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4 03:08
미뇽이야기 - 제3회 이리하여 나의 미뇽의 추적은 모두 끝났다.
여기서 미뇽이야기는 끝났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4.10.04 10:20
2014.10.04 10:53
참 좋은 시입니다. 청빈한 선비로서 실제로 밭을 갈고 살았지요.
해보지 못했던 농사를 지으려니 곡식 싹보다 잡초가 극성스럽다고 탄식도 하였지만,
깨끗한 마음으로 일생을 살았던 분이지요.
부친께서는 대단한 부자집에서 태어나셨는데, 조부님이 개화바람에 선지자 혹은 선지식인과 많이 교류를 하시다가
부친이 십여세인데 미국에 보내셔서 물론 자비로 공부를 하셨지만, 그 옛날 송금에 애로가 적지 않았다고 하셨지요.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귀국하신 후 가사를 돌보시다가 사업에 계속 실패하셔서 내가 태어날 때에는
적선동 큰 집에서 낳았는데, 얼마 안되어서 집도 팔고 세산살이 모두 정리하시고 셋집으로 가셨다로 들었어요.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는 꿈이 있으셔서 나중에 집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지으시기를 원해서 자주 집 그림을 그리시면,
아버지께서는 어머니보시고, "집은 커야 아무 소용없어요. 그져 방하나, 부억하나, 툇마루 하나면 되요."
이렇게 말씀하셨던 걸 지금도 기억합니다.
젊었을 때에는 큰 집을 갖기도 하였지만, 현재에는 크기가 중간정도 집인데, 생각해보니, 이 집이 우리
두 식구한테 너무 크지요.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 많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아들 둘이 비교적 자주 가족을 데리고 오더니,
요즘은 오지도 않아서 우리가 매년 몇 번씩 찾아 갑니다. 이제야 부친께서 하셨던 말씀의 뜻을 알 듯합니다.
혹시 미국의 현인 Henry Thoreau의 Walden Pond와 Cabin을 가보셨는지요?
Concord, MA에 있는데 그야말로 소위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지요.
한 번 가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모든 성인과 현인은 우리에게 검소하게 살라고 하지요.
이제야 그 뜻과 가르침을 조금 알 듯합니다.
2014.10.04 14:05
Henry David Thoreau 란 분 이름 찾아 보니, 이분 성격 이해 하겟읍니다.
조선에도 원측을 따라 죽엄을 택한 사람들 이름 역사 시간에 배운 기억이 있읍니다.
그들을 死六臣이라고 햇지요.
미국에서 그당시 흑인 노예제도에 공공연히 반대한다는것은
구네타하자는 얘기같이 들렷을찌도.
우리 세대는 하도 정치적인 변혁을 많이 당해서, 大勢와 싸워 봣지 개죽엄을 당햇을 것이고
國旗 여러개를 집에다 그려 놓고, 大勢에 마추어 국기를 흔들어 대서 아직도 연명한다고 생각.
저희 세대가 흔들어 본 국기만도, 일장기, 미국기, 한국기, 인공기, 그리고 저는 카나다국기 까지 흔들고 살다가
지금 까지 연명하고, 감방에는 한번도 들어가지 않앗읍니다.
이분은 감방에 한번 들어 갓다고 하네요!
Synopsis
Henry David Thoreau was born on July 12, 1817, in Concord, Massachusetts. He began writing nature poetry in the 1840s, with poet Ralph Waldo Emerson as a mentor and friend. In 1845 he began his famous two-year stay on Walden Pond, which he wrote about in his
2014.10.05 02:50
2014.10.05 10:58
I read a few books written by Beup-jeong and one of the books
he recommended to read was Henry D. Thoreau's mentioned by
Dr. Minn.
Any similarity between the two?
http://www.youtube.com/watch?v=NGJ0xn15mho
(in full screen mode)
2014.10.05 18:56
Dr. Bang,
How one should live?
It is a difficult question. But I try to think simple.
Someone in India taught us not to get attached or attracted in order to be free.
