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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youtube.com/watch?v=fGBcXLb7-os
  http://historycoolcool.blogspot.com/2009/07/zhou-enlai-and-his-role-in-chinas.html

  위 web address는 주을레와 맥아더의 일생을 요약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한국전쟁은 맥아더와 주울레의 싸움이었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이다.
  전자는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고, 교만한 성격 때문에 전쟁중에 본국의 소환으로 퇴임한 반면
  후자는 겸손하고 철전지 원수와도 협상할수 있는 아량을 가지고 있어서 오랜동안 중국의 2인자의
  자리를 지킬수 있었다.
  
  1924년 이후, 공산당과 국민당은 같이 힘을 합처서 (제 1차 국공합작), 당시 중국내 여러 지방을
  지배 하고 있던 군벌을 제거하고 중국을 통일하는 전쟁을 벌린다.(북벌)
  손문이  막 시작 할려다가 죽고 장 개석이 승계하여 이를 완수하게 된다. 장개석과 주을레는
  황푸 군관학교에서 같이 일했고 북벌동안 같이 협조해서 싸웠다. 군벌의 마지막 보루 였던
  상해로 장 개석 군대가 들어 가기전, 주을레는 상하이 노동자들을 동원 장 개석을 맏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 데, 장 개석은 약속을 어기고 상하이 제벌과 깡패조직의 편을 들어 오히려
  공산주의자들(주을레)을 공격 했다(상하이 학살). 이로 인해서 공상당과 장개석의 싸움이 시작 된다.

  이후 주을레는 장 개석에게 쫒겨 대장정(long march)으로 죽을 고생을 하고 북쪽 시안성 예안에
  겨우 연명을 유지하고 있는 데, 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하기 시작 했다. 그러자 공산군과 싸우지 말고
  힘을 합쳐서 일본을 물리치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급기야는 장쩌린이 시안에서 장개석을 체포 감금하게
  된다(시안 사건). 이 때 협상에 중요한 역활을 해 낸 인물이 주을레이다. 그와 장개석은 제2차 국공합작
  을 하게 된다. 이후 일본의 다나까(?)수상이 중국을 방문 주을레에게 남경 대학살에 대해서 사과 하자,
  주을레는 "당신들이 아니었으면 오늘날의 우리는 없었을 것이요."라고 했다고 한다. 만약 일본 침략이
  없었으면, 대장정이후 지처 빠진 소 규모 공산당 군대는 몰살 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주을레는 "김일성의 8월 승리 장담"을 믿지 않고 260,000군대를 북한 접경으로
  이동 시키고, Lei Yinfu를 시켜 한국전쟁 상태를 분석해서 보고 하라고 명령했고 그는 보고서에서
  맥아더가 인천에 상륙할것을 예측했다. 그러자 이를 쏘련과 북한에 알렸다고 한다.
  그리고 맥아더의 인천 공격이 시작 되자 주을레는 북한에게 10만 병력이 없으면 저항하지 말고
  퇴각하라고 충고 했다.

  인천 상륙후인 9월 30일 주을레는 미국이 38선을 넘어 오면 중국군이 북한에 진입할것이라고 미국에
  경고 했다. 그리고 북한 지휘관에게는 북한군은 퇴각하면서 유엔군을 유인하라고 충고 했다.

  맥아더는 주을레의 경고를 "Bluffing"으로 해석했고 북한군의 싸우지 않고 도망가는 것을 보고
  적을 과소 평가 한 남어지, 겨울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체 겨우 몇주 만에 전쟁을 완전 승리로
  끝내고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해준 다고 부하들에게 약속하고 압록강 까지 진격했다.
  이미 맥아더 군대의 후미에 와있는 중국군은 이들을 완전 포위 공격하여 섬멸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를 가진 맥아더는 병기라고는 따발총, 그것도 모자라서 앞에 달려가다가
  쓰러져 죽은 병사의 것을  줏어서 쏘는 군대한 테, 그의 자만이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 한 것이다.
  맥아더의 군대는 도로가 있어야 진격할수 있었고 주을레의 군대는 산등성이를 타고 걸어
  들어 올수 있음을 왜 몰랐 던가? 상대를 얃 잡아 본 죄 값이라고 할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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