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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逢行(상봉행)
相逢行 佚名
상봉행 일명

相逢狹路間,道隘不容車。
상봉협로간하니, 도애불용거를.

不知何年少?夾轂問君家。
부지하연소오? 협곡문군가를.

君家誠易知,易知復難忘;
군가성이지하니, 이지부난망을.

黃金為君門,白玉為君堂。
황금위군문이요, 백옥위군당을.

堂上置樽酒,作使邯鄲倡。
당상치준주요, 작사한단창을.

中庭生桂樹,華燈何煌煌。
중정생계수하니, 화등하황황고?

兄弟兩三人,中子為侍郎;
형제양삼인이니, 중자위시랑을.

五日一來歸,道上自生光;
오일일래귀하니, 도상자생광을.

黃金絡馬頭,觀者盈道傍。
황금낙마두하니, 관자영도방을.

入門時左顧,但見雙鴛鴦;
입문시좌고하니, 단견쌍원앙을.

鴛鴦七十二,羅列自成行。
원앙칠십이는, 나열자성행을.

音聲何噰噰,鶴鳴東西廂。
음성하옹옹고? 학명동서상을.

大婦織綺羅,中婦織流黃;
대부직기라요, 중부직유황을.

小婦無所為,挾瑟上高堂:
소부무소위하니, 협슬상고당을.

“丈人且安坐,調絲方未央”。
장인차안좌하니, 조사방미앙을.
상봉의 노래
한대 실명인

서로 만남이 좁은 길사이니,
길이 막히어 수레가 통과못하네.

누군지 알지 못하니,
수레에서 내려 그대 집 물어보네.

그대 집은 진실로 알기 쉬우니,
알기 쉽기에 또한 잊지 않겠네.

황금은 그대 집 문에 장식하고,
백옥은 사랑채를 장식하였네.

사랑에 술독을 올려서,
한단 기녀로 노래와 춤을 대접하네.

중정에 계수가 자라니,
꽃 등은 어찌 이리 빛나는고?

형제가 셋인데
둘째는 시랑이라네.

닷새 휴일에 한번 나오니,
길 위에 스스로 빛이 나도다.

황금으로 말머리를 장식하니,
보는 사람은 길가를 채우네.

문에 들어와 왼편을 보니,
오로지 원앙 무리가 쌍쌍이 보이네.

원앙 칠십이 마리는
나열하여 대열을 이루도다.

소리는 어찌 이리도 화합하는고?
학은 동서의 벽에서 울도다.

큰 며느리는 비단을 짜고,
가운데 며느리는 유황을 짜네.

막내 며느리는 할 일이 없어,
거문고를 끼고 대청에 오르네.

“시부모님 편히 앉으십시오,
한곡 타기에 바로 진행중입니다.”

作品鑒賞(작품감상)

전체 시는 가히 삼개 부분으로 나뉘며 전면 6구는 바로 제일 부분이다.
두명의 수레를 탄 소년이, 장안에 좁은 소로에서 얼굴을 대하고 만났다. 길이 워낙 좁아서 아무도 지나칠 수 없어서, 이에 둘이 곧장 수레를 세우고 내려서 대화를 일으켰다. 서로 알지 못했고, 많은 공동화제로 좋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이에 면대하여 주연을 올리는 주인을 자랑하여 그 집안의 명성과 위세가 높이 들어나 빛나고 그 부호를 비할 수 없었다. “그대 집‘이라고 부름은 ”너의 주인집“이란 의미이고, 그대 주인집은 이리하여 용이하게 남들에게 알도록 하였으니, 이리하여 알게 된 후 잊기 쉽지 않도록--이 두 구는 교묘히 찬양하는 말이니, 자연히 자리를 내어주고, 거기서 노래 주인의 가슴에 가득한 기쁨을 듣는다.

