mongol Empire in 1335: the Ilkhanate, Golden Horde, Yuan dynasty and Chagatai Khanate

 

8. Iron helmet, Mongol Empire

 

9. The Battle of Blue Waters in 1362, in which Lithuania successfully pushed the Golden Horde from the Principality of Kiev.

YVr-IqB5Uwa74LwKXOXjYLj4WGUG_xmYYJzazVT3

 

 

10. Crimean Tatar khan, Mengli Giray.

Ew-pDDJSmygJ2UkSqfjldXXpvy5y8A_kWrpE9Fbs

 

11. Reconstruction of a Mongol warrior

 

12. Mongol general Subutai of the Golden Horde

 

13. The executed – the long and full beard probably means he is not a Mongol – has been thrown off a cliff.

 

14. Persian miniature depicting Ghazan's conversion from Buddhism to Islam.

Painting of a stylized building, showing Ghazan kneeling and accepting conversion

 

15. A 1363 astronomical handbook with Middle Mongolian glosses. Known as the Sanjufini Zij.

Sanjufini Zij by al-Sanjufini

 

16. Mongols look on as Persian astronomers work. Early 14th century illustration in the Compendium of Chronicles.

Download original file2517 × 1314 px jpg

 

17. A 1305 letter (on a scroll measuring 302 by 50 cm or 9 ft 11 in by 1 ft 7+1⁄2 in) from the Ilkhan Mongol Öljaitü to King Philip IV of France.

A partially unrolled scroll, opened from left to right to show a portion of the scroll with widely spaced vertical lines in the Mongol language. Imprinted over two of the lines is an official-looking square red stamp with an intricate design.

 

18. Tuda Mengu of the Golden Horde.

 

19. Gold dinar of Genghis Khan, struck at the Ghazna (Ghazni) mint, dated 1221/2

 

20. Map showing the boundary of 13th century Mongol Empire compared to today's Mongols in Mongolia, Russia, the Central Asian States, and China

Map of Asia

 

21. Tokhtamysh and the armies of the Golden Horde initiate the Siege of Moscow (1382).

 

22. Dominican martyrs killed by Mongols during the Mongol invasion of Poland in 1260.

 

 

Kwan Ho Chung - December 29, 2021

No. Subject Date Author Last Update Views
Notice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2016.07.06 운영자 2016.11.20 14920
Notice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2016.07.06 운영자 2018.10.19 4818
Notice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2016.06.28 운영자 2018.10.19 1938
Notice How to Write a Webpage 2016.06.28 운영자 2020.12.23 11251
8302 [WC] ‘조규성 결승골’ 한국, 레바논 제압. 10연속 월드컵, 9부 능선 넘었다 [2] new 2022.01.27 황규정*65 2022.01.27 2
8301 지도자의 결핍; 미국과 한국 [2] 2022.01.25 온기철*71 2022.01.26 29
8300 중국의 협박 [1] 2022.01.24 온기철*71 2022.01.24 31
8299 If you think that glass of wine is good for you, it's time to reconsider [1] 2022.01.23 운영자 2022.01.23 29
8298 [LPGA] 다니엘 강, LPGA투어 개막전 역전 우승 [4] 2022.01.23 황규정*65 2022.01.26 57
8297 SNUMA Website Malfunction [3] 2022.01.22 운영자 2022.01.23 38
8296 Rejoice !! Jail is coming closer to Trump [2] 2022.01.22 운영자 2022.01.23 20
8295 [EPL] 79 seconds Miracle [2] 2022.01.20 황규정*65 2022.01.23 18
8294 한국의 힘은 민주주의 [1] 2022.01.20 온기철*71 2022.01.23 18
8293 世界最强帝國: 세계최강제국 [1] 2022.01.20 정관호*63 2022.01.20 18
8292 사랑은 늘 도망가 [2] 2022.01.16 운영자 2022.01.17 51
8291 [WC] 유럽파 없어도 괜찮아… 벤투호, 아이슬란드와의 친선전서 5-1 대승 [3] 2022.01.15 황규정*65 2022.01.15 19
8290 한국은 中과 무덤 위서 춤출지, 美 핵우산 유지할지 자문해야 [6] 2022.01.14 운영자 2022.01.16 56
8289 01.06.2021 insurrection; Why Trump not in jail? I don’t understand! [2] 2022.01.06 온기철*71 2022.01.13 53
8288 New Year's Concert 2022-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Radetzky -Marsch.) 2022.01.05 김성철*67 2022.01.23 32
8287 유교란 무엇인가? [4] 2022.01.04 온기철*71 2022.01.06 42
8286 손흥민, ‘아시아판 발롱도르’ 5년 연속 수상 [1] 2022.01.04 황규정*65 2022.01.07 12
8285 몽고제국 제3회: 고려조의 북벌시도 [3] 2022.01.04 정관호*63 2022.01.19 35
8284 서울대 병원 라오스에 국립대학병원 건설 2022.01.02 온기철*71 2022.01.06 58
8283 [EPL]'손흥민 극적 도움!' 토트넘, 왓포드에 1대0 승리 5위 등극 [3] 2022.01.01 황규정*65 2022.01.0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