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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의 미국유학


Amherst College 의 추억


          민공기

 

1952년 에 들어가자 판문점 휴전회담 의 진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장교들 의 미국유학훈련 이 대대적으로 시행되고 군 외에서도 유학길로 떠나는 대 학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통역장교 로 진해에 있는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있었는데 이무렵 나의 중학교 동창생의 미국유학송별회 가 부산에서 있었다.

 

나도 미국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었지만 전시하의 현역장교로서의 사정때문에 그 실현성은 없다고 체념 하고 있었다. 말 없이 앉아있는 나를 위로하듯 그 친구는 곧 휴전이 될테니까 지금부터 유학수속을 시작할것을 권유했다. 부산에 있던 미국문화공보원 에 들려서 "US Colleges and Universities" 라는 guidebook 을 찾았다. 주로 미국동부 의 작은 남자대학 중에서 alphabet순서로 열을 선택했는데 그중 첫번이 Amherst College 였다. 나를 소개하고 미국에가서 공부하고 싶은 나의 소신을 짧게 쓴 편지에 군복차림의 사진을 동봉해서 list에 있는 열 대학에 발송했다. 그 당시 한국은 국제우편 도 불편했던 때라 나하고 친하게 지냈던 West Point 출신 군사고문관 Brown소령을 통해서 A.P.O. (미군군사우편) 헤텍을 많히 받았다. 뜻밖에 한달쯤 후에 네 대학 에서 답장이 왔다.

 

그중에서 제일 고무적인 답장이 Amherst에서였다. 몇달전에 막 Amherst 를 졸업 하고 부산에 있는 한국은행 으로 귀국한 김병국 이라는 분을 찾어가서 interview를 하라는것이다. 만나보니 이분은 나의 모교 경기중학의 선배이셨고 이분과 interview한지 한달후 Amherst College 에서 수업료, 기숙 사비, 식비등 일절을 담당하겠다는 믿을수 업는 offer를 받았다. 단 part time 일을 해야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김병국 박사는 그후 내가 Amherst 에 다니고 있을때 다시 도미 Wisconsin 대학에서 경제학 Ph.D. 를 마치시고 서강대학교수, Asian Bank 등에서 활약 하셨다.)

 

1953년7월의 휴전협정을 전후해서 나의 유학길은 급속히 열려갔다. 5월말에 제대, 8월중순에는 미국화물선 USS Hurricane (8000톤) 을 타고 부산항을 떠났다. 나를 환송나온 나의 형, 친구들은 배가 안보일때까지 부두를 따라오면서 손을 흔들었고 나는 갑판 위에서 언제다시 볼수있을 지 모를 나의 나라 한국을 마지맊까지 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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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Amherst College 에 도착한 것은 이른 가을 화창한 날씨 였다. Campus의 중심은 대학본부 가 있고 시게탚 이 보이는 Johnson Chapel과 그앞의 광장(Quadrangle) 이었다. 아직 학생들이 돌아오지 않은 한적한 교내를 지도로 찾어가며 걷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4년동안 이 대학에서 나는 잘 할수 있을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걷는 앞길에 조그만 언덕이 나타났다. 지도를 보니 Memorial Hill 이라고 나와있었다. 멀리 Connecticut강 넘어로 Holyoke Range 라는 산맥이 보이는 이 아담 한 언덕에 있는 1차, 2차 세게대전 에서 전사한 이 대학 졸업생들을 위한 위령비에 마주친 것이다. 화강암으로 된 원형 비석에는 360도로 방향을 따라 Phillipines, Solomon 등 격전지의 이름과 그 곳에서 전사한 졸업 반 회수가 새겨저있었다. 아! 학업을 중단하고 전선 으로 자원한 젊은 학생들을 지금까지도 아껴주는 대학이 여기 있구나! 몇달 전 까지 군대에 있었던 나는 이 Memorial Hill 에서 큰 감동 을 받았고 이 Amherst College 에 처음으로 친근감을 느꼈다.

 