아래 18구는 제2부분이다.
두 소년은 한번 노래 부르고 한번 화답하여, 다투어 주인집의 가지가지 부귀의 정상을 자랑하여 말했다. “당신 집 외부에 황금으로 문을 만들고, 안에는 백옥으로 대청을 만들었네.” 한번은 금이요, 한번은 옥이니, 그 건축의 부유하고 화려함은 장엄함을 가히 알리로다. “당신 집안에 술독 속에 술이 항상 가득하니, 손님이 항상 있고, 손님을 대접할 때 또한 한단의 미려한 가기를 내어, 곧 노래와 춤을 올립니다. 이때 뜰 안의 계수에서 바로 향기가 날리며, 대청 안에 화등은 환히 빛나며, 방을 통하여 밝게 비추도다.“ 술 있고, 객이 있으며, 기녀가 있고, 화등이 있으니, 그 권세와 지위를 향락하고 향수함을 가히 알리로다.
가동의 신분으로써 출현한 소년은 말하기를, “우리 집은 관리의 가문으로 집에 형제 삼인이 있으며, 다른 사람을 말하지 않고, 노인 둘을 말하고, 하나는 조정에서 시랑이며, 항상 휴목일에 집에 오니, 길 따라 참으로 눈에 띄니, 말머리는 황금장식으로 덮고, 길에 광채가 일고, 길가에서 보는 이들은 구름같이 모이고, 떠들며, 찬탄하고, 길가에 가득 찼도다.” 앞으로 그리고 옆으로 그려보니, 그 높이 들어 빛나는 기세를 가히 알겠도다.
거듭 집에 도착한 정황을 말하니: 집 문에 들어가 좌우를 살펴보니, 오로지 보이는 건 뜰앞 못속에 큰 무리의 원앙이 있어 쌍쌍이 배열하여 행렬을 이루었고, 또 들리니 집 안에서 기르는 백학이 동벽과 서벽에서 화합한 소리를 발하도다. 그들은 모두 주인이 돌아옴을 환영한다. 새가 있고 못이 있으니 그 정원이 광대함을 가히 알겠도다. 이 일단에서 4층으로 나누어 이 부호가문의 부귀, 기세를 대하여 지극한 의미로 진열과 장식을 향유하여, 이로써 이는 심상치 않음을 보이고, 이에 따라 윗글에 “그대 집은 진실로 알기 쉬우니, 알기 쉬움은 잊기 어렵도다.”의 말을 일치하여 어울린다. 즉 소개가 헛되지 않았다.

이에 이르러 이 부호가 장안성 중의 권세를 가졌으니, 지위는 어떤가, 문득 말없이 비유한다. “큰 며느리는 기라를 짜고”의 6구가 바로 제삼부분으로, 집안에서 세 며느리의 하는 일을 묘사했다. “우리 주인 집안에 세 아들이 각각 지어미 하나씩 가졌으니, 큰 지어미와 가운데 지어미는 직물 짜기에 능하여 능라와 주단을 짤 수 있다네. 어린 지어미는 또 다른 ‘가장 뛰어난 재능’이 있으니 전 가족이 모이는 날 고슬로서 전 가족을 위하여 흥을 일으키도다.
“시부모님, 편안히 계십시오. 곡 타기 아직 다하지 못했습니다.” 이 2구는 두가지 함의가 있으니, 그 하나는 어린 며느리가 거문고를 끼고 말하니, 이는 소부의 말로 바꾸어 말하기를, “청컨대 어르신네께서 편안히 앉아 계시어서, 저의 한 곡을 타는 걸 들으십시오.” 여기서 의사는 친절한 풍취와 기분이 활약함을 나타낸다. 두 번째는 이 말을 빌리고 겸하여 노래하는 사람이 자신의 곡을 연주하고 올리고자하는 원함을 표현한다.
이 일단에서 세 지어미의 소행을 그리고, 이로써 한 부호가문의 가례, 가풍과 가정의 기쁨을 보이며, 동시에 며느리들이 이러한 재능을 가질 수 있음을 암시하고, 가사를 다루는데 질서와 조리가 정연한 즉 가중에 기타 인원의 능력을 이에 알 수 있다.
이 마지막 6구는 후대시인이 많이 그 시의 뜻을 부연하여 삼부염(三婦艷) 등 한 계열(series)의 새로운 악부시를 형성하였다.


