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English
                 

[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51.

전두환 대통령 <하>

[중앙일보] 입력 2006.11.13

타임 한국특파원 자격으로 - 연희동서 백담사행 지켜봐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신발가게 주인이 1988년 11월 23일 전두환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회견을 시청하고 있다.
1981년 1월 한국에 왔을 때 문화공보부에 들른 나는 벽에 붙어 있는 전두환 대통령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새로 촬영한 공식 사진이었는데 대통령이 맨 넥타이가 문제였다. 화려한 꽃무늬를 즐겨 쓰는 프랑스 레오나드(Leonard) 제품이었다. 특징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패션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브랜드였다. 사진을 보고 있던 나에게 공보관이 물었다. "사진이 어떻습니까?" 그에게 되물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외국 브랜드 모델로 데뷔시킬 생각입니까?"

대통령은 개성이 강한 제품은 피하는 것이 좋다. 시선이 집중되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더라도 특정 상품을 홍보하는 결과를 빚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프랑스제 넥타이를 매고 전국의 관공서에 걸릴 사진을 찍은 것이다. 브랜드가 드러나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 넥타이는 그에게 어울리지도 않고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당황한 공보관이 말했다. "그런 줄 몰랐습니다. 즉시 바꾸지요. 그러면 김 선생께서 앞으로 대통령 의상 코디 좀 해 주세요." 80년대 초의 청와대는 그런 걸 세심하게 챙길 시스템이 없었다.

81년 1월 말 전두환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했다.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에 취임한 지 1년 4개월 만이었다. 미국 정부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한국 대통령을 싸늘하게 맞았다. 국빈 방문은 고사하고 공식방문도 아닌 실무방문이었다. 공항에서는 아무런 환영행사도 없었다. 미국 정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 일행이 머문 뉴욕 아스토리아호텔 앞에서는 교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전두환 물러가라!"고 외쳤다. 플래카드는 '광주사태' '살인자'같은 글자로 도배돼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을 만나는 전 대통령은 무기력해 보였다. 눈빛과 몸짓 하나하나가 어색했다. 정통성 없는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만나 '추인'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85년 2차 미국 방문 때는 워싱턴에서 합류해 취재했다. 전 대통령은 4년 전과 달리 많이 당당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88년 임기가 끝나면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 하겠다"는 약속을 미국 대통령에게 했다고 한다.

88년 11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대문 밖에는 그를 태우고 백담사로 갈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고, 거실에는 '유배'를 떠나려는 전직 대통령을 취재하려는 내외신 기자들로 붐볐다. 나는 타임 한국특파원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 8년 전 임기를 고민하던 그가 어느새 '7년 단임' 대통령 직을 끝내고 후임 노태우 대통령에게 떠밀려 강원도 산골짜기로 떠나려 하고 있었다.

청와대 시절의 당당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회견 말미에서 "국민 여러분이 가라는 곳이라면 조국을 떠나는 것이 아닌 한 어디든 가겠다"고 할 때는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는 대통령으로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세상과 정치권은 '5공 비리'를 용서하지 않았다. 기자회견을 끝낸 그와 마지막으로 악수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고 백담사로 떠났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No. Subject Date Author Last Update Views
Notice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2016.07.06 운영자 2016.11.20 18193
Notice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2016.07.06 운영자 2018.10.19 32347
Notice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2016.06.28 운영자 2018.10.19 5922
Notice How to Write a Webpage 2016.06.28 운영자 2020.12.23 43839
260 [김희중 Essay] 인물사진 [1] 2014.10.17 운영자 2014.10.17 1274
259 [김희중 Essay] '여장부' [1] 2014.10.17 운영자 2014.10.17 1246
258 [김희중 Essay] 부모님 2014.10.12 운영자 2014.10.12 1215
257 [김희중 Essay] 인생 5단계 [2] 2014.10.12 운영자 2014.10.12 1631
256 [김희중 Essay] 한국화보 (下) [2] 2014.10.09 운영자 2014.10.09 1246
255 [김희중 Essay] 한국화보 (上) 2014.10.09 운영자 2014.10.09 1290
254 Huge rings and Big weddings have higher divorce rate [1] 2014.10.08 Rover 2014.10.08 1153
253 [김희중 Essay] 삼성 이건희 회장 [2] 2014.10.06 운영자 2014.10.06 1377
252 [김희중 Essay] 김영삼 대통령 [1] 2014.10.03 운영자 2014.10.03 1243
251 [김희중 Essay] 노태우 대통령 2014.10.03 운영자 2014.10.03 1278
» [김희중 Essay] 전두환 대통령 (下) [1] 2014.10.02 운영자 2014.10.02 1353
249 [김희중 Essay] 전두환 대통령 (上) 2014.10.02 운영자 2014.10.02 1489
248 [김희중 Essay] 불효자 [2] 2014.09.30 운영자 2014.09.30 1292
247 [再湯 漢詩] 노인삼반 (老人三反) [1] 2014.09.29 운영자 2014.09.29 1462
246 [김희중 Essay] 서울의 이방인 [3] 2014.09.28 운영자 2014.09.28 1426
245 Do you Know? 무었이 행복이고 소중한것인지? [3] 2014.09.26 Rover 2014.09.26 1629
244 [김희중 Essay] 다시 한국으로 [4] 2014.09.25 운영자 2014.09.25 1597
243 About Essay and Narrative Essay [1] 2014.08.23 운영자 2014.08.23 1338
242 Soliloquy 蓮꽃이 靑山流水 처럼 지나가네 [2] 2014.08.14 민경탁*65 2014.08.14 1948
241 Kevin McGroarty: The man behind the self-written obituary [1] 2014.07.28 운영자 2014.07.28 16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