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3 19:22
https://blog.daum.net/js8888/8858129
그것은 강원도 지방을 경유하는 우회작전이었다.
이에 광개토대왕비문에는 서기 400년에 있었던 대왜구 토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0년(400) 경자(庚子)에 왕이 보병(步兵)과 기병(騎兵) 도합 5만명을 보내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고구려군이] 남거성(男居城)을 쳐서 신라성(新羅城;國都)에 이르니, 그 곳에 왜군이 가득하였다. 관군(官軍)이 막 도착하니 왜적이 퇴각하였다. [고구려군이]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任那加羅)의 종발성(從拔城)에 이르니 성(城)이 곧 항복하였다. 안라인술병(安羅人戌兵) … 신라성□성(新羅城□城) … 하였고, 왜구가 크게 무너졌다.
(이하 77자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불명. 대체로 고구려군의 원정에 따른 임나가라 지역에서의 전투와 정세변동을 서술하였을 것이다).
옛적에는 신라 매금(寐錦)이 몸소 고구려에 와서 보고를 하며 청명(聽命)을 한 일이 없었는데,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대에 이르러 (이번의 원정으로 신라를 도와 왜구를 격퇴하니) 신라 매금이 … 하여 (스스로 와서) 조공(朝貢)하였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없는 역사적 사실이 광개토대왕비에 있다. 백제, 가야, 왜구 연합군이 신라를 공격 했다.
경주가 함락 직전이었다. 고구려 원병 5만이 이들을 물리치고 신라에 병력을 주둔시켜 신라를 보호 해주었다.
신라는 고구려에 조공을 바쳤다. 고구려는 백제를 이미 제압 했고 백제와 왜구는 우방이었다.
2021.11.03 19:51
2021.11.03 19:56
https://www.joongang.co.kr/article/20464939#home
광개토대왕비의 우울한 진실
사코 가게노부(酒?景信·1850~1891)-. 그는 대왕비의 실질 발견자다. 사코는 첩보장교다. 일본 육군 참모본부 스파이. 1880년 그는 중국(청나라)에 파견된다. 베이징에서 1년간 중국어 공부를 했다. 그의 임무는 중국 북부와 만주의 측량과 지도 그리기다. 그의 활약은 의심과 도발이다. 그는 비문 변조설의 한복판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충격과 자극이다. 그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격발시켰다. 광개토대왕의 위대함은 재조명됐다.
사연은 이렇다. 만주는 청나라의 금지(禁地)였다. 1870년대 후반 그곳은 개간지로 풀렸다. 농부들이 대왕비를 발견했다. 1880년대부터 관리들은 비석의 탁본(拓本)을 떴다. 1883년 사코는 그곳을 누볐다. 거대 비석의 발견 소식은 은밀하게 거래됐다. 사코는 현장을 찾았다. 그는 비석의 가치를 알아챘다. 탁본을 입수해 밀반출한다. 1884년 그것을 참모본부에 제출한다. 일본군 소속 학자들은 비문을 판독했다. 1888년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그때서야 조선은 비석의 존재를 알았다. 발표 내용은 논란과 의혹을 낳았다. 비문을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과 연결했다는 의심이다.
*정말 한심했던 조선이다. 광개토대왕비도 일본장교가 찾아 주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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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90164.html
한겨레 2020년12월27일
광개토왕비는 드높은 위상과 달리 국내 학계에선 한국 고대사의 가장 큰 고민 덩어리처럼 인식된다. 일본 학계가 처음 비석 명문을 판독해 연구를 시작한 탓이 크다. 1883년 일본 장교가 비를 확인한 뒤 탁본을 입수해 학자들이 명문을 판독했다. 그때부터 왕의 백제 정벌 업적을 새긴 본문 앞 한 구절(전치문)의 해석내용이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9번째 행의 이른바 ‘신묘년조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90164.html#csidxee990a17b7e388aad3cc1335bdb88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