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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마지막 전화

2013.11.16 20:13

노영일*68 Views:3442


마지막 전화

전화 벨이 울렸다. 한국에서 온 전화였다.
뜻밖의 전화라 처음에는 누군가 알아차릴수가 없었다.
이름을 듣고보니 어릴적 개구쟁이시절의 친구였다.
반세기가 넘도록 연락이 없다가 문득 전화를 한것이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하였으나 어릴적 이야기를 나누면서부터 다시 소년시절로
돌아간듯 따뜻한 우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 우리는 자전거 타기를 좋아해서 자전거를 타고 여러곳을 돌아 다녔다.
돈암동에서 시내를 거쳐 서대문, 홍제동을 지나 문산까지 갔다오곤 했다.
자전거 앞바퀴가 전차길에 빠지면 영락없이 넘어지는데 몇번 호되게 다친
기억도 난다.
중간에 시내물에서 고기를 잡아오기도 했다.
그가 가져온 무슨 나무뿌리 같은것을 돌로 쪼아 물에 풀어넣으면 피래미들이 기절을하여 흰배를 내놓고 물위로 둥둥 떠오른다.
그것들을 건져 집에 갖고와 어항에 넣으면 고기들이 다시 살아나 헤엄쳐 다니는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때 돈암동에는 덤바위산이라고 있었는데 돈암동쪽은 깎아지른듯한 바위 절벽이고 안암동쪽으로는 보통 산이었다.
바위위에 올라가 고함도 질러보고 산위를 뛰어 다니며 나비, 잠자리, 매미, 메뚜기
들을 잡던 기억도 난다.
연을 날리며 연싸움도 하였는데 서로 실이 어긋나게 하여 상대편 실이 끊어지면
이기는 것이었다.
실이 끊어지면 연은 멀리멀리 날아가 버리고 실만 허슨하게 하늘에 떠다니다가
맥없이 땅에 떨어지곤 했다.
연실에 풀을 먹이면 실이 빳빳해지고 질겨져서 잘 끊어지지 않는다.
풀에 유리가루를 살짝 섞어 넣으면 실이 칼날같이 날카롭게 되는데, 이것을 쓰면
상대방 실을 자르기가 쉬웠다.
경기 규약이 있는것도 아니고 무슨수를 쓰던 이기면 상책이었다.

골목길에서 야구를 하다가 공이 남의집 담넘어 들어가면 손발이 달토록 잘못했다고 빌며 다시는 않그러겠다고 맹세를 하고 공을 찾아오곤했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나면 공은 둘째고 잡히지 않도록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가 숨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때 야구공은 곰보 무니가 있는 딱딱한 고무로 만든 공이었다.

도봉산에 올라가 텐트앞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가 숨겨 가져온 담배를 몰래 한번
피워 보고 무슨 스릴같은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 당시 길거리에는 꽁지가 서로 붙어 떨어지지 못하는 개들을 종종 볼수 있었다.
암놈이고 숫놈이고 힘센쪽으로 질질 끌려 다니곤 했다.
몽둥이를 들고나와 후려치면 깨갱깽하며 떨어져 서로 제갈길을 가곤했다.
마치 시암 쌍둥이를 분리하듯 그 당시에는 우리가 개들을 고난에서 구해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몹쓸짓을 한것이었다.



여름방학때 미사리에 캠핑갔을때였다.
지금은 조정경기장이 되었는가 본데 그당시는 한적한 한강의 한 지류였다.
저녁을 끓여먹고 누군가 참외서리를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겁이나 망서렸으나 전원 출동하는데 혼자 빠지면 의리없을것 같아 할수없이
딸아 나섰다.
달도없는 캄캄한 밤중이었는데 윈드자켓 허리끈을 동여매고 참외를 따서 윗단추
쪽으로 집어넣으면 훌륭한 자루처럼 되었다.
한참 수확을 하고있느데 갑자기 꾕가리 소리가 나더니 저놈들 잡아라 하는 소리가
들리며 시끌벅적하는것이었다.
완전히 포위되어 꼼작없이 현행범으로 모두 잡혔다.
동네 광장에 우리를 꿀어앉혀 놓고 인민재판이 시작됐다.
어떤사람은 경찰을 부르자 했고, 어떤사람은 경찰불러야 소용없으니 모두
다리몽둥이를 불어뜨려 버리자고도 했다.
공포에 떨고 있는데 좀 나이든 사람이 나서더니 너희중 한사람을 집에 보내줄테니
우리가 손해본 만큼 부모들한테 가서 돈을 받아와라 하는 것이었다.
서로 쿡쿡 찌르며 누가 서울에가서 돈을 마련해 올것인가 정하는데 중론이 내가가는것이 가장 좋을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우선 위기를 빠져나오는것이 상책일것같아 서울로 왔다.
집집마다 다니며 캠핑하다가 돈이 떨어져서 걷으러 왔다고 하니 그저 몇푼씩
내어줄 뿐이었다.
그 당시 요구하는 액수가 엄청나서 도저히 마련할수 없을것 같아 할수없이
아버지에게 이실직고 하고 돈을 받아다가 볼모로 잡힌 친구들을 구해온 기억도 있다. 사실은 그 전날밤 다른 캠퍼들이 참외 서리를 하여 동네 사람들이 특별경계를 서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그 이야기를 가끔씩 하시곤했다.

그밖에도 자치기, 제기차기, 딱지치기, 구슬따먹기, 말타기, 기마전등 까맣게 기억의 한구석에 밀쳐져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한참의 시간을 낄낄대며 보냈다.

나는 그가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해 본일이 없었는데 제일 들어가기 힘들다는
대학교에 거뜬히 합격하여 약간 놀랐었다.
훗날 그가 대 기업의 중역이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 나서 갑자기 나에게 전화를 한것이냐고 물었다.
그가 하는 말이 사실은 2년전에 암진단을 받고, 여러가지 치료를 받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할 치료가 없다는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가만히 병상에 누워있자니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같이 뇌리를 스쳐가는데 내 생각이나서 수소문하여 전화를 한것이라고 한다.

나는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 쓴듯 숙연해 져서 그럼 그간 여러가지로 고통도 많이
받았겠구나 하며 위로를 할려고 하니 그는 그 이야기보다는 차라리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하며 추억에 잠기는것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다시 전화 하마 하고 전화번호를 받아 놓았는데 며칠후 전화를 하니 그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시카고에서 노 영일. November 16, 2013. Y. 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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