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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52.

노태우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2006.11.14

90년 고르바초프와 회담 위해 - 호텔방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려


청와대 전속 사진사가 찍은 이 사진은 노태우.고르바초프의 샌프란시스코 회담을 기록한 유일한 영상 자료다.
1990년 6월 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호텔. 노태우 대통령은 객실에서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의 회담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워싱턴에서 미.소 정상회담을 마치고 샌프란시스코를 방문 중이었다. 한.소 정상회담은 노태우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한 일이었지만 소련 입장에서는 가급적 감추고 싶은 회담이었다. 두 나라는 아직 수교 전이었다.

약속된 시간에 회담은 열리지 못했다. 고르바초프의 앞선 일정이 늦어졌기 때문이었다. 대통령도 기자들도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소련 측에서 연락이 왔다. 노 대통령과 수행원.경호원 그리고 기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나갔다. 회담장으로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회담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대의 엘리베이터 중 한 대는 운행이 정지되어 있었고 나머지 한 대는 소련 측 경호원들이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네 명이 엘리베이터 안에, 두 명이 밖에 서 있었다. 경호원 외에 한국 대통령을 영접하러 나온 사람은 없었다.

많은 사람이 하나의 엘리베이터로 몰려들자 소련 경호원들이 당황하며 앞을 가로막았다. 대통령도 덩치 큰 그들에게 막히는 사태가 발생했다. 누군가 소리쳤다. "He is president(그 분은 대통령이야)!" 대통령이 이리저리 떠밀리는 가운데 회담에 배석할 수행원.경호원과 기자들이 한꺼번에 엘리베이터에 탔다. 모두 양국 대통령이 만나는 순간, 현장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안 탈 수도 없었다. 물론 나도 필사적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겨우 문이 닫힐 무렵 대통령이 외쳤다. "잠깐, 저 사람은 같이 올라가야 해!" 회담에 반드시 참석해야 할 수행원이 그 난리 통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고 밖에서 우왕좌왕 하는 걸 본 것이었다. 다시 문이 열리고 그 수행원을 태운 다음 엘리베이터는 회담장이 있는 23층에 도착했다. 소련 측 의전비서관은 그제야 나타나 한국 대통령을 안내했다.

대통령이 들어간 곳으로 기자들이 우르르 따라가자 소련 경호원이 큰 팔로 막아서고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No Photo(사진은 안돼)!" 고르바초프는 한국 대통령 만나는 모습을 김일성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다. 소련 공보담당자와 오랜 시간 협의를 한 뒤 한국 공보수석이 합의내용을 발표했다.

"TV 카메라는 안됩니다. 사진기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도 딱 한 커트만 찍을 수 있습니다." 그 '역사적인' 사진을 청와대 전속 사진사 박금성씨가 찍었다.

그해 9월 한국과 소련은 수교했고, 12월엔 노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북방외교의 한 획을 긋는 일이었다. 하지만 의전관례상 수모를 당한 샌프란시스코회담은 나라 망신을 톡톡히 시킨 사건이었다. 업적을 남기기 위해 원칙 없이 서둘다가 자초한 일이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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