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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연속 #6/7)

 

본회담 의제 합의

 

1972년 6월16일 20차 예비회담에서 본회담의 의제가 합의됐다. 평양과 서울에서 본회담을 하기로 못을 박은 것 이다. 1차 본회담을 평양에서 8월30일 오전 10시에, 2차 본회담을 서울에서 9월13일 오전 10시에 열기로 최종 합의를 보았다. 남북 기자들은 감격과 흥분 속에 서로 포옹했다. 남한 기자들과 북한 보도일꾼들은 서로 상대방 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최 동무 서울에 오면 우리 집에 와서 하루 지내지.”

“김 기자도 평양에 오면 우리 집에 오라구.”

우리는 웃었다. 나와 최수만은 기쁨을 포옹으로 표현했다.

“김 기자, 부탁하나 하자우.”

“뭔데? 낚싯바늘 또 뜯겼어?”

“그게 아니구, 우리 아버지 생사확인을 좀 해다우.”

“최 동무 아버지는 북에 있지 않아?”

“지금 남반부에서 감옥살이하구 있디.”

“무슨 말이야?”

 

최수만이 아버지에 대해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조국광복전쟁’ 당시 최수만의 아버지는 인민군 부사단장 으로 참전했다고 한다. 전라도까지 내려갔다가 낙동강 전투에 참전하려는 순간 유엔군의 인천 상륙으로 인민군 의 전선이 반으로 끊겼다. 최수만의 아버지는 퇴로가 차단되자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 투쟁을 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지리산에서 벌인 투쟁활동이 무전교신으로 당에 보고돼 알려진 사실이라고 최수만은 믿고 있었다.

 

그 후 지리산 공비는 군경 합동 작전으로 궤멸됐다. 많은 공비가 죽거나 포로로 잡혀 재판을 받았고, 자유인과 비자유인으로 구별됐다. 그러나 죽어도 공산주의를 버리지 않겠다는 미전향 장기수는 어쩔 수 없이 영어(囹圄) 의 몸이 되었고, 사반세기가 흐른 시점에도 아직 자신들의 신념을 버리지 않은 장기수들이 있었다. 최수만은 아 버지가 미전향 장기수로 남한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리산 피아골에 묻혔을 지도 모를 일이다.

 

1972년 8월17일, 남북 적십자회담 본회담의 대표단 명단이 발표됐다. 남측에서는 이범석 수석대표와 김연주 교 체 수석대표를 필두로 김달술·박선규·정주년(대변인)·정희경·서영훈 대표가, 북측에서는 김태희 단장과 주창준 부단장을 필두로 권상호·한시혁·조명일(대변인)·이청일·김수철 대표가 명단에 올랐다. 한국측의 정홍진과 북한 측의 김덕현은 적십자 본회담 대표단에서는 빠져 있었다.

 

테러

 

1972년 8월11일 25차 예비회담을 끝으로 본회담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장장 스물다섯 차례, 10개월 20일의 긴 시간을 보냈다. 평양과 서울에서 본회담 개최를 위한 문서교환이 끝나자 한 발짝 한 발짝 이산가족 상봉의 희망 이 무르익어 가는 듯했다.

 

서울과 평양의 본회담 성사를 위해 양측이 자축파티를 벌였다. 그동안 마음 졸이던 시간을 다 잊고 마음껏 먹고 마시며 회포를 풀어보자는 의미였다. 중립국 회의장 안에는 그동안 수고한 대표들과 수행원들이 함께하는 파티 상이 차려졌다. 김연주 대표와 김태희 단장이 손을 마주 잡고 술잔을 높이 들었다. 남측 대표가 건배하면 북측 단장도 질세라 건배하는 경쟁이 이어졌다. 북한측에서 가져온 독사술이 짓궂게도 정희경 대표 테이블 앞에 놓이 자, 정 대표가 눈살을 찌푸리며 치우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동안 회담 뒷전에서 고생한 남북 행사요원들은 긴장이 풀렸는지 서로 술을 권하며 잘도 마셨다. 그렇게 아웅 다웅하던 이들이지만 술 한잔 들어가니 너나들이로 어깨를 겯는가 하면 껴안고 춤도 춘다. 그 옛날 흘러간 노래 자락도 흘러나왔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술친구가 되었다.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양측은 멋진 연극을 했다.

