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7 01:42
http://news.joins.com/article/22515256?cloc=joongang|home|newslist1
(중앙산데이:2018.04.07, 실학별곡 - 신화의 종언 3 시대역행한 신분해방 반대론)
조선의 신분은 양반, 중인, 양민, 천민(노비)로 구분 되었다. 거의 절대적인 특권을 가진
양반 계급은 전인구의 2% 였다. 참고로 일본의 양반 계급인 사무라이는 약 6% 였다.
양반은 세금을 내지 않았고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들은 많은 토지를 소유 했고
농사는 그들의 재산 목록 중의 하나인 노비가 맡아서 지었다. 노비는 양반 집에서 모든
집안 일을 했다. 노비는 병역이 면제 되었고 세금을 내지 않 았다. 많은 양민은 양반의
토지를 빌려서 농사 짓고 소작료를 양반에게 바쳐야 했다. 징집의 의무가 있고 면제 받으려
면 군포라는 세금을 내야 했다. 나라 살림을 꾸려 야 하는 국가의 재정은 이들이 내는 세금
이 책임 져야 했다.
17세기에서 18세기 초의 조선의 노비 인구는 호적에 등록 된 전 인구의 40-50%였다고 한다.
거의 같은 시기의 미국 남부의 흑인 노예 인구 비례는 30-40%였다. 조선의 노비도 흑인 노예와
마찬 가지로 법적 권리다 없었다. 조선의 노비는 양반의 재산 이었으며 사고 팔 았다.
중앙 관료들은 평균 200명 정도의 노비를 거느 렸다. 유학의 거장 이퇴계 선생은 308명의 노비를
거느 렸다고 한다.
노비제도의 근원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 지지는 않았지만 세종 대왕이 이 제도를 확립 했다는
설이 유력 하다. 고려말에 전국에 많은 인구가 한곳에 정착 해서 농사 짓고 살지 않고 화전민
또는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 하는 유랑민들이 었다고 한다. 이를 해결 하기 위해서 이들을
양반들이 노비로 삼아 한곳에 정착 하게 했다고 한다.
실학자들은 이 비합리적인 노비 제도의 폐해를 빼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노비를 재물로 여기는 데 대저 같은 사람이면서 어찌 사람을 재물로 삼을 이치가
있는 가?"
- 유형원 반계수록
유형원은 실학의 할아버지로 지칭되는 실학의 원조 격이다. 1670년에 반계수록을 무례18년에
걸쳐서 완성 했으나 거의 100년후에 영조가 출간 하고 그 내용의 일부를 정책에 반영 했다.
"우리나라 노비의 법은 천하고금에 없는 법이다. 한번 노비가 되면 백세토록 고역을 겪으니
그것도 불쌍 한데 하물며 법에 있어서 반드시 어미의 신역을 따름에 있어서랴!"
- 성호사설 이익
성호 이익은 실학의 아버지 이다. 만약 노비가 양민과 결혼 할 경우 어머니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가 되었다.
정약용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 목민 심서에서 아버지가 노비일 경우에도 자식은 노비가 되어야
한다고 오히려 노비제도를 강화할것을 주장 했다고 한다. 목민 심서는 요지음 한국의 젊은이 들이
가장 선호 하는 직업 중에 하나인 공무원 시험에 중요한 준비 자료이다.
한글 번역판 중에는 노비제도 강화에 대한 그의 서술을 삭제한 책들이 많다고 한다.
아마도 그의 평등주의 사상을 흠집 내지 않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본문에서 중국의 과거제도는 신분의 차별 없이 아무나 응시 할수 있어서 인재를 널리 등용 했다고
주장 했다. 그러나 지주와 소작인으로 갈라 지는 경제 구조는 극심한 빈부 차이를 유발 하게 된다.
결국 돈많은 지주 자제들 만이 과거 시험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가난 한 소작인은 실질 적으로
비용이 없어서 기회가 박탈 되 었다.
2018.04.07 01:48
2018.04.07 01:53
http://blog.koreadaily.com/view/myhome.html?fod_style=B&med_usrid=barndrive&fod_no=1&cid=1019154
(J 브로그, 역사 수필(온기철): 조선의 노비와 미국의 흑인 노예)
2018.04.08 11:59
좌우지간에, 1900년대초에 엉뚱하게 Japanese들이 들어와서
노비 제도, 양반제도를 하루 아침에 통쾌하게 없애버리지 않었는가?
Hey, 심지어는 썩어빠진 이씨왕조 조차 쓰래기통에 처분했지요.
Kudos to Japanese ??
2018.04.08 23:24
근래에 “한국의 근대화는 일본이 했다.”고 주장 하는 학자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조선은 천지개벽 같은 세상의 변화에 자체적으로 적응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개혁을 빌미로 밀려오는 외세에 대항할 힘이 없었 습니다. 조선은 이리 떼 같은 많은
힘센 나라둘에게는 좋은 먹이 감이 었고, 일본은 경쟁자들을 하나 하나 물리치고
먹이를 독차지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유일 한 교육이었던 유학은 근본 적으로 과거 시험 공부 였으며, 그들의 job
Opportunity는 관리가 되는 것이었 습니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하고 과거제도가
없어진 다음에는 유학 공부를 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기회가 없어 지게 되었 습니다.
2018.04.09 15:51
*결과론적으로 일본이 한국을 근대화 시켜논데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겠지요?
