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 가신다면 김창현 속초는 아름다운 도시다. 설악산과 동해 바다가 은밀히 숨겨놓은 진주 같은 도시다. 속초에 가신다면 무엇부터 볼 것인가? 달빛부터 보아야한다. 달빛이 신선봉에서 화암사로 내려와, 영랑호와 바다에 비친, 그 부드럽고 광활한 누리에 가득한 광경을 보면서, 울산바위 밑을 밤 깊도록 거닐어보아야한다. 월하(月下)에 경전 읽는 소리 들으면 마음이 탈속(脫俗)해지고, 월하에 시를 논하면 운치 표묘하여 속세를 떠나고, 월하에 미인을 보면 번뇌 한없이 높아진다고 한다. 신흥사 극락보전과 부도(浮屠)에 비치는 달빛은 탈속한 친구와 감상하기 좋고, 기러기떼 허공을 나르고 하얀 갈대 덮힌 송지호 화진포 달빛은 시를 아는 친구와 감상하기 좋으며, 영금정 암벽에 밀려오는 은파는 연인과 함께 보아야 제격이다.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너무 밝아서 사람에게 답월(踏月)을 강요하거나, 끝내 잔 들어 마시게하는 달빛만이 진정한 달빛이다. 그때 차 속에서 '에딛 삐아프'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샹숑 '고엽'(枯葉)을 들어보라. 인생이 월광(月光)에 흩어지는 푸른 담배연기 같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안개를 보아야 한다. 안개는 잊혀진 시간을 떠올리는 하얀 커텐이다. '아야진' 커피숍 창가로 가보라. 거기 안개가 선박의 마스트 가리고, 허공을 가리고, 먼 바다 위 희미한 등불을 가리고, 우리의 추억을 가린다. 낮선 이국 홀로 헤매는 정취를 일으킨다. 안개는 속초의 모든 곳을 신비롭게 만든다. 한치 앞 분간하기 힘들만치 해무(海霧)에 덮힌 미시령고개, 늦가을 홍시 달린 감나무를 비치는 장산리 공항의 푸른 써치라이트, 여운포 밤바다 드라이브 길에서 보는 오징어잡이배 푸른 어화(漁火)가 끝없이 신비로운 것은, 속초에 수시로 안개 짙은 밤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단풍을 보아야 한다. 천하 제일 단풍이 어딘가 묻지마라. 한계령(寒溪嶺) 단풍을 보아야 한다. 이른 아침 하얀 안개가 산허리에 감겨 눈부시게 피어오르는 한계령에 가보라. 젖은 바위와 계류 굽이굽이 수정 물결 위에 떨어지는 단풍의 비는 만산홍엽(滿山紅葉)인데, 안개는 조용히 수묵화를 그리고 있다. 이때 다정한 사람의 손 잡고, 수억년간 한 점 티끌까지 씻은듯 깨끗한 암벽에서 꽃처럼 낙하하여 벽옥(碧玉)같은 물에 하나씩 떨어지는 단풍잎들을 보라. 두 사람이 선경 속 인물이 되었음을 느낄 것이다. '두 사람이 술잔을 대하니, 산꽃이 피네. 한잔 들게 한잔 들게 또한잔 들게. 나는 취하여 잠을 자려하니 그대는 잠깐 돌아갔다가, 내일 아침 생각나면 거문고 안고 오라' 꽃빛 물빛이 얼마나 고우면 그대로 산에서 잠들려고 하겠는가. 이런 최상의 물빛을 본 후라야 물소리를 논할 자격이 있다. 선림원 폐허의 석등(石燈)과 삼층석탑 위로 초생달 뜬 밤, 구룡령에 가서 혼자 물소리를 들어보라. 고요한 물소리가 사람의 심금을 깊이 울린다. 언제였던가. 이곳 물소리를 들으러 오던 한 숙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물소리 가슴에 울리고, 남대천 뚜거리탕은 아직도 따끈하건만, 아! 잔 건네던 그녀의 흰 손은 보이지 않는다. 다음은 설경을 보아야 한다. 