Someone in China taught us it is okay to enyoy or get attached as long as you do not indulge in it. (樂以不淫)
American value taught me to enjoy as much as I can as long as it is legal after I pay your fair share to others.
As time goes by, my feeling to those teachings also changes.
Once it sounded like 馬耳東風, but now everything began to make sense.
Those two people you mentioned have followed their heart, I think.
2014.10.05 19:49
Dr. Bang:
Probably you do know this venerable Buddhist monk far more than I do. Let me share with you a few examples of Thoreau's deeds and thoughts: 1. In the above cabin with only a few furnitures he had lived almost two years alone supporting himself by manual labors working and raising some crops in a few acres of land. Incidentally the lot and land were leased free of charge from his friend, Waldo Emerson. One day he found a mole caught in a trap set by a neighboring farmer, and picked up and taken to a few miles away and released the fortunate mole to a wild forest, telling him or her not to return to the place, "This is your land and home, but the cruel humans took it from you and even tried to kill you. So save your self." He also was against the slavery, and protected some runaway blacks by hiding them. He purposely refused to pay Massachusetts tax, causing his arrest and spending overnight at a jail because of his refusal to pay tax. Fortunately he was released the next day by the full payment of his deliquency(?) by an anonymous donor. When he died at the age of 34, he was single and sensible. These two great men have a lot in common, frugality, compassion, non-killing, humanity, diligence. and so on.
2014.10.05 20:40
While reading conversations between two of you, sunbaenim-deul,
I recalled the life of Narcissus and Goldmund - writtten by Hesse (1930).
And
- I recalled what my patient said at his deathbed - which I heard later,
"No regrets. I've done all what I wanted to do in my life"
http://www.youtube.com/watch?v=nIGjiZW7DYI
2014.10.08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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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어린 시잘을 그리워하고, 항상 草家 三間 고향집 생각을 하는가?
이질문에 의심을 가지기 시작한것은 나이 가 상당히 들은 후엿지요.
젊은 시절 한국 살때, 초가집 살이를 면하려고 시골 사람들이 발버둥 치던 시기엿고.
초가집은 촌스러웟고 무두 가난의 상징,
아프리카 미개발지역과 조금도 다를 바없다고 생각하든 시절이엿지요.
물론 변소에 구덕이가 득실거리고 거기에 수반된 비위생적인것이 모두가
초가집에 부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햇기 때문 이엿겟지요.
이상하게도 동물에겐 자기가 낳든 곳에돌아가서 새끼를 낳고 죽는 버릇이 있는데,
뱀장어 연어, 고래, 거북이 예외가 없는듯하고
우리도 그걸 舊巢本能이라고 배웟고,
제가 Montreal에서 정신과 레지던트릏 하는데 한번은 카다다 북쪽 James Bay 에사는 젊은 에스키모 사람이 문제가 있어
Montreal General Hospital 에서 장기치료를 하고, 퇴원할때쯤돼서 Montreal 에서 편하게 살게 터전을 만들어 준다고
남어서 계속 외래환자로 치료를 받으라고 햇는데,
한사코 모두 다 뿌리치고 얼어 부튼 에스키모 동네로 돌아가겟다고 우기든 장면이 기억에 남아있지요.
가난한 이태리 남쪽에서 곡마단에 팔려온 Little Mignon 에게도
삶의 풍요로움이 그 아이의 舊巢本能을 억누를수 없을 것이라는 Goete 의 암시적인 얘기가
우리의 마음을 거드리지 않는가 함니다. 노래도 그렇고.
그래서 고향을 떠난 모든 인간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가 함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즐겨 왓던 도연명의 시하나 옮겨 봄니다.
집에 옛날에 친구가 써준 이 漢詩 족자가 걸려져있지요.
여기 우리 홈피 글들을 읽어보면
舊巢本能이 한반도 "남쪽나라" 나라에서 오신분들을 더 affect 하는지?
그 곳에는 오렌지 꽃은 피지 않아으니 아루런 감흥이 않일겟지만
장독대 위에 울창하든 대나무 숲만 보시면,
또다른 감회가 구름처럼 일어날것같음니다.
