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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두수

장안사 조애영

장안사 깊은 밤에 소리도 많은지고,
첫 새벽 목탁소리 나를 불러 깨우나니,
아침상 산채나물은 절로 이를 닦아라.

장안사도(長安寺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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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금강 조애영

날마다 새로보는 별유천지 층암절벽,
떨어지면 황천이라 기어감도 장관이요,
단풍은 절세가인의 녹의홍상 같아라.

내금강 (內金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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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註釋)
長安寺(장안사) : 건립시기 551년(양원왕 7). 소재지 강원도 회양군 장양면 장연리. 북한 강원도 회양군 금강산(金剛山) 장경봉(長慶峯)에 있었던 삼국시대 고구려의 승려 혜령이 창건한 사찰.
이 사찰의 역사가 대단히 길어서 이 글 끝에 싣겠다.
金剛山(금강산)을 셋으로 나누어 內金剛(내금강), 外金剛(외금강), 그리고 海金剛(해금강)이라 하니, 여기서는 가장 안에 있는 내금강을 칭한다.
別有天地(별유천지): 속계를 떠난 특별(特別)한 경지에 있다.
層巖絶壁(층암절벽): 높고 험한 바위가 겹겹으로 쌓인 낭떠러지
黃泉(황천):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곳. 저승
絶世佳人(절세가인): 세상(世上)에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여자(女子)
綠衣紅裳(녹의홍상) : 젊은 여자가 곱게 차려 입은, 연두색 저고리와 다홍치마.

시조(時調)의 구성(構成)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시조는 삼구(三句)로 되어 있어서 세줄 뿐이다.
첫구는 기(起)라고 하여 일어난다 즉 To rise란 뜻이니, 이는 시상(詩想)의 시작을 의미한다.
둘째 구는 승(承)이라 하여 이어진다는 의미이니 To hold or to bear이란 의미이다.
셋째 구는 반전(反轉)이라고 하여 그 흐름의 큰 변화를 의미하며 영어로 To reverse or reversal로 표현한다.
시조는 우리의 독특한 창작품이기에 이 또한 가장 중요한 우리의 무형문화재가 아닐 수 없다.

조애영님: [친구의 자모님이시기에 '님"자를 올렸다]
내방가사 시인 은촌 조애영과 대구 항쟁작자 (作者) 은촌조애영(隱村趙愛泳)님에 관하여: 작자 소개는 은촌내방가사집에서 발췌하였다.
호는 은촌(隱村) 본명은 조애영(趙愛泳). 1911년 2월 1일 영양군 일월면 주곡에서 출생.저서 : 은촌내방가사집 (隱村內房歌辭集 )
내용은 6부로 분류, 1∼5부까지는 가사작품이고, 6부는 가사문학 일반에 대한 이론을 조윤제(趙潤濟)·백철 등 13명이 각기 분담하여 집필하였다.
수록된 가사작품은 총 19편으로 저자의 소녀시절 작품으로부터 시작하여 회갑에 이르는 동안에 지은 작품이다.
가사작품으로 「화전가(花煎歌)」·「직녀가(織女歌)」·「애련가(愛戀歌)」·「산촌향가(山村鄕歌)」·「일월산가(日月山歌)」 등은 저자가 향리인 경상북도 영양군 주실〔舟谷〕에서 살던 소녀시절 향리를 배경으로 그 생활을 읊은 것이이다.
그리고 「울분가」·「금강산기행가」·「신혼가」·「한양비가(漢陽悲歌)」·「학생의거혁명가」·「사우가(思友歌)」·「한국남녀토론회가」·「소비층지도가」·「귀향가」·「귀거래가」·「골동애무가(骨董愛撫歌)」·「축수연가(祝壽宴歌)」 등은 서울 생활을 배경으로 학생시절부터 회갑에 이르는 사이에 보고 겪은 일을 작품화한 것이다.

본인이 시조 2수를 소개하게 된 연유
몇년 전에 어떤 글에서 처음으로 내방가사를 읽을 기회를 가졌다. 그 필자는 작자 조애영님의 가문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읽다보니 그분의 아드님이 바로 Dr. 이병붕(BB LEE)이어서 깜짝 놀랐다.
그때에는 나는 Dr. LEE와 연락이 없었다가 얼마 후에 그의 글을 이곳에서 읽게 되었고, 최근에 자당(慈堂)의 내방가사에 관하여 이야기를 교환한 후 우선 시조 두수를 올리기로 허락을 받았다.
시조를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동창 어머님의 귀한 작품을 올리는 건 말할 것도 없이 큰 영광이다.

