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 벽계수야 황진이 원문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현대어 푸른 산속 벽계 물아 쉽게 감을 자랑치마라, 한번 푸른 바다에 이르면 돌아오기 어렵도다. 밝은 달이 빈산을 가득히 비추니 쉬어가면 어떨까? 국한문 병용 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一到滄海하면 돌라오기 어려워라. 明月이 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황진이의 은유(隱喩): 사물(事物)의 본뜻을 숨기고 다만 겉으로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방법(方法)이니, 본 뜻 풀이는... 해설 碧溪水 청산리 벽계수야 Youtube 碧溪守 論難: 벽계수 논란 |
2020.11.03 03:37
2020.11.03 07:11
Couldn't agree more, KwanHo!
Indeed, I feel so ashamed of my ignorance based on my bad prejudice to Korean culture.
When I should look back, it was one of the serious mistakes I should have been able to avoid, too late to regret.
For some reason, I was so stingy to spare the time and interests to such Korean culture throughout all my life, even ignoring what my mother devoted! Besides, my father spent so much time and fortune to collect 이조 백자기 throughout his life and donated all the collections to National Museum after I left Korea - I heard they dedicated one separate exhibition/section for his collection!- since I was totally uninterested to disappoint him.
BB Lee
2020.11.03 08:37
벽계수를 google.co.kr 에 보니 누구라는게 나와 있어 여기에 옮깁니다. 또 황진이의 남자들도 관심 있으신분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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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계수(碧溪守, 1508년 ~ ?)는 조선의 왕족이다. 세종의 서자 영해군의 손자로, 길안도정(吉安都正) 의(義)의 5남이다. 이름은 이종숙(李終叔)이다. 언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묘는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동화리에 있다.
벽계수는 거문고에 능하고 호방하여 풍류를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황진이를 만났을 때는 정 4품 수(守)의 관직에 있을 때로 추정하나, 1519년 기묘사화 때 가문이 풍비박산하여 불우하게 보내다가 1545년(인종 1년) 경에 신원된 것으로 보인다.[1]
해주 윤씨 윤희평의 딸과 혼인하여 3남 1녀를 두었다.[2]
용모가 출중하고 노래, 춤, 악기, 한시 등에 두루 능했기 때문에 당시 선비들은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을 대단한 자랑거리로 여기게 되었다.[1] 그래서 그녀와 당대의 내로라 하는 선비들에 대한 많은 일화들이 남게 되었다.[1] 당시 생불이라 불리던 지족선사를 10년 동안의 면벽 수도에서 파계시키는가 하면, 당대 최고의 은둔학자 서경덕을 유혹하기도 했으나 나이 들면서 한 남자를 의지 하고 싶은 마음에 벽계수를 사랑하기도 했으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크게 상처를 받고 방황을 했다고 한다. 벽계수와 사랑을 이루지 못함에 슬픈 세월을 보내며 방랑을 하다가 쓸쓸히 삶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당시 벽계수라는 인물은 왕손으로써 세종의 손자 영해군파 길안도정(吉安都正) 의(義)의 다섯쩨 아들인 이종숙으로 알려진다. 이종숙은 1508년생으로 인종조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으며 풍류에 능하여 황진이 명성을 듣고 찾아가 놀기는 했으나 그와 가정은 이룰 수없어 황진이의 사랑을 거절하고 떠났다고 한다.
명창 이사종과는 그의 집에서 3년, 자기 집에서 3년, 모두 6년을 같이 살다가 헤어졌다. 풍류묵객들과 명산대첩을 두루 찾아다니기도 해 재상의 아들인 이생과 금강산을 유람할 때는 절에서 걸식하거나 몸을 팔아 식량을 얻기도 했다고 한다.[3]
이사종과 헤어지고 다시 개성으로 되돌아왔으나 지족선사를 잊지 못해 다시 찾아갔다. 그러나 황진이의 재방문에도 수행중이던 지족은 요지부동이었고, 지족암에서 끄떡없이 앉아 있는 지족에게 다가가 꽃을 꽂고 수행 중이던 지족의 무릎을 베고 잠을 청하기도 하고, 말도 걸어 보았지만 지족선사는 그대로였다. "지족! 그대 같은 큰 위선 덩어린 없을 거요!" 황진이의 지적에 놀란 지족은 다시 무심한 얼굴로 돌아갔다. 다시 암자로 찾아가 황진이가 지족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한참 뒤 어깨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끼고 지족이 그를 깨우니 지족이 덤덤한 웃음으로 말을 건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지족선사와의 관계도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떠나게 된다.
