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2 09:02
http://blog.koreadaily.com/view/myhome.html?fod_style=B&med_usrid=barndrive&cid=1118270&fod_no=1
(J브로그 누리-온기철: 어느 미군상사 이야기)
지난 9.3. 에 포스팅 한 글에는 Schlichter 상사가 포로가 되는 장면 까지 이야기 했는 데,
이번에는 거의 3년만에 쎈프란시코에 무사히 돌아오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합니다.
No. | Subject | Date | Author | Last Update | Views |
---|---|---|---|---|---|
Notice |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 2016.07.06 | 운영자 | 2016.11.20 | 18193 |
Notice |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 2016.07.06 | 운영자 | 2018.10.19 | 32348 |
Notice |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 2016.06.28 | 운영자 | 2018.10.19 | 5924 |
Notice | How to Write a Webpage | 2016.06.28 | 운영자 | 2020.12.23 | 43840 |
313 | 1953.7.27 정전협정 [5] | 2019.07.25 | 온기철*71 | 2019.07.26 | 53 |
312 | 광복절: 1945.8.15 인가, 아니면 1948.8.15 인가? [3] | 2019.08.16 | 온기철*71 | 2019.08.17 | 61 |
311 | 밀정 [6] | 2019.08.18 | 온기철*71 | 2019.08.20 | 86 |
310 | YouTube 수필낭독; 반일종족주의, 일본우파의 사주? [1] | 2019.08.28 | 온기철*71 | 2019.08.29 | 56 |
309 | YouTube: 역사 수필 낭독; 조선역사에 대한 사고 [7] | 2019.08.29 | 온기철*71 | 2019.08.30 | 61 |
308 | 일본의 계략: 대일 청구권 8억달러 어떻게 쓰였나? [1] | 2019.08.31 | 온기철*71 | 2019.09.01 | 51 |
307 | 평북 벽동 중공군 포로 수용소의 미군포로는? [4] | 2019.09.03 | 온기철*71 | 2019.09.04 | 232 |
306 | 요시다 쇼인과 유성룡의 징비록 [1] | 2019.09.09 | 온기철*71 | 2019.09.10 | 59 |
» | 중공군 포로 미군 Schlichter 상사의 귀국 [1] | 2019.09.12 | 온기철*71 | 2019.09.13 | 1190 |
304 | Inchon Landing [2] | 2019.09.15 | 이병붕*63 | 2019.09.15 | 80 |
303 | MARCH 1ST MOVEMENT DAY [5] | 2019.01.16 | 정관호*63 | 2019.09.15 | 61 |
302 | Italian American Internment during World War II [2] | 2019.09.06 | 온기철*71 | 2019.09.17 | 140 |
301 | 일본은 왜 전쟁에 대한 죄의식이 없을 까? [4] | 2019.09.16 | 온기철*71 | 2019.09.18 | 57 |
300 | 1894년 여름 서울 사람들 [2] | 2019.09.18 | 온기철*71 | 2019.09.18 | 58 |
299 | 임진왜란의 진실; 노비들은 일본군이되어 조선 병사들과 싸웠다 | 2019.09.19 | 온기철*71 | 2019.09.19 | 135 |
298 | Hell 조선; 어느 유튜버의 변 [4] | 2019.09.20 | 온기철*71 | 2019.09.20 | 67 |
297 |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6] | 2019.09.22 | 온기철*71 | 2019.09.27 | 87 |
296 | 한양-경성-서울 [3] | 2019.09.21 | 온기철*71 | 2019.09.28 | 55 |
295 | 훈민정음과 한글 [7] | 2019.09.26 | 온기철*71 | 2019.10.04 | 104 |
294 | 창경궁과 창경원, 종묘, 파고다 공원, 함춘원과 서울대학병원 유감 [4] | 2019.10.24 | 온기철*71 | 2019.10.27 | 137 |
한국전쟁은 사실상 1951년7월, 그러니까 일년만에 다끝난 것이나 마찬 가지였다.
그러나 포로 송환문제 때문에 무려 2년 동안 정전협정에 합의를 하지 않았다.
그동안에 작은 고지에서 양측에 아무이득도 없는 전투가 계소개되었고 양측에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되었다. 한국전쟁때 쏟아 부은 포탄은 2차대전 때의 그것보다
많았다고 한다. 대만과 본토로 양진영이 갈린 중국과 남북으로 대립하는 한반도는
포로들이 어느쪽으로 갈것인가를 두고 갈등 했다. 옛 국민당 군대였는 중공군과
남한에서 끌려간 인민군은 각각 대만과 남한을 선택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은 100% 자기 쪽으로 보낼것을 요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