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English
                 



오세윤 수필이 좋은 이유

김우종
작성일 : 12-30-2009

오세윤은 수필집 "갈채"에서 한국수필이 지향해야 할 주요한 조건들을 알차게 추구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그 중 하나는 철학성이다. 피천득은 “수필은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라고 했는데 오세윤의 수필은 이와 달리 지성인의 사상성이 주제를 이루고 있으며, 그저 쓴 단순한 글쟁이의 글이 아니라 이런 철학성을 통해서 심오한 지성의 표현을 시도하고 있으며 잘못 키워진 우리 문학의 병적 체질 개선에도 이바지하고 있는 문학이다.

둘째는 신변적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는 점이다. 신변적 소재 자체는 좋지만 그것을 보는 시야 자체가 신변적 울타리 안에만 갇혀 있으면 그것은 성년의 문학이 되기 어렵다. 어른이 되면 문밖으로 나가서 넓은 세상 속에서 ‘나’가 아닌 ‘우리’와도 함께 만나고 사회와 역사 속의 인간 존재에 대한 비판적 의식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떠난 개인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셋째로 오세윤은 풍부한 언어를 동원해서 좋은 문장력을 갖추고 있다. 수필의 문학성 제고를 위해서는 더 시도해야 할 단계가 남아 있지만 풍부한 어휘 재고량과 좋은 문장은 모범적인 수준이다.

문학 작품의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인다.

학문적 연구는 내용만으로 전체적 평가가 가능하지만 문학은 내용과 함께 형식도 중요하다. 풍부한 영양가만으로는 문학이 되지 않는다. 형식의 성숙도도 필수적 조건이다. 형식은 내용을 전하는 수단이다. 수단이 미숙하면 감동이 따르지 못하며 감동되지 못한 문학은 배달되지 못하는 선물처럼 아무리 값나가는 보석이었다 해도 이를 받아야하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다.

위의 세 가지 중 마지막 것이 이 형식적 조건이다. 문학의 형식적 조건을 위한 가장 기본적 밑천은 풍부한 언어와 그 효과적 구사력이다. 이브를 유혹한 뱀처럼 혓바닥을 잘 놀려야 하는 것이 필수 조건이다. 문학은 언어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주자에게는 우선 가장 좋은 악기가 있어야 하고 그걸 다룰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경우처럼 문학에선 언어 창고가 꽉 차 있고 항상 이를 잘 써먹어야 한다.

언어에는 표준어 외에 사투리가 있다. 문학에선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왜냐면 실제적으로 살아 있는 인간의 말은 사투리도 있고 쌍말도 있으며 표준어만 쓰는 사람은 추상적인 인물 즉 존재하지 않는 인물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교과서나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표준어에만 익숙해져 있다. 또 그것마저도 아주 많은 어휘를 잊고 살기 때문에 사물 표현의 정확도가 떨어지고 이것은 결국 언어예술로서의 문학성을 떨어뜨린다. 플로베르가 모파상을 지도하면서 서신을 통하여 말해준 일어설(一語說)의 원칙 같은 것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오세윤은 풍부한 우리말의 창고를 간직하고 늘 넉넉하게 신선한 언어구사를 하는 편이며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함으로써 그 인물과 그 지방의 토착적 이미지와 흙냄새 바다 냄새를 모두 잘 살려 내고 있다. 특히 남도 사투리는 그곳 출신이 아닌 수필가로선 매우 능숙한 편이다.

사투리는 그 지방 출신이 아니라면 특수한 재능이 있어서 자연 습득이 되었거나 따로 공부를 해야 된다. 그러므로 북쪽에서 온 실향민이며, 대천의 무의촌 근무 3년에, 그 후 인천 토박이로 살아 온 사람이면 이런 사투리는 언어예술로써 수필 장르에 대한 남다른 인식을 보여 준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의 사투리는 물론 대화체에 나타난다. 수필은 일반적으로 설명적인 서술체가 쓰이기 때문에 이렇게 대화체는 많지 않으므로 오세윤 수필은 이런 면에서 남다른 개성을 보이고 있다. 사람은 그가 사용하는 언어 한 두 마디로 국적과 고향과 성격과 신분 등 거의 모든 것이 들어나므로 수필 역시 사람이 등장한다면 그는 대화체를 통해서 가장 확실한 형상화가 가능해진다. 다만 수필이 소설에서 특기로 삼는 대화체의 인물묘사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면 자칫 허구적 사건까지 끼어들어서 수필 장르의 특성과 매력이 손상되는 수도 있는데 오세윤은 이를 잘 조절해 나간 것 같다.

그는 사투리만이 아니라 거덕치다 머츰하다 댕가리지다 갈밋하다 늘컹하다 이물스럽다. 우렁우렁 등 흔히 안 써서 잊혀져 가는 많은 언어들을 적절한 자리에서 활용하며 감각적 표현의 농도와 정확성을 높이고 있다. 화구상 여러 곳으로 남들이 잘 찾지 않는 색감을 구하러 다니는 화가처럼 오세윤은 그 자리에 꼭 맞는 단어를 찾아 쓰고 있다. 그리고 이런 어휘들이 동원된 문장이 매우 좋다.

나는 리어카 아낙이 건네주는 김 두 톳을 들고 얼른 그 자리를 떴다. 정오를 설핏 넘긴 가을볕이 목덜미에 따갑게 내려 쪼였다. 햇살이라도 발라 잰 듯 자르르 윤기 흐르는 김에서는 달콤 짭조롬한 바다 냄새가 났다.

