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7 16:56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13285
“조선혼 어디갔나” 500년 짝사랑 통탄한 권덕규
(국어학자이자 사학자였던 권덕규(權悳奎·1891~1950)의 글이다.)
조선 지식인들이 한족(漢族) 왕조 명에 대해 지닌 숭앙의식은 각별했다. 시발점은 1388년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이다. 이성계 일파는 회군을 감행하면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역할 수 없다(以小逆大不可)’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1368년 명이 몽골족의 원(元)을 쫓아내고 중원의 주인으로 등장했던 현실을 고려한 명분이었다. 고려의 신하로서 역성혁명을 꾀한 이성계의 입장에서는 명의 책봉(冊封)을 받아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을 염두에 둔 포석이기도 했다
세종은 명에 대해 지성사대(至誠事大)를 표방했다. 열과 성의를 다해 명을 섬기겠다는 것이었다. 조선이 이렇게 머리를 숙이자 명 또한 조선을 ‘가장 충순한 예의지국(禮義之國)’이라고 찬양했다. 요즘도 즐겨 쓰는 ‘동방예의지국’의 원조인 셈이다. 명이 조선을 ‘예의지국’이라 칭했던 의도는 이중적이었다. 하나는 조선을 찬양하는 의미지만, 다른 하나는 “조선은 결코 명에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압박이 담겨 있었다.
*내가 자랄때는 이런 역사 이야기를 대 하지 못했다. 요지음은 조선의 진실된 역사를 꺼리낌
없이 토로 한다. 잘살고 볼 일이다. 아무튼 기쁘다. 명의 대마는 미국이다. 조심해야 한다.
한글날이 가까워 온다. 지성사대를 지성으로 실행 했던 왕이 한글을 만든 목적은 무엇일까?
2021.10.07 21:22
2021.10.08 06:24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13400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오래 가르쳤고, 지금은 어린이책 작가인 저자 정영애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도굴, 절도, 은닉과 관련한 이야기로 추리소설처럼 책을 시작했다. “훈민정음에 대한 모든 것을 너에게 들려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어”라면서. 청소년이 흥미를 느낄만한 이야기로 시작해 훈민정음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이다.
이야기의 진정한 출발은 물론 세종이다. 당대 세력과 부딪히며 말과 글의 호환을 고민했던 세종의 마음을 헤아린다. 세종이 나빠진 건강과 싸우며 훈민정음의 체계를 다듬은 이야기로 시작해 총애를 받았던 신미 스님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문종ㆍ단종ㆍ세조는 물론 고종 시대까지 한글의 역사를 훑어내려간다. 이 과정에서 권력이 뒤바뀌는 역사 이야기가 들어가게 되고, 한일합병에서 시작해 세계의 근대사까지 포괄한다.
2021.10.08 06:4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98960
애초에 세종이 한자를 한글로 대체하려고 한 적은 없어요. 한자를 사용하는 데 여러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이두나 향찰 같이 한자의 음과 훈을 사용하여 우리말을 표현하는 방법이 일반적이었는데, 이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문자가 등장한 거죠. … (중략) 수만 자의 한자를 익힌 사람은 지극히 소수였어요. 하급 관료들조차 이두가 아니면 명령을 이해하지 못했고, 백성은 대부분 까막눈이었어요. 여기에 여성들가지 고려한다면 한글의 등장이 양반 관료에게 피해를 준다?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양반 관료들이 이해하는 데는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답니다. '남성-양반-관료'가 주도하며 '하급 관료-일반 백성-여성'이 이를 따르는 구조처럼 한자의 '보완재'로 한글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돼요. (본문 80)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오로지 평민을 위해서 만든 문자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한글의 탄생 배경에는 조금 더 효율적으로 관료들에게 명령을 전달하고, 정치계통을 이끌어나가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는 걸 윗글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세종대왕이 오로지 이타적인 이유로 만들었던 게 아닌 거다.
2021.10.08 07:55
https://youtu.be/jv7Bt8RIAtE
훈민정음 창제 이유
2021.10.08 09:13
훈민정음 reminds me of my recent encounter with one group at Seoul who organizes some sort of new museum only for the 훈민정음-involved affairs/history, located very next to the national museum - shamefully I never visited but understand it is located at 용산 -, Dr. Ohn.
Apparently, they made a new museum only for the "훈민정음- involved affairs" and decided to make one separate room/section dedicated only to my mother 조애영 who devoted her life to dig out many hidden works of literature written in 한글 among the 양반집 규수 in 경상도 through centuries – one of her works was published as 내방가사 which is getting substantial attention lately ( I know her two students got the Ph.D. based on her works) -.
So they tried to collect her original calligraphies written in 한글 to display at the museum and tried to reach to my brother to get his help through 조태열, former UN 한국 대사 till lately, who is the son of 조지훈, my mother’s nephew.
So I presume there are increasing interests in 훈민정음 in Korea and they finally made(?) the museum specifically designated to this 훈민정음 as I know of.
