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21 14:00
https://www.youtube.com/watch?v=Be6jePq27_8
정전 협정
http://www.japantimes.co.jp/news/2000/06/28/national/history/chinas-korean-war-pows-find-you-cant-go-home-again/#.V49z765BdFt
Chinese P.O.W. in 거제도
War Trash(전쟁 쓰레기)
무엇이든지 소유자가 쓸모없다고 하면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물건이 부서지거나 기계가
고장이 나서 쓰레기로 버려지기도 하고, 아직 훌륭한 기능을 하고 있는 데 소유자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여 버리기로 하면 그 또한 쓰레기가 된다.
작가 하진은 중국에서 태어나서 보스톤 대학에 유학하여, 동 대학의 영어 교수가 되었다.
그는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미군의 포로가 된 장다(Zhang Da)의 일생 이야기를 소설의
주인공 유 유안(Yu Yuan)으로 분장 시켜 쓴 자신의 작품에 "War Trash"라는 제목을 붙였
다.
제2차 중일 전쟁은 2차대전 직후 일본의 항복으로 끝 나지만, 숨쉴사이 없이 장개석의
국민당군과 모택동의 공산군이 싸우는 제2차 중국 내전 속에 휘말기게 된다. 초기에는
국민당군이 우세 했었다. 그러나 국민당군은 과격한 증세와 약탈, 극심한 부패로 국민의
지지를 잃은 반면, 공산군은 인민 해방군에 참여 하면 향후 토지 소유권을 줄 것을 약속
하고 농민에게 절대로 패를 끼치지 않는 정책이 주효하여 점점 군대 지원자가 늘어
났다. 더구나 많은 국민당군은 공산군으로 투항 했다. 이 투항 했던 군인들이 공산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하게 된다.
미국은 중일전쟁 동안 장 개석군을 도왔다. 그러나 그의 패색이 짙어 지자 점점 원조를
줄여 갔고, 급기야는 타이완 방어 까지 포기할 지경에 이른다. 모 택통이 막 타이완을
침공 할려고 하는 데, 김일성이 남한을 침략 한다. 미국은 제7함대를 타이완 해협에
파견하여 모택통의 타이완 공격에 대비 함으로 써 장개석은 기사 회생하게 된다.
장개석은 한국전에 국민당군을 파병할것을 미국에 요청하고 한국전을 통해서 본토
회복의 꿈을 꾸게 된다. 그러나 미국은 제2의 전선 형성을 우려 이를 거절 한다.
중공군에게 패퇴한 맥아더는 반격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그는 중국과의 전면전를
재의 했다. 이 계획에는 타이완의 장개석군과 협력, 남쪽에서 본토에 상륙하여 공격하고
한반도의 유엔군이 만주로 처들어 가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는 중공군 포로 21,700명이 수용 되어 있었다. 전쟁 발발 이듬해 부터
시작된 휴전 회담은 이 포로들을 전부 중국 본토로 보내느냐, 아니면 원하는 사람은 타이완
으로 보내 느냐는 문제로 질 진척 되지 않았다. 물론 북한과 중공은 다 보내라고 하고
이쪽은 포로가 원하는 곳으로 보낼 것을 주장했다. 타이완으로 가고 싶어 하는 포로 중에는
전 국민당 출신이 많았다. 이들을 처음에는 다 같이 수용 했으나 두 패의 갈등이 문제가 되기
시작하자, 두 그룹을 따로 수용 했다. 그러나 포로들은 대강 세 가지 그룹으로 분류 되었다.
본국 귀환 파, 타이완 이주파, 그리고 어느 쪽으로 갈지 모르나, 어느 쪽이든 자기 동료
포로 들의 협박과 테러에서 살아 남을 쪽으로 가겠다는 파로 나뉘어 졌다.
한국전에서 북한을 도와 미국과 싸우던 이들은 수용소 안에서 타이완의 장개석 편과 중국
본토의 중공편으로 갈라져 싸우게 된다. 비밀 회의, 정보기관의 자기쪽으로 오라고 협박
하는 강의, 엉터리 재판의 법없는 판결은 많은 포로들을 병신을 만들거나, 심하게 두들겨
맞기도 하고, 억울하게 반역자로 몰거나, 때로는 살인도 서슴치 않았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타이완쪽이 우세 했다. 어느 쪽이든 자기 쪽으로 끌어 들일려는 표적이 되면 많은
고초를 격었다. 급기야는 포로수용소 장 Frances Dodd 준장을 북한 군 포로들로 하여금
유인하게 한후, 공산진영 포로 쪽이 나포 하는 사건이 벌어 지기도 했다. 이는 타이완과
미국측의 중공군 포로들을 타이완 쪽으로 가는 것을 막고 전부 본국으로 돌아 가게 하기
위해서 였다.
