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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49.

한국화보 <하>

[중앙일보] 입력 2006.11.09

독자는 호평, 공무원은 불만 - 98년 정권 교체 때 사직 통보

그렇게 노력을 기울였으니 잡지의 질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화보(SEOUL)'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외국 독자들이었다. 그들이 보낸 편지가 내 책상에 수북이 쌓였다.

"SEOUL은 상투적이고 편파적인 일반 뉴스와 달리 진정한 한국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한국화보의 홍보 효과는 탁월하며 어느 매체도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SEOUL은 대수롭지 않은 기사와 사진으로 발행되는 전 세계 대다수 출판물의 훌륭한 표상이 됩니다."

뿌듯했다. 힘들게 한 권, 또 한 권 발행했지만 독자들의 이런 반응을 접하면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감히 자신하건대 한국화보는 1980년대 중반 한국이 세계에 내놓은 명품이었다. 그때는 세계인이 감탄하는 한국의 휴대전화도 TV도 없던 시절 아닌가?

그러나 문공부 공무원들은 편집 방향에 불만이 많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홍보는 '좋은 것'들이었다. 즉 경제 발전상, 안정된 사회 등 깨끗하고 정돈된 것만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꾸밈 없고 진실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농부의 모습을 그들은 "볼품 없고 지저분하다"고 했다. 73년 북한을 취재할 때 신발 벗고 뛰노는 아이의 모습을 찍지 못하게 했던 북한 안내인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런 식의 요구를 계속한다면 더 이상 일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예산 문제도 쉽지 않았다. 감사원 공무원은 200자가 꽉 차지 않은 원고지는 한 매로 계산해 주지 않았다. 부족한 부분은 결국 내 주머니에서 나갔다. 정부 예산으로는 제대로 된 책 만들기 어렵고, 나랏돈을 쓰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걸 절감했다. 업자들이 나라 일을 맡으면 부실공사가 되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98년 봄 정권이 바뀌자 이곳저곳에서 간섭이 시작됐다. 왜 인터넷에 올리지 않느냐, 시대의 변화에 맞게 바꾸라는 등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더니 결국 그만두라는 통보가 왔다.

정권 교체의 파급 효과는 공직사회 구석구석까지 미쳤다. 하지만 당장 그만둘 수 없었다. 미리 준비해 놓은 기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낸 마지막 책은 98년 12월호였다. 온 힘을 다해 자식을 낳듯이 만들던 한국화보와는 그렇게 이별했다.


김희중 갤러리
 1990년대 초반 전남의 한 농촌 비닐하우스에서 겨울 들판을 내다보는 소녀를 만났다. 그 아이는 뽀얗게 김이 서린 비닐을 손으로 문질러 봄을 기다리는 창문을 냈다.

 

마지막 호를 인쇄소에 넘긴 날 서울엔 진눈깨비가 내렸다. 혼자 사무실을 빠져나와 을지로.종로를 거쳐 종묘공원까지 걸었다. 골목의 포장마차에서 카바이드 불빛이 새나왔다. 포장을 젖히고 들어갔다. 난생 처음 들어가본 포장마차였다.

차가운 소주를 한 잔 마시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60년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스무 살에 미국에 건너가 25년 동안 치열하게 살았고, 귀국해서도 14년간 일에 파묻혀 지냈다. 세계를 누볐고, 상도 받고 명성도 얻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놓친 것이 있었다. 내 곁에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것이었다. '이런 날 마음 터놓고 이야기 할 벗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고 또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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