Amherst 에서는 1학년 때 필수과목 으로 영작문, 서양사, 수학, 물리 를 택해야 했다. 이 중에서 지금도 인상에 남는것이 영작문, English 1, 2 이다. 1학년생 200명을 20명씩 10 반으로 나누어서 수업하는데 나는 다행이 이 독특한 영작문 course를 창조한 Theodore Baird 교수 반에 편입 됬다. 강의 첫번 시간에 Baird 교수는 아무말 없이 흑판에 큰자로 "Where are you?" 라고 쓰고 이 제목으로 다음 시간까지 두 page 작문 을 제출하라고 했다. 간단명료한 제목. “너는 어디에 있느냐?” 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나? “ I am in Stearns 308(나의 기숙사 방)”. 첫 마디를 쓴다음 무엇을 쓸지 몰랐다. 글을 쓴다는 것이 간단치 않음을 절실히 느꼈다. 주어진 제목 “Where are you?”를 읽고 또 읽었다. 여기서 keyword “where”(어디)란 무엇인가? 이것을 학실히 해야만 다음 글을 쓸수 있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where 가 지금 내가 있는 기숙사 방의 지리적 위치 라고 정의하고 이것을 어떻게 독자에게 알리나 생각했다. Johnson Chapel을 원점으로 동서남북 상하를 xyz춬으로 하는 공간좌표를 사용해서 나의 기숙사방을 찾아올 수있는 독도법 이야기로 두 page작문을 끋냈다. 6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Baird 교수의 “Where are you?”라는 물음은 내가 걸어온 인생행로상 어느 지점에 와 있나를 묻는 선 불교적인 화두 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English 1,2에서 배운것은 思考(idea)의 매개체로서의 言語이다. 내용 없는 美辭麗句는 언제나 Baird 교수의 날카로운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글을 쓴다는것은 사색의 길을 찾는것이고 쓰는 글 하나마다 책임을 저야 한다는 것은 Amherst College 敎育에서 얻은 귀중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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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년때 또하나의 필수과목인 History of Western Civilization 은 사실상 세계사 였다. 이 과목에 는 막대한 양의 reading assignment(참고서적 읽기)가 부가 되었다. 일주일에 세번있는 수업에 주어 진 독서량은 한 200 page나 됬을까. 필요한 책은 모든 학생이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었다. 매주 수요일에는 강의가 시작하기전 20분동안 pop quiz(짧은 시험)가 있었다. 시험지 앞면에는 세계지도가 그려있고 뒷면은 백지이다. 시험문제는 언제나 둘인데 첫 번 문제는 그날 reading assignment 에 나오는 역사지명을 세계지도에 기입하는 것이고, 둘째문제는 뒷면에 쓰는 논문문제 이다. 지금 기억에 남는 지명문제는 Tigris, Euphrates강, Ural산맥, Bramapatra강 등. 논문문제 로 는,”19세기말 서구열강의 문호개방요구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대응반응을 비교하라.”등 이 생각 난다. 주어진 지면(백지 뒷면)과 시간(10-15분)제한때문에 이 논문의 문장은 간결하게 빨리 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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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herst College 에서는 전교생이 기숙사에 거주하고 식사는 Vallentine Hall 에 있는세 곳 대식당 에서 하는데 나는 여기서 4년동안 거이 매일 접시를 닦았다. 오전에는 교실에서 오후에는 기숙사 지하 실이나 도서관에서 숙제를 하고 5시경 일찌기 저녁을 먹고 7시까지는 dishwash를 끝냈다. 저녁 11 시 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기숙사로 돌아와서 shower하고 취침. 이 대학에 온지 한 석달동안 나의 변함없는 학교생활이 게속했다.

 

첫번 Thanksgiving 방학이 오기 몇일전 학생처장인 Dean Porter 한테서 만나자는 전화 가 왔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가자 그는 만면의 큰 웃움을 띠면서 “Congratulations, Mr.Min” 하고 악수를 청했다. 첫학기 중간 성적이 나왔는데 네 과목 모두 A를 받았다는 것이다. 솔직히 기뻤다. 미국의 알려진 Phillip Exeter, Andover, Choate 등 prep school 출신 학생들사이 에서, 한국전쟁 3년간의 공백기간에도 불구하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처음으로 느낄 수있었다. 특히 외국학생으로 English1에서 Baird교수 한테서 A를 받은 것을 나는 지금도 무한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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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herst College에 있는동안 얻은 또 하나의 큰 선물은 나의 일생의 동반자가 될 김영화 의 만남이다. 내가 3학년이 된 1955년 가을 Amherst 가까히 있는 여자대학 Mount Holyoke에 한국학생이 전학 해왔다. 서울대학 영문과를 한학기 다니다가 유학왔다는 이 여학생을 Boston에있는 친구 소개로 몇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해 크리스마스 방학때 Columbia 대학에서 있었던 한인학생 송년파티 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미국 전국에서 뫃인 학생들이 춤추고 있는 것을 보다가 나도 추고 싶어저서 김영화 가까히로 갔다. 난데 없이 한 남학생이 나타나드니 순서대로 기달려야 된다는 것이 다. 할수없이 그곳에서 떠나 친구들을 찾고 있는데 그녀가 나에게 닥아와서 말했다. ”2월에 우리학교 에서 Snowball Dance Party가 있는데 오세요.” 나를 똑바로 보고있는 그녀의 웃고있는 눈 표정이 매력적이라고 느꼈고 호감이 갔다.

 

1957년 나는 Amherst를 졸업하고 University of Illinois 물리과 대학원으로 옮긴다. 김영화는 일년후에 Mount Holyoke를 졸업한다. 지금도 늘 고맙게 생각하는것은 졸업후 Harvard 철학과 대학원에 입학한 그녀가 그여름 나하고 결혼하고 Illinois로 전학했다는 것이다. Illinois에서 대학원 생활 5년후 나는 물리학으로 Ph.D, 아내는 철학으로 M.A.학의를 받았다. 그후 40년동안의 미국대학 교수생활이 시작한다.


 

나의 모교 Amherst College campus 한 구석에는 이 대학에서 오랜동안 교수로 있었던 미국의 “국민 시인” 이라고도 할수있는 Robert Frost 의 동상이 서 있다.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Robert Frost 시 중에서 아마도 가장 사랑받고있는 “The Road Not Taken” (택하지 않은 길) 의 일절 이다. 누런 숲속에 길은 두갈래 이나 몸은 하나인 나그네는 그중 한길만 선택해야 한다.

 

지금 내 나이 여든 넷. 그동안 참으로 많은 길을 걸어왔다. 그 중 가장 컸던 갈림길은 아마도 한국전쟁이었다. 그러나 전쟁에는 선택이 없었다. 처음으로 체험하는 不可抗적인 힘 앞에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인생행로에서 내가 택한 제일 큰 길은 1952년에 미국유학에 온 것이다. 이 선택이야 말로 그후 내 인생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되었다.

 

결혼, 딸, 아들, 손자들... 반세기의 미국 대학 생활, 합동연구로, 교환교수로, 혼자서, 또는 가족과 같이 방문 여행한 세게지도상의 많은 점점들, 만난 사람들, 떠난 사람들... 즐거웠던 일, 슲었던 일, 많은 추억들...

 

이 모든것을 뒤로 하고 나는 지금 이곳 Laguna Woods 에 와 있다.

 

“The Road Not Taken (택하지 않은 길)” 에 미련은 없다.

 

201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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