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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인턴

2013.10.19 02:12

노영일*68 Views:3499


인턴


전문의 자격증에 의학박사 학위까지 받고 미국에 와서 인턴을 하자니 훈장까지 단 장성이 다른나라에 와서 신병훈련을 받는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다시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의사노릇을 할수 없다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더구나 나보다 칠팔년 연하의 젊은이들과 같이 밤샘을 하자니 육체적으로도 고달펐다.
철두철미한 재수생이었다.
그래도 한국에서의 경력을 인정받아 간신히 대학병원에 인턴자리를 하나 얻을수 있었던 것만도 다행이었다.

첫해는 몇달동안 일반내과를 돌았는데 장래 무슨과를 전공하드라도 일반내과를 도는것은 필수 과정처럼 되어있었다.
인턴 두명과 레지던트 한명이 한 팀이 되어 일했는데 수석 레지던트는 이 여러팀을 총괄지휘하도록 짜여 있었다.
레지던트는 매달 바뀌지만 인턴둘은 일반내과를 마칠때까지 줄곳 함께 다니게 되어 있었다. 마치 짝처럼 되어있었다.

스케줄을 발표했는데 보니까 내짝은 아일린 K. 라는 여자였다.
호기심도 느껴지고 또 한편 걱정도 되었다.
여자라고 자기할일을 나에게 자꾸 미루면 어떡할까.
여자와 같이 일하자면 거북하지는 않을까. 동양 남자라고 깔보고 차별대우나 하지않을까.

첫 임지에 가서 아일린을 처음 만났다.
우선 드물게 보는 빼어난 미모에 놀랐다.
같이 일하게 되었으니 잘해보자고 간단히 인사를 하고는 레지던트의 오리엔테이션을 들었다.
내가 걱정했던것과는 반대로 아일린은 열심히 일했고 어려운일이나 번거러운 일들도 남의신세를 지지않고 혼자 차분히 해결해 나갔다.
환자들을 진심으로 염려해주고 성심껏 치료하는것이 눈에 띄었다.
아직 미국생활에 익숙치 못한 나에게 참을성있게 가르쳐주고 친절하게 대해 주어 무척 안심하고 고맙게 생각했다.

그 당시만해도 인턴생활은 힘들었다.
하루밤 꼴딱 새우는것은 보통이고, 이틀밤씩 연속 새운적도 여러번 있었다.
그 때는 그것도 의사로서 하나의 극기 훈련처럼 되어있었다.
어느날 밤샘을 하다가 너무 피곤하여 병동 끝에 있는 치료실에 잠시 쉬러 들어갔다.
거기에는 치료대와 긴 벤치의자가 하나 있었다.
나는 벤치의자에 누워 잠시 쉬고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치료실 문이열리더니 아일린이 들어왔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마치 과자를 훔쳐먹다 들킨 어린아이의 심정이었다.
“아하. 어디있나 했더니 여기 숨어 있었구나. 좋은생각이야. 오늘밤은 유난히 힘들고 피곤한데 나도 여기서 좀 쉬어야겠다.” 하며 치료대위에 벌렁 드러 눕는것이 아닌가.
그러고 환자이야기를 몇마디 중얼중얼하드니 금방 잠에 빠져 버렸다.
오죽이나 피곤하면 그럴가 하고 안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마치 마술 사과를 먹고 깊은잠에 빠진 백설공주같았다.
잠든 모습이 너무나도 예쁘다고 느껴졌다.
갑자기 난처하고 당황스런 마음이들었다.
무슨 범죄현장이라도 빠져나오듯 황급히 치료실을 나왔다.





