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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고희 (古稀)

2014.01.15 15:20

노영일*68 Views:3358


고희 (古稀)

내 생일은 정초이기 때문에 늘 손해를 본다.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설을 쇠고나면 내 생일은 흐지부지 되어버리기가 일쑤이다. 선물도 세가지를 한데 묶어 한번 받고나면 그만이고, 파티도 한번으로 때우고 은근슬쩍 넘어간다.

환갑때는 가족들이 잔치를 해준다고 했으나 젊은 생각에 노인 대접 받기도 쑥스러워 내외가 도망치다시피 골프여행을 갔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아쉬웠는지 포도주와 캐어 패캐지를 호텔방으로 보내왔다.

세월은 화살같이 흘러 금년에 칠십회 생일을 맞고 보니 가족들이 이번에는 꼭 잔치를 해야 된다고 야단이다.큰딸이 주동이 되어 전가족이 한번 모이자고 했다. 어디가 좋을가 이곳 저곳 의논한 결과 훌로리다의 디즈니 월드로 정했다. 손주가 여섯이니 손주들이 재미있게 놀면 그것을 보고 즐길 요량이었다.

출발 당일이 되어 모든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예약한 리무진이 나타나지를 않는다. 조급한 마음에 계속 전화를 했으나 전화도 받지를 않는다. 다른 회사에 전화를 해보았으나 그렇게 급하게 차를 댈수가 없다고 한다. 30분을 기다리다가 도저히 않되겠기에 내차에 짐을싣고 손수 운전을 하여 공항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트램 (공항내를 다니는 자동전동차)을 기다리는데 5분마다 정확하게 와야할 트램이 오지를 않는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가고 30분이되도 트램이 오지를 않는다.이제는 트램이 오드라도 이 많은 사람들이 다 탈수도 없게 됬다. 이러다가 비행기를 놓치기가 십상이었다. 발을 동동 굴르며 속을 태우고 있는데 40분만에 드디어 트램이 나타났다. 필사적으로 올라타고 모든 수속을 마치고 나니 비행기가 문을 닫기 직전에 마지막 지각생으로 겨우 올라탈수 있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죽 흘렀다.아내는 그래도 내가 매번 서두르는 버릇 때문에 이번에 비행기는 간신히 탈수있었다고 웃는다. 사실 여행갈때마다 나는 아내에게 비행기시간을 한시간정도 앞당겨 속이는 버릇이 있다.

임시로 임대한 주택은 매우 컸다. 큰 침실이 일곱개나되는 저택이었다. 우리 일가족 전체가 들어서 살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손주들은 눈속에 파묻쳐 살다가 마당에 있는 수영장을 보더니 신기하기라도 한듯 좀처럼 물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특히 스위스에서 온 손녀들은 수영장을 제일 좋아하는것 같았다.







다음날에는 밴 두대에 나누어 타고 매직 킹돔에 갔다. 하이웨이에 차들이 잔뜩밀려 있어 좀더 일찍 떠나지 않은것을 후회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대 부대가 이동하자니 스케쥴대로 시간 마추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 진입로는 아예 주차장 같았다. 한시간도 넘어 기다려 겨우 입장할수가 있었다. 공원안은 그 큰 공간이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도 없이 사람들로 꽉차 있었다.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각종 캐랙터들이 줄을지어 퍼레이드를 하는데 음악소리가 어찌나 큰지 정신이 얼떨떨해질 정도였다. 아이들은 좋다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군중사이로 순식간에 살아진다. 허겁지겁 쫓아가 잡아오면 다른놈이 없어졌다. 저희 부모들도 구경하느라 정신이 나간것 같았다. 전에 이곳에 두세번 와 봤지만 이번같은 만원사례는 본적이 없다. 아마도 연말 휴가철이라 그런가 보다. 어디를 가나 긴 줄을 서서 한시간 두시간씩 기다려야 하니 내 급한 성격에 견디기가 힘들었다. 점심때 샌드위치 하나 사먹는데도 전쟁을 치루어야 했다. 아이들은 무슨 싸인 받는다고 줄에 서있는데 두시간쯤 걸릴것 같으니 나더러 가서 점심을 시켜 놓으란다. 말이 식당이지 거기도 긴줄을서서 주문을 하는데 식탁은 빈자리도 없어 땅바닥에 않아 먹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마치 거대한 난민 수용소 같았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오니 내 혈압니 20포인트는 올라간것 같았다. 그래도 손주들은 무슨 무용담이라도 하듯 그날 본것들을 떠들며 되내이는것을 보고 마음은 흐믓했다.