매우 섬세한 감각적 표현이 살아 있는 문장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기법의 우수성은 어디까지나 형식적 조건이지 내용이 아니다. 곱고 비싼 명품으로만 칭칭 감고 내용이 비어 있으면 무용지물이다. 그 내용물이 천하일색이라 해도 골이 비어 있으면 깊은 사랑은 받기 어렵다. 문학의 표현기교는 결국 의미 전달을 위한 수단이고 방편인데 오세윤은 이것을 통해서 푸짐한 영양가를 전해준다. 그 영양가는 복합적인 것이지만 가장 주된 성분은 오랜 인생 경험에 대한 결산서처럼 내려진 바 헛된 욕망에 매이지 않는 무소유의 철학 정신이다. 인사동에서 만난 검은 승복의 사내 모습을 바라보며 그렇게 한동안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던 것도 거기서 발견한 무소유의 경지 때문이며, 「목포 앞바다」의 외달도를 찾아간 다섯 편의 연작 수필도 무소유의 삶을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 구체적 현상으로 확인하고 보여주려 한 작업이고 작품이다.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딴 섬에 사는 두 부부의 모습이 그런 ‘무소유’의 실체를 작자에게 감동적으로 입증해준 사람들이다. 아니 그보다는 무소유의 의미를 독자에게 전하기 위해서 작자는 설명적 언어 대신 이들을 그림으로 보여 주고 우리 스스로 작자의 의도에 따르게 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고 봐도 좋다. 그리고 배에서 만난 류목사와 소금장수등이 모두 그런 인물이다.

“할 수 있는 한 간결하게 살고 싶어. 욕망에 묶이는 게 이젠 정말 힘들어.”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문단에서도 권위의식과 자만과 타성과 독선으로부터 항상 자유로울 수 있는 신인으로 남고 싶다고 한다.

모든 허세를 버리고 과욕을 버리고 마음의 짐을 덜며 자유롭게 남은 인생을 아내와의 정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하는 그의 문학세계에서는 그 동안 살아 온 우리 사회에 대한 실망감 때문일 것 같다. 이것이 자주 은근하게 내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시야는 신변적 울타리의 문을 열고 나와 우리 사회와 역사를 보고 비판하며 우리 모두가 다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진리를 찾아 나서는 순례자처럼 그런 삶의 실체를 찾아 나선 작품이 「목포 앞바다」의 외달도 시리즈다. 그가 멀리 외딴 섬에 나가 사는 두 부부의 모습을 보고 돌아오고, 인사동에서 그 달마도 그림의 스님을 보고 오래 머무는 것은 이 같은 실망적인 사회적 역사적 현실에 대한 필연적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런 비판적 의식이 은연중 내비쳐지거나 그 내용이 새롭지는 않은 이유는 역시 수필은 조용한 주택가나 오솔길이나 난이나 학이나 청자연적 같은 것이어야 그 격과 품위가 유지된다는 인식에서 크게 거리를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의 시야는 안으로만이 아니라 밖으로도 많이 열려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세윤의 수필은 우리 수필 문단에서 소중한 자리를 확보한다.

No. Subject Date Author Last Update Views
Notice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2016.07.06 운영자 2016.11.20 18174
Notice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2016.07.06 운영자 2018.10.19 32323
Notice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2016.06.28 운영자 2018.10.19 5903
Notice How to Write a Webpage 2016.06.28 운영자 2020.12.23 43820
245 [Essay] 음악 [10] 2012.11.10 노영일*68 2012.11.10 3777
244 겨울 [7] 2014.02.01 노영일*68 2014.02.01 3777
243 Vanity? [16] 2013.10.28 조승자 2013.10.28 3757
242 Classic Music을 살릴려면.... [3] 2012.11.12 운영자 2012.11.12 3698
241 Our Hero, Dr. Martin Luther King, Jr. [2] 2010.01.17 조동준*64 2010.01.17 3689
240 풍경 [7] 2012.02.15 김창현#70 2012.02.15 3576
239 [Music] The Thorn Birds - Original Sin 2014.08.20 운영자 2014.08.20 3563
238 [Essay] On an Autumn Day (가을날에는) [8] 2012.11.01 김창현#70 2012.11.01 3553
237 [Essay] 대선을 40여일 앞두고 [6] 2012.11.12 김성심*57 2012.11.12 3517
236 인턴 [9] 2013.10.19 노영일*68 2013.10.19 3499
235 마지막 성묘 [8] 2013.10.31 조승자 2013.10.31 3470
234 마지막 전화 [8] 2013.11.16 노영일*68 2013.11.16 3442
» 오세윤 수필이 좋은 이유 (펌) [4] 2011.10.10 운영자 2011.10.10 3410
232 고희 (古稀) [7] 2014.01.15 노영일*68 2014.01.15 3358
231 [김희중 Essay] 죽음의 문턱 [4] 2014.09.22 운영자 2014.09.22 3275
230 [Essay] 내 고향, 가족, 친구, 그리고 孝道에 대해서 [2] 2012.02.09 장원호#guest 2012.02.09 3222
229 [Essay] 미뇽이야기 III [9] 2014.10.04 정관호*63 2014.10.04 3089
228 琴兒 선생의 파랑새 [12] 2015.01.18 황규정*65 2015.01.18 2824
227 [Essay] Rambling (6) [1] 2013.11.02 이한중*65 2013.11.02 2324
226 김희중 - 고통이 있기에 더욱 찬란한 아름다움 [1] 2014.09.22 운영자 2014.09.22 2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