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15 01:01
https://mnews.joins.com/article/22973353?cloc=joongang%7Chome%7Cnewslist1
(중앙일보: 유성운의 역사 정치; 부귀를 경계 하라던 퇴계 이황은 어떻게 재산을 늘였나?)
조선의 양반에 대해서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의구심을 풀기 위해서 이것 저것 뒤지 다가 이영훈
교수 의 조선 노비제도에 관한 강의를 유 튜브를 통해서 듣고 아현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반은 전인구의 2%, 노비는 호적에 등록된 인구에 거의 40%에 달 했다고 한다. 1700년대
루지아나 주 흑인 노예 숫자는 인구 대비 40% 였다. 한국에서 지나가다 가 아무나 붙들 고 “조상
이 양반이요, 상놈이요? 하고 물으면 대부분이 양반이라고 할 것이고, 노비 였 다는 사람은 아무
도 없을 것이다.
2%에 불과 한 사대부 양반들은 대 지주 였고 농사는 노비와 소작인들이 지었다. 그들은 세금도
내지 않 았다. 병역도 무료로 면제 되어 병역세 조차도 내지 않 았다. 세금과 병역은 약 60%가
채 안되는 상민들의 몫이 었다. 왕권에 대등 할만 한 권력이었다. 말하자면 조선의 통치 권력은
왕실과 조정(사대부)이었 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모든 노동을 낮은 신분의 사람들에게 맏기고 온 종일 인륜을 공부 했다. 편하고 잘 살려고
부를 축적 하면 인륜이 아니 라고 책에 있는 이야기를 주장 했다. 그러나 그들은 2%인 자기 네 들 끼
리 그 위세를 자랑 하기 위해서 더 많은 토지와 노비를 소유 하려 했다.
그들은 노비를 사고 팔 았다. “비”에 해당 하는 28세 여자의 값은 목면 25필이 었고 20-30대 장정은
소 한마리에 목면과 곡식을 언저 주어야 했다. 이퇴계는 36만3542평의 토지를 소유한 대 지주였다.
그는 367명의 노비를 소유 했던 것으로 추정 된다. (본문 에서)
군주와 귀족에 의한 평민의 착취는 우리나라에 국한 된 역사가 아니다. 인류 역사에 오랬 동안 계속
되있던 현상이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중은 그들로 부터 나라 다스리는 권력 즉 주권을 자기들
이 빼았아 민주국가를 만들 게 된 것이다. 한 동안 민중에게 돌아 온 주권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라 져서 또한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위 수필이 좀 더 솔직 하게 이퇴계를 비판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적어도 나 자신이 배운 조선의
역사는 양반을 지나 치게 미화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민은 자기 집안이 양반에 속 하기를 갈구 한다.
군주와 귀족의 착취는 근대 이전의 일반적인 사류이지 조선 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 었다. 결코 부끄
러워서 이야기 못 할일이 아니다. 바로 알아서 지금 사람들이 옳바르 게 처신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2018.09.15 08:16
2018.09.15 08:4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79622
(오마이뉴스: 반기문의 15대 할아버지 반석형은 노비 였다)
이 기사를 쓴 사람이 한국 사람들의 조상이 노비 였을 확률이 양반일 확률의 20 배라는 것을
알았 는 지 모르 겠다. 그러나 유명인사의 조상이 노비라는 것은 크게 자존 심 상 하는 일이다.
다행히 반석형은 양반집에 입양되어 성도 얻었고 판서도 되 었다. 노비는 원래 성이 없기 때
문에 “반”씨는 얻은 성이다.
https://www.nytimes.com/2009/10/08/us/politics/08genealogy.html
(New York Times: In First Lady’s Roots, A Complex Path from Slavery)
A 6 year old negro girl was sold with price of $475 in 1850. Her name was Melvina.
When she was about 15, she was impregnated by a white man. She delivered
a son. He is great-great-grandfather of Michelle Obama.