ㅎㅎ
歸園田居
少無適俗韻하니 性本愛丘山이라
誤落塵網中에 一去三十年이라
羈鳥戀舊林하고 池魚思故淵이라
開荒南野際하여 守拙歸園田이라
方宅十餘畝요 草屋八九間이라
楡柳蔭後簷이요 桃李羅堂前이라
曖曖遠人村하고 依依墟里煙이라
狗吠深巷中에 鷄鳴桑樹顚이라
戶庭無塵雜하고 虛室有餘閑이라
久在樊籠裏하다가 復得反自然이라
田園에 돌아와 살다
어려서부터 세속 운치에 맞지 않아 본성은 본디 자연을 좋아했네.
잘못 벼슬길에 떨어져 한번 가서 서른 해가 되었구나.
안의 새는 옛 숲을 그리워하고,
연못 속의 고기는 옛 못을 생각하네.
남쪽 들녘 가의 묵정밭을 개간하여
본성을 지켜 전원에 돌아와 사네.
집 주위는 십여 무(삼백 평)요, 초가집은 팔 구 간이라.
뒷처마에는 느릅나무 버드나무 그늘지고, 집 앞에는 복사나무 오얏나무 벌여 있네.
어슴프레하게 사람 사는 동네가 멀고, 허름한 마을에 연기가 자욱하구나.
개는 마을 가운데서 짖고, 닭은 뽕나무 꼭대기에서 우네.
집 뜰에는 티끌나는 번잡함이 없고, 빈 방에 한가함이 넉넉하네.
오래도록 새장 안에 갇혀 있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왔구나.
감상 ; 이 시는 <도연명집>에 실린 '귀원전거'라는 제목의 다섯 수 중에서 첫째 수다.
그는 스무 살에 벼슬길에 나가, 서른 살에 팽택 현령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이듬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그도 관직에 나갈 때야 입신양명의 큰 뜻을 품었겠지만,
동진(東晉) 말엽의 어지러운 세상과 부패한 관직사회를 보고 절망하여
항상 그리워하던 고향의 전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 시는 대체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의 여덟 구는 전원으로 돌아온 과정을 그린 것이고,
뒤의 열 두 구는 전원의 풍광을 그림같이 묘사한 것이다.
앞 부분에서는 벼슬살이의 속박을 벗어던지고 전원으로 돌아온 기쁨을 표현했는데,
처음 두 구에서 어려서부터 세속적 취향이 없고 자연을 좋아했다고 함으로써
벼슬길에 나간 것이 본심이 아니라고 하였다.
잘못 벼슬길에 떨어져 30년이 지났다고 했는데,
사실 그는 가난한 살림에 어버이를 모시고자 스무 살에 고을의 낮은 벼슬에 나갔다가
서른 살에 팽택 현령을 그만두었다.
또는 서른 살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따라서 삼십년은 십삼년의 잘못이라는 설도 있지만,
자신의 생각으로는 오래동안 벼슬생활을 했다는 과장적 표현이겠다.
새장 속에 갇힌 새나 작은 연못에 갇힌 고기처럼 벼슬에 얽매여 살면서
전원에 돌아가 자연 속에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다가,
마침내 고향에 돌아와 묵정밭을 일구며 살게 되었다고 기뻐하고 있다.
뒷 부분에는 전원의 풍경과 시인의 즐거운 마음이 표현되었는데,
우선 가까운 경치로부터 먼 곳의 경치로 나아갔다.
300평 남짓의 집자리와 초가집, 그리고 나무들이 둘러있는 풍경이다.
동네에서 좀 떨어진 모양이라 번잡을 싫어하는 그의 취향이 드러난다.
마을의 평화로운 광경과 집안의 고요하고 한가한 모습이 그림처럼 묘사되어
농촌의 풍경이 우리 앞에 제시되었다.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도 않으면서
한가하고 자족적인 전원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내었다. 마지막 두 구에서
주제를 다시한번 환기시키는
'새장을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왔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