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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김희중 Essay] 자살 기도

2014.12.0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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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18.


자살 기도

[중앙일보] 입력 2006.09.26

잠깐 집에 들른 큰누이가 목격 - '죽을 각오면 못할 일 없다' 다짐


뉴욕 유학 시절, 거대한 자유의 여신상 뒤에 선 필자가 왜소해 보인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최고가 되라고 가르쳤다. 나는 대체로 그 요구에 따랐다. 공부든 운동이든 마음만 먹으면 최고 수준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최고는커녕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 대접을 받고 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절망했다. 최고를 지향하고 살았기 때문에 좌절감은 더 컸다.

워싱턴광장에서 비트닉들과 함께 노숙자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나는 고심하던 일을 결행키로 했다. 더 이상 사는 건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자살하기로 한 것이다.

브루클린의 큰누이 집으로 갔다. 아무도 없었다. 오랜만에 샤워를 했다. 그리고는 왼쪽 손목을 면도칼로 그었다. 차가운 느낌과 예리한 통증에 진저리를 쳤다. 뜻밖에 피는 그리 많이 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계속 그었다. 차츰 피가 많이 흐르기 시작했다. 흥분해서인지 처음에는 따뜻한 느낌이 들었으나 차츰 추워졌다.

피가 흘러내렸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아버지.어머니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잠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30분쯤 지났을까. 몽롱한 상태로 앉아 있는데 누군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이가 옷가지를 챙기러 집에 들렀다가 나를 발견한 것이다.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출혈량이 치명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아홉 살 많은 누이는 병실에 누워있는 나를 기가 막힌 듯 바라봤다."미쳤다"고 했다. "외국에서 살자면 그만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한데 그걸 못 참고 자살을 하느냐"고 나무랐다.

회복 후 정신과 의사와 면담을 했다. 자살을 기도한 환자는 정신과 의사와 면담을 해야 퇴원할 수 있었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했다.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뉴욕에서 살며 궁핍과 좌절감에 시달리고, 비트닉들과 무절제한 생활을 한 이야기. 그리고 도저히 꿈을 이루기 힘든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자살을 선택했다는 말을 했다. 내 얘기를 끝까지 들은 뒤 의사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정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으니 퇴원하세요"라고 했다. 진료실을 나서는 나에게 그는 충고의 말을 덧붙였다. "살다보면 죽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살기를 바랍니다."

자살 기도 사건은 나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20여 년 동안 미국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면서 '죽을 각오를 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목숨과 바꿀 의지만 있다면 최고가 될 수 있고, 유명해 질 수도 있으며, 부자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는 요즘 성공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한국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고 꿈꾸지는 않는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는 것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능한 꿈이라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 각오하기에 따라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 자살 기도 사건이 내게 준 교훈이다. 나는 평생 그런 자세로 살아왔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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