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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의 옛 발자취를 찾아서 3회
 

이번 모교 미주동창회 사진전에 참여한 선친의 옛 사진을 제출할 때 부족했던 점을 보강하려고, 내가 다시 두곳을 방문하여 새 사진을 추가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몇 가지 새 사실을 발견하였다. 선친의 학창시절 주소지가 현재 뉴욕한인교회가 되었고, 거기에 가서 목사님을 만나고, 옛날 신도부를 열람한 결과, 선친성함을 찾았고, 거기에 세례교인으로 올려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선친이 이승만박사께서 자신을 세례하여 주셨다고 여러번 들었던 일을 증명하였다.
이번 유월 육일 방문시에 몇 분 에 관한 기록을 찾아보고, 다음에는 3층과 4층의 내부사진을 촬영하고 다음에는 뉴욕한인교회 70년사 책자를구입하려고 하였으나, 품절이 되어 추후 100년사가 출판되면 그때 구입하려고 하며 성금을 기증하였다. Sept 8, 2014. 633 West 115th Street, New York, NY. 100년이 넘는 이 건물에 신축공사가 곧 시작될 계획이다.

 
Exhibit 1: 뉴욕 한인 교회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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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 2: 4층 큰 방(Not in G photos: The large room of the 4th floor) 촬영일 June 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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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 3: 3 층 큰 방[The large room of the 3rd fl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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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 4: Church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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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 5: 상향층계 좌: 하향층계 우[Staircase of the 3rd floor Upward vs Down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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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 6: 4층 작은 방 좌, Shower room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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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선친께서 1925년(교정 1923년) Belvedere Castle에서 찍으신 사진 4장이다. 그 중 2장은 돌담 앞에서, 그리고 다른 2장은 길가의 Bench에서 찍으셨다. 지난 1월 6일에 이곳을 방문하여 돌담 앞의 위치를 확인하였고, 그 자리에 내가 서서 사진을 찍었는데, 역광(backlight) 때문에 사진이 검게 나와서 여기서 빈 자리에 다시 두 장을 찍어서 선친사진, 나의 지난번 사진 그리고 이번 사진 등 세 쌍을 싣는다.

 
Exhibit 8: 선친 혼자서 돌담 앞 입상 좌측. 선친과 친구분의 입상 우측
1925년여기서 돌담은 끝난다. 그 우측으로 descending staircase가 있는 듯하며, Protective wooden fence로 막혔다. 사진 자체가 희미한데, 뒤에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이전에 혹시 Hudson River가 아닌가 추측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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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 9: 여기 나의 두 사진은 나와 돌담과의 거리를 조절하여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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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그 곳 gift store에서 내가 갖고 온 사진을 보였더니, 그 곳 여직원이 대단히 감명을 받았고, 이 Castle에서 촬영한 사진이었음을 확인하여주었고, 내가 그에게 이 두 사진 촬영장소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안다고 한 후 그 직원이 다른 여직원을 데리고 와서 우리 셋이 눈이 심하게 내리는 밖으로 나갔다. 처음 직원은 나에게 서 있을 위치를 정해주었고, 둘 째 직원은 내 Camera로 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희미한 옛 사진의 배경은 Hudson River가 아니고 그 곳의 Pond였다. Jan 6, 2015. 돌담 마지막부분 위에는 석주를 만들어 세웠는데 다시 보니 그 때에는 빈 공간이었고, 지금은 그곳 전체에 지붕을 만들었기에 지탱하기 위하여 석주를 세웠다. 90년의 세월은 갔지만, 이곳은 바로 위의 장소임이 틀림없다. 01/06/2015

