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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16.


유학을 떠나다


[중앙일보]
입력 2006.09.24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데다 대학 졸업해도 할일 없을 것 같아

1960년 6월 김포공항을 떠나기 전
어머니와 기념촬영을 했다.
1960년 4월 19일, 나는 서울 세종로에 있었다. 데모대가 넓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자유당 정권 때려 부수자" "이승만.이기붕 몰아내자"는 구호를 외쳐댔다. 사거리에 있는 동아일보 건물로 들어갔다.

이명동 선생은 취재를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이 선생은 55년 동아일보로 옮겼다). 편집국은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웠다. 기자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최경덕 사진부장은 "위험하니 집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다시 거리로 나왔다. 학생.시민들이 떼를 지어 중앙청(옛 국립중앙박물관) 방향으로 몰려갔다. 중앙분리대의 은행나무 사이에서 데모 현장을 지켜봤다. 경찰이 경무대(현 청와대)로 들어가는 길목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탕, 탕" 총소리가 났다. 위협용 공포같았다. 다시 총소리가 났다. 내 곁의 은행나무 껍질이 총알에 맞아 찢겨져 나갔다. 몇몇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데모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공포탄이 아니라 실탄 사격이라는 것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나도 현장의 사진기자 선배들과 허둥지둥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59년에 연세대 심리학과에 입학했다. 부모님은 판.검사나 의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나는 그런 직업이 싫었다. 고교 시절부터 인간 심리에 관심이 많았고 외국에서는 아동.범죄 심리학이 중요한 학문야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심리학을 공부하더라도 최소한 교수가 되라며 입학을 허락했다.

연세대 캠퍼스는 작고 아담했다. 오래된 석조건물이 영화에서나 봤던 미국의 사립학교 같은 분위기였다. 나비넥타이를 맨 김동길 교수는 신입생들에게 미국 유학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도로가에 주차할 때 파킹미터에 동전을 넣고 태엽을 돌린다는 이야기, 고속도로에 진입하려면 통행료를 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도무지 무슨 이야긴지 알 수 없었다. 길을 막아놓고 돈을 받는다면 봉이 김선달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문명국가 미국에서 왜 그런 일이 벌어지지?

당초 나는 한국에서 대학을 오래 다닐 생각은 없었다. 고교 시절부터 유학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대학을 졸업해도 국내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고급인력들이 당구장이나 다방에 죽치고 앉아 소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 저렇게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 하나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버지는 절대적인 존재였지만 나는 성인이 되었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그런 상황에서 4.19는 결정타가 되었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주한 미국대사인 다우링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가 내 사진전을 관람한 게 인연이 됐다. 뉴욕대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해 줬고, 에드워드(Edward)라는 미국식 이름도 지어 주었다.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세상에 나가 혼자 힘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으냐"며 반대했지만 결국 허락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일단 집을 떠나면 일체 돈을 보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60년 6월 말, 나는 여의도 비행장에서 노스웨스트 프로펠러기를 타고 한국 땅을 떠났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 바로잡습니다

9월 25일자 31면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기사 중 '여의도 비행장'은 '김포공항'의 잘못이므로 바로잡습니다. 여의도 비행장은 1958년 김포공항에 민간 공항의 기능을 넘겨주고 군용 비행장으로 사용되다 71년 폐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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