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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함께 50년

2020.04.11 10:02

노영일*68 Views:112



함께 50년

씨아틀에 사는 큰 딸이 주동이 되어 우리 결혼 50주년 기념 가족모임을 계힉했다. 전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자니 일정을 맞추기가 고등수학 문제를 푸는것 보다 어려웠다. 스위스 사는 손녀들이 여름방학동안 씨아틀 북쪽 벨링함 뮤직캠프에 와 있어서 그 아이들 캠프가 끝나는 날에 맞추어 모이기로 하였다.

날짜가 되어 가족들이 하나 둘 씨아틀로 모였다. 바닷가 호텔에서 모였는데 방밑이 바다라 마치 해상호텔 같았다. 내어다 보이는 씨아틀 항구와 태평양 바다가 아름다웠다. 손녀들 뮤직 캠프가 끝나는날 벨링함으로 올라가 마지막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관람하였다. 저녁에는 해산물 식당에 가서 싱싱한 요리를 즐기며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 사촌들끼리 정담을 나누었다.

다음날 새벽 경비행기에 나누어 타고 해협을 건너 카나다의 빅토리아섬으로 향했다. 빅토리아는 매우 아름다운 고장이었다. 리조트에 머물며 수영, 카누, 카약등을 즐기면서 손주들은 시간 가는줄을 몰랐다. 셋째 날에는 부차트 가든에 갔다. 30여년전 가본적이 있었는데 그때 보다 꽃들도 많고 규모도 커졌다. 마치 에덴동산에 와 있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꽃동산에서 뛰노는 일곱 손주들이 꽃보다 예뻐 보였다.

씨아틀로 돌아와서 스페이스 니들, 보잉 비행기 공장, 등을 관광하고 그곳사는 누이동생 가족들과 골프도 치고 저녁도 함께 먹었다. 며칠 안되는 일정이었지만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지낸 시간들이 꿈만같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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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내가 만난것은 50여년전. 내가 서울대학병원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때 였다. 당시 아내는 서울 미대 학생이었다. 나는 어려서 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 했고 미술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 그리는 여학생들이 특별히 매력있어 보였다. 그 당시 미술대학 교사는 바로 인턴 숙사이던 정영사 앞에 있어서 2층 내방에서는 여학생들이 그림 그리는것을 내려다 볼수 있었다. 우연한 인연으로 아내를 몇번 만나다가 아내의 졸업 전시회에 가서 아내가 출품한 자화상을 나에게 달라고 하였다. 맘조리며 대답을 기다리는데 선뜻 가지라고 한다! 그래서 아내도 나에게 마음을 주는것을 확인 했다. 그때 그 자화상은 아직도 우리집 벽에 걸려있다.

문리대뒤 낙산에 새로지은 시민 아파트에 신혼 살림을 차렸다. 낙산 제일 꼭대기에 있는 건물이 당첨되었다. 올라가는 길이 너무나 가파로와 택시를 타면 세대중 한대만 기를쓰고 올라갈수 있었다. 내려 올때는 굴러 떨어질가 가슴이 조마조마 할 정도였다. 나는 매일 이곳에서 서울 대학병원까지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그때 무슨 남북회담을 서울에서 했는데 이북사람들에게 화려한 서울을 보여 준다고 방마다 밤새도록 불을 켜 놓으라는 훈령이 내려와 며칠간 잠을 설친 기억도 난다.

첫 딸은 우리 사랑의 열매요 하나님의 선물같이 생각됬다. 너무나 귀여워 나는 매일 안아주고 사진도 셀수 없이 찍어 두었다. 아내는 임신때 부터 자라나는 아기의 육아 일기를 매일 썼다. 하루 하루 자라나는것이 너무나 신비로웠다. 지금도 그때의 사진과 육아 일기가 우리집에 있다.

