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2 02:07
미뇽이야기 - 제1회 "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 나라를." 독일 어떤 도시에 청년 Wilhelm Meister가 여행 중이었다. 일정한 목적이 있는 것 같지 않았고, 여행 그 자체가 목적인 듯하였다. 그가 묵고 있는 여관에 곡마단 일행도 숙박 중이었다. 어느 날 그가 여관을 나갈 때, 문에서 어떤 아이와 마주쳤다. 열 한두 살쯤 되어 보이는데 그의 땋은 머리가 없었다면 소년으로 보았을 것이다. 얼굴은 붉게 칠하고 있었고. 마이스터는 그 소녀의 팔을 잡고 "네가 누구에게 속해 있지?"하니까, 그녀는 그를 흘깃 보고 팔을 홱 뿌리치고 달아나 버렸다. 그 다음날도 또 문에서 만나서 물어보니, 역시 대답 없이 달아나 버렸다. 삼 일째 되던 날 여관 밖에서 요란한 소동이 일어났다. 마이스터가 모여든 사람들 사이로 헤치고 들어가 보니 곡마단 주인이 그가 전에 두 번이나 만났던 바로 그 소녀를 잡고 때리고 있었다. 그 내용인즉 곡마단에서 그 소녀가 춤 출 시간이 되었는데, 방금 잠에서 깨어난 소녀는 춤 출 것을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 흉악스러운 주인에게 매를 맞기 시작하니 소녀는 울고 구경꾼은 몰려들었다. 이러한 상황을 본 마이스터는 뛰어 들어가서 주인의 멱살을 잡고 아이를 때리지 못하게 하였고, 그 통에 그 소녀는 달아나 버렸다. 주인은 항의하며 말하기를, 자기는 얼마 전에 비싼 돈을 주고 이 아이를 샀으니 그 돈을 물어내라는 것이었다. 이에 마이스터는 그 주인과 즉각 타협을 보고 주인이 달라는 대로 돈을 지불하고 소녀를 곡마단으로부터 합법적으로 풀어주었다. 필요한 서류가 다 완성이 되었다. 그제야 그는 그 소녀의 이름이 Mignon(미뇽)이라고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에는 미뇽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삼일 후에 그 곡마단이 완전히 떠난 다음에 여관에 돌아와서 마이스터에게 인사를 하였다. 아마 그 곡마단 주인이 무서워서 그가 떠날 때까지 숨어서 기다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마이스터가 이미 자기의 몸값을 치른 사실도 벌써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새 주인인 마이스터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였고 마이스터는 여러 가지 질문을 그녀에게 하였다. 그녀는 독일 남부의 Accent가 섞인 말투로 대답을 하며 그럴 때마다 허리를 굽혔다. 아마 그것이 주인에게 대한 예의인 모양이었다. 마이스터는 그녀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고, 자기는 그녀의 주인이 아니고 당분간 그녀가 갈 곳이 생길 때까지 그녀를 돌보아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곡마단에만 끌려 다녔던 미뇽에게는 갈 곳이 없었다. 그리하여 당분간 그녀는 마이스터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마이스터는 미혼청년이고 부유한 중산층의 아들이었으며 자기 집안의 사업을 계승하는 것보다 현재로서는 여행을 하며 세상에 관하여 여러 가지를 알고 싶어 하는 그런 청년이었다. 미뇽은 항상 마이스터 옆에서 심부름을 하려하고 항상 마이스터를 위하여 그녀의 최선을 다 했다. 그리고 과거 곡마단의 흔적을 모두 없애려고 하였으며 그 중 한 가지는 그녀의 뺨에 있는 붉은 칠을 벗기려고 계속 자기 뺨을 빡빡 문질러 닦았다. 어느 날 마이스터가 그녀에게 뺨이 붉은 것은 그때 칠했던 색 때문이 아니고 자신이 뺨을 너무 닦았기 때문에 충혈이 되어서 붉은 것이라고 이야기 할 때까지. 그런데 어느 날 마이스터에게 우울한 일이 있었고 몸이 피로해 있었다. 그걸 보고 미뇽이 자기가 그의 피로를 풀어주겠다고 말했다. 마루바닥에 즉석 무대를 설치하고 Carpet위에 계란 열 댓 개를 나열하여 놓고 자기 눈을 수건으로 완전히 싸맨 다음 그 계란 사이로 능숙히 다니면서 날렵하게 춤을 추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아슬아슬하고 신기한 '미뇽의 계란 춤(Egg Dance)이었다. 이 춤에 도취했던 마이스터는 이 춤이 끝날 때에는 그의 우울과 피로가 다 없어졌다. 그가 갈채를 하니 미뇽은 미뇽의 그 유명한 '미용의 노래'를 부른다. "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 나라를..." 노래가 끝난 후 마이스터는 미뇽에게 물어 보았다. "저 남쪽 나라가 어디지?" "몰라요." "혹시 이태리 아닌가?" 그녀는 대답을 안 했다. 그 후 이 두 사람은 여러 해를 함께 지냈다. 그리고 여러 곳을 여행하였다.