결국 포로의 의사에 따라 석방하기로 합의를 보고 1953년 7월27일에 미국과, 북한과 중국
을 대표해서 북한의 남일이 휴전 협정에 조인 하게 된다. 즉시 6,000명의 중공군 포로들은
본국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머지 14,066 명은 얼마후 타이완으로 송환 된다. 이들의
운명은 마치 지옥과 천당의 갈림 길이었다. 본국으로 돌아간 포로 들은 자기들을 전쟁
영웅으로 환영해 줄 것으로 기대 했으나, 그들은 도착하자 마자 반역자로 낙인이 찍이고
수 없는 반성과 노동을 해야 했다. 이것은 1976년 모택통이 사망 할 때 까지 계속 되었다.
그 이유는 "Never surrender. Never let yourself be taken prisoner even at the cost of your
life"라는 중공군 규칙을 위반하고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반역자가 된
것이었다. 그 무서운 장개석 파들의 협박, 고문 그리고 회유를 이기고 조국에 돌아온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지옥 이었다. 중국공산당은 그들을 충분히 먹일 식량도 주지 않고, 그
추운 날씨에 방한 복도 변변치 않게 입히고, 따발총 조차 일인 당 한개 씩 주지 않고 싸우게
해놓고 죽지 않고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 왔다고 배반자로 처벌 한 것이다. 그들은 필요 없는
쓰레기에 불과 했던 것이다.
반면에 타이완으로 간 포로 들은 열열한 환영을 받았고, 아마도 그들의 향후 생활은 본국에
충성한 동료(?)들보다 훨씬 자유스럽고 풍족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장다는 갖은 고초 끝에 1980년에 그런 대로 복권이 되어 북경에 씨쭈안 식당을 열려고 자기
고향 메쉬안의 시장에게 허가를 신청 했는 데, 바뿌다고 도무지 만나주지를 않았다.
알고 보니 같은 고향 출신의 전쟁 포로가 타이완에서 사업에 성공하여 본토에 투자 할려고
시장을 만나고 있었으며, 그는 주정부가 초청한 손님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2016.07.22 00:02
2016.07.22 01:11
장개석이 비록 미국의 원조를 받더라도 본토 탈환은 가능치 않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千載一遇(천재일우)의 통일 기회였는데, 무능하고 못난 Truman때문에 놓져버렸다.
이차대전에 일본을 섬멸한 미군이 그까짓 중공군을 해치울 수 없었겠는가?
오로지 General Douglas MacArthur에게 그가 원하는 지원만 주었으면 한국통일은 충분히 가능하였다.
그당시 USSR은 미국을 상대할 힘이 없었고, 중공군은 누더기 군에다가 숫자만 많았으니,
장개석 상륙, 만주 폭격, Why not Beijing Bombings? 등등하면 모택동의 누더기 떼들은 꼬리를
뒷다리 사이에 끼고 달아났을텐데. 이는 그 후 몇년만에 미국에 귀화한 Russian Spy(이름은 잊었다)가
증언한 말에 의거한다. 영웅은 가버리고, 분단은 남았다. 어찌 통탄하지 않을건가?
2016.07.22 05:51
Your English poem(?) reminded me of "The road not taken".
http://www.yourmotivationguru.com/wp-content/uploads/2015/12/Robert-Frosts-The-Road-Not-Taken.jpg
정 선배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쏘련은 원자폭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49년에 원폭 실험에 성공하고 나서 김일성에게 남침을 허락 했다고 합니다. 원폭의 위력은
훌륭한 deterrent 가 되었음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 국민 여론이 크리스 마스
공격으로 북한을 멸망 시키리라는 기대가 무너진 후에 반전으로 돌아 서 버렸습니다.
"그 멀리 떨어져 있는 지도에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는 나라에 가서 왜 싸우느 냐?"는 식으로
말입니다.