이 수시의 중점은 이 주인 가문의 부귀향락이 화려하게 장식하여 기분이 열렬함을 그렸고, 생동함이 과장되었고, 필법은 한대의 큰 부(賦)와 같고, 가구와 묘어를 다하였고, 오로지 그 기세를 족히 일으키고 또 감염시킨다. 이러한 옥당과 금마가 중첩 쌓였으니, 바로 한대의 국력이 강성함을 굴절 반영한다.
이러한 층층이 배열하고 극력 채색하는 필법은 시가로 하여금 충만하도록 노력하여 갈수록 후하게 되어, 이는 바로 한대 민족역량이 중후하고, 민족정신이 왕성함을 반영하며, 이리하여 독자는 가히 한대가 봉건사회의 성세라고 칭함을 감수하여 이는 실로 과장함이 아니다. 이에 이시는 사회의 인식 가치를 구비하여서, 물론 후인이 한대 사회 진모를 이해하는데 불가결의 매개체이다.

作品注釋(작품주석)

不知何年少(부지하소년): 作“如何兩少年” 이 두 소년이 누구인가?
轂(곡):車輪中心的圓木,輻聚其外,軸貫其中。這裡代指車。수리를 가리킴.
夾轂(협곡):猶“夾車(협거)”。두 소년이 선채로 수레의 양편에서 묻는다.
置樽酒(치준주):指舉行酒宴。주연을 거행하다.
作使(작사):猶“役使”。to put to work (servant or animal). 일 시키다.
邯鄲(한단):漢代趙國的都城,한대 조나라의 도성.
倡(창):歌舞伎(가무기)。趙國女樂,聞名當時。노래부르고 춤추던 기녀.
中庭(중정):庭中(정중) 즉 정원속.
華燈(화등):雕刻非常精美的燈。조각하여 대단히 정미한 등.
兄弟兩三人(형제양삼인):兄弟三人(형제삼인) 즉 형제 세사람。
侍郎(시랑):관명.  모두 36인이며 문서를 만들어 초안을 잡으며 녹봉은 400석임。
五日一來歸(오일일래귀):한대의 조관은 5일마다 휴일을 가짐.
左顧(좌고): 回顧。돌아보다.
雙鴛鴦(쌍원앙):鴛鴦為匹鳥,總是成對並游。원앙이란 짝새을 말하다.
噰噰(옹옹):音聲相和貌,這裡形容眾鶴和鳴之聲。서로 화답하는 소리. 
綺羅(기라): 곱고 아름다운 비단(緋緞).
流黃(유황):或作“留黃”、“騮黃”,黃間紫色的絹。노란 색 사이에 자주색의 비단. 
丈人(장인):子媳對公婆的尊稱。아들 며느리가 부모나 시부모에 대한 존칭 
調絲(조사):彈奏(탄주) 즉 현악기를 타다。

絲(사),指瑟上的弦。거문고의 줄을 가리킴.
未央(미앙):未盡(미진)。“方未央”或作“未遽央”,
“未遽央”與“未央”同義。這句是說彈瑟正在進行。
즉 거문고 타기가 바로 진행중이란 뜻이다.

 
長安古都
长安”这名字多好啊,为何历史上要改名为“西安”?谁改的_朱元璋
 

해설
이 시는 양한시절 즉 전한 (206 BCE-9 CE) 과 후한 (25-220 CE) 시대 전성기였다. 내 생각으로는 전한시절이 더 가능하지 않았나 한다. 왜냐하면 전한때 국력과 문무의 발전이 눈부셨고, 후한은 부패하고 계속 침체하다가 망했기 때문이다. 하여간 고대 중국의 전성기에 부귀인의 화려한 생활을 보여 주었다. 특히 마지막 단에 세 며느리의 모습이 한층 돋보였다. 이리하여 후세인은 이 세 며느리를 주제로 한 시 즉 삼부염시를 많이 썻다. 그래서 나 역시 삼부염시 몇 수를 실겠다. 이 부귀인의 며느리는 귀한 비단을 짜기도 하고 놀기도 하며 막내 귀염둥이 며느리를 시부모에게 노래를 혹은 곡을 선사하였다. 얼마나 꿈같던 옛날이었나?
후세 시인은 이 세 젊은 부호의 며느리의 삶을 어떻게 표현하였나 알고 싶다.

三婦艷 其一 梁·昭明太子
삼부염 기일 양 소명태자

大婦舞輕巾,中婦拂華茵。
대부무경건이요, 중부불화인을

小婦獨無事,紅黛潤芳津。
소부독무사하니, 홍대윤방진을.

良人且高臥,方欲薦梁塵。
양인차고와하니, 방욕천양진을.
세 지어미의 아름다움 1
양조 소명태자

큰 지어미 가벼운 수건으로 춤추고,
가운데 지어미는 꽃 깔개를 털도다.