Kwan Ho Chung - October 1, 2014 |
2014.10.02 15:20
2014.10.02 15:46
항상 凡人의 당연한 (??) 표를 살살 피하면서
공상의 세계를 헤매게 하는 바로 얘기 꾼의 수법
특히 나이가 들기 시작해 pituitary gland가 촉촉하게 젓어 가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든 그 시절에 이런 얘기들으면, 누구나 공상의 날개를 많이 펄럭이겟지요
그래서 저도 아직까지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 얘기가 제 기억에 남아있는가 봄니다.
"그런데 마이스터는 미혼청년이고 부유한 중산층의 아들이었으며 자기 집안의 사업을 계승하는 것보다
현재로서는 여행을 하며 세상에 관하여 여러 가지를 알고 싶어 하는 그런 청년이었다.
미뇽은 항상 마이스터 옆에서 심부름을 하려하고 항상 마이스터를 위하여 그녀의 최선을 다 했다. ..."
신분의 차이, 나이의 차이등등 장애물을 차려 놓고, 사람 간장을 달케하기도 하고..
정선배님,
흘러간 노래처럼 옛날을 생각하게 합니다.
2014.10.02 16:35
The most heart-breaking one was "La Porte etroite" by Andre Gide ("좁은 문" in Korean title.)
It was so sad that I couldn't sleep for a few days after reading this one.
Like Dr. Chung said, they were the stories of "나의 인생에 정서적으로 정말 크게 영향을 미쳤던 글".
I wasn't smart enough to read anyone of them in English or French but did it by Korean versions.
2014.10.02 16:50
그 당시 저의 배경을 조금 소개하고 싶습니다.
제가 혜화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보성중학교 1학년에 입학한게 1950년 초였지요.
그 때 중학생이 되어서 차츰 모든 면에 변화가 오려는 시기에 6.25동란이 발발하였습니다.
거의 모든 서울시민처럼 공산치하에서의 공포, 미군의 폭격, 기아의 고난 그리고 마지막에 연합군의 서울시 탈환으로
일이 해결되는 줄 알았다가 중공군의 개입, 연합군의 후퇴, 1.4후퇴 등을 걸쳤지요.
그 후 우리 가족은 도보로 서울-안성-괴산-다시 안성에서 봄까지 지나다가 다시 도보행장을 차려서 안성-천안-유성에 가서
어머니, 누나 그리고 본인은 아는 집에서 남았고, 아버지는 혼자서 남행하셨지요.
그때 두 석달간 시골생활을 하면서 어머니로부터 천자문과 맹자를 배웠지요.
6월에 겨우 처음으로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대전에서 대구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대구-부산까지 간게 아마 7월경이었지요.
대구에서 심한 더위와 뜨거운 바람에 고생하다가 부산에 도착하니, 너무도 속이 탁 열리는 바다가 있고
또 여름에는 시원한 바닷바람, 겨울에는 비교적 따뜻한 일기가 있었습니다.
그게 1951년 여름이었고, 9월초에 영주동에서 피란학교를 보성-중앙 합동으로 시작하였지요.
