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en.wikipedia.org/wiki/Siberia#/media/File:Siberia-FederalSubjects.svg https://en.wikipedia.org/wiki/Siberia#/media/File:Siberia-FederalSubjects.svg
시베리아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광활한 지역이다. 17세기 이후 부터 러시아의 영토 였다고
한다. 위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서로는 우랄 산맥과 태평양에 이르고, 남북으로는 북극해에서 카자크스탄과
몽골리아와 중국과의 경계를 이룬다. 시베리아는 러시아 전체 면적의 77%를 차지하나 인구 비중은 27%에 불과해서
인구밀도는 세계에서 가장 적은 지역중에 하나라고 한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그리고 발해에 걸처서 이지역의 일부는 우리민족의 생활 터전이었기 때문에 한국식 농장들이
드물게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괄목할만한 한국인들의 이지역으로의 이주는 19세기말 부터 20세기초, 조선말기
에 시작되었다. 볼셰비크 혁명 일어 날 때 쯤에는 무려 30만명의 한국인이 시베리아에 살았다고 한다.
1905년 러일전쟁이 러시아의 승리로 끝나고 조선이 완전이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이후 한국 사람들은 만주와
시베리아에 본부를 두고 일본군을 상대로 게일라전을 하게된다. 이들을 우리는 독립군이라고 부른다. 조선인들과
공동의 적인 일본을 상대로 싸우는 조선 독립군에게 레닌은 무기를 주고 군사훈련을 시켜 주었다고 한다.
1918년에 시베리아의 한국군은 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들은 볼세비크 레드아미와 같이, 일본과 미국의 연합군에
대항해서 싸우게 된다.
볼세비크 혁명이 성공하기 전, 러시아 왕정(Tsar)이 망한 직후에는 친 서방 정권인 Alexander Kerensky가 정권을
장악한다. 케렌스키는 미국으로 하여금 trans-Siberian railway를 관리하게한다. 미국은 철도 관리 인원 외에
공산군과 싸우는 친 서방 정권을 돕기위해서 미 8군의 일부 5,000명을 시베리아에 파견한다. 미군은 일본,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카나다 군대와 연합해서 한국군과 레드아미 연합군과 싸우게된다.
레드 아미에 반대해서 싸우는 white army가 대패하자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이를 구하는 작전에 실패하고,
한국군과 레드 아미 연합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