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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news.joins.com/article/20464939

          박보균 칼럼: 광개토왕비 우울한 진실

 

          "조선의 성리학은 관념 위주다. 사실에 소홀하다. 비석이 무엇인지

            알아볼 생각을 안 했다." - 윤명철 동국대 교수

        

          "고비를 찿은 행위자가 (일본)육군 중위라는 점은 놀랍다. 이억만리

           오지에서 그것을 찿았고 그걸 판독한 참모본부 무리들이 자기민족

           에게 유리하도록 비문을 변조 했다면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의 우국적 열정과 역사의 경도를 생각해 보아야한다."- 신봉룡

           전 건국대 교수

 

         1880년, 일본이 명치유신으로 탈 아시아를 외치며 유롭의 열강 같이

         되려는 개혁이 한창일 때, 일본군 스파이 사코 가게노부 중위는 만주

         를 누비며 그곳 을 탐사해서 지도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당시에 항간

         에 돌아 다니는 광개토왕비의 탁본을 접하고 그 고비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 조선 정부는 1888 년 일본정부의 발표 후에야 고비의 존재를 알게 되었

         다고 박보균은 그의 칼럽에서 지적하고 있다.

 

        일본이 명치유신이 한창일때 중국은 밖으로는 1,2차 아편전쟁

        안으로 는 태평천국의 난 등 내란으로 망국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를 회복해 볼려고 이홍장의 주도로 양무운동을, 사코의 스파이

        활동이 한창일 때, 시도하고 있었다. 이 운동은 원래의 유교적인 사상,

        청치제도는 그대로 유지하고 과학과 무기 기술만 열강의 것을 받아들여

        습득하면 그들을 물리칠수 있다고 하는 이율 배반적인 개혁운동이었다.

        계몽기를 거친 유롭은 산업화를 이루고 모든 면에서 청나라를 능가 하고

        있었다. 일본의 명치유신은 입헌군주제를 도입하고 과학 기술, 무기

        등을 유롭으로 부터 배워서 무든 분야에서 유롭과 똑 같은 나라로 변하고

        있었다. 두나라는 청일전쟁에서 그 힘을 겨루는 데, 전쟁터는 조선과 서해

        그리고 만주였다. 전쟁의 원인 제공 또한 조선의 동학란 이었다. 이 전쟁은

        명치유신의 성공과 양무운동의 실패를 증명하듯 일본의 승리로 끝난다.

 

        이와중에 조선은 무슨 일이 일어 나고 있었을 까? 1875년에 민비는 일본을

        등에 업고 대원군을 권좌에서 물러 나게하고 전권을 장악 한다. 그 이듬해에

        운요호 사건이 일어나고 곧이어 강화도 조약이 맺어 지면서 쇄국정책이

        끝나고 문호를 개방하게 된다. 이 때부터 일본의 수탈은 시작 된다. 조선의

        백성들은 자기나라의 탐관오리와 일본, 양쪽에서 수탈을 당하게 되어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짖고  베를 짜도 먹고 살것이 남지를 않았다고 한다.

        1882 년에 한미 수교가 이루 지고 그 이듬해에 민영익이 주미 대사로 가게 되고

        Lucus Foote가 주 조선 대사로 부임 했다.

        이러한 일련의 문호 개방, 특히 일본과의 통상은 일본의 이익에 치중한

        것이어서 백성들의 생활이 그야말로 기아 선상에 허덕이게 되어 동학란이

        일어나게 되고 이는 청군과 일본군이 동시에 동학군 진압을 빌미로 조선에

        들어와서 서로 충돌 함으로 써 청일전쟁(1894-1895)이 일어 나게 된다.

        이 스파이의 지리탐사가 유용하게 쓰였을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우리 민족의 자존심인 광개토 대왕비가 일본 장교에 의해서 발견되었고

        그 비문을 그들이 왜곡했다는 시실은 우리를 경악 하게 한다. 더구나 고려와

        조선의 우리 조상들에게서 이 고비에 대한 기록을 찿아 볼수 없다니, 참 한심

        스러운 이야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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