취프 레지덴트할때 수련의 파동이 있었다. 군사 정권의 서슬이 시퍼런 칼날 같을때 수련의 들이 월급을 올려 달라고 파업을 했다. 신문에 대서 특필로 보도되고 이는 다른 데모를 유발시킬지도 모르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김종필 국무총리가 직접 찾아와 수련의 들을 4학년 강의실에 모아 놓고 자기는 수련의들이 그런 열악한 처우를 받는줄 몰랐다고 놀라기라도 한듯 동감을 표하며 월급을 올려 줄터이니 즉시 업무에 복귀하라고 간곡히 부탁 했다. 우리는 우리의 계획이 성공했다고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웬걸. 다음날 4년차 레지덴트들은 모두 무의촌으로 가라는 훈령이 내려왔다. 그것도 3일 안에 임지에 부임하라는 것이었다. 그때 아내는 만삭의 몸이었다. 하던 병원일도 하루 아침에 내려놓고 만삭인 아내를 집에 남겨 놓고 이름도 모르는 오지로 떠나야 했다.

무의촌에가서 매일 라면만 끌여 먹고 살던 때에 아내가 쌍둥이를 났다. 나는 출산을 보지도 못했다. 서울대학병원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버님의 대학 동기 동창인 나건영 교수가 아이를 받아 주셨다. 나건영 교수는 분만실에서 나오면서 아버님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래도 경사는 경사지”라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훗날 그곳에 있던 인턴한테 들었다. 딸 쌍둥이를 낳은 것이었다. 아내는 삼대 독자에게 시집와서 첫째도 딸을 낳고 둘째는 딸쌍둥이를 낳았으니 면목이 없었을 것이었다. 더구나 남편도 없는데 마음 고생 몸고생이 얼마나 심하였을까.

네째 아이는 내가 군복무 할때 태어 났다. 군대 훈련을 받으면서 축적해둔 정기를 총력 투입 한 탓인지 아들을 낳았다. 온가족의 경사였다. 아내는 마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조된 느낌이었을 것이다.

제대후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전문의 자격증에 최연소 의학박사 학위까지 받고 왜 미국에 가냐고 모두 의아해 했다. 다섯살 이하인 네 아이를 데리고 태평양을 건너는 동안 비행기 안에서 계속 아이들을 교대로 화장실에 데리고 간 기억밖에 나지를 않는다.

어쩌다 운좋게 세인트 루이스 대학병원 인턴자리를 얻게 되었다. 늙은 나이에 젊은 애들과 함께 다시 인턴을 하자니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시간을 병원에서 보내니 어린 자식들은 애비 없는 아이들처럼 자랐다. 아내는 쥐꼬리만한 인턴월급에 월부로 피아노를 하나 사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몇년에 걸쳐 월부금을 다 갚고 나서 갖다 바친 돈 총액을 계산해 보니 이자 까지 합쳐 피아노 값의 세배는 되었다. 이렇게 아이들의 음악 교육이 시작되었다. 아내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음악을 못한것이 천추의 한이 되었던지 필사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가끔 아이들이 종이조각에 끼적끼적 그려논 그림을 보면 그 색감이나 구도가 놀라웠다. 역시 유전자는 못 속이나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는 그림은 절대 가르쳐 주지를 않았다. 나중에 내가 개업을 하고 나서 부터는 제 2의 악기들을 가르쳤다. 나는 일하느라 바쁘고 아내는 아이들 데리고 레슨 다니느라 나보다 더 바빴다.

