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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마의태자(麻衣太子)

2016.11.03 09:50

정관호*63 Views:392

마의태자 노산 이은상
 

그 나라 망하니 베옷을 입으시고,
그 영화 버리니 풀뿌리 맛 보셨네.
애닯다. 우리태자. 그 마음 뉘알꼬?
지나는 길손마저 눈물 지우네.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시다. 영주동 피란교사에서였다.
우연히 그 생각이 떠 올라서 문헌을 찾아 보았다.
마의태자(麻衣太子, 912년~?)는 신라 마지막(제56대) 왕 경순왕의 첫째 왕자이다. 성은 김(金)씨, 자(字)는 겸용(謙用), 휘(諱)는 일(鎰) 또는 일(溢)이라 전하며, 일명 금부대왕 또는 김부대왕(金傅大王)으로도 불린다. 신라왕후의 적자임과 동시에 화랑 효종랑의 손자이다. 부안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둘째 왕자 범공 김덕지(金德摯)와 함께 935년(신라 경순왕 9년) 10월 경순왕(敬順王)이 고려 태조에게 신라의 천년사직을 손국(遜國)하려 하자 불가함을 극력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종묘(宗廟)에 곡을 하고, 처자를 죽이고 나라를 떠나 금부리에서 충신 지사 일민들과 함께 조국 광복의 숭념을 발의하였다. 후에 개골산(皆骨山)에서 대절을 지켰으므로 그 증손에 이르러서야 대의를 실행한다는 명분으로 나라에 출사하게 되었다.
935년(경순왕 9) 10월 신라는 후백제 견훤(甄萱)과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신흥세력에 대항할 길이 없자 군신(君臣)회의를 열고 고려에 항복할 것을 논의하였다. 태자는 천년사직을 하루 아침에 버릴 수 없다고 반대하였으나, 결국 고려에 귀부(歸附)를 청하는 국서(國書)가 전달되었다. 태자는 통곡하며 개골산(皆骨山: 金剛山)에 들어가 베옷[麻衣]을 입고 초근목피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마의태자능

외금강 상팔담을 지나 신계천의 최상류 지역인 아홉 소골을 지나 있는 능이다. 비로봉에서는 북쪽 능선을 따라 1.4km 정도 내려가면 길 서남쪽 비탈진 언덕에 위치해 있다. 장대석 같은 자연석을 있다. 무덤은 둘레가 약 10m, 높이 1.5m로 보통 무덤보다 조금 크다. 마의태자릉 바로 오른쪽에는 높이 58m의 말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용마석(龍馬石)이다. 용마석의 일종의 고립 암봉으로 화강암의 수평절리와 수직절리로 인해 형성된 것이다.

역사

마의태자(麻衣太子, 912년~?)는 신라 마지막(제56대) 왕 경순왕의 첫째 왕자이다. 성은 김(金)씨, 자(字)는 겸용(謙用), 휘(諱)는 일(鎰) 또는 (溢)이라 전하며, 일명 금부대왕 또는 김부대왕(金傅大王)으로도 불린다. 신라왕후의 적자임과 동시에 화랑 효종랑의 손자이다. 그는 부안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둘째 왕자 범공 김덕지(金德摯)와 함께 935년(신라 경순왕 9년) 10월 경순왕(敬順王)이 고려 태조에게 신라의 천년사직을 손국(遜國)하려 하자 불가함을 극력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종묘(宗廟)에 곡을 하고, 처자를 죽이고 나라를 떠나 금부리에서 충신 지사 일민들과 함께 조국 광복의 숭념을 발의하였다. 후에 개골산(皆骨山)에서 대절을 지켰으므로 그 증손에 이르러서야 대의를 실행한다는 명분으로 나라에 출사하게 되었다.

 
麻衣太子 노산이은상 작사 안기영 작곡

1.♬
그 나라 망하니 베옷을 입으시고
그 영화(榮華) 버리니 풀뿌리 맛보셨네
애닯다 우리태자 그마음 뉘 알꼬
풍악산 험한곳에 한품은 그 자취
지나는 길손마다 눈물을 지우네

2.♬
태자성(太子城) 옛 터엔 새들이 지저귀고
거(居)하신 궁(宮)들은 터조차 모르도다
슬퍼라 우리태자 어데로 가신고
황천강 깊은물에 뿌리신 눈물만
곱곱이 여울되어 만고에 흐르네.
 

작자 이은상
시조시인ㆍ사학자 이은상(李殷相) : 네이버 블로그1903년 10월 12일 경상남도 창원군 부내면 상남리(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상남동)에서 이승규(李承奎)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18년 마산 성호리교회(현 문창교회) 장로였던 아버지가 설립한 마산 창신학교 고등과를 졸업하였고, 1923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가 중퇴하고 1925년 도일하여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수학하였다
.1922년 조선문단을 통해 시조 '아버님을 여의고', '꿈 깬 뒤' 등을 발표하여 등단한 후 자유시를 창작하다가 1926년 이후 카프의 계급주의 문학의 반동으로 일어난 시조부흥운동의 영향으로 조국의 전통 문학과 국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시조시인으로 전향하였다.
1931년부터 1932년까지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1932년 노산시조집을 간행하였고 여기에 수록된 '가고파 ', ' 성불사의 밤' 등은 지금도 가곡으로 애창되고 있다. 1930년대 이후 가람 이병기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 시조시인으로 자리를 굳히면서 민요적 리듬을 살린 작품들을 많이 썼다. 1932년 10월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1935년 4월까지 신동아 기자, 신가정 편집인 등으로 근무했다.# 1935년 6월에는 조선일보사로 이직하여 1938년까지 편집국 고문 및 출판국 주간 등을 역임했다.
그러다가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일제에 의해 홍원경찰서와 함흥형무소에 구금되었다가 이듬해인 1943년 기소유예로 불기소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1945년에는 사상범 예비 검속으로 구속된 후 전라남도 광양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8.15 광복을 맞게 된다.

維基百科 麻衣太子
麻衣太子(朝鮮語:마의태자,?-?),新羅第56代君主敬順王和竹房夫人的兒子,名不詳。 935年(敬順王九年、高麗太祖十八年、唐末帝清泰二年)十月,新羅敬順王以四方地盡為他有,國弱勢孤,不能自安。於是和屬下商議舉土歸順高麗太祖。群臣議論,有的以為可以,有的以為不可以。王太子說:“國之存亡,必有天命。只當與忠臣義士,收合民心,力盡而後已。豈可以一千年之社稷,一旦輕易給他人?”敬順王回答:“孤危若此,勢不能全。既不能強,又不能弱。至使無辜之民,肝腦塗地,吾所不能忍也。”於是派侍郎金封休帶著降書向高麗請降。王子哭泣辭別敬順王。到達皆骨山,倚靠岩石作為房屋,麻衣草食,以終其身。
所以後世稱之為麻衣太子。十一月,高麗太祖將敬順王迎接到高麗首都開城,新羅滅亡。朝鮮日據時期作家李光洙在1930年發表小說《麻衣太子》。同時近代很多慶州金氏的族譜把麻衣太子定名為金鎰,而且把祖源上溯到他。

 
마의태자 유튜브 송창식


마의태자 묘
마의태자 - 나무위키

Kwan Ho Chung - November 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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