이 피란연합학교에서 그래도 2학년으로 들어갔더니, 영어는 국어교사가, 국어는 미술교사이며 교감이셨던 이마동선생님이,
그리고 수학은 어떤 실력이 대단하신 경상도 선생님이 가르치셨는데, 영어와 수학은 도저해 따라갈 수 없었지요.
영어교사는 Alphabet도 잊어버린 우리 대다수에게 한줄 읽으면 문법설영이면서 과거분사, 현재진행형, 과거진행형,
미래진행형 이런 요술같은 소리만 했습니다.
수학은 일차방성식은 1학년생이, 2차는 2학년이, 3차는 3학년생이 매스터해야한다고 하면서 X plus Y, X plus Y plus Z를
그 빠른 부산 사투리로 줄줄 외우는 듯한 수학 강의,
국어선생님은 국어교과서에서 나오는 한문만 가르치셔서, 거기서 힘을 얻었지요.
첫번 시험에 영어 30점, 수학도 50점쯤 한 듯, 그리고 국어는 몇점쯤 되었겠습니까?
놀라지 마세요. 결국 한문시험이 되었던 국어시험결과를 발표하시던 이마동선생님이 정춘호하고 크게 부르시더니
학생중에 유일하게 100점을 받았지요.
영어준비는 너무나 급해서 술 한잔 드시고 깊이 주무시던 어버지를 어머니와 함께 흔들어서 깨우셔서
아버지 잠결에 배웠던 결과이고 국어는 지난 봄 두 석달 동안 어머니로부터 천자문을 통달하였던 덕택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중학교 인생이었지요.
그래서 어머니로부터 배웠던 국어는 100점, 아버지로부터 배웠던 영어는 30점이라고 어머니께서는 자랑하시니까,
아버지는, "당연하지, 국어는 쉽고 영어는 워낙 어렵거든."하셨지요.
2014.10.02 18:01
"그 후 우리 가족은 도보로 서울-안성-괴산-다시 안성에서 봄까지 지나다가 다시 도보행장을 차려서 안성-천안-유성에 가서
어머니, 누나 그리고 본인은 아는 집에서 남았고, 아버지는 혼자서 남행하셨지요.
그때 두 석달간 시골생활을 하면서 어머니로부터 천자문과 맹자를 배웠지요. "
6.25 때
저도 유성 서 15 리 되는 佳水院 과 중간이 되는 道安里 라는 朴氏 동네에서 2 년 반 을 할아버지와 지냇고
그때 저도 천자문을 외웟고, 형님은 유성 사시면서 어머님한테 천자문을 배우셧다니,
60 년지난 오늘 충청도의 그 당시 풍습을 짐작하겟읍니다. 역사책에 없는 중요한 사실같읍니다.
저는 그동네에서 태어 낳지요.
그때 유성 장날 자주 갔는데, 근처 지나가다가 뵈엇을찌도 모르겟읍니다.
겨울이면 동네사람들과 유성 온천 집단으로 목욕하러 갔든 기엇이 있지요,
그당시 溫泉은 세멘트로 만든 큰 우물과 같았든 기억이 있지요.
지금은 이름이 바뀌어 도안동이라고 부르고 대전시에 흡수됏지요.
갑천 냇물가에 나가면 대전서 유성으로 가는 다리가 보이지요
우리 동네 한청년이 밤중에 유성다리쇠를 짤라서 古鐵로 팔아먹으려다거
경찰에 붙들려갔든 애기도 기억하지요.
오죽 가난해서 다리 받치는 쇠를 짤라팔아 먹ㅇ으려 햇겟읍니까?
이 들판 어느 곹이 제 어린시절 뛰어놀든 동네인지
옛날 유성 장터가 어디 인지 도저히 분별을 못하겟읍니다.
이 곹이 우리 집안 선조들이 수백년 땅을 터전으로 살아왓고 어디 뭍혀 있겟지만
이 얘기는 언제인가는 망각속으로 살아지겟지요.
2014.10.02 20:22
Your stories of yesteryears turned me back to those years of
1. 6 25 War (1950-1953) when I was 5 through 8 years old
and only vivid memory is The Total Destruction of the Bridge
- over Jinju South River(Namgang Dari) one night by B-29
and caught fish for my father's dinner at a pond somewhere
suburb of Jinju and was busy with flying kite and was fond
of my classmate - who was a good singer. Of course, she was
a girl.