 

판문점 뜰에서도 양측 기자들을 위한 파티가 벌어졌다. 8월의 따가운 태양 아래 먹는 데 익숙한 북한 기자들이 얼음 속에 잠긴 남측의 맥주를 연신 꺼내 마셨다. 북측은 맥주를 얼음에 넣는 경우가 없는 모양이어서, 미지근한 용성 맥주는 인기가 없었다. 북한의 한 기자가 테이블 위에 놓인 건포도를 보고 이상하다는 듯 뭐냐고 물었다. 건포도지 뭐냐고 남한 기자가 말해도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다시 포도 말린 거라고 말해줘도 머리를 갸우뚱 거린다.

 

나는 술이 약간 올랐다. 그동안 가깝게 지내던 보도일꾼들과 술을 주거니받거니 하는데, 누군가 나를 응시하는 느낌이 들었다. 앞 테이블에 최수만이 나를 주시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최수만을 불렀다. 그가 나에게 다가오면서 다정스럽게 손을 잡는다.

“최 동무! 정말 어머니는 살아 있는 거야?”

“살아 있디, 지금 열성당원으로 협동농장에서 일하고 있디.”

“뭐! 열성당원?”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고향의 교회당에 종탑을 세울 때는 헌금 모금에 앞장을 서기도 했다. 하루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대판 싸움을 벌였다. 곳간에 꽉 들어찬 볏섬이 휑하니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볏섬 을 몽땅 팔아 종탑 헌금을 한 것이다. 구두쇠였던 아버지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교회에 대 한 고집은 아버지도 꺾지 못했다. 종탑이 세워지고 종소리가 울려 퍼질 때 어머니는 종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 을 추었다. 그런데 열성당원이라니….

 

“누나는?”

“황해도 봉산으로 시집을 가서 아들땋 낳고 잘 살고 있디.”

그래, 누나는 긴 세월 공산주의 교육을 받았으니 그 사회의 빨간 물이 들었을 터였다.

“내가 부탁한 거 어떻게 됐어?”

“최 동무 아버지가 옥에 들어가 있다는 걸 뭘로 증명하나?”

“그거야 아는 수가 다 있지.”

“찾아봐도 동무 아버지 이름은 없어.”

“가만히 보니까 김 기자가 나를 기만하고 있어.”

“기만이라니? 사실이라니까.”

최수만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술 기운이었을까.

최수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누군가 나의 팔을 슬쩍 끼고 파티 테이블에서 격리시켰다. 주위엔 술을 마시느라, 잡담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어깨동무하듯 보도 일꾼 사이에 끼어 질질 끌려갔다. 반항하는 자세로 힘을 썼지만 모자랐다. 어느새 인적이 없는 회담장 막사 뒤편 까지 끌려갔다. 도발적인 보도일꾼들이 약속이나 한 듯 나를 에워쌌다. 나는 이미 안전지대를 벗어나 있었다. 술 이 확 깨면서 심각한 위협이 온몸으로 감지됐다. 낯익은 보도일꾼들이 내 등 뒤에서 손을 비틀며 꼼짝 못하게 팔 짱을 꼈다. 누군가 배를 강타했다. “욱”하는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누군가 내 손을 꺾었다. 그때 나는 린치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무! 왜 까불어! 죽어볼래? 하라는 대로 할 것이지!”

“네 에미와 누이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

“너, 정보부에서 우리 애국동지를 얼마나 죽였어?”

“평양으로 가갔어! 와 대답이 없어? 이 반동 간나이 새끼야!”

 

무게 있는 물체가 내 발을 짓이겼다. 발목이 끊어지는 아픔이 왔다. 멀리 파티장에서 양측 대표들이 술잔을 높이 들며 건배하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1000만 이산가족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하루 속히 회담을 성사 시켜야 한다고 떠드는 소리가 내 귓전에 울리고 있었다. 누군가 내 배를 발길로 힘차게 걷어찼다. “욱” 하며 허리를 굽히자 위에서 등을 내려쳤다. 그리고 나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수없는 발길질이 내 얼굴 앞에서 피스톤처럼 오갔다. 순간에서 순간으로 조직적인 린치가 계속됐다. 나는 가물거리는 의식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비행기 편대에서 내리꽂는 폭음이 아련히 들려왔다. 무연탄가루가 하늘에서 눈이 내리듯 마구 쏟아져 내렸다. 멀리서 뛰어오는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구원병인 남측 기자들이 몰려온 것이다. 정신이 아물아물했다.