다음날에는 엡콧쎈터에 갔다. 이곳도 만원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날따라 비가 오락가락하여 우비를 사서 입고 줄을서 기다리자니 그 고충이 말이아니었다. 왜 비싼돈을 내고 이고생을 한단 말인가. 그래도 아이들은 신난 모양이었다. 우비 색깔들이 같아서 우리 아이들을 구별하기가 더 어려웠다. 아이들을 잃어버릴가바 하루종일 머리수만 세다보니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도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내가 노심초사하는것이 측은해 보였는지 딸애들이 아버지 어머니는 공원에 가지 말고 골프나 치러 가시란다. 손주들 노는것을 보지 못해 아쉬웠으나 더 이상의 고문은 받고 싶지가 않아 마지 못하는듯 그렇게 하자고 했다. 아내와 골프장에 나오니 그같은 천당이 없었다!. 넓은 초원에 조용한 분위기는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갖다주는듯 했다. 골프가 끝날무렵 아이들이 궁금했다. 쎌폰을 거니 아무 문제없이 잘 논다고 한다. 그러나 저녁먹으며 하는 이야기를 훔쳐들으니 한녀석이 보이지 않아 혼났단다. 딸들은 조그만 카드에 우리 쎌폰 번호들을 모두 적어 아이들 주머니에 하나씩 넣어주고 혹시 가족을 못찾으면 마음씨 좋게 생긴 아줌마한테가서 전화해 달라고 말하라고 일러주고 있었다. 어떤 미국사람은 지워지지않는 매직펜으로 아이들 팔뚝에 자기 쎌폰 전화번호를 적어 놓은것도 보았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가는법이다. 이제 돌아갈 날짜가 되어 아쉬운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TV를 보니 시카고에 기록적인 한파가 올거라고 예보 한다. 헤어지기가 안타까왔으나 아이들은 하나 하나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잘 갔다는 전화도 왔다. 우리 부부만 좀더 골프를 치려고 남았다. 커다란 집에 두 내외만 있자니 그 적막감과 공허감이 곱배기로 몰려왔다. 마지막날 일요일에도 아침일찍 골프를 치고 비행장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뉴스를 들으니 한파와 폭설로 많은 비행기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덜컥 걱정이 되었다.다음날 월요일 부터는 당직이어서 그날 돌아가지 못하면 아주 곤란하게 되어 있었다. 서둘러 비행장에 나가니 내가 타려는 비행기는 한시간 연발될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취소 되지는 않아 다행이다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첵인을 하고 기다리는데 모니터에 출발시간이 수시로 바뀌는 것이었다. 볼때마다 한시간 두시간씩 늦어지는데 시카고로 가는 다른 항공사는 하나 둘씩 운행을 취소를 하는것이었다. 불안해져서 직원에게 물으니 시카고 공항에 날씨가 매우 나빠 비행기 이착륙이 어렵단다. 아직 취소는 않되었어도 언제 떠날지 모르고 취소될지고 모른단다. 눈앞이 캄캄해 졌다. 공항에는 비행기를 못타 의자는 물론 바닥에 쭈구리고 않거나 아예 담뇨를 깔고 들어누어 자는 사람도 있어 마치 피난민 수용소 같았다.

무려 아홉시간을 가슴조이며 기다려 드디어 11시경 비행기를 탔다. 시카고 공항에 착륙한것이 자정이 넘어서였다. 게이트에 갈수가 없어 비행기안에 또 두시간을 앉아 있었다. 새벽 두시에 드디어 시카고 땅을 밟았다. 다행히 트램이 다녀 그것을 타고 주차장까지 갔다. 얼굴에 와 닫는 공기가 실로 살인적이다. 공항안전원이 어디에 주차했느냐고 묻고 거기까지 걸어가면 동상이 걸린다고 자기차에 태워주었다. 차는 눈에 덮혀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다행히 온도가 너무 낮아 눈이 마른 밀가루처럼 후들후들하여 치우기는 쉬웠다. 발동이 걸리나 안걸리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키를 돌리니 발동이 착 걸렸다. 할렐루야.



하이웨이는 눈을 잘 치워놓고, 혹한의 월요일 새벽 2시라 길에 차도 없어 집까지는 쉽사리 왔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니 드라이브웨이에는 허벅지까지 빠지게 눈이 쌓여 있다. 간신히 차고에 들어가 제설기를 꺼내 차가 들어갈수 있을만큼만 눈을 치우고 차고에 차를 넣었다. 심장마비나 오지않을까 겁을내며 눈을 치우는데 두보의 곡강시 (曲江詩) 에 나오는 말이 생각났다. 자고로 사람이 칠십세까지 사는것은 드문 일이다 (人生七十古來稀). 칠십고개를 넘다 주저앉는것은 아닐까. 칠십고개를 넘는데 이렇게 희비 쌍곡선이 교차할줄은 몰랐다.내 침대에 누으니 그렇게 안락할수 없고 안도감이 몰려왔다.

며칠간이긴 하지만 내 피붙이들이 한지붕아래 모여 지냈다는것이 꿈만 같았다. 나는 남보다도 더 많은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하느님께 감사했다.



한 두어시간 눈을 붙혔을까, 7시가 되니 영락없이 비퍼가 울리며 병원으로 나오란다. TV를 틀어보니 모든 학교, 병원, 관공서등이 혹한으로 문을 닫는다고 한다. 먹던 커피를 공중에 뿌리면 눈이되어 떨어졌다. 시카고에 산지 30여년에 이런 추위는 처음이다. 외래 진료소는 다 문을 닫았지만 당직이니 입원환자와 응급환자들은 돌보아야 했다. 주섬주섬 옷을 줏어입고 차의 발동을 걸었다. 어차피 인생은 전장이요 매일매일의 생활은 전투가 아니었던가. 이를 한번 악물고 병원을 향하여 달렸다.

2014년 1월 시카고에서 노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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