눈이 하지에 녹는다고 설악((雪嶽)이요, 바위가 눈처럼 희다고 설악이다. 산 아래는 단풍이 한참 붉은데, 산 위는 은백의 봉우리가 청자빛 하늘을 이고 있다. 백설은 기암절벽의 노송과 고사목(枯死木)과 청댓잎을 더 격조있게 만든다. 청화빛 하늘 밑에 백자빛 눈 덮힌 산의 단색 대비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청화백자의 깊은 멋을 처음 깨닫게 한다. 진경산수(眞景山水)란 이런 것이다. 설악의 가장 인적없는 설원(雪原)은 어디인가? 외로운 사람은 용대리 산림욕장엘 가볼만 하다. 거기 계류가 푸른 결빙 위에 육각 보석같은 눈의 결정을 찍어놓은 것을, 낙엽교목 설화(雪花)의 궁전에 안개가 무시로 지나가는것을, 그 미답(未踏)의 설야(雪野)에 눈바람 멀리 흩어짐을 한번 볼만하다. 녹차 한잔 마시며 호반(湖畔)의 눈내리는 풍경 보기엔, 영랑호가 제일이다. 지붕까지 쌓인 눈에 집이 반쯤 묻히고, 푸른 사철나무 울타리에 붉은 열매가 맺혀있는 모습이 영랑호의 서정이다. 찻집 유리창 밖 눈 덮힌 매화 너머로 신선봉 미시령 황철봉 대청봉 보라빛 연봉이 보이는데, 그 중 가장 장관인 것은 하늘로 치솟은 토왕성빙폭(氷瀑)이고, 낮엔 아껴두었다가 달 아래서 볼만한 곳은 기암(奇巖) 울산바위의 설경이다. |
2012.10.10 13:47
2012.10.10 14:03
2012.10.10 14:35
여기 위에 나오는 양희은의 노래는 녹음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좀 질이 떨어지는것 같군요. 반주가 너무 크게 들리지요.
여기 댓글로 신영옥의 한계령을 올렸읍니다.
이것이 녹음이 조금 잘 되었군요.
속초와 본인과는 인연이 많지요.
본인 고향에서 멀지 안은 곳이고 여러번 이런 저런 일로 들린일이 있지요.
특히 고등학교때에는 초라한 어촌 마을로 오징어 찌는 냄새가 가득했었는데
이제는 설악산 국립공원 덕택에 많이 바뀌어 졌읍니다.
사라진 옛 모습이 아쉽기도합니다.
2012.10.10 15:09
한계령에서 한 슬픈 여인을 만난 적 있습니다. 남편도 화가, 부인도 화가였습니다.
부인은 대학원까지 나왔고, 남편보다 나이가 한참 젊었지요.
필례약수 근처인데, 집 이름은 <雪樂園>
속초서 강의하고 오는 길에 간혹 꽁치를 한 박스 사다주고 차 한잔 하곤 하였는데,
훗날 남편은 타계하고 부인은 너무나 비관에 젖어 사람들과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한계령> 노래 들으면 항시 그 분들 생각이 납니다.
두 분 선배님! 어쩌꺼나 올려주신 노래는 감사합니다.
2012.10.10 20:26
2012.10.11 00:44
2012.10.11 10:06
2012.10.11 15:43
1. 양희은은 한계령에 가 보지도 않고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Tv에 나와서 직접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2. 전에는 한계령 꼭대기에 휴계소가 있었습니다.
휴계소에서 존 더 높은 곳에 올라가면 아주 경치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편하게 다니라고 길을 새로 닦아(굴을 내서?) 그런 운치가 없어셨답니다.
참 이렇게 된 곳이 한계령인지 미시령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3. 어떤 할머니가 오늘 새벽에 (6시경) 집을 나서면서 전세버스타고 백담사에 갔다 온다고 나갔습니다.