장안사의 연혁(沿革)
신라 법흥왕 527년에 불법을 공인하였는데, 그 당대에 창건되었다는 설과, 551년(양원왕 7) 고구려의 승려 혜량(惠亮)이 신라에 귀화하면서 왕명으로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이 때 비로전을 짓고 비로자나 철불(鐵佛)을 봉안했으며, 대장경을 절에 보관했고 오층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 뒤 773년(혜공왕 9)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중수하였고, 946년(정종 1)에 왕의 태후 신명왕후(神明王后)와 황보왕후(皇甫王后)가 각각 『금강경』과 『법화경』을 금니로 사경(寫經)해서 비로전에 봉안하였다. 970년(광종 21) 화재로 불타 버린 뒤 12년간 폐허로 남아 있다가, 982년(성종 2) 선사 회정(懷正)이 함열현 등에서 토지 1,050결(結)을 보시받아 중건하였다.
1343년(충혜왕 복위 4)원나라 순제(順帝)의 왕후 기씨(奇氏)는 고려인으로서, 황제와 태자를 위해 금 1,000정(錠)과 공인들을 보내서 굉변(宏卞)의 감독 아래 퇴락한 당우를 중건하고 새로운 누각을 건립하게 했는데, 지극한 정성과 뛰어난 솜씨는 금강산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작품이었다고 한다.
1392년(공양왕 4)에는 홍예교(虹霓橋)와 절의 사적비가 큰 비로 무너졌다. 1459년(세조 5) 세조가 행차하여 대웅전을 중수하게 하고 토지를 하사하였다. 그러나 1477년(성종 8) 화재로 전소됨에 따라 1483년 나라에서 금 3,000관과 백미 500석을 받아 일청(一淸)이 중건하였다.
1537년(중종 32) 다시 불타 버리자 1545년(인종 1) 일청이 다시 중건하였다. 그 뒤 1708년(숙종 34) 귀옥(歸玉)이 무게 3,000근의 대종을 조성하였다. 1728년(영조 4) 묘현(玅玄)이 중창하였고, 1791년(정조 15) 순상(巡相) 윤사국(尹師國)이 전(錢) 5,000관을 내어 중수하였다.
1842년(헌종 8) 부원군 조만영(趙萬永)이 금 2,500관을 보시하여 새로 300여 칸을 증축하고, 밭 40여 석을 시주하였다. 1863년(철종 14) 호조판서 김병기(金炳冀)가 주상하여 공명첩(空名帖) 500장을 내리게 하고, 자신의 재산 중 1,200냥을 보시하여 중수하게 하였다.
김병기는 1864년에도 3,000냥을 시주해서 불상•불화들을 보수하거나 새로 봉안하였다. 이 절은 입구에서부터 일주문(一柱門)•운성문(雲性門)을 거쳐 만천교(萬川橋)라는 징검다리를 건너면, 숲 사이로 만수정(萬水亭)이 있고 그 안에는 ‘금강산장안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 안의 오른쪽으로는 대향각(大香閣), 왼쪽으로는 극락전,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곳에는 본전인 대웅전이 있다. 1945년 이전까지는 6전(殿)•7각(閣)•1문(門)을 가졌으나 그 규모는 옛날에 비해 축소된 것이고, 부속 암자로 장경암(長慶庵)•안양암(安養庵)•지장암(地藏庵)•영원암(靈源庵) 등을 가진 금강산 4대 사찰 중의 하나였다.
문화재로는 기황후가 중창할 때 비로자나불을 비롯하여 53불, 1만 5000불 등이 봉안되었다고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대법당 왼쪽의 지성전(至聖展)에 봉안된 나한상은 비범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기황후 당시의 것인지 그 후대의 것인지는 단정 짓기 곤란하다.
부속 암자 중 안양암은 장안사 동북쪽 3㎞ 지점에 있는데 고려 성종 때 회정이 창건한 곳이며, 이후 회도(懷道)가 이곳에서 수도하였다. 이 암자에는 미륵불과 나한상 등이 봉안되어 있다. 또한, 영원암은 신라 때 영원조사(靈源祖師)가 창건한 것으로 금강산 일원에서도 가장 맑고 고요한 수도처로 이름 높은 곳이다.
부근의 옥초대(沃焦臺)는 영원조사가 일심으로 수도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고, 그 앞의 반듯한 돌은 영원조사가 공부하던 곳이라고 하여 책상바위라고 이름 붙여졌다.
그러니 조애영님께서는 오늘날 아무도 가서 볼 수없는 이 유명한 국보 장안사와 내금강에 학창시절에 가셔서 시조를 지으셨도다. 그러니 이 얼마나 소중한 시조 두편인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장안사(長安寺))]

 
Kwan Ho Chung - October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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