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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54.

김영삼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2006.11.16

당선자 때 비서 보내 사진촬영 요청 - 자연스러운 표정 찍으려 30분 진땀


필자는 18년 시차를 두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촬영했다. 1974년 신민당 총재 때(左)와 92년 대통령 당선자 시절.
1974년 가을, 서울 태평로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본관)에서 만난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화가 나 있었다. 2년 전 공포된 유신헌법으로 야당 지도자였던 그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기 때문이었다. 유신헌법은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독재를 가능케 했다.

카메라 앞에서도 굳은 표정을 풀지 않은 김 총재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국민은 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회복되길 원합니다. 우리가 이룬 번영이란 것도 별 것 아닙니다. 폐병을 가진 어린이가 키만 크면 뭐합니까? 어른이 되기 전에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한국이 그런 병에 걸려 있습니다."

18년이 지난 92년 겨울,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의 비서가 나를 찾아왔다. "'각하'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가능하겠습니까?" 별로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하고 싶었다. "나는 그 분을 잘 모릅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대상을 아는 게 중요하지요. 당선자의 업적이야 잘 알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모르니 사진을 찍겠다고 하기 힘드네요." "그러면 프로필을 뽑아 드리면 될까요?" "프로필이야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전에 차라도 한 잔 하며 서로 얼굴을 익히면 사진 찍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비서는 난감한 얼굴로 돌아갔다.

사흘 후 비서가 전화했다. "당선자와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얼굴을 익혀야 한다는 것은 핑계였는데 다시 부탁하니 어쩔 수 없었다. 여의도 민자당사 내 당선자 사무실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정권을 차지했다는 기쁨과 흥분이 사람들 얼굴에 가득했다. 당선자를 만나 인사했다. "74년 국회 사무실에서 뵌 적이 있는데 기억하시겠습니까?" 그는 기억을 못하는 것 같았다.

마주 앉았지만 김영삼 당선자는 마음이 딴 데 가 있는 듯했다. 번거로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언제 미국을 갔느냐?" "회사일은 재미있느냐?"고 물었지만 의례적인 질문이었다. 만남은 15분 만에 끝났다.

며칠 후 카메라를 들고 다시 당사를 찾아갔다. 태극기 앞에 선 그가 말했다. "사진을 잘 찍는다면서요. 어디 한번 찍어보세요." 머릿속에 복잡한 일이 가득 한 사람의 얼굴이 카메라에 비쳤다. 평생 갈망했던 대통령 자리에 드디어 올랐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자신감도 없어 보이고 미지의 세계에 첫 발을 들여놓는 사람의 불안감조차 드러났다. 야당 정치인으로 줄기차게 투쟁하는 인생을 살아온 그가 국가 운영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과연 준비는 되어 있는 것일까?

자연스러운 표정을 유도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도자의 얼굴이란 국민이 보고 편안해야 한다. 하지만 근심 어린 어색한 표정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30분쯤 지나자 내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일에 몰두하다 보면 항상 그렇게 된다.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던 그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그의 부탁으로 며칠 후에는 상도동 자택을 방문해 손명순 여사 등과 함께 가족사진도 촬영했다.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청와대와의 인연은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을 거쳐 김영삼 대통령까지 이어졌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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