그 목적이 일본을 위한 목적이 이었고 한국을 위한것이 아니었으니까 문제이고
(이등박문같은 사람은 겉으로는 한일 합방이 한국을 위한다고 주장했으나),
미국이나 서구 유럽제국의 도움을 받아 근대화하려했던 구한말의 노력이(보빙사 등등)
일본, 중국 등의 방해로 실패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한국은?---아직도 이 때의 story , 일본 문서등은
뭍혀있는 것이 많을 듯---
10 여년전 백두산 가는 길에 봉천에 들린적이 있었는데 만주국도 마찬가지 였었던듯, 시내가
우리 학생때 서울거리 같았읍니다(일본식 건물 등---)
* 다산 정약용 의 500 여 권의 저술은 그가 대학자 였음을 증명하고 남을 듯 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우상화, 영웅화는 좀 엽려 스럽씁니다. 수백명의 노비를 지닌 당시 양반 남인의
가문에서 태어난 분이니 ,지금의 잦대로 평가하기 힘들지만, 노예 제도 ,축첩, 기생들과 노는 것----
등등 ---그의 글에 남아 있는 사실들은 당시 이미 ,이런 조선의 문제를 제기했었던 율곡이나
다른 학자들에게 뒤 떨어지는 사상이라고 하겠지요.
그의 생가 "여유당"과 묘지가 있는양수리 마현 근처의 상업화, 정치인들까지 involve
다상 초당, 강진--- 수많은 책들, 좋은 책, 상업적 목적의 엉터리 책, 정치인들의 선전 목적성
책들 까지--다산 열풍이 좀 지나친 감이 있읍니다.
(비슷한 예가 윤동주 열풍---요즈음 책방에 가면 윤동주 관련책이 수도 없지요)
나라가 좁아서 그런지 사회의 모든 분야,--정치, 학문, 예술, 음식 모든 분야에서 한가씩 늘 광풍
처럼 지나가는 극단 적인 유행현상이 눈에 뜨입니다.
(예; 90 년대 녹차, 미술계 단색화 열풍 , 고급 커피유행 등등-- 정치도 좀 그렇고-)-
2018.04.09 23:00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못살던 시대의 자존심 살리기 역사관 에서 비롯 된 현상 인지도
모르겠 습니다. 요지음 에는 과거에 과장 된 사실이 좀 창피 하더라도 진실을 밝혀서
반성을 촉구 하는 쪽으로 발전 하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다 나라가 살 만 하게 되니까
자신 감이 생겼다고 봅니다.
No. | Subject | Date | Author | Last Update | Views |
---|---|---|---|---|---|
Notice |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 2016.07.06 | 운영자 | 2016.11.20 | 18147 |
Notice |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 2016.07.06 | 운영자 | 2018.10.19 | 32282 |
Notice |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 2016.06.28 | 운영자 | 2018.10.19 | 5868 |
Notice | How to Write a Webpage | 2016.06.28 | 운영자 | 2020.12.23 | 43794 |
652 | 부산형무소 살해사건 | 2024.04.20 | 온기철*71 | 2024.04.20 | 13 |
651 | 육군 방첩대. 미군 CIC, 그리고 김창룡 | 2024.04.17 | 온기철*71 | 2024.04.19 | 18 |
650 | 김구의 일생과 암살의 원인 | 2024.04.14 | 온기철*71 | 2024.04.14 | 17 |
649 | 1945년 8월 15일 오후 강릉 홍제정 안마을에서 [2] | 2024.03.19 | 정관호*63 | 2024.03.24 | 75 |
648 | 이승만은 왜 김구를 제거 했을까? [1] | 2024.03.17 | 온기철*71 | 2024.03.18 | 51 |
647 | 1945년 8월15일에는 서울에 아무일도 없었다. [1] | 2024.03.13 | 온기철*71 | 2024.03.14 | 52 |
646 | 한국진공작전; Eagle Project and Napko Project [2] | 2024.02.22 | 온기철*71 | 2024.02.28 | 90 |
645 | 일제의 김구 암살 공작과 밀정 [2] | 2024.02.19 | 온기철*71 | 2024.02.22 | 78 |
644 | 장개석은 한국에 친중정부가 수립 되게 하려고 임정을 도왔다. [1] | 2024.02.17 | 온기철*71 | 2024.02.24 | 89 |
643 | 1945년8월15일은 과연 해방이었을까? [2] | 2024.02.06 | 온기철*71 | 2024.02.07 | 68 |
642 | Pearl Buck 과 유일한 [2] | 2024.02.02 | 온기철*71 | 2024.02.05 | 87 |
641 | 1947 년 Wedemeyer 사절단 방한과 미국의 대한정책 [1] | 2024.01.28 | 온기철*71 | 2024.02.02 | 57 |
640 | 東北工程: 동북공정 [7] | 2024.01.23 | 정관호*63 | 2024.02.06 | 276 |
639 | 해방정국 정치세력 [1] | 2024.01.10 | 온기철*71 | 2024.01.12 | 69 |
638 | 1945-1948년 남한을 통치 했던 미국인들(미군정 요인들) [1] | 2023.12.30 | 온기철*71 | 2024.01.09 | 72 |
637 | 당신은 여운형을 아십니까? [3] | 2023.12.13 | 온기철*71 | 2023.12.14 | 86 |
636 | History of L.A. Koreatown | 2023.12.12 | 온기철*71 | 2023.12.12 | 78 |
635 | 唐詩長篇卷之上: 당시장편 권지상 [2] | 2023.12.11 | 정관호*63 | 2023.12.27 | 58 |
634 | The American Occupation of Korea [2] | 2023.12.02 | 온기철*71 | 2023.12.03 | 85 |
633 | 미국은 천조국일까? [1] | 2023.11.21 | 온기철*71 | 2023.11.21 | 77 |
http://blog.koreadaily.com/view/myhome.html?fod_style=B&med_usrid=barndrive&fod_no=1&cid=1018600
(J 브로그 역사 수필(온기철): 조선의 실학과 유롭의 계몽 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