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3 11:12
http://mnews.joins.com/article/22800825?cloc=joongang%7Chome%7Cnewslist2
(중앙일보; 개화 주창한 후쿠자와 조선침략 이념을 실학으로 포장)
일본 돈 만원 짜리에 등장 하는 후꾸자와 유키치는 일본 사람들의 영웅이다. 그는 일본 사람들에게 탈 아시아를
외쳤다. 옆 나라 조선과 청나라 사람과 달리 일본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과 같은 문화 인 이 되라는 것이다.
임오 군란 후에 고종은 개화 파 젊은 이 들을 군란 중에 일본 피해를 무마 하기 위해서 일본에 보냈다. 일본에
간 그들은 유기치를 알게 되었고, 그가 만든 게이오 의속에서 개화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2년 후 이들은 갑신정변을 일으 킨다. 이 쿠데타는 유키치가 개화파를 뒤에서 조종 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개화파들은 유키치를 끝 까지 스승으로 대접 했다.
2018.07.14 19:18
2018.07.15 01:12
개화 사상을 처음으로 양반 고위층 자제 들에게 가르치기 시작 한 인물은
제너럴 샤만호 사건으로 유명 한 박규수 입니다. 그는 김옥균에게 지구본을
보이면 서, 중화 사상이 허구 임을 가르 쳤 습니다. 개화파들은 중국의 지배(?)
에서 벗어 나는 것이 조선이 자주 독립국가되는 필수 불가결 한 일임을 주장
했습니다.
이동익은 봉원사 주지 스님 이었습니다. 그는 일본 통이 있고, 후쿠가와와 개
화파를 연결 시켜 주었으며 개화파들에게 서적등 서양문명의 교육 재료를
일본에서 가져와 봉원사에 개화들을 불러서 공부 하게 했습니다.
이들은 반청 친일 급진 개화파로 분류 되었습니다. 반대로 온건 개화파는 친청
반일로 이들과 대치 했 습니다. 전자는 20대 젊은이 들이 대부분 이었고 후자는
나이 가 지긋한 분 들 이었 습니다.
급진 개화파 젊은들의 경솔 한 행동은 4.19 이후 민주당 정권 하의 학생 대표들의
연방제 토의를 위해서 북한 학생 대표와의 회담 제안이나, 4.3 사건 진상 규명등
시대 동 떨어 지는 위험 한 주장을 연상 케 합니다. 이들로 인 한 사회 혼란과
장면 정권의 무능은 5.16으로 연결 됩니다.
2018.07.15 04:45
역사는 언제나 전쟁이나 국제적 분규에서 이긴 쪽이 옳다고 하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도 자주 보게됩니다. 만일 김옥균일파가 성공하였다면 대한제국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요.
예를 들면요, 이도오 히로부미 같은 사람은 안중근의사에게 죽어 우리 한국인들은 그를 대한제국을
무너뜨린 원수로 생각합니다.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그러나 대한제국의 말기에는 이도오는그 당시 일본의 정한파에 반대하는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없애자는 급진파), 대한제국을 옹호하는 온건주의자 중에 하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도오는 권력에 오르기를 여러번 했습니다.
고종도 대한을 지키기 위해 현대식 해군을 만드려고( 너무 늦었지만 ) 일본에 해군장교를 파견했습니다.
박영효가 일본 온건파에게 말하여 이루어 졌다합니다.
그분이대한제국의 첫 현대식 함정 광무호의 함장입니다.
가설입니다만, 개화파가 성공했다면 대한제국은 청나라의 손에서 빠져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중국은 윤봉길의사가 폭탄을 터뜨릴 때 까지 한국을 자기들 것이었다고 생각했고,
김구의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일본이 한국을 먹었으니 친일파는 나쁜 놈들입니다만,
우리 독립문의 독립문 글씨는 이 완용의 글씨라고 밝혀 졌습니다.
천하에 없는 매국노이지요. 이러한 사실을 무어로 설명할까요?
한반도가 이상한 곳에 있다는 것, 똑똑한 한국인들이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사실( 정말 알았는 지?),
아직도 대국들과 왜놈들이 한반도를 자기 입맛에 맞게 요리를 하려는 사실
그리고 덜 배운, 덜 익은 사람들이 한반도를 이끌어 왔다는 사실이 한탄스럽기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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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나는 조선 망국사를 잘 모릅니다. 겨우 들은 정도이며 별 흥미도 없어요.
그러니 후꾸자와 유키치를 스승으로 받뜨는 개화파, 김옥균, 박영효 등은
만고역적 이완용의 스승이며, 친일매국종자들의 원조이군요!!!
분노와 욕설을 금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