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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컬럼| 220. 성숙한 방어

2014.11.04 22:41

서 량*69 Views: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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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고통이나 불안에 대처하는 심리작용, 즉 방어기전(defense mechanism)을 정신과에서는 크게 네 가지 계급으로 분류한다.

 가장 낮은 계급부터 논하자면 첫째 광적(psychotic) 방어, 둘째 미숙한(immature) 방어, 셋째 신경증적(neurotic) 방어, 그리고 넷째로 성숙한(mature) 방어가 최선의 방어다. 당신과 나를 위한 가장 성숙한 방어를 다음에 열거한다. 이것은 성숙한 인격을 도야하기 위한 지침이자 노하우다.


1. 
억제(Suppression)

 'suppress'는 원래 라틴어의 'sub(아래)' 'press(누르다)'가 합쳐져서 'b' 발음이 'p'로 변한 말이다. 억제는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육중한 힘이다. 어찌 보면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정부나 종교가 개인의 충동적인 행동을 억압하는 현상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누구나 어릴 적에 용변훈련(toilet training)을 통하여 똥오줌을 가리는 법을 배웠다. 직장에서 상사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다 해서 침착과 균형을 존중하는 당신이 그의 쓰레기통을 뒤집어 엎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식욕이나 성욕처럼 본능이 관할하는 인간의 감성을 무턱대고 압박하는 것은 자연법칙에 크게 어긋난다.


2. 
승화(Sublimation)

 예술가들은 본능적 감성으로부터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 직업의 선택도 원시적인 욕구가 승화된 결과라 한다. 그래서 남들을 두들겨 패고 싶은 욕망이 심한 사람이 권투 선수가 되고 관음증(voyeurism) 요소가 강한 사람이 타인의 내면세계를 엿보기 위하여 정신과의사가 된다는 소문도 있다. 억제와 정반대로 승화는 아래에서 위로 솟는 신선한 힘이다.


3. 
예상(Anticipation)

 과거를 회상하는 습관만큼 미래를 염두에 두는 것은 숙성된 심리작용이다. 소시민들이 일요일 오후에 월요일 출근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그 좋은 예다. 'Forewarned is forearmed (경계가 곧 경비다)'라는 속담에서 'forewarned'는 미리 경고를 받는다는 뜻. 'anticipate(예상하다)' 'anti'는 앞()을 뜻하는 'ante'와 같은 말로서 전진하는 힘을 막는 것을 의미한다. '안티'는 근래에 한국에서 자주 유행하는 말로서 반대파, 심지어는 누구를 싫어하는 모임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4. 
유머(Humor)

 익살 혹은 해학이라 불리는 이 희한한 방어기전을 나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 그리고 'Humor is mankind's greatest blessing (유머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복이다)'이라는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명언에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 공감한다. 우스운 말을 듣고 웃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우리의 격언은 절대 거짓이 아니다.


5. 
타애(Altruism)

 춘향이 이도령 같은 사랑 외에도 보편적 차원에서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은 남의 존재를 십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길이 정작 자신을 위하는 길이라는 진리를 생각해보라. 단군신화 이후로 우리들 속에 면면히 흘러온 홍익인간 이념도 자애(自愛)가 아닌 타애(他愛)를 그 뿌리로 삼는다.


 
아래쪽 본능을 억제하는 힘과 위로 향하는 예술성이나 직업의식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승화작용이며 앞을 내다보는 근면성과 유머감각이 있는 데다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애타심도 충만한 당신이기를 바란다. 말이 쉽지! 그런 방어체제를 다 갖춘 사람은 거의 완벽한 인간일 거다. 그런 귀신 같은 당신이라면 겁이 나고 주눅이 들어서 어찌 내가 사랑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랬으면 하는데.


© 
서 량 2014.11.3

-- 뉴욕중앙일보 2014년 11월 5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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