 

이 사건은 보안을 요하는 일이었다. 판문점에서 남한 기자가 북한 보도일꾼으로부터 린치를 당한 사실이 신문에 보도된다면 예정된 평양-서울 본회담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북한측이 회담을 깨기 위해 벌인 일 인지도 몰랐다. 그날 이후 나는 최수만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왠지 모를 콤플렉스가 가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항상 내 몸을 얽어매고 있던 올가미로부터 자유로워진 듯한 느낌이었다.

 

분단의 벽은 뚫렸다. 평양으로 가는 민족의 대행진, 서울 거리에 늘어선 시민들은 태극 깃발을 흔들었다. 이산가 족 상봉의 결실을 보고 돌아오라는 성원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1972년 8월29일 오전 10시30분, 한적 대표단은 북적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판문각을 떠났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넘는 순간 여기가 북한이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격해졌다. 그동안 너무나 철저하게 굳어버린 사상, 변해 버린 사회제도, 한마디 낱말의 의미마저 달리 해석되고 감정의 표백(表白)마저 가늠할 수 없는 그 곳, 비록 이질 화되었지만 어머니가 살고 있고 누나가 살고 있는 고향이었다.

 

길가에는 사루비아 꽃이 피어 있었다. 들녘엔 새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미제의 각을 뜨자” “사회주의는 쌀이다” “김일성 동지 만세” “전국을 요새화 하자” “전투장” 같은 선전 표어판이 서 있었다. 이것이 바로 북한이로구나. 안내원에게 “사회주의는 쌀이다”라는 구호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사회주의를 했기 때문에 쌀밥을 먹을 수 있 게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마디로 북한 전역이 병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분단의 벽을 뚫고

 

분계선을 조금 지나 개성쯤 왔을 때 검정색 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고 빨간 머플러를 목에 두른 소년단 대열을 만 났다. 앞쪽을 바라보고 두 팔을 높이 휘두르며 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아마도 ‘김일성 장군의 노래’인 것 같았다. 야영훈련을 하고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나도 동평양 인민학교 3학년 때 이들과 같이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 욱’을 부르며 야영훈련을 한 생각이 났다.

 

황주 다리를 지나니 사과의 명산지로 유명한 황주가 나타났다. 누나가 살고 있다는 바로 그 황주였다. 누나는 어 느 곳에 살고 있을까. 나는 방향 없이 머리를 기웃거리며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곳곳의 과수나무에 사과가 빨갛 게 익어 소담스러웠다. 판문점 파티 때 황주사과라고 자랑하던 보도일꾼이 생각났다.

 

비가 계속 내렸다. 평양 시내로 들어서니 비닐 제품의 레인코트를 걸쳐 입고 지나는 사람이 눈에 많이 띄었다. 평양 시내 거리는 자동차가 거의 없지만 교통안전원이 서서 비를 맞으며 간혹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신호를 한 다. 다분히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라는 인상이 짙었다. 평양의 청년거리 버스정류장을 지나갈 때 처음으로 부인 세 사람이 우리 일행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 외엔 남한 적십자사 대표가 오는지 가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 다.

 

동평양 문수리 초대소에 도착해 안내원의 안내를 따라 보도진 숙소인 3호동에 내렸다. 도심은 대동강 북쪽이고, 숙소는 강 남쪽에 위치한 2층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초대소에서 멀리 바라보니 대동강을 끼고 높다랗게 솟은 모 란봉 절벽 위에 유서 깊은 부벽루며 능라도, 수양버들이 춤을 추는 정경이 한결 돋보인다. 어릴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같이 거닐던 곳들이라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대동강회관에서 1차 본회담이 끝난 후 혁명가극 ‘피바다’를 관람하고 북한측에서 베푸는 옥류관 만찬회에 참석 했다. 옥류관에 가는 도중 평양의 밤거리를 구경할 수 있었다. 평양역에는 백열 장식등이 지붕과 처마를 따라 켜 져 있었고 커다란 벽시계가 걸려 있었다. 어릴 적 본 평양역 그대로였다. 평양역을 조금 지나자 오른쪽에 북한 적십자사 건물이 보이고, 그 바로 옆이 평양에서 첫째로 손꼽힌다는 제일여관이었다. 보통문을 지나니 보통강이 흐르는 보통강 다리가 나타났다.