작은 지어미는 홀로 할 일이 없으니,
연지와 눈썹먹은 윤택하도다.

양인은 또한 높이 누워서,
들보의 먼지를 없애려하네.
三婦艷 其二 梁·王筠
삼부염 기이 양 왕균

大婦留芳褥,中婦對華燭。
대부류방욕하고, 중부대화촉을.

小婦獨無事,當軒理清曲。
소부독무사하니, 당헌리청곡을.

丈人且安臥,艷歌方斷續。
장인차안좌하니, 염가방단속을.
세 지어미의 아름다움 2
양조. 왕균

큰 지어미 향기로운 요위에 있고,
가운데 지어미는 등불을 대하도다.

어린 지어미는 홀로 할 일이 없어,
들창을 대하여 맑은 곡조 다스리네.

시부모 또한 편히 누우니,
꽃다운 노랫소리 끊어지듯 이어지듯.
三婦艷 其三 陳·後主
삼부염 기삼 진 후주

大婦上高樓,中婦蕩蓮舟。
대부상고루하고 중부탕연주를.

小婦獨無事,撥帳掩嬌羞。
소부독무사하니, 발장엄교수를.

丈夫應自解,更深難道留。
장부응자해려나, 갱심난도류를.
세 지어미의 아름다움 3
진조 후주

큰 지어미는 높은 루에 오르고,
가운데 지어미 목련배에서 흔들리네.

어린 지어미는 홀로 할일 없어,
휘장을 들어 아양과 부끄럼 감추네.

장부는 응당 변명하려나,
깊은 밤에 길에서 머물기 어렵네.

作者三人(작자삼인)

昭明太子(소명태자)
소명태자는 문재와 풍류로 유명하였으며 또 애석하게도 단명하였다. 역사상 저명한 재가였고, 양무제의 장자이었고 태자가 되었는데, 뜻밖에 31세에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이 많이 남아있다.


王筠(왕균)
남조 시인이며, 어려서부터 글에 능통하였고, 십육세에 작약부를 지었으며, 후에 소명태자의 문학시종이었고, 태자는 항상 왕균, 유효작, 육수, 도흡, 은운 등과 현포에서 연회를 열었고, 매번 균의 글을 보고 탄복하여 읊었다.


陳後主 陳叔寶(진후주 진숙보 553年-604年)

진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사치한 생활과 문신과 더불어 연회를 밤낮으로 열고 국방을 게을리 하여 결국 수문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수문제를 받들고 살다가 52세에 사망하였다. 그가 즐겨 부르던 玉樹後庭花(옥수후정화)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한다.

 
三婦艶
藤棚下の遊女たち, Courtesans Beneath a Wisteria Arbor (Fuji dana shita no yūjo  tachi), Kitagawa Utamaro, ca. 1795 Stock Photo - Alamy

Kwan Ho Chung - August 3, 2016
귀국성묘 실패담
 

지난 5월 하순에 귀국방문하였다.
우리 둘은 아들가족의 귀국에 참가하였는데, 우리의 목적이 그들과 달랐다.
아들 가족 넷은 국내관광 계획을 하였고, 나는 아버님 산소에 성묘가 유일한 목적이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우리는 그 관광에 참여하기보다는 성묘를 해야하니, 너희 관광중에 흥미로운 곳에만 참여하고 싶다고 했는데, 며느리는 저희가 우리를 포함한 6인이 참여한다고 해서 모든 비용을 이미 지불하였다고 하기에 할 수없이 그들에게 참여하여 함께 행동을 하기로 하였다.
관광지는 제주, 부산, 경주, 삼척, 속초, 설악산이었다.

관광은 아주 좋았다. 그런데 며느리가 우리 셋 즉 손자, 아들 그리고 나 이렇게 성묘하려고 하니, 관광이 끝난 다음에 다시 서울에서 내려와 성묘하기 보다 제주-김해공항-부산으로 이동할 때 김해공항에서 장거리택시를 사용하여 왕복하라고 하여서 5월 25일 오후에 김해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경남 진주시 일반성면 가선리로 향하였다.

