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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김희중 Essay] 죽음의 문턱

2014.09.2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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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58)

죽음의 문턱


[중앙일보] 입력 2006.11.22

삼성 해외사업장 취재차 도쿄 방문
식당서 술 곁들인 저녁식사 후 졸도


[김희중 갤러리]1995년 어버이 날 무렵, 광주광역시에 있는 ''사랑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노인. 형편이 어려워 식사를 걸러야 하는 많은 노인들이 이곳에서 따뜻한 한 끼 밥을 대접받았다.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는 사회야말로 아름다운 사회가 아닐까?

눈앞이 환하다. 화사한 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하다. 몸은 솜털처럼 가볍다. 발걸음은 허공을 팔랑이는 나비 같다. 이렇게 편안할 수가 있을까? 

조그만 개울이 있고 예쁜 구름다리가 그 위에 걸쳐 있다. 다리를 지나 물을 건넌다. 더 환한 세상이 펼쳐진다. 오솔길을 따라 걷는데 앞으로 빨려가는 듯하다. 몸은 안락하고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하다. 

몸이 흔들린다. 누군가 나를 흔들고 있다. 왜 귀찮게 구는 걸까? 손길을 뿌리치고 계속 걷는다. 더 크게 몸이 흔들린다. 툭 꺼지듯 환한 세상이 사라지면서 눈을 떴다.

하얀 가운을 입고 흰색 헬멧을 쓴 사람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크게 숨을 내쉬었다. 

1994년 어느 날 일본 도쿄의 식당에서 나는 졸도했다. 친구들을 만나 반주를 곁들여 저녁을 맛있게 먹은 뒤 "계산은 내가 하겠다"며 카운터에서 지갑을 꺼내던 순간이었다. 3~4분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사이 친구들은 나를 깨우기 위해 흔들고 급히 구조대를 부른 것이다. 쓰러져 있는 동안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하고,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 무렵 나는 일생에서 가장 바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화보' 편집장과 '타임' 특파원을 겸하는 상황에서 삼성의 해외홍보를 맡았고, 중앙대에서 강의도 하고 있었다. 졸도한 날도 삼성 해외사업장을 취재하기 위해 보름 일정으로 떠난 출장의 첫 방문지인 일본에 도착했을 때였다. 

어릴 때부터 몸은 튼튼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건강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잔병치레 한 번 없이 아흔까지 사셨다. 나보다 아홉 살 많은 큰 누이(75세)는 아직도 인천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몸이란 한계가 있는 법이다. 스무 살 때 뉴욕에서 시작된 육체의 고통과 정신의 긴장은 수십 년간 지속됐다. 궁핍하고 불안한 7년간의 대학 시절, 살아남기 위해 일한 18년 동안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자생활, 그리고 귀국 후 한국 땅에 뿌리내리려고 불철주야 노력한 나날들. 견디다 못한 육체와 정신이 '더 이상은 도저히 못 참겠다'며 두 손을 들고 비명 지르듯 주저앉아 버린 것은 당연했다. 도쿄의 구조대원은 이렇게 말했다. "흔드는 걸 느끼지 못했다면 살아나지 못했을 겁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뒤돌아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타고난 성정은 느긋하게 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졸도한 다음날부터 예정된 일정을 모두 소화했고 병원도 들르지 않았다. 요즘도 건강을 위해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 다만 절제를 통해 몸을 괴롭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말씀하셨다. "한 술 더 먹고 싶을 때 숟가락을 놓아라." 가르침대로 평생 소식(小食)했고 즐기는 포도주도 한 병을 넘기지 않는다. 

난 행복한 일생을 살았다. 다른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시련이 나만 피해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죽는다 해도 미련은 없다.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일본에서 그날 본 것이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면 죽음이란 편안하게 잠에 빠져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최후의 순간에는 밝고 화사한 길을 따라 저세상으로 건너간다고 믿는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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