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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김희중 Essay] 불효자

2014.09.30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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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46.

불효자

입력 2006.11.06

어머니 장례식 끝난 뒤 집에 도착 - 아버지 별세 소식은 전화로 들어


돌아가시기 1년 전인 1984년 건강한 모습으로 미국을 방문한 아버지와 필자가 볼티모어항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아버지는 항상 카메라를 메고 다니셨다.
애리조나 사막에서 도둑들이 선인장을 훔치는 모습을 찍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1976년 11월 어느 날 회사 여직원이 숙소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지금 서 있나요, 앉아 있나요?"라고 물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고 했더니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목소리가 무슨 뜻인지 실감할 수 없었다. 여직원은 내가 충격으로 쓰러질까 걱정했지만 난 아무 느낌도 없었다. 예정대로 저녁에 사람을 만나 취재하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피닉스 외곽 고속도로를 차로 달렸다. 마침 도로 끝에서 둥근 보름달이 떠올랐다. 그런데 달 속에서 어머니가 빙긋이 웃고 계신 것이 아닌가. 비로소 어머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실감이 들었다. 그제야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9년이 흐른 85년 5월, 서울의 누이가 워싱턴 사무실로 전화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빨리 들어오너라." 믿기 힘들었다. 지병도 없고 건강하던 분이 왜 갑자기 돌아가신단 말인가. 불과 몇 달 전 서울서 뵙고 "내년 여름쯤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에 와서 모시겠습니다" 했었는데…. 무한한 사랑으로 날 감싸주신 어머니에 이어 정신적 버팀목이었던 아버지마저 허망하게 돌아가신 것이다.

최대한 서둘렀지만 발인 날짜에 대기는 힘들었다. 황망히 서울 집에 도착하니 관은 상주(喪主)인 내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느라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장례가 끝난 뒤에야 도착했었다. 부모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불효자는 통곡했다.

스님이 조용히 목탁을 두드리는 가운데 잔잔한 음악이 흘렀다.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의 '허밍 코러스'였다. 아버지는 당신의 상가에 그 음악을 틀어놓으라고 생전에 당부하셨다고 한다.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이 그런 음악을 어떻게 아셨을까? 남녀 간의 애틋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음악이지만 상가에 잘 어울렸다.

아버지는 음악만 준비한 게 아니었다. 당신의 장례 절차를 꼼꼼하게 글로 남겨놓았다. "시내에서는 자동차로 운구하되 남한산성 입구에서 장지까지는 꽃상여를 이용해라, 어머니와 합장해라, 상여꾼들에게 베옷을 입히고 운동화를 신겨라, 어디서 휴식하도록 해라…."

갑작스러운 일을 당한 자식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신 것이다. 나는 그저 돌아가신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었다.

장례와 제사 비용도 남기셨다. 은행에 맡겨놓은 그 돈은 이자만 찾을 수 있었다. 장례와 매년 지내는 제사 때도 자식들에게 부담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 돈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둘째 누이가 관리하며 매년 제사 비용으로 쓰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내가 번 돈으로 제사를 올리지 못했다.

부모님을 모신 산소에 비석을 세우고 짧은 글을 새겼다.

'하늘이 무심하랴 살아 생전 베푼 사랑/ 이 몸이 잊으리오 부모님의 그 은덕/ 비바람 몰아치는 어두운 밤에도 마지막 남긴 말씀 영원한 횃불 삼아/ 이 나라 일꾼 되어 그 뜻을 받드려니/ 부모님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내가 아버지에게 한 약속이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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