고등학교 졸업후 딸들은 모두 음악을 전공했다. 첫 딸애는 풀류트를, 둘째는 첼로를, 셋째는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훌륭한 앙상블로 함께 연주회도 했다. 유수한 음악대학을 나왔으나 일자리가 없었다. 큰 딸은 다시 의과대학에 들어가 결국 의사가 되어 내 뒤를 따라 신경내과 전문의가 됬다. 지금은 씨아틀에서 개업을 하고 있다. 둘째 딸은 음대를 졸업하고 들어 가기도 힘든 약학대학에 들어가서 수석으로 공부를 하다가 한학기 남겨 놓고 죽어도 더 못하겠다고 나가 자빠졌다. 그리고는 디자인 학과에 들어갔다. 이때 부터 물만난 고기처럼 신이나서 너무나도 열심히 일을 하고 행복하게 보였다. 셋째는 바이올린을 하루 여섯시간씩 하다가 팔꿈치 관절염이 걸렸다. 팔이 하도 아파 한학기를 휴학 하며 물리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그러다가 많은 동료 음악가들이 직업병에 걸리는 것을 보고 음대를 졸업하고 보스톤대학 의료 공학과에 들어가 음악가들이 걸리는 직업병을 연구하여 이 특수한 분야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사대 독자인 우리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때 의과대학을 가라고 내가 손발이 닳토록 빌었다. 너의 할아버지도 의사였고 아버지도 의사인데 너도 의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 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법과 대학에 들어갔다. 결국 최고 명문 법과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 노릇을 5년간 했다. 그러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변호사는 못해 먹겠다며 다시 의과대학에 들어가 결국 의사가 됬다. 지금은 시카고에서 마취과 개업을 하고 있다.

이런 우여 곡절을 겪느라고 나는 남들보다 두배 세배씩 미국 대학에 등록금을 갖다 바쳤다. 첫딸이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고 좋아 하다가 첫 등록금 고지서를 받고 기절을 할번 했다. 무려 2만불을 현금으로 내라니 아무리 계산을 해 봐도 내수입으로 도저히 감당 할수가 없었다. 더구나 아직 세아이가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눈 앞이 깜깜했다. 명색이 의사라고 장학금은 생각도 말란다. 도저히 맞출수 없는 대차 대조표를 어떻게 꾸려 왔는지 지금 생각하면 하나의 불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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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들과 함께 2009                                                                     2012

아내와 나는 그림을 좋아 한다는 공통 분모를 빼고는 너무나 다르다. 아내는 철저한 문과이고 이과 계통에는 깜깜이다. 집안의 사소한 전기 제품도 고칠줄 모른다. 심지어 휴지나 전구 하나도 갈아 끼울줄 모른다. 수학이나 과학지식은 기초수준도 못된다. 그러나 역사나 예술방면에는 혀를 찰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 내가 일하는 동안 독수공방을 하며 깨친 성경지식은 목사들 뺨칠정도 이다. 반면 나는 문과 계통에는 머리가 안 돌아가고 학교 다닐때 제일 싫어한 과목이 역사와 윤리였다. 역사이야기를 아내에게 물어보면 술술 나오는것이 신통할 정도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설거질도 할줄도 모르고 음식은 라면 끓이는것 밖에 할줄 모른다. 남의 마음을 짚어 본다거나 설득 하는데 약하다. 말다툼하면 번번히 아내한테 진다. 이런 상반된 유전자가 우리 아이들에게 들어가 서로 경쟁을 하며 혼란을 이르키는게 아닌가 싶었다. 네 아이 모두 문과로 시작하였다가 결국 두 아이는 이과로 돌아왔다. 일곱 손주들은 지금 자기 부모들이 모두 악기를 가르치고 있다. 음악 경연대회에서 상도 탄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들이 자라서 결국 무엇을 할찌 궁금하다.

아내와 나는 직소퍼즐을 맞추듯 나온것과 들어간 것을 맞추어 가며 오십년 동안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어왔다. 건전지의 음극과 양극이 상반 되는것 같지만 함께 밝은 빛을 만들어 내듯이 우리는 그렇게 함께 50년을 살았다. 아내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희노애락을 같이 하는 인생의 반려자이다. 나는 사소한 재주는 한두개 있으나 돈버는 재주가 없어서 칠학년 중반을 넘기도록 아직도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충실하게 자기 할 일을 하며 살아가는 자녀들과 건강하게 자라나는 손주들을 볼때 마음이 흡족하다. 나는 부자다.

2019년 여름    시카고에서     노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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