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31 00:41
Following is my reply to a comment made by WM on “My father’s footsteps in America V” on Oct 15, 2018. 운영자가 제기한 의문에 관한 대답을 쓰는 건 선친의 미국기록을 쓰는 것보다 더 힘들다. 왜냐하면 이 일은 선친의 미국유학 연도보다 더 일찍 일어났기 때문이다. 학적부 조부님 상 모암공(茅庵公) 송덕비(頌德碑)에 참배: 나로부터 13대조(代祖) 즉 나의 13대 할아버지. 송덕비(頌德碑) 진주시 일반성면에 위치한 선산. 2010년 6월 귀국 때 성묘하였슴. Kwan Ho Chung – January 31, 2019 |
2019.01.31 00:55
2019.01.31 02:52
Koreans generally do not respect other person's legacy just like they don't respect themselves.
They do not understand the value of the past in their future. They don't save anything for the future.
This may be a part of the problem.
I am glad, at least, you seem to understand such things.
When I left my country, I have left a bunch of memorable stuff behind me.
All were thrown into the garbage dump and there was nothing left when I returned years later.
2019.01.31 09:22
정선배님의 조부님은 독립운동에 많은 돈을 쓰시지 않았나 추측됩니다.
김규식, 여운형 모두 신한청년당과 상해임정에 깊이 관여 했기 때문에
그들이 임정운영에 기부금을 부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구한말의 유학은 시찰단이나 외교사절단의 일원으로 일본, 미국등을 갖다가
정부의 허락으로 그곳에 남아 공부하는 경우, 또는 정부가 선발하여 보내는
경우 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적으로 개인이 가기는 무척 힘든
시대였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2019.02.01 06:01
우리 가정에 보관하였던 보물에 관한 비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요. 왜냐하면 이건 보통 보물이 아니었고, 애석하게도 잃어버렸습니다. 영구히...
그 당시 내가 아직 성인이 되기 전이었지만, 지금와서 그것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마
정관호 외에는 단 한 명도 없다고 믿습니다. 그러고 그것에 관한 아무 증거도 재료도 없지요.
나 역시 이 나이가 되니까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영구히 잊어지겠기에 글을 올리려고
결정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께서 의견을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제 글을 시작하여서 아마 한 1주 후쯤 여기에 실을 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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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에 많이 주저하였다. 왜 아버지 교육받으셨던 재료가 이렇게 없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관한 설명이었다. 그러자니 나의 초년의 빈궁하였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고,
그런 상황에 어찌 서류, 자료, 유물같은 게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러니 나는 빈곤을 딛고 우뚝 일어 선 승리자와는 거리가 멀고, 고난과 역경에서 겨우 살아남은
생존자일뿐이다.
이것이 내가 추정할 수 있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두 분이 관련되었던 10년간 겪으셨던 미국유학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