 
Exhibit10: 2015년6월 6일 나 혼자서 빈 돌담을 찍었다.
Belvedere gazebo

Exhibit 11: 돌담 지역 나의 사진 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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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 12: 선친께서 친구 두 분과 번갈아가며 앉은 사진 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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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 13: 선친께서 다른 친구분과 찍으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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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사진 두장은 Bench에 앉으신 사진으로 두 친구분과 교대로 찍으셨는데, 한분은 돌담앞 사진에도 나오셨다. 내 생각으로는 그 분은 선친과 의형제 하셨던 이희경선생님 일 것이다. 그분은 미국에 더 오래 계시다가 독립운동하시면서 귀국하셨는데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시다가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해방후 독립유공자로 되어서 국립묘지에 안장되셨다.
또 한마디 더 할 건 그 분의 외동따님은 음악인이며 Soprano였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였고 성명은 이관옥씨였다. 이 장소는 건물 남쪽에 있는 보행로이며, 위치는 찾았으나, 그때 앉으셨던 Bench는 없었다. 그 대신 길 반대편에 벤치가 몇 개 있었다. 그리고 석주도 안보이고 게다가 앉으셨던 편에 있었던 Slope와 돌담은 모두 없어졌다. 90년 세월이 지났으니 얼마나 큰 변화가 왔겠는가? 벤치는 없지만 그 위치를 추정하여 건물과 탑을 바라보는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나무가 무성하여 내 시야를 막았다. 중요한 건 본 건물과 탑에 두 단계에 걸쳐 상과 하에 창문이 있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그 지점, 그 거리, 그리고 그 각도에서 이 둘을 볼 수 없기에 더 가까이 접근하여 그 둘 아래로 가서 그 밑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이 사실을 확인하였다.

 
Exhibit 14: 보행로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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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전후의 사진들은 Belvedere Castle 성곽 후면에 가서 선친과 그 친구분들이 함께 벤치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을 듯한 위치를 추정만 하여 사진을 찍었다. 이건 성곽과 보행로의 위치 배열을 고려하여 임의로 결정하고 찍은 사진이기에 그곳이라고 증명할 수 없었다.

