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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55.

삼성 이건희 회장

[중앙일보] 입력 2006.11.19

엉터리 계산기 만들던 삼성 변화에 - 리더의 비전과 열정 중요성 깨달아


삼성의 기업이미지를 생각하자면 파격적인 광고 사진이었지만, 이건희 회장은 “좋은 사진”이라며 직접 채택했다.
"에드, 아무래도 이상해. 계산이 자꾸 틀려." "그럴 리가 있나. 그 제품은 최첨단 전자계산기라고."

1974년 말, 워싱턴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무실. 내가 자랑스레 보여준 전자계산기를 조작해 보던 동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계산기는 한국 취재 중 삼성전자에서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동료들은 처음엔 '자동으로 계산을 해주는 기계'라는 설명에 감탄했지만 계산이 자꾸 틀리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전자계산기가 계산을 못한다면 말이 되는가? 직접 버튼을 눌러 계산을 해봤다. 놀랍게도 답이 틀렸다. 버튼을 잘못 눌렀나 싶어 다시 같은 계산을 입력했지만 역시 엉뚱한 답이 나왔다. 동료들은 '머리 나쁜' 한국산 전자계산기에 폭소를 터뜨렸다.

90년 가을, 서울 한남동 이건희 삼성 회장 자택에 세 사람이 둘러앉았다. 이 회장과 부인 홍라희 여사, 그리고 나였다. 87년부터 '타임' 한국특파원을 겸하던 나는 자매지 '포천'의 의뢰로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들을 취재했는데 이 회장도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는 삼성그룹을 해외에 알리는 잡지를 제작해 달라고 부탁했다.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는 세계 각지의 삼성사업장을 취재해 89년부터 '삼성의 세계(The world of Samsung)'라는 잡지를 제작했다. 세 사람이 보고 있던 것은 1990년 호의 편집 안이었다.

앞에는 큰 사진이 놓여 있었다. 터질 듯한 몸매의 세 미녀를 엉덩이만 클로즈 업 해 찍은 것이었다. 갈색 피부엔 물방울이 맺혀있고, T팬티 형 비키니 수영복은 탐스런 엉덩이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 사이로 깜찍한 삼성 카세트 라디오가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브라질의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내가 촬영한 사진이었다.

홍 여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사진이 참 좋긴 한데…, 너무 앞서 가는 거 아닌가요?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지 못할 거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 "삼성이 지향하는 것이 '국제화' 아닙니까? 세계무대를 생각해야 합니다."

"행정관청에서 문제 삼을지도 몰라요." "국제 기준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사진으로 대형 광고판을 만들어 우리나라 곳곳에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들고 있던 이 회장이 결론 내듯 말했다. "국제화 시대인데 이 정도는 무방하지요. 그대로 쓰도록 합시다."

이 회장이 추구하던 것은 '국제화'와 '질(質)'이었다. 회사를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키우고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삼성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 어느 날 자택을 방문했더니 회장은 새로 만든 휴대전화를 들고 기가 막힌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화기 버튼을 눌렀는데 버튼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93년, 이 회장은 '신경영'을 선포하고 제품 고급화를 직접 이끌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10년 남짓 만에 삼성의 브랜드 가치가 소니를 누르고, 애니콜은 세계 최고의 명품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처음 본 삼성이 '계산도 못하는 전자계산기'를 생산하는 기업이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기적과 같은 일이다. 리더의 비전과 열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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