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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김희중 Essay] '인간가족'전

2014.11.05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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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12.

'인간가족'전

[중앙일보] 입력 2006.09.18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사춘기 고민 풀어준 사진전


‘인간가족’전의 대미를 장식한 유진 스미스의
작품 ‘낙원에 이르는 길’.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사춘기를 겪었다. 하지만 친구들과는 좀 달랐다. 이성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 대신'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두고 고민했다.

'이방인' '죄와 벌' 같은 두껍고 난해한 책들과 씨름했다. 뭔가 대답이 있을 것 같았다.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삶에서 배울 점이 있는지 관찰했다. 하지만 그런 책들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공상에 잠기면 행복했다. 상상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었다. 내가 원하고 꿈꾸는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였다. 눈을 뜨면 고통과 좌절과 비극만이 나를 둘러쌌다. 낙제 또한 비참한 현실 가운데 하나였다. 수업시간에도 천당과 지옥을 오간 나의 상상은 교과서에 새까만 낙서로 남았다.

그 무렵 방황하는 내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 일이 있었다. 1957년 경복궁에서 열린 '인간가족(The Family of Man)'이라는 제목의 사진 전시회였다. 내용도 모른 채 보러 간 그 전시회는 나를 딴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감동적이었다.

'인간가족'은 미국 사진가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55년 뉴욕 현대미술관 개관 25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회였다. 3년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200만여 장의 사진을 받아 503장을 추려냈다. 주제는 '인간은 하나'였다. 두 차례나 참혹한 세계대전을 겪은 인류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진전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세계 순회 전시가 이루어졌고,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한국에선 무려 30만여 명이 사진전을 관람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사춘기 소년은 전시회에서 다양한 인생을 봤다. 공장 노동자의 강인한 팔뚝, 피리 부는 목동의 순수한 얼굴, 탯줄을 몸에 감고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 남자의 등을 파고드는 여자의 손톱…. 사진들은 인간이라면 겪지 않을 수 없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파노라마를 보여주었다.

나는 홀린 듯 전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모두 경이롭고 신비했다. 사랑은 한 가지 감정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름다운 사랑, 질투, 정열, 연민, 육체적 몰입…. 난해한 책과 씨름하면서 알고자 했던 답을 사진들은 쉽고도 명쾌하게 알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다양함'과 '가능성'이었다.

'인간가족'전을 보기 전까지는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해답을 한 가지만 찾아 헤맸다. 하지만 삶은 다채로웠고, 가치관은 다양했다. 답은 한 가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비로소 나의 삶도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건 '사진의 힘' 덕분이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의 힘. 사진은 마술 같은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가족'전을 본 뒤 더욱 사진에 몰두했다. 물론 공부도 슬슬 시작했다. 두 번 낙제하면 퇴학이었으니까.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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