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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기다림

2013.02.08 13:12

노영일*68 Views:4746


기다림

어슴푸레 잠에서 깨었다.
사방은 캄캄한 어둠이고 창밖에서 흘러들어오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몇몇가지 방안의 물건들을 알아볼수 있게 비췄다. 소변이 마려웠다.
몸을 돌려 일어서려고 하니 머리가 어찔했다. 아까 저녁때 간호원이 입에 털어넣어준 약이 독했던 가보다. 그래도 화장실에는 가야겠다.
억지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온세상이 빙 돌더니 균형을 잡을 시간도 없이 방바닥에 나둥그러졌다. 머리를 꽝 찧고 정신이 아뜩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정신을 차리고 보니 머리가 빠개지는듯 아팠다. 일어나려고 몸을 움직이니 오른쪽 엉치에 심한 통증이 왔다.
소리칠 기운도 없어 신음소리같은 소리를 내 보았으나 누가 와 보아주는 사람도 없다. 꼼짝도 못하고 방바닥에 엎드려 누가 올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지나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리속을 스쳐갔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며 평생을 보낸 Solveig의 고향.

어린시절은 행복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첫딸로 태어나 귀여움을 독차지 하며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천진난만하게 자라났다. 여학교시절에는 꿈도 많고 친구들도 많았다. 좋은 남편을 만나 서로 사랑하고 행복한 가정도 이루었다.

첫딸을 낳고 얼마 안되어 6.25 사변이 일어났다.
대포소리가 꽤 가까이에서 쿵쿵하고 들리는데도 라디오방송에서는 계속 서울시민들은 아무 걱정말고 동요되지말라고 했다. 비행기에서도 그런 내용의 삐라를 뿌리고 지나갔다.
남편은 그당시 공무원이어서 웬지 불안한 예감이들어 혹시나해도 잠시 시골집에 가있다 오겠다고 동향친구와 함께 떠났다.
그 다음날 인민군이 들이닥쳤다.
평소에 안면있던 이웃이 이집에 공무원이 산다고 인민군을 데리고 찾아왔다.
인민군들은 반동을 어디에다 감췄냐고 총뿌리를 드리대고 당장 쏴 죽일것 같이 으르렁댔다. 집안을 삿삿이 뒤졌으나 나올리가 없었다.
그후로 매일같이 보안서에 끌려가 고초를 당해야 했다. 사실대로 불지않는다고 귀싸대기를 얻어맞는것은 다반사였고 심지어는 개머리판으로 얼굴을 얻어맞아 아기를 업은채로 길옆 도랑에 쳐 박히기도 했다.
고난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가슴속에는 언젠가는 이 지옥이 끝나고 남편을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견딜수 있었다. 남편은 틀림없이 살아있고 나를 찾아와 주리라.

드디어 서울이 수복되어 인민군들이 물러가고 국군이 들어왔다.
그러나 남편은 돌아오지를 않았다. 시골집에 기별을 해 봤으나 거기에는 온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남편과 함께 시골 고향으로 떠난 친구를 길에서 만났다.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기차역에서 폭격을 맞아 많은사람들이 죽고, 혼비백산하여 뿔뿔이 흩어져 저마다 살길을 찾아 뛰다보니 남편과도 헤어졌는데 그후로 본적이 없다고 하며 아마도 폭격에 죽었을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인민군이고 국군이고 젊은 사람들을 마구 잡이로 끌어다가 군대에 집어넣어 거기에 붙잡혀 갔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남편이 죽었다는것은 믿을수가 없었다. 믿고 싶지도 않았다. 꼭 살아있을것만 같았다. 꼭 나를 찾아올것이다.

옛집은 폐허가 되다시피 했으나 남편이 돌아오면 그집으로 찾아 올것이라 생각되어 그냥 그집에서 계속 살았다.
남대문 시장에서 화장품가게를 열어 한때는 돈도 꽤 많이 벌었으나 가게에 불이나 몽땅날려 버렸다. 그후로 이것저것 해 보았으나 힘겨운 생활이었다.
오직 남편이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희망만으로 살아갔다.

딸을 힘들게 대학교육까지 시켰다. 딸이 결혼을 하고 남편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러고 얼마후 딸의 초청으로 미국에 오게 되었다.

젊었을때는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며 장사도 해보고, 베이비 씨터도 하고 혼자살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이곳저곳 다니는것이 자유분망하고 재미도 있었다.
한국에 갈때마다 친척들이나 옛날 살던집을 찾아 혹시나 남편소식이 있나 알아봤다. 그러나 모두 헛일이었다.
몇년이 지나고 나니 시민권도 나오고 노인아파트에 들어갈수 있었다. 정부에서 생활보조금까지 나와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같은 아파트의 한국노인들과 어울려 심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리움과 기다림의 고독한 생활은 매 한가지였다.