내가 대학 다닐 때에는 백담사 가려면 마장동에서 아침 8시에 버스타면 저녁에 설악산에 도착했지요.
노영일 선생 말대로 구불 구불 그야말로 구곡양장을 지나야 했지요.
지금 운치는 많이 줄었습니다.
노선생님도 군 훈련받을 때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 가겠네!" 생각이 나겠지요.
지금은 원통도 하루에 갔다 옵니다, 서울에서.
No. | Subject | Date | Author | Last Update | Views |
---|---|---|---|---|---|
Notice |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 2016.07.06 | 운영자 | 2016.11.20 | 18169 |
Notice |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 2016.07.06 | 운영자 | 2018.10.19 | 32310 |
Notice |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 2016.06.28 | 운영자 | 2018.10.19 | 5894 |
Notice | How to Write a Webpage | 2016.06.28 | 운영자 | 2020.12.23 | 43813 |
185 | 인턴 [9] | 2013.10.19 | 노영일*68 | 2013.10.19 | 3499 |
184 | [Essay] Rambling(5) [3] | 2013.04.18 | 이한중*65 | 2013.04.18 | 4192 |
183 | [Getting Old] Role Reversal: When Kids Are The Grown-Ups [5] | 2013.03.15 | 운영자 | 2013.03.15 | 15434 |
182 | [re] 김종훈 전격 사퇴 이유는? [9] | 2013.03.05 | 운영자 | 2013.03.05 | 4588 |
181 | 김종훈 Story [3] | 2013.02.26 | 운영자 | 2013.02.26 | 4828 |
180 | [수필] 명당 자리 [5] | 2013.02.25 | 서윤석*68 | 2013.02.25 | 7037 |
179 | Rambling(4) [6] | 2013.02.21 | 이한중*65 | 2013.02.21 | 4981 |
178 | [단편] 철새 [6] | 2013.02.14 | 김일홍#Guest | 2013.02.14 | 4281 |
177 | 기다림 [9] | 2013.02.08 | 노영일*68 | 2013.02.08 | 4746 |
176 | [Essay] A Rambling(2) [3] | 2013.01.12 | 이한중*65 | 2013.01.12 | 4301 |
175 | 대선을 치르고! [8] | 2012.12.20 | 김이영*66 | 2012.12.20 | 4376 |
174 | 눈이 내리면 [2] | 2012.12.04 | 김창현#70 | 2012.12.04 | 5353 |
173 | 餘命의 생각이 들어서... [5] | 2012.12.02 | 운영자 | 2012.12.02 | 5137 |
172 | 가을이 오는 거리에서 [11] | 2012.11.28 | 김창현#70 | 2012.11.28 | 5205 |
171 | Classic Music을 살릴려면.... [3] | 2012.11.12 | 운영자 | 2012.11.12 | 3698 |
170 | [Essay] 대선을 40여일 앞두고 [6] | 2012.11.12 | 김성심*57 | 2012.11.12 | 3517 |
169 | [Essay] 음악 [10] | 2012.11.10 | 노영일*68 | 2012.11.10 | 3777 |
168 | [Essay] On an Autumn Day (가을날에는) [8] | 2012.11.01 | 김창현#70 | 2012.11.01 | 3553 |
167 | 신영옥의 한계령 [2] | 2012.10.10 | 운영자 | 2012.10.10 | 5754 |
» | 속초에 가신다면 [8] | 2012.10.10 | 김창현#70 | 2012.10.10 | 7270 |
한계령
저 산은 내게, 오지 말라 오지 말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 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 가라 내려 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 가라 내려 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정덕수씨의 詩 (아래에 있는)에서 이 노래의 가사가
유래되었고, 이 노래를 양희은이 불렀지요.
한계령에서 1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메일지.
삼만육천오백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메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愛憎)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 1981년 10월 3일 한계령에서 고향 오색을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