이제야 고국산천을 볼 기회가 왔다.
우선 산이 모두 전체가 신록으로 가득 찼다. 예전 1967년까지 살아온 풍경과 전혀 다르다. 그때에는 산에 나무는 거의 없었고, 있어야 배배 꼬인 막대가 같던 나무만 있지 않았던가?
도시 도로는 대단히 깨끗하였다. 외국여행을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구주국가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로 깨끗하지 못핶다. 그런데 한국 도시 도로는 아주 깨끗하다.
그런데 예전 Highway가 많이 없어지고, 산을 뚫어만든 tunnel로 대치되어서 새로운 길로 대다수 대치된 모양이다. 이렇게 변화된 고국을 보니 많이 감명을 받았다.
또 우리가 체류한 곳은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에 있는 서울한옥스테이란 곳인데, 참으로 좋았다. 그리고 저녁 어둑어둑할 때 식사하러 나가면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젊은 이가 대다수였다. 이곳 뉴욕시처럼 흑인 Teens 떼를 만날 걱정이 전혀 없다. 내 눈에는 이들 모두 순박한 젊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다음에도 이곳에 다시 방문하고 싶다.

이제 그 성묘건에 관하여 이야기 할 때이다. 산소는 진주시 일반성면 가산리에 있는 야산으로 우리 가문의 선산이었다. 그곳에 관리인 정원X씨는 나의 조카벌이 되며, 집 주소는 일반성면 가선리 290이었고, 내가 김해공항에서 그 집까지 직접 운전한 적은 없어도, 다른 지역으로부터 차를 운전하고 몇 차례 방문하였는데, 그 당시 성묘와 시제(時祭)를 올렸다. 그 때 그 집까지 여러 차례 갔었다. 그래서 항상 그의 집에서 만났고, 그로부터 여러가지 집안 이야기도 듣고, 또 족보를 포함한 내게 필요한서류도 받았다. 연배는 나보다 2, 3년 아래인 걸로 기억하니 우리 둘이 함께 늙는 편이었다.
가기 전에 그 집 주소를 카카오 맵과 네이버 지도에서 찾아 보았더니, 가선리 290이 안나오고 그 대신 가선리 290-1 아니면 290-2이 대신 나왔다. 그래서 택시를 290-1 앞에 세우고 내려서 290-1로 들어가서 정원X씨를찾았더니,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와서 그는 현재 그 옆에 폐가가 된 집에서 살았고, 한 2, 3년전에 사망하였고, 그 아들 가족은 어떤 도시로 이사갔다고 하였다.
그 집에서 나와 나의 옛 기억을 더듬으며 맞은 편 산, 즉 우리의 옛 선산을 바라보니, 전경이 영 달랐다. 게다가 그 동네는 워낙 촌집 즉 초가들만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양옥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내게도 두가지 문제거리가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첫째 나는 산소주소를 모른다. 둘째 산소시잔을 찍은 적이 없었다. 내가 너무 부주의하였음을 통탄하지 않을 수없었다. 항상 정원X 조카만 믿었기에 생긴 일이다.

할 수없이 우리 셋이서 동편에 위치한 선산으로 올라가려고 시도해 보았다.
우선 아주 작은 시내가 동북으로부터 흘러내리는데 비가 오지 않으면 말라버렸다.
전처럼그 시내를 건너 산으로 오르는 보행로를 이용하려고 하였는데, 옛 산에는 우리 조상 산소가 많았지만, 그 산소는 모두 없어졌고, 큰 밭으로 대치하였고, 그 주위에는 철망으로 외인의 출입을 막았다.
그래서 왼편으로 돌려 진입해 보니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꽉 차있기에 도저히 산을 오를 수없었고, 손자를 시켜 올라가서 산소지역을 찾으라고 하여서, 그가 45분내지 1시간에 걸쳐서 산에서 찾아보았어도 산소 찾기에 실패하였다.
이제 차차 밤이 되어서 할 수없이 우리는 기다리고 있는 택시를 타고 부산 호텔로 돌아왔다.

우리 방문일은 5월 25일로 기억하며, 나머지 관광을 끝내고 27일에 상경하였다.
서울에서 외국인 법무사(Judicial Scrivner)를 소개받아서 그가 친히 다시 일반성면 가선리에 가서, 그곳 산소 담당자를 만나서 선친 산소를 찾고 많은 정보를 갖고 왔다.
그러나 출국할 날이 가까워져서 우리가 다시 내려 갈 수없었다. 할 수없이 귀국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아들과 함께 재차 귀국하여서 법무사가 찾은 새로운 관리자 정원Y씨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귀가 후 내가 그와 편지를 교환하고 다음 귀국시 그를 만나기로 합의하였다. 그는 전 관리인 정원X씨의 사촌간이기에 편라할 것으로 믿는다.
그 외국인 법무사가 보내준 사진과 산소주소도 알게 되어서 다음 번에 도움이 될 사진 몇 장을 올린다. .

