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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가을이 오는 거리에서

2012.11.28 14:02

김창현#70 Views:5205

 

   가을이 오는 거리에서

 가을은 안개가 좀 깔려야 한다. 그래야 단풍이 하얀 스카프를 둘러쓴다. 이슬도 좀 내려야 한다. 그래야 단풍이 흰이슬에 얼굴을 씻는다. 도시의 가을은 가로수에 내린다. 가로수는 아직 푸른 잎도 있지만, 어느새 노랗게 붉게 물든 것도 있다. 초록과 노랑 진홍, 삼색의 조화가 아름답다. 그 가로수 밑을 지나가는 여인들, 가을은 여인의 눈빛을 그윽하게 한다. 가로수처럼 물든 여인의 머리결에 시선이 간다. 아직 검고 윤끼나는 머리결, 살짝 새치가 섞인 그레이, 은발이 다채롭다. 검고 윤끼나는 머리결은 목요여인, 그레이는 금요여인, 은발은 한 주가 끝나는 토요여인으로 명명해본다. 그레이는 지난 날이 올 날 보다 많아진 시점이다. 은발은 년륜이 애수를 더한다. 단풍은 짙을수록 아름답다. 사람도 세월 따라 딜리케이트한 향기가 짙어진다. 봄꽃만 아름다운 건 아니다. 일렬로 선 가로수가 아름답게 늙는 법을 시범하는 듯하다. 모두 개성이 다르고, 간직한 분위기가 다르다. 하얀 스카프 멋있게 둘러쓴 여인이 걸어가는 모습 보인다. 그의 어깨에 떨어지는 낙엽은 가을노래다.  

 가을 바람에 날리는 낙엽은 허공에 시를 쓴다. 지나간 생의 궤적을 마감하는 아름다운 춤사위가 하나의 시다. 낙옆은 보도에 떨어져 뒹굴면서 우리의 마음도 나그네로 만든다. 뜨겁던 여름을 쓸쓸히 돌아보게 한다.  단풍 위로 보이는 유리알처럼 푸른 하늘은 우리의 마음을 흰구름처럼 정처없이 떠가게 한다. 파도 위 돗단배처럼 끝없이 흔들리게 한다. 차그운 가을 바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먼 하구의 갈대꽃을 흔들고, 높고 낮은 산 황홀한 수채화로 물들인 단풍을 떨구다 왔을지 모른다. 산 사이로 흐르는 작은 시냇가 들국화와, 논두렁에서 하늘하늘 춤추는 코스모스 향기 맡다 왔을지 모른다. 고가(古家) 푸른 골기와 지붕에 홍시를 하나 떨구다 왔을지 모른다.

 봄이 소년이라면 가을은 노년이다. 봄이 만남이라면 가을은 이별이다. 봄이 환희라면 가을은 애수다. <여름은 어제, 이제는 가을. 이 야릇한 소리 이별인양 들린다.> 보들레르 싯귀가 더 절실해지는 가을이다. 나이 들수록 가을은 더 외롭고 허전해진다. 사람의 마음을 가로수 마냥 붉게 물들인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를 가을바람, 바람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외로운 휘파람은 어디서 배웠느냐고. 나도 휘파람 불고 싶다. 바람 따라 정처없이 떠나고 싶다. 철새처럼 먼 하늘로 날라가고 싶다.

 뜰에 향기로운 해국이 만발하고, 창 밖은 만장같이 넓은 바다에 달 뜨는 집이 있다. 화가인 남편과 시인인 아내가 그곳 바닷가에 살고있다. 산등성이 위의 별빛이 수놓은 보석처럼 총총하고, 멀리 어둠 속을 흐르는 계류소리 그윽한 집이 있다. 산속의 시인은 달빛차로 명명한 수제차 마시며 초생달 비친 창가에 앉아있을지 모른다. 그들이 그리워진다. 문득 금년에 가버린 두 친구 생각해본다. 그들의 살아생전 일화를 떠올려 본다. 그들 무덤 위에 이제 막 뗏장이 새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한 친구는 초등학교 한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한번 가면 그만인 것을. 한번 떠나면 다시 못보는 것을. 그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간 것일까. 가을은 먼 데 사는 친구, 죽은 친구를 그립게 한다. 단풍은 유한한 인생을 생각케 한다. 어둠 내리는 거리는 차들이 불을 밝힌다. 저 차들은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도시의 페이브먼트 위 가로수는 단풍이 들고, 보도 위를 걸어가는 사람 마음도 단풍이 든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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