한편 황진이는 당대의 은둔학자인 서경덕을 유혹하기도 하였으나, 이에 굴하지 않는 서경덕을 유혹하는 데 실패하고 오히려 그의 학문과 고고한 인품에 매료되어 사제 관계를 맺기도 한다.[1]
그녀의 사망 일자와 정확한 사망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죽기 전에 나 때문에 천하의 남자들이 자정하지 못하였으니 내가 죽거든 관을 쓰지 말고 동문 밖 개울가에 시체를 두어 여인들로 하여금 경계로 하여 주시오" 라는 유언을 남겼다고도 한다. 일설에는 황진이의 유언에 따라 그대로 하였는데 한 남자가 거두어 장사 지냈다는 전설도 전한다. 1567년 무렵을 전후해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대부의 위선에 대한 조소와 미모로 남성을 유혹한 것 등이 문제시되면서 조선시대 내내 음란함의 상징과 사대부에 대한 모욕적인 행실 등이 문제시되어 언급이 금기시되었으나 구전과 민담의 소재가 되어왔다. 일설에는 그가 죽은 뒤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일부러 들판에 버려졌다는 전승까지 누군가에 의해 유포되기도 했다. 묘소는 경기도 장단군 구정현 판교동(현재 경기도 장단군 장단면 판교리[4])에 있다.
2020.11.03 10:04
질문이 있습니다. 벽계수(碧溪守)의 이름이 이종숙(李終叔)이라면 벽계수는 이종숙의 아호인가요? 그냥 벽계현의 관리란 뜻인가요? 나는 그렇게 믿었는데 아직 의문이 풀리지 않는군요.
2020.11.03 12:55
황진이 이야기 한편
장안호걸 임백호는 항상 황진이 타령을 하였다. 불행히도 그들의 생평연도가 맞지 않아서 황진이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1583년 평안도 도사(都事)로 부임해 가던 길에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 술잔을 올리고 이렇게 시를 읊으며 넋을 달랬던 것이다. 사대부가 일개 기생의 묘를 참배하고 시까지 읊다니. 과연 조선이라는 유교사회에서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은 결국 조정에서 큰 말썽을 일으키고 말았고, 그는 삭탈관직을 당해야 했다. 이처럼 세속의 예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임제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1549년 전라도 나주의 문무를 겸한 양반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재질이 남달랐다. 과거시험 위주의 글에는 흥미가 없던 그는 22세 때 속리산에 있던 재야학자 성운(成運)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성운은 그의 형이 을사사화로 비명에 죽자 그 길로 속리산에 은거하면서 시와 학문과 거문고를 함께하며 각처에서 학문을 배우러 온 화담 서경덕, 남명 조식, 토정 이지함 등 많은 학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친 큰 선비였다.
임제는 1577년 1월 속리산에서 하산한 후 그해 9월 알성문과에 급제한 뒤 홍양현감, 서북도병마평사, 예조정랑 등을 거쳐 홍문관 지제교를 지냈다. 그는 관직에 뜻을 잃은 후에 이리저리 유랑하다 고향인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에서 1587년 3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황진이무덤앞에서 지었던 시조 한수를 올린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紅顔)을 어듸두고 백골(白骨)만 무쳤난이
잔(盞)자바 권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 하노라.
현대어 풀이
푸른 풀이 우거진 산골짜기 무덤 속에 자느냐? 누웠느냐?
젊고 아름다운 얼굴을 어디에 두고 백골만 묻혀 있느냐?
술잔을 잡고 권해 줄 사람이 없으니 그걸 슬퍼하노라.
2020.11.03 13:32
https://blog.naver.com/jkim0815/221726403449
위 글에서 보면 벽계도정은 정 3품 벼슬이고 또 이종숙이 황해도 관찰사를 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관찰사는 지금의 도지사 보다 권력이 훨씬 더 막강 했던 것 같습니다. (3권이 다 있지요.)
2020.11.03 14:13
황진이가 이종숙의 벼슬이나 작위를 하나하나 따져서 시조를 읊은 건 물론 아니겠고,
碧溪水라고 불렀는데 거기에 碧溪守란 숨은 의미도 있었겠고 하니,
이렇게 재치있게 표현했다고 보면 되겠고. 여기서 논의를 끝마칩시다.
2020.11.03 14:14
"무쳤난이" (표음문자, 말하고 들리는 그대로) ---- "묻혔나니" (현대 문교부 spelling.
This is very very far from what actually sounds or heard. To make things worse,
the spellings can change at any time whenever those 국문학자 idiots in 문교부 have nothing to do
except changing 철자법 for fun. There's no sense in learning 철자법 because they will
change it soon again for no particular reason.)
2020.11.03 17:51
https://www.youtube.com/watch?v=cWgPRZdd8JA
김월하(인간문화제 30호)
https://www.youtube.com/watch?v=2ekEbXxydmM
김월하 청조야 50년대 녹음
2020.11.03 22:10
Did you say they changed 철자법 for fun?
I think not, WM. That’s the way to justify their “raison d’etre”, reason or justification for existence.
Just like the most inefficient American bureaucrats, the uncontrollably produced graduates of colleges of arts but even not sciences, who kept making new rules and regulations not knowing the already existing ones which were already conflicted with these morons’ new invention.
That’s the way to keep their jobs.
2020.11.04 12:01
Doc, "for fun" is exactly what you are just talking about.
It means "just for fun"... doing something with no actual justifiable purpose or goal.
One day, 소위 국문학자란 자들이 문교부 (이것도 Just for fun으로 부처 이름을 매년 바꾼다)
청사에 출근했는데 할일이 없다.