No. | Subject | Date | Author | Last Update | Views |
---|---|---|---|---|---|
Notice |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 2016.07.06 | 운영자 | 2016.11.20 | 18193 |
Notice |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 2016.07.06 | 운영자 | 2018.10.19 | 32345 |
Notice |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 2016.06.28 | 운영자 | 2018.10.19 | 5922 |
Notice | How to Write a Webpage | 2016.06.28 | 운영자 | 2020.12.23 | 43838 |
653 | Asian Americans Part I [2] | 2020.05.13 | 온기철*71 | 2020.05.14 | 30162 |
652 | 신라어와 중국어; 신라와 연나라 [7] | 2020.10.15 | 온기철*71 | 2020.10.16 | 17918 |
651 | The Korean War, Timeline, [3] | 2013.06.24 | 이한중*65 | 2013.06.24 | 15111 |
650 | 나를 울린 한국 전쟁 사진 [5] | 2010.05.31 | 한원민*65 | 2010.05.31 | 11088 |
649 | Inchon-Seoul Operation,(3) 1950 [3] | 2010.05.21 | 한원민*65 | 2010.05.21 | 10178 |
648 | The Indelible images(1), 2006 [1] | 2010.06.04 | 한원민*65 | 2010.06.04 | 9974 |
647 | Inchon-Seoul Operation, (2)1950 [1] | 2010.05.18 | 한원민*65 | 2010.05.18 | 9786 |
646 | WAR in Peacetime, 1969 [3] | 2010.06.07 | 한원민*65 | 2010.06.07 | 9727 |
645 | The New Breed,(2) 1952 [2] | 2010.05.15 | 한원민*65 | 2010.05.15 | 9686 |
644 | My Father's Footsteps in America IV [2] | 2017.10.19 | 정관호*63 | 2023.03.31 | 9647 |
643 | U.S. Camera, 1954(1) [2] | 2010.06.15 | 한원민*65 | 2010.06.15 | 9605 |
642 | The New Breed, 1952 [5] | 2010.05.14 | 한원민*65 | 2010.05.14 | 9521 |
641 | U.S. Camera, 1954(2) [1] | 2010.06.16 | 한원민*65 | 2010.06.16 | 9484 |
640 | 최근 한국 역사적 News-Footage Collections [2] | 2011.04.06 | Rover | 2011.04.06 | 9383 |
639 | This is WAR (1), 1951 [3] | 2010.06.10 | 한원민*65 | 2010.06.10 | 9330 |
638 | [re] 47년 전 派獨 광부, 그들을 아십니까 [2] | 2010.12.21 | 황규정*65 | 2010.12.21 | 9297 |
637 | From Pusan to Panmunjom [6] | 2010.04.29 | 한원민*65 | 2010.04.29 | 9255 |
636 | Memories of the Forgotten War | 2011.04.16 | 김영철*61 | 2011.04.16 | 9250 |
635 | Battle for KOREA (5), 1993 | 2010.07.03 | 한원민*65 | 2010.07.03 | 9249 |
634 | From the Danube to the Yalu, 1954 [6] | 2010.06.09 | 한원민*65 | 2010.06.09 | 9237 |
토지를 갖는 것보다 노비를 갖고 또 가난한 양민과 결혼시켜 아이를 낳으면 이 또한 노비가 되니,
그 노비제도를 악랄하게 이용하여 끝없이 늘리면 땅을 갖고 농사만 짓는 것보다 수십배의 이익을
갖게 된다. 누가 이런 수학적인 Profit을 알아 냈던 천재인가?
이황인가? 그의 사부들인가? 그와 한 패거리 소위 선배들인가?
이조시대 가장 높고 존경를 받았던 이황의 더러운 면을 보여준 좋은 글이다.
이 세상에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네.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 제자들에게 너희 자신을 믿고, 법을 믿어라하셨던 말씀을 다시 생각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