이삼십년이 한 순간같이 지나갔다.
나이를 먹으니 기운도 없어지고 정신도 흐려졌다. 시내 버스를 타고 사방팔방 다니던것도 이제는 겁이나 밖에 나가기조차 두렵다. 그렇게 즐겨보던 한국 드라마나 비데오도 재미를 잃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노인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거나 양로원으로 가고 남은사람은 혼자뿐이었다.
기억력이 희미해져 자꾸만 잊어먹는다. 심지어는 밥먹는것조차도 잊어버린다.
복지회에서 도우미가 나와 여러가지로 도와 주고, 간호사도 방문하여 건강을 돌보아주지만 산다는것이 점점 힘겨워 졌다.
정신이 혼미하여져 아파트안을 방황하거나 밤중에 남의집 문을 두드린다거나 하는 일도 생겼다. 수도물을 틀어놓거나 스토브를 켜놓고 잊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옛날 있었던일이 어제 있었던 일처럼 혼동이된다. 심지어는 딸네 집에 전화하는 법도 잊어버려 남들이 대신 걸어주어야만 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더 이상 아파트에 혼자 사는것은 안전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양로원의 첫날은 충격이었다.
삼층은 한국노인들 전용이었다. 간호 보조원도 한국사람들이 있고, 식사도 한국음식이 나온다. 대부분 한국말로 대화를 하고 매일 전도사라는 여자가 와서 기도도 해주고 설교도 하고 그런다.
가끔 오락 프로도 있는데 누구하나 관심을 보이는것 같지도 않다. 텔레비죤은 한국방송을 계속 혼자 떠들고 있다.
식당에 삼사십명쯤 둘러앉아 있는데 둘러보니 모두 초점잃은시선으로 허공을 쳐다보고 있거나 아예 눈을감고 입을 헤 벌리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어떤 할머니가 횡설수설 소리를 지른다. 다른 할머니가 “야, 조용히해” 하고 맞소리를 지른다.
식당까지 나오지 못하는 사람은자기방 침대에 누워 계속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마치 저승가는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는 대합실 같았다.
갑자기 심한 우울증이 몰려왔다. 이렇게 더 살아서 무슨의미가 있는가. 나도 저들과 다를것이 무엇인가. 말도 하고 싶지가 않다. 먹고 싶지도 않다.
죽는것은 두렵지않으나 추하게 변해가는 내 모습은 견딜수가 없었다.
의사가 와서 신체검사를 하고 우울증세가 있다며 약을 처방해 주고 갔다. 그 약이 그렇게 독할줄이야 !



얼마나 지났을까. 두런 두런 말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열렸다. 간호원이 들어와 뭐라고 영어로 소리소리 지르더니 번쩍들어 침대에 눕혔다. 얼마후 앰뷸런스가 오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딸과 사위도 왔다.
여러가지 검사를 하더니 엉치뼈가 불어졌다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아 이것이 마지막이구나. 이제는 더 걸을수도 없겠구나. 수술에서 깨어날수나 있을까? 오랜 기다림의 보람도없이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인가?

수술에서 깨어나니 더 심한 절망감이 들이 닥쳤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겠다.
혈관 주사를 빼 버렸다. 간호사들이 질겁을 하고 다시 꽂아놓는다.
침대에서 떨어지면 죽을가 하고 힘껒 굴러 바닥으로 몸을 내동댕이 쳐 봤다.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손발을 꽁꽁 묶어 놓는다.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 고통을 받고 살아야 하는가? 물이건 식사건 전혀 먹지않고 단식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배에 고무줄을 꽂고 액체 음식을 집어넣는다. 안간힘을 써서 고무줄을 빼버렸다. 그러나 그도 소용이 없었다. 다시 수술실에 데려가 새 고무줄을 끼웠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하루라도 더 살려고 바둥댄다.
그러나 막상 죽고 싶은사람은 죽지도 못한다. 생명은 질기고 끊을라고 해도 끊을수도 없는 것이다.

기다림은 길고도 지루한것. 그러나 이제는 기다리는 희망도 의지도 사라졌다.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에 와 있는 느낌이다. 빨리 기차가 와서 타고 떠나고 싶을 뿐이다.

더 독한약을 준다. 아득한 잠속에 빠져 들어간다.
긴 터널 저쪽에 남편이 보인다. 얼마나 기다리던 남편이었던가? 빨리 오라고 한다. 뛰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순간 갑자기 내 이같은 모습을 남편에게 보여주기가 싫어졌다.
그만 그자리에 주저 앉았다.



February 8, 2013. 시카고에서 노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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