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English
                 

Life [김희중 Essay] '여장부'

2014.10.17 14:38

운영자 Views:1246

[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7.

'여장부'

[중앙일보] 입력 2006.09.11

중3 때 신문 독자사진전에 출품 - 대상 받고 스승 이명동 선생 만나

신촌 들판에서 일하는 아낙을 촬영한 사진 '여장부'. 이를 계기로 나는 사진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54년 여름, 아버지와 나는 대청마루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신문에는 독자사진 수상작들이 실려 있었다. 당시 중앙일보(현재의 중앙일보와는 다른 신문)는 독자가 찍은 사진을 공모해 우수작들을 선정, 신문에 싣고 시상했다.

아버지가 "사진들이 어떠냐?"고 물었다. 내가 보기에 수상작들엔 '느낌'이 없었다. 평범하고 밋밋한 인물과 풍경 사진이었다. 자신있게 대답했다. "이런 사진은 눈감고도 찍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날 빤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찍어서 한번 내보렴." 농담처럼 한 이야기 끝에 신문사에 낼 사진을 '취재'하게 됐다.

일요일 아침, 카메라를 메고 신촌으로 갔다. 당시 신촌은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연세대와 이화여대 건물들이 덩그러니 서 있고, 논밭 사이로 경의선이 지나는 시골이었다. 밭에서는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둑에 앉아 그들의 몸짓을 관찰했다. 아름다웠다. 한 아낙네가 특히 보기 좋았다.

다가가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내 사진은 뭘 하러…" 하고 쑥스러워했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일어선 그녀의 상반신을 찍었다. 대나무 갈퀴를 어께에 메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사진은 노출과 초점이 정확했고, 구도도 좋았다. 아버지는 "훌륭하다. 신문에 낼 만하다"고 칭찬해주셨다.

사진을 보냈더니 며칠 뒤 상을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당시 응모한 사람들 중에는 기성 작가도 많았기 때문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교복을 다려 입고 혼자 갔다. 식장에는 꽃다발을 든 가족이 많았고 수상자들은 맨 앞에 앉아 있었다. 구석자리에 앉아 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몇몇 사람이 격려사를 하더니 시상이 시작됐다. 사회자가 "대상부터 발표하겠습니다"고 하더니 "대상작 '여장부(女丈夫)', 수상자 김희중씨!" 하고 외쳤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사회자는 두 번이나 더 내 이름을 불렀다. 중학생이 대상 수상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단상 앞으로 나가자 그는 교복에 단 내 명찰을 확인하고서야 안내했다.

나보다 아버지가 더 좋아하셨다. 며칠 지난 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중앙일보로 가서 사진부장이던 이명동(86)씨를 만났다. 그리고는 부탁을 했다.

"내 자식이 사진에 관심이 많고, 이번에 중앙일보 주최 콘테스트에서 대상도 받았습니다. 데리고 다니면서 좀 더 가르쳐 주십시요."

그날 이후 틈만 나면 이명동 선생을 쫓아다니며 사진을 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사진 공부보다 세상 구경을 하면서 강한 남자로 단련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외아들이 여자가 많은 집에서 자라는 모습을 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 선생은 아버지의 뜻을 알았는지 나를 산으로 들로 끌고 다녔다. 30대 중반의 건장했던 그를 따라다니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밥도 거른 채 쏘다니다 남의 밭에서 설익은 오이와 토마토를 따 먹고 설사를 한 적도 있었다.

독자사진 대상 수상은 사진의 세계에 한 발짝 다가가고 스승인 이명동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No. Subject Date Author Last Update Views
Notice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2016.07.06 운영자 2016.11.20 18193
Notice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2016.07.06 운영자 2018.10.19 32347
Notice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2016.06.28 운영자 2018.10.19 5923
Notice How to Write a Webpage 2016.06.28 운영자 2020.12.23 43839
260 [김희중 Essay] 인물사진 [1] 2014.10.17 운영자 2014.10.17 1274
» [김희중 Essay] '여장부' [1] 2014.10.17 운영자 2014.10.17 1246
258 [김희중 Essay] 부모님 2014.10.12 운영자 2014.10.12 1215
257 [김희중 Essay] 인생 5단계 [2] 2014.10.12 운영자 2014.10.12 1631
256 [김희중 Essay] 한국화보 (下) [2] 2014.10.09 운영자 2014.10.09 1246
255 [김희중 Essay] 한국화보 (上) 2014.10.09 운영자 2014.10.09 1290
254 Huge rings and Big weddings have higher divorce rate [1] 2014.10.08 Rover 2014.10.08 1153
253 [김희중 Essay] 삼성 이건희 회장 [2] 2014.10.06 운영자 2014.10.06 1377
252 [김희중 Essay] 김영삼 대통령 [1] 2014.10.03 운영자 2014.10.03 1243
251 [김희중 Essay] 노태우 대통령 2014.10.03 운영자 2014.10.03 1278
250 [김희중 Essay] 전두환 대통령 (下) [1] 2014.10.02 운영자 2014.10.02 1353
249 [김희중 Essay] 전두환 대통령 (上) 2014.10.02 운영자 2014.10.02 1489
248 [김희중 Essay] 불효자 [2] 2014.09.30 운영자 2014.09.30 1292
247 [再湯 漢詩] 노인삼반 (老人三反) [1] 2014.09.29 운영자 2014.09.29 1462
246 [김희중 Essay] 서울의 이방인 [3] 2014.09.28 운영자 2014.09.28 1426
245 Do you Know? 무었이 행복이고 소중한것인지? [3] 2014.09.26 Rover 2014.09.26 1629
244 [김희중 Essay] 다시 한국으로 [4] 2014.09.25 운영자 2014.09.25 1597
243 About Essay and Narrative Essay [1] 2014.08.23 운영자 2014.08.23 1338
242 Soliloquy 蓮꽃이 靑山流水 처럼 지나가네 [2] 2014.08.14 민경탁*65 2014.08.14 1948
241 Kevin McGroarty: The man behind the self-written obituary [1] 2014.07.28 운영자 2014.07.28 16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