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 밀정 1부 - 배신의 기록 :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특집 - KBS뉴스(News)
간첩은 영어로 spy 이다. 그러나 남한사람들은 간첩이라고 하면 북한이 남파한 스파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수많은 스파이들을 남한에서 운영했고 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중에는 부지기수의 한국인 협조자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의 활동이 적국의 스파이들의 그것처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에게는 간첩 또는 밀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도대체 이사람들이 연루된 사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일본이 파견한 간첩과 밀정이 한국에 있을 까? 한국은 외국에 첩보활동을 얼마나 하고 있을 까?
국수주의가 난무하는 세상에는 적과 우방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정보는 경쟁에서 이기는 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국가 전락이다. 지금 친일이냐, 항일이냐를 따질 때가 아니다.
“밀정”에서 남한이 배워야 할 역사적 교훈은 현 시점에서 첩보활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심사 숙고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시 일본정부의 첩보활동 조직에 대한 연구에
더 큰 강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2019.08.18 00:43
2019.08.18 05:11
(최재형; 시베리아의 독립운동가, 노블레스 오블리스의 표석)
일재에 항거한 조선사람중에서 가장 훌륭한 분은 안중근의사라고 생각한다.
안중근의사가 이등박문을 암살하는 거사를 성공하게 도와준 분이 최재형선생이다.
안중근의사의 용기, 인품과 사상은 한국사람들, 특히 지도자들이 본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분과 같이 거사를 도모한 사람이 밀정이 되다니, 사람의 마음이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2019.08.18 20:17
이런 상황을 표현하는 말로서 변절(變節)이란 표현이 있다.
자신의 절개나 지조를 지키지 못하고 변한 경우로 그 예가 상당히 많다.
춘원 이광수씨도 그 중의 한 명이고 기타 많은 사람들이 한때 일제에 항거하다가 감옥에 갔고,
위협과 회유에 굴복하여서 친일이 된 사람들이다.
변절지를 많이 매도한다. 아마 그들 역시 할수없이 변절하게 되었다고 생각해본다.
뱐절하지 않은 분들은 거의 모두 혹독한 고문으로 얼마 살지 못하고 일찍 사망하였으니
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는가?
그 중의 한분이 선친과 의형제를 맺었던 이희경선생이다.
이승만박사의 지시하에 귀국하여 독립운동을 지하에사 하다가 결국 일경에 체포되었고,
그 후 상태가 악화되어 귀가하셨지만 얼마 못가서 돌아가셨고,
그 후 이대통령이 그분의 외동 따님 이관옥 음대교수를 초청하였다.
선친은 항상 이박사의 오른 팔이었던 이희경선생이 계셨다면 이대통령이 이렇게 부패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2019.08.18 22:48
Koreans has been very busy to find the reasons why Japanese is so bad.
They do not want to know why the Japanese were so strong and better than
Koreans in many areas. To know the enemy is the elementary rule of
the war. Koreans traditionally consider Japan is the worst enemy, yet
they stop learning about them. Collaborators should not be honored
mistakenly, but Koreans should not be blindsided by antiJapanese sentiment
and pay attention to not only what they did but also how they did it.
Then you can learn something and plan ahead.
(이영훈교수)
https://mnews.joins.com/article/23555284?cloc=joongang%7Chome%7Copinion
(중앙일보: 승호군 칼럼; 한국사학자 카이텐)
이영훈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발간하여 사회적 물의를 겪고있다.
일본 우익단체의 사주를 받은 밀정이 아닌가 의심해 본다. 일본 우파는 지속적으로
한국내의 분열을 조작하기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Intelligence is not a simple collection of information. Information is coming from
many government agencies. It needed to be collected to one center. It has to be analyzed
correctly and make a sound judgment. Actions based on that judgment is decided by
politicians. During the Korean War, the U.S. had the information that 200,000 Chinese troops
were in the north near the Yalu River. They even spotted Chinese in North Korea. Furthermore,
주을레 warned to UN that Chinese troop will enter into NK if UN troops cross 38 parallel.
However, the US concluded that the Chinese would not cross Yalu(압록강). Consequently, 400,000 lives
were dead. The U.S. had information about 9.11 attackers, but they were sitting in branches of
intelligence agencies because there is no one center that information was collected and analyzed.
Ironically, they knew it but ignored. As a result, 3,000 civilians were dead.
2019.08.20 05:41
[
시사기획 창] 밀정 2부 - 임시정부를 파괴하라 :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특집 / KBS뉴스(News)
2019.08.20 09:19
나라를 잃어버린 조선사람들은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독립운동을 중국본토, 만주,
연해주와 시베리아에서 하게된다.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이 상해임시정부 수립의
역사적인 배경이었다.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서, 쏘련이 만들어지기
시작한지 2년후이다. 일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연두
교서에서 발표하고 파리평화회의가 열리던 해에 3.1. 운동이 일어 났다.
같은 해에 중국에서는 5.4운동이 일어났다. 파리평화회의에서 패전국 독일령이었던 산동
반도가 중국과 같이 연합국으로 참전했던 일본으로 넘어가자, 중국사람들이 이에 분노하여
일으킨 거국적인 시위였다. 반 크리스찬, 반 유럽, 반 유교 운동이었다. 이 틈새에 국제 공산당 조직.
이 끼어들어 얼마지나지 않아 중국에 공산주의가 퍼진다. 중국은 친서방 세력 친쏘 세력
으로 갈라진다.
서방세력은 중국을 망가진대로 두고 자기들 이득을 취하려 했기 때문에 손문을 홀대했다. 결국 손
문-장개석도 레닌의 도움을 받아서 중국을 평정 했다. 상해임시정부도 레닌의 자금이 주가 되어
만들어 졌다. 레닌이 만든 코민테른(국제공산당)은 동아시아에 공산주의 확장에 쏘련 초기 부터
적극적이었다.
많은 조선사람들이 조선 말기, 일제시대에 잘살아볼려고, 또는 일본의 정책때문에 만주에
이주했다. 자연히 이곳에서 독립운동을 하게되었고 접경지역이 근거를 두고 조선안에 들어가
무장 투쟁을 했다. 또 울라디보스토크, 시베리아에 이주한 한인들도 독립운동을 했다.
홍범도와 김좌진 장군이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후로는 만주 조선인에 대한 탄압과
감시가 극심해졌고 일본군이 만주에서 활동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그래서 만주 독립군들이 시베리아로 옮기거나, 모택통의 군대와 같이 항일 투쟁을 하게된다.
이들은 러시아-쏘련과 일본의 관계에 따라 활동에 제약을 받거나 도움을 받는다.
일차대전중에는 일본과 러시아가 한편이어서 독립군에 불리했으나 볼세비키 는 백군을 지지하는
일본과 적대관계였다. 시베리아의 독립군은 볼셰비키와 같이 러시아 내전에 참여했고 그 후에도
레닌은 독립군을 도왔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시작될 무렵에 일본과 쏘련이 불가침조약을 맺고, 쏘련내에서 독립군의
활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해방전에 이미 남북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독립운동의 공과도
남북분열로 인해서 따지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김원봉과 김구, 홍범도와 김좌진이 좋은 예이다.
There are a lot of good documentaries that we can watch nowadays.
This one seems to be one of them. Once I started to watch, I could not turn it off.
Actually, there are endless numbers of good Korean documentaries available on YouTube.
I am glad that some of the younger people in South Korea are looking into our tragic past.
While the younger people are doing this kind of works, for us, as the older Korean people,
will it be wiser and better than watching the stupid Korean dra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