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English
                 

Life [김희중 Essay] 낙제생

2014.11.05 12:17

운영자 Views:1156

[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11.

낙제생

[중앙일보]입력 2006.09.17

전시회 준비하느라 자주 결석 - 평균 성적 미달로 고2 재수


첫 개인전 때 일간지에 난 인터뷰 기사.
사진에 몰두하고 전시회를 준비하다
낙제를 하고 말았다.
개인전이 크게 성공하자 학교에서도 유명해졌다. "공부는 하지 않고 사진기만 들고 다니느냐"고 말하는 친구도 몇몇 있었지만 대다수는 "장하다"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특히 선생님들은 모두 자랑스러워하며 격려해 주었다.

그렇게 들떠서 2학년을 마무리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학교로 불려갔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내가 낙제했다는 것이다. 전 과목 평균이 60점이 안 된다고 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출석 일수가 많이 모자랐단다. 사진 찍으러 다니랴, 전시회 준비하랴 하면서 결석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담임은 낙제 사실을 통보하며 "책임을 통감합니다.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낙제시킬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세요"라고 했단다.

아버지는 무섭게 화를 냈다. 얼굴엔 실망감이 가득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했다. 사진을 가르쳐 준 것이 근본 이유 아니냐고 따졌다. 아버지는 들은 체도 안했다. 사진 때문에 공부를 못했다는 이야기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고 했다. 누이들은 친구들을 어떻게 보느냐며 울먹였다. 그런 분위기가 며칠간 계속됐다. 초상집과 다름없었다. 가족은 형이 전사했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죽고 싶었다. 사진전을 멋지게 열어 장안의 유명인사가 되고 나서 당한 일이라 더욱 그랬다. 무엇보다 누이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세 누나와 세 여동생은 모두 모범생이었다. 선생님들이 원망스러웠다. 낙제를 시킬 거면 왜 그렇게 귀여워하고 칭찬했던가, 좀 봐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사실 사진전을 준비하는 동안 자주 학교에 못 가면서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낙제를 시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낙제를 하면 대개 전학을 했다. 창피해서 학교를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전학을 하겠느냐, 계속 다니겠느냐?"고 물었다. 점심시간이면 고전음악이 잔잔히 울려 퍼지고, 서울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화동(花洞) 언덕을 떠날 수는 없었다. 계속 다니겠다고 했다. 교장 선생님도 집에 찾아와 전학하지 말라고 했다. 훌륭한 재주를 가진 인재를 다른 학교로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3월에 다시 2학년이 됐다. 아버지 걱정대로 친구들의 눈초리가 달라졌다. 수치스러웠다. 그제서야 후회가 밀려왔다. '공부도 좀 더 열심히 할 걸'. 하지만 머리가 나빠 공부를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졸업식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교직원회의.동창회.학생회가 공동으로 주는 상이었다. 두 차례의 개인전으로 학교를 빛냈다는 것이 수상 이유였다. 경기고 역사상 전무후무한 상이었다. 하지만 난 상을 받으면서도 '이런 상을 줄 거면 왜 낙제를 시켰나'하는 응어리를 풀 수 없었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생을 돌아봐도 특별히 후회되는 일은 없다. 다만 고교 시절의 낙제는 아직까지도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다. 다시 인생을 시작한다면 절대로 반복하고 싶지 않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No. Subject Date Author Last Update Views
Notice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2016.07.06 운영자 2016.11.20 18193
Notice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2016.07.06 운영자 2018.10.19 32343
Notice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2016.06.28 운영자 2018.10.19 5919
Notice How to Write a Webpage 2016.06.28 운영자 2020.12.23 43838
280 [김희중 Essay] 자살 기도 2014.12.06 운영자 2014.12.06 1101
279 [김희중 Essay] 뉴욕의 노숙자 [2] 2014.12.06 운영자 2014.12.06 1201
278 세이버제트 전투기 이야기 : 용문 길에서 [2] 2014.12.03 정관호*63 2014.12.03 2139
277 문화 생활 하기 [5] 2014.11.30 이건일*68 2014.11.30 1725
276 [김희중 Essay] 유학을 떠나다 2014.11.24 운영자 2014.11.24 1206
275 [김희중 Essay] 첫사랑 [2] 2014.11.24 운영자 2014.11.24 1258
274 Mrs. Late Dr. Jae Do Lee ('64) 소식 [7] 2014.11.17 조승자-65 Mrs. 2014.11.17 1333
273 [김희중 Essay] 봉은사 가는 길 [2] 2014.11.16 운영자 2014.11.16 1999
272 [김희중 Essay] 잔칫집 가는 길 [6] 2014.11.16 운영자 2014.11.16 1297
271 Amazing Encounter -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 [1] 2014.11.16 Rover 2014.11.16 1079
270 [동영상]훌륭한 엄마 이야기 [7] 2014.11.15 황규정*65 2014.11.15 1395
269 나의 캘리포니아 생활 [2] 2014.11.08 이건일*68 2014.11.08 1712
268 [김희중 Essay] '인간가족'전 [3] 2014.11.05 운영자 2014.11.05 1873
» [김희중 Essay] 낙제생 [1] 2014.11.05 운영자 2014.11.05 1156
266 [김희중 Essay] 첫 개인전 [1] 2014.10.27 운영자 2014.10.27 1245
265 [김희중 Essay] 집 뒷마당 암실 [1] 2014.10.27 운영자 2014.10.27 2350
264 [김희중 Essay] 경주 여행 [2] 2014.10.23 운영자 2014.10.23 1317
263 [김희중 Essay] 거울 속의 나 [2] 2014.10.23 운영자 2014.10.23 1292
262 [김희중 Essay] '매직 박스' - 운명의 첫 카메라 [1] 2014.10.21 운영자 2014.10.21 1389
261 [김희중 Essay] 두 번의 결혼, 이혼 [3] 2014.10.21 운영자 2014.10.21 1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