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5 00:06
https://news.joins.com/article/2056882
채병덕 장군 의문의 전사
[출처: 중앙일보] (4)채병덕 장군 의문의 전사
1950년 7월25일 당시의 최전방 진주에 미군 2개 대대가 인민군을 공격하기 위해서 대치 하고 있었다.
그 중 약 400명이 이제 막 군대에 온 18세 젊은 이들이었다. 그들이 가진 총과 박격포들은 한번도 발사
해 본적이 없을 정도로 새 것 들이었다.
Harold W. Mott 중령은 29 보병사단 3연대장이 엇고 이들은 Mott 중령의 부하 들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하동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어느날 진주 미군기지에 한국군 소장 채병덕이 나타났다. 그에게는 겨우 2,3명의 부하 밖에 없었다. 그는
절망적인 전황을 설명하면서 미군에 합류하여 싸우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미군은 하동으로 우리와 같이
가지만 통역과 안내 역활 만 해달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전 한국군 참모 총장은 미군과 같이 하동으로
향했다.
다음날 하동고개(Hadong Pass)에 채병덕과 미군 지휘부는 방어선을 만들고 인민군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곧 한 무리의 군인들이 자기들 쪽으로 닦아 오는 것을 발견했다. 대부분이 미군 군복을 입고 있었으나 몇명은
마스터드 브라운 인민군복 차림이었다. 그들이 약 100 야드 까지 가까워 지자 채병덕은 앞으로 나아가서
큰 소리로 "What unit?"하고 외쳤다.
변장한 인민군들은 ditch 로 들아 가버렸고 길가에 진을 치고 있던 미군은 일제히 사격을 개시 했다. Ditch 속에
들어간 인민군들의 포탄이 길가의 미군 머리위에 떨어 지기 시작했다.
채병덕은 머리에 총탄을 맞고 즉사 했다. 그의 몸은 동맥에서 뿜어 낸 피 가운데 쓸어져 있었다. 충성스러운 그의
부하들은 빗발치는 총알 가운데서 그의 시체를 들어서 트럭에 실었다. 그의 실패와 실수가 무엇이든 간에 그는 군인
답게 죽었다.
- This Kind of War by T. B. Fehren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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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덕은 평양 출신으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일본군 포병과 공병대에서 근무했다.
해방후 국군의 대부분의 장성들이 일본군 출신이었고 채병덕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그가
전군을 지휘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진 장군은 아니었지만 국군은 북한군을 대적할 만한 무기와
전투 훈련이 된 군대가 아니었다. 전쟁 초기의 어이 없는 패전이 그가 책임 질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