No. | Subject | Date | Author | Last Update | Views |
---|---|---|---|---|---|
Notice |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 2016.07.06 | 운영자 | 2016.11.20 | 18089 |
Notice |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 2016.07.06 | 운영자 | 2018.10.19 | 32220 |
Notice |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 2016.06.28 | 운영자 | 2018.10.19 | 5807 |
Notice | How to Write a Webpage | 2016.06.28 | 운영자 | 2020.12.23 | 43733 |
651 | 육군 방첩대. 미군 CIC, 그리고 김창룡 | 2024.04.17 | 온기철*71 | 2024.04.17 | 10 |
650 | 김구의 일생과 암살의 원인 | 2024.04.14 | 온기철*71 | 2024.04.14 | 14 |
649 | 1945년 8월 15일 오후 강릉 홍제정 안마을에서 [2] | 2024.03.19 | 정관호*63 | 2024.03.24 | 70 |
648 | 이승만은 왜 김구를 제거 했을까? [1] | 2024.03.17 | 온기철*71 | 2024.03.18 | 46 |
647 | 1945년 8월15일에는 서울에 아무일도 없었다. [1] | 2024.03.13 | 온기철*71 | 2024.03.14 | 50 |
646 | 한국진공작전; Eagle Project and Napko Project [2] | 2024.02.22 | 온기철*71 | 2024.02.28 | 90 |
645 | 일제의 김구 암살 공작과 밀정 [2] | 2024.02.19 | 온기철*71 | 2024.02.22 | 78 |
644 | 장개석은 한국에 친중정부가 수립 되게 하려고 임정을 도왔다. [1] | 2024.02.17 | 온기철*71 | 2024.02.24 | 88 |
643 | 1945년8월15일은 과연 해방이었을까? [2] | 2024.02.06 | 온기철*71 | 2024.02.07 | 68 |
642 | Pearl Buck 과 유일한 [2] | 2024.02.02 | 온기철*71 | 2024.02.05 | 86 |
641 | 1947 년 Wedemeyer 사절단 방한과 미국의 대한정책 [1] | 2024.01.28 | 온기철*71 | 2024.02.02 | 56 |
640 | 東北工程: 동북공정 [7] | 2024.01.23 | 정관호*63 | 2024.02.06 | 275 |
639 | 해방정국 정치세력 [1] | 2024.01.10 | 온기철*71 | 2024.01.12 | 68 |
638 | 1945-1948년 남한을 통치 했던 미국인들(미군정 요인들) [1] | 2023.12.30 | 온기철*71 | 2024.01.09 | 72 |
637 | 당신은 여운형을 아십니까? [3] | 2023.12.13 | 온기철*71 | 2023.12.14 | 86 |
636 | History of L.A. Koreatown | 2023.12.12 | 온기철*71 | 2023.12.12 | 78 |
635 | 唐詩長篇卷之上: 당시장편 권지상 [2] | 2023.12.11 | 정관호*63 | 2023.12.27 | 57 |
634 | The American Occupation of Korea [2] | 2023.12.02 | 온기철*71 | 2023.12.03 | 85 |
633 | 미국은 천조국일까? [1] | 2023.11.21 | 온기철*71 | 2023.11.21 | 76 |
632 | 女真: 여진 [1] | 2023.11.16 | 정관호*63 | 2023.11.16 | 96 |
이글을 읽고 느낀것 하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성공과 행복의 비밀은 "줄을 잘 찾아서 서야된다."
그러나 자기가 택한 줄이 좋은줄인지 나쁜줄인지 미리 알기 힘든것이지요.
아마 중공으로 돌아간 포로들은 공산주의가 나쁘다는것을 알면서도
중공에있는 가족들 때문에 그리로 돌아갔을지 모르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도 옛날에 이렇게 줄을 서지 않었나해서 혼자 씁쓸하게 웃슴니다.
그때는 박정희 정권 아레서, 우리에게 두줄이 있었지요.
"미국 가는 줄"과 "한국에 남아사는 줄"
Do you think you had taken the right line or wrong line?
Why did we have to take one of the lines then?
We had a fate of taking one of the lines without knowing which one would turn out to be better.
Anyway, one way or the other, it was a good thing that we were free to take one of the lines.
One step further, we were given a choice of "Staying in U.S." or "Returning to home".
Again, we had no idea which were to be better.
So, some of us became "the prisoners heading for Taiwan" and the other became "the prisoners heading to home".
I do not mean to say one was better than the other.
But we were free to choose our ways.
The destiny decided our fate again there.
우리의 인생도, 결국은 "일종의 Prisoner가 아니였든가" 해서, 苦笑를 금치 못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