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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53.


서울의 이방인


[중앙일보] 입력 2006.11.15

낮선 사고방식에 적응 애먹어 - 조국을 이해하라"조언에 힘 내


89년 무렵의 필자.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마음 고생을 많이 하던 때였다.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것은 한국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그들과 부대끼며 살기 위해서였다. 조국을 선진국으로 이끄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겠다는 의무감도 있었다. 그래서 귀국을 준비하면서 기대로 가슴이 부풀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날 그리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봤다. '한국화보' 직원들에게 주 5일 근무를 시킨 것이나 사무실을 쾌적하게 꾸민 것도 시비 거리였다. 미국에서 25년 살다 들어온 내가 무심결에 영어를 쓰면 민망할 정도로 비판했다. 심지어 "한국X이 에드워드가 뭐냐?"는 사람도 있었다. 배타적인 분위기가 날 감쌌다. 

나 또한 미처 보지 못했던 한국사회의 어두운 구석들을 발견했다. 우체국에서 줄서서 아무리 기다려도 내 차례가 오지 않았다. 택시를 탈 때도 마찬가지였다. 새치기 때문이었다. 내가 청와대를 출입하자 주변 사람들의 청탁이 이어졌다. 사업을 도와 달라, 아들의 승진에 힘써달라고 했다. 한 마디만 해 주면 평생 잊지 않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들은 몹시 서운한 얼굴로 "남의 청탁을 받아들이는 법도 배우라"고 했다. 

사람들은 내가 정(情)이 없다고 했다. "정이라는 것이 가족, 친구, 동창, 고향만 남보다 더 챙기는 거라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 그들은 "한국 실정을 너무 모른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순서를 기다리면 반드시 내 차례가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았다. 그렇게 악착스럽지도 않고 꿈도 소박했다. 중년이 되도록 그런 사람들과 살다 하루아침에 한국에 오니 적응하기 힘들었다. 뉴욕에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서울에서도 이방인이 된 것 같았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지켜준 것은 '한국화보'였다. 열심히 만들어서 세계 사람들이 한국을 잘 알게 된다면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국적도 정리했다. 68년도에 취득한 미국 국적을 포기하기 위해 미 대사관에 들러 진술서를 쓰고 여권을 반납했다. 제 2의 고향 미국과 법적으로 결별하는 순간이었지만 담담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그 무렵 건축가 김수근 선생이 해 준 이야기는 큰 도움이 됐다. 서울 계동의 공간 (空間) 사옥으로 찾아갔을 때 김 선생은 갈등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곳 생활이 쉽지는 않을 걸세. 적당히 체념할 줄도 알아야 해. 자네는 지금까지 이 땅에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지? 지금부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밀린 세금을 낸다고 생각하게." 

조국을 배우고 이해하라는 말이었다. 옳은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 2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이웃을 이해하고 한편으로는 적절히 체념하며 살아왔다. 

지난 세대,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제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볼 때도 됐다. 원칙을 지키고 올바른 가치관을 교육하고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 서점에 널린 자기 계발서는 그만 보고 공동체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가 무시하지 않는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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