아일린이 휴가를 간다고 한다.
우선 짝이 휴가를가면 내 일은 곱배기로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아야 한다. 어디를 가느냐 묻고, 참 좋겠다고 부러워 해야 휴가가는 사람의 즐거움도 두배로 커진다.
그래서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더니 병원에 입원한다고 한다.
깜짝 놀라 어디가 아프냐고 했다.
아픈게 아니라 신장이식을 하러 입원한단고 한다.
어리둥절하고 점점 더 미궁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야기인즉 스테파니 P에게 자기 콩팥하나를 기증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스테파니 P는 무슨 선천성 면역이상으로 오는 신부전증 환자였다.
신장투석을 받을때 마다 부작용이 심해 자주 병원에 입원하곤했는데 우리팀에서 맡아 치료를 한 환자였다.
아버지가 다른 두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살고있는 젊은 여자인데 남자들은 병이들자 다 떠나가 버리고 친척도 별로없는 가련한 여인이었다.
신장이식만이 살길이었으나 도너를 구할수가 없었다.
그녀는 마치 기약없는 인생을 힘들게 연명해 나가는것 처럼 보였다.
누구나 다 동정은 하였으나 어찌할수 없는 딱한 사정이었다.
그러던 차에 아일린이 자원하여 검사를 받았고 도너로서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자기 신장을 기부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나는 뒤통수를 얻어 맞은듯 놀랐다.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이 생각되었다.
아릴린이 과거에 무슨 충격을 받았거나 어떤 심리적인 갈등이라도 있는것인가?
그 당시만해도 장기이식은 아직 초창기여서 몇몇 대학병원에서만 시술이 가능했고 예후에대한 지식도 별반없어 그만큼 의구심과 두려움도 컸었다.
네가 아직 젊어서 일시적 감상이나 영웅심에서 그러는 것은 아니냐.
너의 장래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보았느냐. 가족들하고는 상의해 보았느냐.
마치 나자신 엄청나게 억울한 일이나 당한것처럼 대들듯이 따져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단호한것이었다.
“나는 내가 무슨일을 할려는지 잘 알고 있고, 내가 의사인데 의학적 상식도 없는가족하고 상의한들 무슨소용이 있겠느냐. 장기를 기증하는데 꼭 가족이나 친척이라야만 하느냐.
나는 건강하고 신장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히 정상적 생활을 할수 있다”고 했다.
레지던트와 교수들도 다시생각해 보라고 충고를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결심은 확고한듯 했다.
나는 마치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비너스조각에 끌과 망치로 옆구리에 구멍을 내는것같은 끔찍한 연상이 들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다른사람들에게는 장기를 기증하라 권하면서도 자기동료가 기증하겠다는것을 적극 말리는것은 또 무슨 이율배반적 태도인가 하는 자책감도 들었다.
그녀는 환자를 진정으로 염려하고 도와주고 싶은 일념인것 같았다.


코드 블루가 걸렸다. 이는 응급상황을 알리는 병원내의 암호이다.
신장투석실로 오란다.
달려가보니 스테파니가 이미 여러의사들에 둘러싸여 심폐소생술을 받고있었다.
한참 이나 지났을까. 의사들이 포기하고 물러서는게 아닌가.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맨먼저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이제 아일린이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되겠구나하는 것이었다.
마치 비너스 조각이 위기를 면한것 같은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러자 곧바로 또 하나의 생각이 나의 양심을 후려갈겼다.
환자가 죽었는데 어찌 의사로서 안도의 숨을 내 쉰단 말인가.
환자의 생명보다도 아일린의 안위가 그렇게 더 중요했단 말인가.
아일린의 얼굴도 보였다.
조금만 더 일찍 수술을 받았으면 생명을 건질수 있지 않았을가하는 아쉬운 표정이었다.
나는 자기 장기까지 떼어주며 환자를 구하려는 아일린같은 의사가 이세상에 몇명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같으면 그만한 희생을 감당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을것 같았다.


일반내과 로테이션을 끝낸 이후로는 아일린을 별로 볼수 없었다.
전공과목도 다르고 여러 자매병원들을 돌아야 하니까 만날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레지던트 끝날무렵 대학병원 복도에서 한번 마주쳤다.
인턴때 함께 고생하던 이야기도하고 그간의 안부도 물었다.
레지던트를 마치고 보스톤에가서 휄로우를 할 예정이라 했다.
나도 타주로가서 휄로우를 할거라니까 서로 잘해보자고 덕담을 나누고 헤어졌다.
그녀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은 마치 잔잔한 호수위를 우아하게 가로질러가는 백조와도 같았다.


시카고에서 노 영일.     October 19, 2013     Y. 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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