Guy 1: 이거 할일이 없는데 남이보면 우리가 빈등빈등 놀기만 한다 할거 아니야?
Guy 2: 슬슬 옆눈으로 딴사람들을 보면서... 글쎄 말이야, 이러다가 감원되는거 아니야?
Guy 3: 글쎄... 이러다가 우리 권위가 날러가는거 아니야? 표준말, 철자법 몇개 바꿔볼가?
셋이 앉어서 심각한 모습으로 일하는척 한다. 잠시후,
드디어, OK, 작년의 "찰랑 찰랑"을 표준말에서 빼고 대신 "철렁철렁"으로 바꾸지?
All Together: 그럽시다. 이것만 고치면 한달동안 더 할거 없겠지. 우리 모두 낙시나 하러 갈가?
그 다음부터 누가 원고에 "찰랑 찰랑"이라고 쓰면 편집부 직원이 "철렁철렁"으로 바꾼다.
출판사는 문교부의 권위를 무시 못한다. 세종대왕께서 무덤에서 눈물흘릴 일이로다.
What has been done above is known as the 국문학적 "Research and Development."
Actually, this kind of thing had happened in the past, I do remember.
I know, you as well as I, as a doctor, could not believe what they do for a living.
Unfortunately, we have never known what is "doing for fun." in our own life.
No wonder you raised the question.
2020.11.05 06:03
나도 기억이 나는 일이 있는데, 중학교시절에 한글문법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선친께서 그걸 듣고 “이놈들이 무엇하는 짓이지? 한글은 그대로 사용하면 될것을, 되지 못하게 문법이랍시고 쓸데없는 짓만 하고 있네.”
나 또한 다음과 같은 생각은 든다.
왜 발음나오는대로 쓰면 되지 않겠는가? 거기에 혼란이 있어서 철자법을 만들었는가? 한글학자들은 이렇게 계속적으로 고쳐야만 되는가?
현재 철자법이 너무 복잡 다양하여서 나같은 노년기에 있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생소한게 한두가지가 아니기에,
할수 없이 “한국어 맞춤법”을 옆에 두고서 글을 쓴다. 맞춤법에 틀리지 않도록.
이래야만 되겠는가?
WM, I have no answer to these questions and the constant problems facing us.
I agree with you in regards to the above confusions created by 한글학자무리들.
2020.11.05 09:22
Steve reminds me of one lament 권이혁 선생님 who gave such crucial help on my life including the final decision to come back to Korea after a quarter-century absence, in regard to the 문교부 stupidity!
Whenever he stopped over at Washington DC, he always spared the time for us to spend one evening together and I still freshly recall that he lamented once that the bureaucrats of 문교부 were THE worst among three government departments - 문교부, 환경부, 보사부- he served as the Secretary/장관. He didn't tell us exactly why he chose them the worst but he definitely gave the worst remarks I recall.
BB Lee
P.S. One time when he accepted our invitation to detour over to our place on way to the hotel downtown to share the evening over the dinner, he called the embassy ahead of time to make sure they do NOT come to the airport but we will pick him up instead. But when my wife went to Dulles Airport to pick him up, there were THREE people representing three different departments he served as a 장관 to pick him up, despite his prior notice, to surprise her showing their stupidity.
2020.11.05 09:46
Thank you guys who understand what I was talking about.
Some of us still don't know if there are spelling rules in Korean.
They say, "한글에는 spelling이 없어!! 소리나는대로 쓰는 글자인데..."
그러면서 하는말... "철자법은 마쳐 써야지", Ridiculous!!
그런데 이자들이 철자법이 무언지도 모르는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한국에서도 철자법 폐지운동이 몇번있었지요. 이승만박사도 없애자 했는데
국문학자들이 이를갈고 뎀벼들어 포기 한걸로 압니다.
2020.11.05 10:28
이승만 대통령이 철자법을 없애라고 권고를 했는데, 나는 그 때가 선친이 살아계실 때라고 믿고 그렇다면 부산피란시절이었을거로 믿어요.
항상 이박사 반대만 하던 아버지가 그 말은 옳다고 얘기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기를 알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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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애님의 시조 두수에 뒤 딸아 시조 한수를 올린다.
인구(人口)에 회자(膾炙)하는 황진이의 “청산리 벽계수야”를 선택하였다.
얼마전에 Dr. Ohn의 “미국고교에서 시조를 가르친다” 에서 Youtuvbe, “https://youtu.be/nJI3_JlXfLw”을 열고, 많은 내용을 들었는데, 거기서 바로 “청산리 벽계수야”를 강의하고 또 토론하는 걸 보고서 나도 여기에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시조는 우리나라 현세대에 거의 쓰지를 않고 오로지 고문으로 중고교 국어시간에 배울 정도인데, 미국에서 시조 대회까지 연다는 소식에 아연하였다.
우리 모두가 조상님의 문화유산을 내버렸다고 뒤늦게 생각을 하였다.
다른 나라의 옛 문학작품은 많이 배우면서 우리 나라의 전통 시가는 그져 박물관에서나 보관할 정도가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든다. 하여간 황진이의 시조를 읽고 여러분과 더불어 깊은 생각을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