 
Exhibit 15: 건물 가까이 보는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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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SNU-CM-AA Homepage에 실은 나의 글 제목이 처음에 “선친의 옛 발자취를 찾아서”였고, 2014-08-06일에 실었다. 그 후 2015년 1월에 뉴욕시에 방문하여 뉴욕한인교회, New York Historical Society, 그리고 Belvedere Castle을 방문하여 좀 더 재료를 얻은 후 2015-01-16일에 교정된 글을 다시 싣고 그 제목이 “선친의 발자취”였다.
2015-02-06일에는 영문으로 썼는데, 제목은 “MY FATHER’S FOOTSTEPS IN AMERICA” 이었 으며, 이는 첫째로 나의 아들, 며느리, 손자,손녀에게 읽히려는 의도였지만 그외에도 내가 잘 아는 미국인에게 읽히려고도 하였기 때문이다.
이번 모교에서2015-06-04~06/07 3일간 Teaneck, New Jersey에 주최하는32nd Annual Convention에 참여하였으며, 06/05일 금요일에 기념사진공모전에 수상을 하게되었음은 선친의 드문 교육과 경륜(經綸)을 심사원으로부터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은 노부모님의 막내외아들로 태어나서 선친께서 돌아가실 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돌아가시기 직전에 병상에서 나에게 “내가 네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고 말씀하셨다. 나는 선친으로부터 미국교육에 관한 설명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고, 손님, 친구, 친척이 오시면 선친께서는 술을 마시면서 그들에게 잡담처럼 미국이야기를 하실 때 나는 그 곁에 앉아서 듣곤 하였다.
그때가 나의 소학교와 중학교시절이었다. 그 후 내가 미국에 와서 선친의 학교기록에서 주소가 633 W. 115th St, New York City로 되어 있음을 알게 되어 찾아가보니 뉴욕한인교회였다.
2015-01-06일에 그곳 이용보목사님을 뵙고 선친께서 교회신도부에 등록이 되어있으며, 세례교인으로 나왔었다. 다음은 선친께서 말씀하셨던 걸 나의 기억으로 부터 찾은 내용이다.
선친은 계셨던 곳이 그저 셋방이라고 하셨다. 대표적인 이야기는 이승만 박사와의 대화이다.
그때 이박사께서는 중년이셨고, 선친은 아직 20이 못 되셨을 때였겠다.
어느날 이박사 왈, “아무개야, 아무개야”하고 (항상)이름을 부르셨다.
선친, “왜 그러시오?”
이박사, “내가 어젯밤에 잠을 못잤다.”
선친, “왜 못 주무셨소?”
이박사, “어젯밤에 달은 밝고, 나는 꼭 한잔 하고 싶어서 잘 수 없었다.”
선친, “한잔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지, 왜 잠까지 못 잔 단 말이요?”
이박사, “야, 너는 내가 목사인줄 모르느냐? 목사가 어찌 술을 마시느냐?”
선친, “술마시고 싶으면 목사노릇을 그만 두거나, 목사를 계속하려거든 술 생각을 말거나 하면 되지, 무엇이 문제요?”
이박사, “이런 고이한 자가 있는가? 썩 물러가거라. ” 일화였다.
어느 때인지 이승만박사께서 아버지를 세례시켜 드렸다. 그때 이박사께서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논문을 재제출하느라고 이곳에 오셔서 자신은 작은 방을 쓰셨고, 선친과숙부님 두 숙질은 큰 방을 쓰셨다고 들었다. 이렇게 함께 계시기를 3개월인지 6개월인지 되었다고 하셨다.
내가 찾아보니 1910년도에 박사학위를 받으셨으니 아마 그해로 생각된다. 여러해 후 선친이 재차 미국방문하시고 귀국하실 때 인편을 통하여 하와이에서 만나셨는데, 그 해는 1925년이었다.
이박사께서는 하와이에서 일본 첩자들로부터 피신중이셨다. 선친께 현재 상해임시정부가 섰는데, 선친보고 그곳에 가서 행정과 외교를 담당하라는 부탁이었는데, 선친은 조부님을 모시고 집일을 하셔야겠어서 못하시겠다 고 대답하고 헤어지신게 마지막이라고 들었다.
이 역시 1910년이었다. 그해가 한일합방되었던 해였고 선친과 숙부께서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으시고 숙질 두 분이 서로 얼싸안고 빈 방에서 하루종일 통곡하셨다고 들었다. 수 만리 밖에서 이런 소식을 들으니,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 역시 비분하였다.
여기 선친께서 2차 방문시에 찍으신 사진에 한 분이 두 장소에서 계속 나오시며 선친과 나란히 계신 것이 보이는데 이 분이 틀림없이 독립유공자 이희경 선생님으로 생각한다. 어느 여름 밤에 한국인 청년들이 모였는데, 그곳에 백인청년들이 놀려서 단체싸움이 일어났다. 결국 백인들이 모두 달아났고, 남은 사람은 선친과 이희경 선생님 뿐이어서 두분이 의형제가 되었다.
언젠가 같은 방에서 몇 달을 함께 기거하셨는데, 이 선생님이 음식담당이었고, 선친은 설거지와 청소를 담당하셨는데, 선친이 그 분으로부터 배우신 요리 한가지를 귀국하셔서 어머니께 가르쳐 드렸는데, “Italian Soup”이라고 부르며, 거기에 고기, onion, 파, 감자, 그리고 일어로 ‘가다꾸리’인데 영어로는 ‘Starch’로 국을 끓였는데 맛이 좋았다. 이런 일들이 모두 이 교회건물의 큰 방에서 일어났다.
나는 어찌하여 선친이 이곳에 오셨는지 알고 싶어서 목사님께 문의하였더니, 원래 이곳이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였다고 하셨다. 2014년 9월에 처음으로 NY Historical Society에 가서 이 건물이 과거에 무엇이었는가? 문의하였더니, 상담원이 옛 NY Times를 찾아 다음 재료를 주었다.
1. August 29, 1926, Houghton Company leased to Gaspard Edesse for 1 year. 결국 세를 놓았다는 말이다.
2. August 19 & 26, 1929, Rev. Pyung K Yoon께서 두 번에 걸친 설교를 하셨는데,
첫번째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불법합병 한것을 항의하였고, 두번째엔 동양과 서양이 힘을 합쳐 세계평화를 위하여 노력하자는 의미였다.
3. Wikipedia검색하여보면, 1919년 3월 1일에 삼일운동이 시작되었고, 1921년에 삼일운동을 뉴욕시에서 기념하였고, 같은 해 4월 28일에 교회설립을 결정하였고, 1923년에 459 West 21st Street으로 이사하였고, 1927년에 현주소로 이사하였다. 결국 이교회는 독립운동의 미주 본부였기에 감회가 새롭다. 이제 멀지 않아서 대한민국정부의 후원을 받아서 교회신축을 하게 되겠다. 이 오래된 건물이 헐리겠기에 나도 기회를 잃지 않고 내부 사진을 찍어 보존하려고 한다. 그곳 어느 방에서 두 분이 적어도 4년 혹은 그 이상의 세월을 보내셨음을 기억하려는 의미이다.

 
Kwan Ho Chung – June 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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