 
Fig 1, 가선리 290-1 to 가선리산 8-1
2. 공치고개길 No. 193 gil 11-9.png

Fig 1-1공치고개길 No. 193 gil 11-9 to 가선리산 8-1
1-1 공치고개길 193번길 11-9 to 가선리산 8-1.png

Fig 2. 공치고개길 No. 193 gil 11-9
2. 공치고개길 193번길 11-9.png

Fig 3. 가선리 290-1
3. 가선리 290-1.png

Fig 4. 가선리산 8-1 (산소 대지)
4. 가선리산 8-1 (산소 대지).png

Fig 5. 산소석주 : 嗣子觀鎬(사자관호) 長孫源景(장손원경) 次孫源羲(차손원희)
5. 산소석주(2).jpeg

Fig 6. 封墳(봉분)

6. 封墳(봉분) 9335.jpg
 

IMAGES설명

Fig 1 290-1은 옛 관리인 정원X씨의 옆집 주소이며, 이곳에 주차하고 현재지도에 나온대로 산소(주소 산8-1)으로 가는 보행로를 찾았다. 10분 거리이다.
Fig 1-1. 여기에 나온 이주소는 앞으로 관리를 담당할 정원Y씨 주소이며, 그 집에서 산소까지 보행로다.
Fig 2. 이 주소는 새 관리인 정원Y씨 주소이고, 여기 우상부에 항상 이야기했던 산소로 올라갔던 야산의 일부가 나온다.
Fig 3. 내가 여러해 찾아 다녔던 정원X씨 동네다. 바로 우측이 야산지대로서 지금 큰 밭을 만들었다. 우리 가문 선산의 일부였는데 추후에 알아보려고 한다.
Fig 4. 산 8-1 산소대지이며, 불규측하여 보인다. 하긴 이 산소경계를 알아 볼 기회도 없었지만 현대 Online 덕택에 측량없이도 할 수있게 되었음에 감사한다.
Fig 5. 석주 혹은 비석을 세운 일자가 표시되었다. 서기 1984년 갑자년 7월 X일이라고 만 나와있다. 내가 47세였겠고, 도미한지 17년이 되었던 연도이다. 여기에 내 이름과 두 아들 이름이 색여있다. 말할 것도 없이 어머니께서 오셔서 비문에 색일 글자를 주셨을 것이다.
Fig. 6. 아버님 봉분(封墳)과 석판(石版)이디. 붕분(무덤)은 관리하지 않아서 볼 수 없을 정도이다. 내년에 나가서 잘 관리할 생각이다.

 
Kwan Ho Chung - October 2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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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除夜 戴復古: 제야 대복고 [4] 2023.12.30 정관호*63 2024.01.07 73
428 傷春: 상춘 [1] 2023.12.21 정관호*63 2023.12.27 69
427 蝶戀花·送春 : 꽃사랑 나비; 봄을 보내다 [1] 2023.11.24 정관호*63 2023.11.27 74
426 山行: 산행 [1] 2023.11.07 정관호*63 2023.11.10 73
425 楓橋夜泊: 풍교에서 밤에 숙박하다 [1] 2023.09.20 정관호*63 2024.02.08 58
424 Ode on West Islet [1] file 2023.08.24 정관호*63 2024.04.13 44
423 過零丁洋: 영정양을 건너다 [1] 2023.08.17 정관호*63 2023.08.20 95
422 長樂少年行: 장락소년행 [1] 2023.08.10 정관호*63 2023.08.12 67
421 曲池荷(곡지하): 곡지의 연꽃 [1] 2023.08.01 정관호*63 2023.08.02 194
420 春暸(춘요): 봄날이 밝아오다 [1] file 2023.07.15 정관호*63 2023.08.07 76
419 歸終南山(귀종남산): 종남산으로 돌아오다 [1] 2023.07.08 정관호*63 2023.07.08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