2. My Junior High School Years?
I didn't know, nor heard about "Mignon", or "Manon", or any
"Non" those days, but I remember I was fond of Sports, any
Sports, especially Volleyball and found my girl when I was a
Junior through all three High School years, but I never even
had any chance to hold her hand - Stupid!, I was.
3. For your memories of 1960s in Korea;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15/2014081501443.html?csmain
2014.10.03 01:40
민선생님
우리가 한 두어달 가량 살았던 시골인데, 아직까지도 그 옛날 주소를 갖고 있어요.
그곳 떠난 후 부친 돌아가신 후 다시 한 번 혼자서 찾아갔으니, 아마 1955년경이었을 겁니다.
그 후 귀국후에 한 번 찾고 싶었는데, 가지 못하고 어떤 분에게 부탁하였더니
그 분이 그 주소를 갖고 찾을 수 없을 뿐더러 그런 주소는 이미 살아진 지 오래라고 하였어요.
하여간 여기 주소 보세요.
"충남 대덕군 유성면 신촌 지족리" 입니다. 4, 5월경에 그곳에서 체류 하였는데, 냇갈을 따라 상류로 올라갔더니,
옥수같은 물에 깨끗한 자갈과 바위가 있는 물가이며, 이름 모를 물새들이 새끼를 데리고 달아나는 걸 보았지요.
지금도 그 때 그 곳이 생생하지요. 유성읍까기 한 십리길이었는데, 주로 산등성이를 넘어서 갔지요.
공기와 물이 맑고 깨끗한 곳이고 또 시절이었어요.
2014.10.03 05:32
2014.10.03 14:26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주소를 보니 충남 유성근처에 사시는 저희
셋째누나댁 근처인듯합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즐비하게
늘어선 대전 근교 도시이지요.
누나집 바로 앞에있는 지하철역 이름도 '지족역'이거던요.
한국 방문시 꼭 들리는곳중의 하나인데 누님댁 방문도 있지만
그곳에서 멀지않은곳에 선산이 있어 성묘하러 내려 가거든요. 규정
2014.10.04 04:36
2014.10.05 00:05
2014.10.05 03:33
20여년전 산과 개업이 한창이던 시절에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낼때에
시간보낼방도를 생각중 학생때 읽었던 소위 세계명작의 영어판을 적어도
100권을 읽어보겠다고 작심하고 매번 병원에 갈때 의례히 소설책과
dictionary를 가지고 갔었습니다.
그당시는 classic book사기 바빳고 애들도 동조를하여 크리스마스등때
선물로 책을 사서 보냈었는데 결국 처음계획보다 더많은 책들을 읽었
었습니다.
이때 제관찰로는 영국이나 미국 작가들이 쓰는 영어 원본이 독일,러시아,
스페인등의 작가들이 쓴책의 영어번역본보다 조금은 난해 해도 결국은
원본이 훨씬 가슴에 닿아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많은 명작들이 영화로 나와서 책을 읽은후 영화도 빌려와 즐겼고
가장 본인에게 난해했던 책으로는 Herman Melville의 'Moby Dick'
이었는데 그 깊고 방대한 reference들을 일일히 찾아보기에는
이시람의 실력이 부족해서 아쉬워 했지만 그레고리 팩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는 퍽 즐겼던 기억이 납니다. 규정
2014.10.05 03:44
Doc, I am absolutely with you in the idea of reading foreign literatures.
I guess, at this stage of my English learning, I can almost feel the true sense of English writings.
With further intensive studies, maybe, I can almost do the same with Chinese writings.
It will be easier because we had been living in a Chinese way or culture a lot in the past.
I envy and congratulate you that you had an early successful start but, for me and us, it may be too late.
Also, for now, there aren't much necessities or obsessions to master Chinese any more for most of us.
Our hands and brains are full of something else to do or to enjoy.
Anyway, please enjoy what you have learned and share it with us.
That will be our lucky rewards from having you around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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