 

다리를 지나는데 최수만이 낚시를 즐긴다는 생각이 났다. 본성은 착한 사람 같았는데, 세월 탓이었을까 살기 위 해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마음이 착잡했다.

 

다음날 우리는 김일성 우상화의 상징인 만경대를 방문했다. 김일성의 생가에는 그의 조상들이 가난했음을 보여 주기 위해 보잘것없는 가재도구들이 진열돼 있었다.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이 시누이를 시집보낼 때 아무것도 줄 것이 없어 자기가 쓰던 것을 주어서 보냈다는 장롱도 있다. 진짜 농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대표 일 행은 안내원을 따라 초가 끝방 앞에 빙 둘러섰다. 당에서 선발되어 나왔다는 만경대 안내원 아가씨는 달변에 여 유가 있었다.

 

“이 방은 수령님의 증조부 김응우 선생님과 아버님 김형직 선생님이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구상하시던 방입 니다.”

한 칸짜리 방에는 낡은 나무책상 두 개가 있을 뿐 텅 비었다.

“이 두 개의 책상은 선생님들이 각각 쓰시던 것으로 맑스·레닌 서적을 탐독하시던 책상입니다.” 기자들이 안내자의 말에 귀가 솔깃해 방을 둘러보았다. 한 기자가 질문이 있다고 손을 들었다.

 

“김응우와 김형직이 읽었다는 맑스·레닌 서적이 원서였습니까, 번역판이었습니까?”

순간 기자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안내 아가씨의 당황하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자네, 농담이 심했어! 자아비판감이야.”

누군가가 한 말에 또 한번 폭소가 터졌다.

“수령님의 증조부님과 아버님은 원서나 번역판 모두 다 잘 읽습니다.”

 

안내 아가씨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획 돌려 다음 장소로 옮겨갔다. 내일이면 3박4일의 일정을 끝내고 평양을 떠난다. 깊어가는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머니와 누나가 있는 곳 까지 왔는데 만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창가로 나가 평양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모란봉 기슭에 몇 개의 촉광 밝은 불빛이 반짝인다. 남녘땅 이산가족들이 북녘하늘을 바라보며 풀어내는 피맺힌 절규가 아득히 들 려오는 듯했다. 어머니와 누나의 얼굴이 겹쳐 떠올랐다. 바로 그 순간 최수만의 미소 짓는 얼굴이 그 사이로 끼 어들었다. 여기서 나는 최수만을 만나지 못했다. 판문점에서 알고 지내던 보도일꾼에게 물어보아도 모른다는 것 이다.

 

개성에서 선죽교를 보았다. 기자들은 선죽교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으려 했으나 학창시절에 배웠던 충신 정몽주 의 자취는 발견할 수 없었다. 뒤따라오는 안내원 아가씨에게 정몽주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부르주아적 인물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역사마저 자기 식으로 뜯어고치고 있었다.

 

우리가 탄 차가 판문점으로 향하는 콘크리트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코앞이다. 오 후 3시30분, 한번 건너면 영영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비극의 다리를 건넜다. 답답하던 체증이 확 풀리는 것 같 았다. 그리고 다시 ‘자유의 다리’를 건넜다. 자유의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1972년 9월12일, 2차 남북 적십자 본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북적 대표단 일행 54명이 판문점을 통해 서울로 들 어왔다.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시민들은 차를 타고 스쳐가는 북한 대표단 일행을 보기 위해 거리로 달려 나와 인 산인해를 이뤘다. 도깨비로 생각했던 북한 사람들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나 하는 호기심에 그 모습을 보려고 발 을 곧추세우며 안간힘을 썼다. 평양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광경이었다. 서울을 보는 북한 적십자 대표들, 보도일 꾼들은 한결같이 경계하고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서울의 발전상과 시민들의 밝은 표정, 그리고 자유롭게 북한 대표단에 접근하려는 시민들.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계속) 서울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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