2021.10.08 12:28
우리나라가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 모두 글없는 국민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이 세상에서 참으로 빈천한 민족이었을 것아다.
나라는 빼앗겼다가 다시 찾을 수있었다.
하지만 글없는 국민은 타고난 문맹이다. 문(文)이 없는 것보다 더 바참한 일이 어디있을까?
그러기에 우리나라의 첫째 위인(偉人)은 세종대왕이시고, 둘째 위인(偉人)은 이 충무공이시다.
2021.10.08 14:14
I did visit 한글 뮤지음 in Yongsan, Seoul, Korea about 4 years ago.
A docent was explaining the things on the wall to middle school
students. My wife and I followed her. I asked when 한글 became
official alphabet in Korea at the end. She did not know as I expected.
I think Koreans should remember 한글 did not replace officially 한문 which is
basically Chinese language for longer than 400 years. I think it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reasons that Korean people lost their country. 세종
did not intend to replace 한문 with 한글, to begin with. In Chosun the
official written language was Chinese that was written exactly
same as the Chinese did.
2021.10.08 14:41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1508
1894년 갑오개혁이라는 근대적 대개혁을 단행하는 가운데, 갑오개혁기 조선 정부는 1894년 11월 칙령 제1호 공문식(公文式)을 공포하여 종전의 한문 대신에 국문을 공문으로 바꾸었다. 450년 만에 언문이 비로소 공식적인 국자의 자격을 얻은 것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글)]
따라서, 훈민정음의 창제에는 비단 고유어의 표기 수단을 만든다는 실용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바른 소리를 가르친다는 목적도 있었던 것이다. 이는 훈민정음을 만든 뒤 시행한 최초의 여러 사업 가운데 상당히 비중이 높았던 『동국정운 東國正韻』과 『홍무정운역훈 洪武正韻譯訓』의 편찬에서도 드러난다.
『동국정운』은 그 당시 우리의 한자음을 중국음과 비교해 볼 때 왜곡된 것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바로잡을 목적으로 편찬된 것이다. 물론 바로잡는다고 해도 완전히 중국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하지도 않았지만, 이러한 목적 때문에 『동국정운』은 당시의 현실 한자음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게 편찬되었으며, 당시의 중국음에 근접시키려는 노력을 담고 있었다.
요컨대, 『동국정운』은 당시의 한자음을 통일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나, 현실 한자음과의 거리로 인하여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결국 30년 만에 쓰이지 않게 되었다. 『홍무정운』은 명나라 홍무제(洪武帝)가 중국의 한자음을 통일시키려는 목적으로 편찬한 책이었는데, 『동국정운』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인위적인 노력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글)]
2021.10.08 14:55
https://emuseum.go.kr/m/detail?relicId=PS0100203400700720700000
은촌(隱村) 조애영(趙愛泳, 1911~2000)이 1970년에 쓴 가사. 한양으로 대표되는 조선왕실의 역사를 그려낸 작품으로, 제목의 ‘비가’에서 알 수 있듯 주로 우리 역사의 아픈 부분을 다루고 있음. 조선 개국부터 조선말까지의 여러 안타까운 사건들, 그리고 현대사의 6.25전쟁, 3.15 부정선거와 학생의거 등 우리나라의 비운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담고 있음.
1971년 저, 2000년 8월 12일(경진 팔월 순이일) 재필사. 낱장(전1장). 표기문자: 한글.
구, 행, 단의 구분 없이 줄글로 이어 필사하였음. 한지에 펜으로 필사하였음. 작품 말미에 ‘경진 팔월 순이일’, ‘권첨지 서’라는 필사기가 쓰여 있음. 군데군데 번진 자국이 있으며 틀린 글자와 빠진 글자는 옆에 고쳐 썼음. 자료등급: 3등급.
*이병붕 선배님의 어머님 조애영 님의 작품이 국립박물관 한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2021.10.09 07:35
Wow, Dr. Ohn, thaaaanks a bunch!
A bit embarrassed on my ignorance but you saved my face and now I know at least where the heck all those fusses to look for the original one she wrote reached to and where it is placed now. Indeed, all her three sons, including myself, settled in the U.S., didn't have any interest in her work so that she donated all her works together with her lifetime collections of old stuff to her beloved school, 배화여고 to organize the 민속생활관 before she passed away, as I know of. Glad 국립박물관 finally got one piece of her calligraphy.
Thanks again to dig out to clarify my confusion!!!!
지성사대를 지성으로 실행 했던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목적은 무엇일까?
세종대왕은 명나라는 전혀 염두에 없었던 것 같다. 오로지 불쌍한 백성을 위한 것이였다.
He just made 한글 for poor 백성들 who would never have chance to learn Chinese letters.
아래에 정확히 그의 의도를 기술하였다.
漢字에만 몰두했던 집현전 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 국민을 위해 반포한 것이다.
What a great king he was !! It happened in 1446 AD, 세종 25 년, 음력 9월이였다.
I am truly honored to be able to upload a copy of the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
또는 《오성제자고》(五聲製字考)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부르며, 국보 제70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