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31 11:52
https://m.youtube.com/watch?v=ZGd5yVcjF0M
(Jtbc news 7.30.2018: 122년전 뼈 아픈 아관파천 — 고종 지나간 120m 길 개방)
http://m.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904
(구한말 실패한 친미 쿠테타, 춘생문 사건)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7JrH&articleno=15973176&categoryId=758557®dt=20170218230735
(정동 구락부; 정동파)
정동에는 외국 공사관이 밀집 되어 있었다. 여기에 주재 하고 있던 외교관들은 정동
구락부 라는 사교 클럽을 만들 었다. 이들 주위에 조선 정치인 들이 모여 들었고 이
들은 반일, 친미, 친러 성향을 띠고 있었다. 이들을 정동파라고 한다.
청일 전쟁 전 까지는 조선은 청의 직접 통치를 받았다. 감국 위안스카이는 고종 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민비는 친청 온건 개화파 내각을 만들어 그런대로 일본을
견제 할수 있었다. 1894년 동학란 진압을 빌미로 청,일이 싸움이 붙었고 일본은 재 빨리
경복궁을 점령 하고 대원군을 앞세워 친일 내각을 구성 하고 갑오경장을 실시 했다.
민비와 고종은 권력을 상실 했다. 민비는 박영효의 환심을 사서 일본과 친하여 정사에
끼어들려고 했다. 대원군은 반쪽 권력을 채울려고 허튼 짓을 하다가 일본 측에 발각 되
어 퇴장 했다. 그러던 중 청일 전쟁이 끝나고 시모세끼 조약이 맺어 졌다. 조선, 요동 반도
, 타이완이 일본 손에 들어 갔다. 그러나 단 6일 만에 러시아가 독일과 프랑스를 꼬두
겨서 일본에게 요동 반도를 청국에 반환 할 것을 요구 하자 일본은 할 수 없이 이를 받아
들 였다.
러시아가 일본 보다 쎈 것을 본 민비는 정동파를 기용 하고 친일 개화파를 내치기 시작 했다.
민비가 자기들을 살해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린 개화파는 일본, 대원군과
내통 하여 민비를 살해 했다.
이후 일본을 등에 업은 개화파는 권력의 전면에 나서게 되고 정동파는 다시 밀렸다. 한편
고종은 개화파, 대원군 세력, 일본 공사관 사람들에 둘러 싸여 바들 바들 떨고 있었다.
모두 다 민비 살해에 관여 한 사람 들이었다.
정동파는 이러한 고종의 상태를 십분 이용 해서 쿠데타를 획책 했다. 처음 시도한 춘생문
사건은 미국 대사관으로 고종을 모셔(납치?)가서 자기들이 권력을 잡으려 했으나 실패
했다. 두 달 후에 친러 정동파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고종을 대려 갔다.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도착 하자 마자 민비 살해에 관여 한 것으로 의심 되는 개화파 전원의 참살을
명 했다. 친러파가 쿠테테에 성공 하여 반대 세력인 친일 개화파를 숙청 한 셈이다.
2018.07.31 12:32
2018.07.31 13:10
I think they do this kind of things because history is dressed up with the clothes that people
see it as if the king is rescued. But in fact the king is sort of captured by the interest group
who are hungry for the power. I would like to call it “친러 파 쿠테타” instead.
I am wondering what people are thinking when they are walking on the newly decorated
path. They probably will cry for the poor king. What a lie that is!
I am glad that someone is thinking on the same line. Thank you.
2018.08.01 00:06
"고종은 러시아 공관에 들어서자 마자 일은바 *을미사적로 불리는 총리대신
김홍집, 내무대신 유길준, 농상공부대신 정병하, 군부대신 조희연 등에 법무대신
장박 다섯 대신을 .... 잡아 죽이라고 지시 했다. 물론 사살상 친러파의 명령이
었다. 김홍집, 탁지부 대신 어윤중, 장병하는 피살 되었으며 유길준, 장박, 조희연
은 일본으로 망명 하였다."
- 한국 근대사 산책, 강준만 지음
* 을미사적; 을미사변(민비 시해)에 관련 된 4명의 대신들
고종이 부를 때 마다 어려운 시기에 정파에 개의치 않고 성의 껏 임무를 수행 했던
김홍집의 최후는 비참 하기 이를 때 없었다. 누구에게 어떻게 죽었는 지는 분명
하지 않으나, 길거리에서 순검과 군중에 의해서 피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시체는
군중에 의해서 질질 끌려 다녔다. 그가 역적 죄를 지었기 때문에 가족이 몰살하고
집안이 몰락 했다.
"일개 경관을 시켜서 칙령을 입으로 전 하고 도로상에서 짐승을 도륙 하듯 학살 하다
니 ...., 이번 아관파천은 국가를 위하여 복수를 하려는 거사였는 지, 친러파 일당을 위한
권력 쟁탈의 계책인지 바로 복수의 명분을 빌어 권력 쟁탈의 사심을 푼 것이리라."
-한국 근대사 산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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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관파천'…고종의 120m 피난길 복원...
Is there something more worthwhile than restoring the history of a national shame?
Well, maybe it will be good to remember a piece of our shameful history,
so that we do not repeat it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